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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과 - 몸을 하나님께 드림

2010.05.06 14:05

이상봉 조회 수:3422

 

 

 

제14과 몸을 하나님께 드림 (6:12-23)


거룩한 삶의 길


1.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함으로 얻는 생명과 승리 (6장)


B.자신을 하나님께 의의 도구로 드림(6:12-23)


 

1.우리가 자신이 죄에 대해 죽은 자임을 깨닫고 또 그렇게 여긴다면 우리는 삶에서 어떤 자세를 취하여야 하는가?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6:12,13)


 

몸을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드려야 한다. 이는 우리가 그런 목적으로 부르심을 받았고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믿음 안에서'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는 거룩한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2.바울은 우리의 몸을 어떤 몸이라고 표현했는가? 그리고 그는 왜 그렇게 표현했을까?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롬6:12)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24)


 

"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8:11下)


 

아담으로부터 생명을 물려받은 자연인으로서의 우리의 몸은 죽을 몸 또는 사망의 몸이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약하고 비정상적인 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대로 존재하는 몸이 아니라 타락으로 인해 병들고 왜곡된 몸이다. 자연인으로서의 우리의 몸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님의 생명의 결핍으로 인해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은 문둥병자나 유출병자나 시체를 만진 자들을 부정한 자로 여겨서 이스라엘 진 밖으로 쫓아내셨다. 그 까닭은 하나님이 생명이 충만하지 못한 자를 사실상 죽은 자로 간주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회복되고 충만케 된 세계를 표방하는 나라였기 때문에 그런 비생명적인(생명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우리 몸에 절대로 암 세포를 허용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비록 문둥병자나 유출병자, 시체에 접촉한 자 등이 실제로 부정한 자는 아니었지만 상징적으로라도 하나님에 의해 부정하다고 간주된 사람은 결코 이스라엘 안에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은 인류(사람) 안에서 생명의 회복을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가 하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일단 우리의 몸이 얼마나 하나님께 부적합하며 생명 없는 허약한 것인가를 먼저 지적하신다. 그러므로 자연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그리스도를 믿을 필요' 곧 '믿음으로써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의 필요성도 알지 못할 것이다.


 

성경은 우리 몸을 죽을 몸 또는 사망의 몸이라고 일컫는 외에도 '죄의 몸'(롬6:6), '육의 몸'(natural body ; 고전15:44), 육적 몸(the body of the fresh ; 골2:11), 낮은 몸(빌3:21)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다 타락 후 인간의 몸이 왜곡되고 연약하게 되어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쓰이기에는 부적합하게 된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3.무엇을 하는 것이 죄와 사탄으로 하여금 우리 몸에서 왕 노릇하게 만드는 것인가?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롬6:12,13)


 

몸의 사욕(私慾)을 좇고 불의한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죄로 우리 몸에 왕 노릇하게 만드는 것이다. 몸의 사욕(lust)이란 육신의 강한 욕망 즉 하나님께서 주신 정당한 인간의 욕망을 넘어서는 모든 육체적 욕망을 말한다. 이것은 사탄으로 말미암아 거짓되고 헛된 목표와 생각이 사람 안에 주입되었기 때문에 생성된 것이다. 어떤 욕망이 사욕이냐 정상적인 욕망이냐 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판단될 수 있기도 하지만 상당히 주관적인 것이다. 비록 어떤 욕망이 특히 부도덕하고 악한 욕망은 아니며 객관적으로 별 문제가 없는 욕망이라 할지라도 그 욕망이 그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몸을 사용하는데 지장을 초래한다면 그것은 적어도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사욕이라고 말할 수 있다.


 

4.우리의 몸을 (죄짓는데 내주지 말고) 하나님께 드리며 의의 병기(의를 행하는 도구)로 써야 할 까닭은 무엇인가?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롬6:13中)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고전6:19,20)


 

우리가 범죄하지 않고 의롭게 살아야 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을 우리 옛 사람은 이미 죽었고 이제 여기 서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딴 사람이기 때문이다.


 

5.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다시 산 우리가 '단지 생각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거나 '종교적 의식으로' 하나님을 섬길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실제적이고 완전한 헌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바울이 6:13에서 사용한 두 단어는 무엇인가?


 

바울은 우리 {자신}을 드려서 그리고 우리 {지체}를 드려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했다. 이것은 몸과 마음과 인생 전체를 드리는 것에 못 미치는 모든 종교적 행위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마땅한) 예배니라"(롬12:2)


 

6.거듭난 우리는 어느 정도로 죄를 거부하고 싸워야 하는가?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히12:1,3,4)


 

우리는 죄를 거부하고 대적하며 싸우기를 피 흘리기까지, 죽기까지 해야 한다. 그것은 죄가 우리를 죽일 뿐 아니라 주님(하나님)을 십자가에서 죽였기 때문이다. 죄는 어쩔 수 없으면 지어도 무방한 그런 것이 아니다. 이는 마치 독약은 어쩔 수 없으면 마셔도 되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특히 주님은 죄를 거부하고 싸우는 데 있어서 우리를 징계를 통해 도우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실 때 즉 고난이 다가올 때 우리는 그것이 우리는 죄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하나님의 생명을 풍성히 누리게 하는데 더 없이 좋은 조력자가 될 줄로 알아 기쁘게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119:67)


 

7.죄가 다시 우리를 주관치 못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 말은 우리가 전혀 죄를 짓지 않게 되거나 죄를 짓고 싶어도 지을 수 없을 정도로 죄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멀어진다는 뜻인가?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6:14)


 

우리가 몸의 구속을 입기 전, 곧 땅에서 몸을 입고 사는 동안에는, 죄가 완전히 무력해져서 저절로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우리 몸이 죄의 몸, 죽을 몸, 육적 몸이라고 불릴 정도로 연약하며 성질상 죄와 가깝기 때문이다. 만일 거듭난 사람의 몸이라고 해서 아무 노력이나 意志를 발휘함 없이도 죄를 저절로 극복할 수 있다면 6:12의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라는 말은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죄가 우리를 주관치 못한다는 것은 다만 죄가 우리의 의사와 의지와 관계없이 '억지로' 우리를 주관치는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죄는 '거부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옛 사람이 처리되었고 하나님의 거룩한 생명을 받은 새 사람으로 거듭났음을 믿고 당당하게 죄를 거부하면 '죄는 짓지 않을 수 있다.' 비록 우리가 죄를 짓기 쉬운 연약한 몸을 여전히 가지고 있지만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죄는 무력하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죄와 상관이 없는 새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리고 아무 것도 그리스도 안에서 서 있는 우리를 강제로 죄 짓게 만들지는 못한다.


 

8.죄가 우리를 주관치 못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6:14)


 

죄가 우리를 주관치 못하는 것은 우리가 죄의 힘(영향력)보다 더 큰 어떤 힘 아래 있기 때문이다. 죄의 권세보다 더 크고 유력한 권세는 그리스도의 은혜이다. 즉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믿음으로 살기만 하면) 범죄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다. 은혜 아래 있다는 말은 성령 아래 있다는 말과 같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 사람은 그 자신의 육신적 능력의 한계와 상관없이 능히 죄를 이기고 승리할 수 있다. 그는 하나님의 실력으로 살기 때문이다.


 

9.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않다고 할 때 법은 무엇이며(두 가지로 말해 보라) 왜 우리는 법 아래 있지 않은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4:5)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롬7:2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7:25)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롬7:1)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롬7: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律法과 罪의 法은 내용상으로 서로 반대이며 또한 律法은 (사람의) 밖에서 작용하고 罪의 法은 안에서 작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둘 다 사람에게 작용하여 결국 사람을 죄인으로 사망으로 몰고 간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법은 산 사람(옛 사람)에게 작용하는 것이지 죽은 사람(거듭난 사람)에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법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죽을)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영을 좇아 거듭난 생명으로 행하지 않고 육체를 따라 행한다면 그는 여전히 법의 지배를 피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굳게 고수하며(믿으며) 몸을 하나님을 위해 드린다면 법은 결코 우리를 강제로 죄와 사망의 길로 끌고 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지식적으로는 자신의 죽음을 외치지만 실제 삶에 있어서는 여전히 몸의 사욕을 좇아 행하는 사람은 죄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10.은혜 아래 있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말을 적절한 다른 말들로 표현해 보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5:4)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로다"(롬5:17)


 

은혜 아래 있다는 말은 결국 죄를 지을 수 없는 새 생명으로 살고 있다는 말이다. 이 새 생명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서 온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생명이며 죄를 알지도 못하는 생명이다.(고후5:21, 요일3:6) 그러므로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은 우리가 단지 하나님의 은혜로(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를 지어도 용서를 받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 훨씬 이상의 사실, 곧 죄를 짓지 않고자 하면 얼마든지 짓지 않을 수 있는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11.본래 죄의 종이던 우리가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된 것은 무엇으로 말미암은 것인가?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6:17,18)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복음을 듣고 그것을 믿음으로써 된 것이다.


 

12.사람에게 생명과 자유와 승리를 가져다 준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그런데 6:17에서 바울은 로마 형제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것을 단지 '복음을 믿었다(받아들였다)'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고 '교훈의 본을 순종했다'는 말로 표현했다. 왜 그렇게 말했을까?


 

바울이 그렇게 말한 까닭은 복음이 단지 지식이나 교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생명과 인격과 삶의 어떠함)에 관계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복음이란 물론 근본적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 사역을 하나의 객관적 사실(원리)로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말이나 글로서 (교리나 지식으로) 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은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라는 인격을 아는데서 시작하여 그것을 완전하게 누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성질상 말이나 글로는 완전하게 표현되고 전달되기 어렵다. 태초부터 있던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인격)으로 오신 그리스도 자신을 통해서만 비로소 온전하게 표현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복음도 그의 생명을 받은 사람들(그리스도인)을 통해서만 온전하게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장 잘 설명한 사람은 바울이다. 그러나 그가 복음에 대해 기록한 대부분의 글들은 복음에 관한 객관적인 이론이나 원리가 아니라 복음의 내용이신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설명이었으며 그에 덧붙여서 복음으로 사는 자기 자신에 대한 설명이었다. 사실 바울 서신의 대부분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변화된 바울 자신의 생명(마음)과 삶에 대해서 쓴 것이었다.


 

그러므로 영생(복음)은 교훈(교리)만 받아들여서는 누릴 수 없고 교훈의 본(인격과 삶)을 실제적으로 순종할(받아들일) 때만 누릴 수 있다. 주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생명을 얻지 못한 것은 그들이 구원의 방법(율법)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에게 전하여진 교훈의 본(율법의 구현이 되신 주 예수님 자신)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8:29)


 

"이제 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롬15: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전4:16)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전11:1)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빌3:10)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빌3:17)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살전1:6)


 

13.사람은 자신의 몸을 어디에 드려서 쓰느냐에 따라 몸이 누리게 최종 결과가 달라지게 된다. 몸이 쓰여질 수 있는 두 방향과 결과에 대해 말해 보라.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0-23)


 

14.사람이 하나님과 죄에서 동시에 자유롭게 되는 것이 가능한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 사실은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게 되는가?


 

죽기 살기로 그리스도를 확실히 붙잡음으로써, 범죄하지 않는 삶 곧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아닌 삶은 곧 파멸이며 죽음이다.


<영과 혼과 몸>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를 세 부분으로 구분한다면 영과 혼과 몸으로 나눌 수 있다. (이는 단지 기능상 혹은 편의상 그렇게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지 그렇게 각각의 존재로 나누어질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영은 하나님(성령)이 거하시는 곳으로써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을 가리킨다. 영은 흔히 '속 사람'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 바깥에는 흔히 '겉 사람'이라고 불리는 혼이 자리 잡고 있다. 혼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 또는 마음이라고 말하는 부분으로서 知(생각), 情(감정), 意(의지)의 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그 바깥에 몸이 있다. 몸은 우리의 동물적 육체를 가리킨다. (어떤 사람들은 영과 혼을 하나로 보고 사람이 영혼과 몸 두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영은 사람의 생명을 대표하는 기관이다. 왜냐하면 거기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은 혼과 몸을 지배하는 머리의 위치에 놓여 있다. 영이 어떤 뜻을 품으면 혼은 그것에 따라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나타낸다. 그리고 몸은 그런 영과 혼의 주장(지도)대로 움직인다. 말하자면 몸은 영의 소욕(所欲)을 이루는 도구인 셈이다. 이 순서대로 움직이는 사람 즉 영이 혼을 지배하고 혼이 몸을 지배하는 사람은 제대로 된 정상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오늘날 타락한 인류는 하나님을 상대하는 기관인 영이 죽어버렸기 때문에 이 순서가 거꾸로 되고 말았다.


 

혼은 인격을 대표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혼은 본래 독자적인 뜻을 품지 못한다. 혼은 그릇과 같아서 영이나 그 밖의 어떤 생명의 주체가 무엇을 담아 주는 대로 움직이는 기관이다. 즉 혼은 영의 상태를 받아들여서 몸을 제어하는 기관인 것이다. 만일 사람에게 영이 살아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혼에게 제대로 전달한다면 혼은 그것을 따라 생각하고 말하며 감정과 의지를 표현함으로써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몸은 그 혼의 통제를 따라 움직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실제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영이 죽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상황이 다르다. 이런 사람에게 있어서 혼은 거꾸로 몸(육체)의 뜻을 받아들여서 그것으로 자기의 뜻을 삼는다. 이런 사람은 육체의 정욕이 곧 그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통해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영이 혼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혼을 지배하는 상황이다. 통제를 받아야 할 몸(육체의 정욕)이 거꾸로 혼을 지배하여 동물적 삶을 살게 만드는 것이다.


 

사탄이 처음에 사람을 속여서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할 때 품었던 목표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곧 사람으로 하여금 영(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고 몸의 동물적 욕구를 나타내게 함으로써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광스럽고 존귀한 지위를 유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요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우주 가운데서 하나님을 대표하지 못하고 다른 피조물과 같이 육체의 본성을 따라 움직이는 일개 동물적 존재로 떨어지게 된 것은 사람이 사탄의 의도대로 되었다는 증거이다.


 

타락하기 전에 사람은 영이 살아 있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의 뜻을 나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사탄에게 속아 영이 죽은 후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인격)과는 반대되는 악한 일 뿐이었다. 이러한 인간 상태를 두고 하나님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창6:3)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들을 홍수로 처리하셨다. 하나님이 친히 지으신 사람을 하나님의 손으로 처리하신 것은 영이 아니라 몸이 혼을 주장하는 상태가 된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전혀 나타낼 수 없는 무용한 존재가 된 것이며 이미 죽은 것이다. 하나님이 홍수 심판을 내리신 것은 생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자라 할지라도 실제로 그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죽은 자와 마찬가지며 하나님께는 아무 소용이 없다. 혼이 몸의 욕구를 좇아 움직이는 사람, 그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육체의 정욕에 지배를 받는 사람은 아무리 외형적으로 신자라 할지라도 하나님께는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시지 않는다. 오직 삶에서 영의 인도를 철저히 받지 않는 사람, 혼과 몸이 영의 통제(지배) 하에 있어서 몸을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실제로 바치는 사람만 참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사람이 영적이지 않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가? 영적이지 않다는 것은 첫째, 육적인 상태를 말하고 둘째, 혼적인 상태를 말한다. 비영적인 사람은 다 이 두 부류 중 하나에 속한다. 육적인 사람이란 육체의 충동에 따라 사는 사람 곧 몸이 혼을 지배함으로써 정욕적이고 동물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그 삶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열매를 맺기가 매우 어렵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은사를 받아도 그것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쓰지 않고 육체의 색욕거리로 쓰기 쉽다.(유1:4)


 

또 하나의 종류는 혼적인 사람인데 이런 사람은 겉으로 볼 때 육적인 사람과 상당히 다르게 보이지만 비영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혼적인 사람이란 혼의 성분인 지성과 감정과 의지가 특이하게 강한 사람을 말한다. 혼은 사람의 정신 세계를 밖으로 표현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밖에서 보면 그것이 곧 그 사람의 自我(自己) 자체로 보인다. 그러므로 혼은 종종 자아(자기)와 동일시된다. 구약에서 혼은 사람(person)을 가리키는 용어로 많이 쓰였다.


 

사람들 중에는 지성이 특별히 강한 사람도 있고 특별히 감정적인 사람도 있다. 그리고 의지가 특이하게 강한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한 마디로 말해서 다 自我(自己)가 센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그 강한 자아(혼)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육적인 사람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의지가 매우 강한 사람은 그의 강한 정신력으로 몸(육체의 정욕)을 통제하기 때문에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살거나 종교적인 신념에 따라 거룩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몸의 욕구를 상당히 극복하고 몸을 그가 마음먹은 대로 이끌어 가는 경우가 많다. 주님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같은 율법주의적 종교인들, 현대의 여러 사상가들도 다 이런 사람들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육적이지 않으면서도 비영적인 사람들 곧 혼적인 사람들이다.


 

혼적인 사람은 밖으로 드러날 때 육적인 사람들과는 달리 상당히 훌륭하고 그럴듯 해 보이는 사람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어차피 영의 인도를 받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며 몸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리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육체의 욕망과는 다른 '고상하고 그럴듯해 보이는 그 무엇'을 좇아 행한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가 아니라) '스스로 영광을 취하기 위해' 개발해 낸 새로운 理想이라 할 수 있다. 혼적인 사람은 육체의 정욕을 누르고 이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서 온 힘을 다 쏟는다. 그들은 몸의 정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힘을 쓰지도 않지만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아닌 것이다. 그들은 오직 자기가 만들어낸 '자기 영광'을 위해서 몸을 사용한다.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그 멋진 '혼적 이상'은 사실은 사탄이 준 것이다. 그것은 사탄이 사람으로 하여금 '영(하나님)의 인도' 대신 붙잡으라고 준 그럴듯한 '거짓말'(거짓되고 허망한 생각들)이다.


 

몸은 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동물적 욕구(잘 먹고 잘 입고 높임 받으며 편하게 살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쓰여져서도 안되거니와 출처가 불명확하고 정함이 없는 그 '고상한 자아의 욕구'라는 것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쓰여져서도 안된다.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고전6:13) 몸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도구로써 쓰여져야 하며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도구로써 쓰여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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