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경배하기 위해 찾아온 동방 박사들은 맨손으로 오지 않고 그리스도가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물들을 준비해 가지고 왔다. 그들이 가져와서 주님께 드린 예물은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었다. 지금 우리가 이 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기 알기는 어렵다. 그것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그것을 준비해온 박사들 자신뿐일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생애를 참으로 아는 후대의 많은 경건한 사람들은 이 예물들이 주님의 생애를 표현하기에 적합한 예물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깨달았다.  

3세기의 유명한 신학자 오리겐은 박사들이 왕에게 드릴 예물로서 황금을, 하나님께 드릴 예물로서 유향을, 그리고 죽은 자에게 드릴 예물로 몰약을 각각 가져왔다고 해석했다. 이것은 매우 적합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구약성경에서 황금은 거의 언제나 왕의 권세를 나타내는 소재였다. 그러므로 금은 왕을 표현한다. 그리고 유향은 성전에서 쓰이는 향의 주 재료였다. 몰약은 사람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하여 또는 사람의 시신을 장사함에 있어서 부패 지연과 악취 제거를 위해 사용되었다. 이 세 가지 예물은 각각 주 예수님의 위치를 나타낸다.

황금은 '사람 앞에서의' 주님의 위치를 나타낸다. 황금은 주님이 왕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낸다. 금은 왕의 권위와 영광을 나타내는 물질이다. 또 금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물질이다. 그러므로 황금은 주님이 사람들의 왕이시며 하나님의 아들(하나님)임을 나타낸다. 박사들이 이런 의미를 깨닫고 황금을 바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아기 예수에게 황금을 드린 것은 결과적으로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세상의 왕이심을 잘 나타낸 일이었다.
주님은 참으로 정금 같은 분이다. 그의 인격은 금처럼 아름답고 견고하며 영원히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그는 금으로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만물 위에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를 가지고 다스리신다. 그가 왕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그 자신이 스스로 주장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했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그의 인격과 능력, 그의 말씀과 삶이 자연스럽게 그 모든 사실을 입증했기 때문에 드러난 것이다.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였느니라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거를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일시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요5:31-37)

사탄은 이러한 주님의 영광과 권세를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는 모든 수단을 다하여 자신을 이런 존재로 위장하고 포장하려고 한다.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계17:3,4)

사탄의 특징은 언제나 꾸미는 것이다. 금으로 꾸미고 보석으로 꾸미고 진주로 꾸미는 것이다. 그에게는 진실이 없고 영광이 없고 권세가 없다. 그에게 있는 것은 거짓과 망상과 수치뿐이다. 그러므로 그는 언제나 가장하고 꾸미는 것이다. 그는 꾸밀 뿐 아니라 실제로 금으로 된 잔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 안에는 가증한 것들과 더러운 것들뿐이다. 본질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에게는 본질적인 영광과 권세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은 무엇이나 꾸밀 필요가 없다. 주님 자신만 하나님의 아들과 왕이 아니라 우리도 또한 그러하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벧전2:9) 그러므로 우리도 자신을 애써서 무엇인가 있는 자처럼 꾸미거나 가꿀 필요가 없다. 그것은 사탄과 그에게 속한 세상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생명 자체가 금이므로 이 생명을 키워나가기만 하면 정금 같은 인생 곧 금의 영광이 충만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사탄이 금잔을 가졌지만 그 속에 더러운 것이 가득한 모습이라면 우리는 질그릇을 가졌지만 그 속에 보배가 가득한 모습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아들로 지음 받은 우리의 영광이다.


다음은 유향이다. 유향은 '하나님 앞에서의' 주 예수님의 위치를 나타낸다. 향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태워지는 물건이다. 향은 하나님께 바쳐지고 쓰여지기 위해 존재하는 물건이다. 주님의 인생 역시 그랬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께 바쳐지기 위해 존재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그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바쳤다. 주님은 자기를 태워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을 살았다. 유향은 이러한 주님의 희생과 헌신을 표현하는 상징물이다.

박사들은 단지 그것이 비싸고 값진 물건이었기 때문에 가져와서 바쳤는지 모르지만 그들이 바친 유향은 참으로 주님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겸손하고 헌신적이었는지를 나타내는데 더없이 적합했다. 향은 인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주님뿐 아니라 우리도 향의 운명을 지닌 자이다. 우리는 한편으로 금과 같은 인격으로서 사람들에게 영광과 권세를 나타내며 하나님을 대표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영원히 하나님 자신의 기쁨과 영광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그를 찬송하고 즐거워하며 그분 앞에서 먹고 마시고 말해야 한다. 한시도 그와 분리된 삶을 살 수 없다.

하나님의 아들에게는 자신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용도 외에 쓰여지기 위해 존재하는 물건은 없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드린 물건은 모두 우리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들 자신의 실상을 드러내는 물건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자신의 위치를 알고 보다 분명하게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야 할 것이다. 늘 자신의 필요와 기쁨만을 돌아보는 자리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에서 향기롭게 태워질 운명으로서의 우리 인생을 돌아볼 수 있기 바란다.


다음으로 몰약이다. 몰약은 주님의 낮아진 위치를 나타낸다. 주님은 왕이시면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람들의 생명을 건지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셨다. 이것은 사람들에게는 구원을 가져왔지만 그 자신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가져왔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오니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여호와여 멀리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시22:10-1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사52:13-15)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欽慕)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사53:1,2)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53:3-5)

이 말씀들은 그가 세상에서 왜 몰약을 필요로 했는지를 보여준다. 왕으로서의 영광,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세를 나타내는데는 백성의 아픔과 고통을 대신 담당하기 위한 희생과 수고,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한 희생과 수고가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바로 금의 영광을 가진 왕이 또한 몰약을 필요로 하는 이유이다. 향이 자기를 태워서 향기를 발하는 것 역시 자기 희생이다.

주 예수님 뿐 아니라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서 주님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므로 왕의 영광을 누릴 것이며 유향과 같이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인생을 살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와 같이 우리 앞에 주어지는 몰약(십자가)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도 세상에서 고난을 피할 수 없다. 진리는 거짓의 세계에서 결코 환영받을 수 없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3:12)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서 몰약은 단순히 죽음과 고통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썩지 않음 곧 죽음을 뚫고 나오는 부활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이다.

박사들이 아기 예수에게 바친 예물은 참으로 오고 오는 모든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영원히 합당한 것이다. 그 어느 것도 공연히 드려진 것이 없다. 우리에게 오늘 주어지는 모든 환경도 그러하다. 어느 것도 공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그리고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대우하든 그것은 다 하나님의 아들에게 합당하게 대우하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를 좋다 하여도 그것은 옳은 것이고 영광스럽다 해도 그것은 옳은 것이다. 반대로 그들이 우리를 싫다 하여도 그것은 옳은 것이다. 우리가 싫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싫다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 좋은데 싫다 하겠는가? 누가 견딜 수 있는데 거절하겠는가? 사람들이 우리를 거절하고 멸시하는 것은 그들이 우리가 가진 것을 보지 못하며 반대로 우리로 인해 그들이 망하고 괴롭게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5:10-12) 황금 뿐 아니라 몰약도 우리 것이다.

새부산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