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의 시험 / 고전10:1-13
40.마귀의 시험을 경계함
고전 10장에서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이 과거에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와 그들이 겪은 시험과 실패에 대해 말하면서 신약 교회의 성도들인 우리들은 이것을 교훈 삼고 거울 삼아 같은 시험을 만날 때 실패하지 않도록 하자고 권면한다.
1.이스라엘의 은혜의 체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의 종노릇하던 애굽에서 건져내어 복된 땅인 가나안으로 인도하고자 하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애굽의 바로를 굴복시키기 위해 10가지 놀라운 표적을 행하셨으며 특별히 장자의 죽음 재앙 가운데서도 유월절 어린양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자들은 죽지 않도록 생명을 보존하셨다. 그리고 바다를 가르심으로 백성들이 홍해를 걸어서 건너게 하셨으며 광야에 들어서서도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인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게 하셨고 바위에서 솟아난 물을 마시게 하셨다. 그리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뜨거운 햇볕을 막으시며 그들의 길을 인도하셨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추위를 막으시며 그들의 광야 길을 지켜 보호하셨다. 또한 오래 걸어도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셨으며 옷이 해어지지 않게 하셨다. 그리고 아말렉과 기타 적들을 만났을 때 이스라엘은 형식적으로 싸웠을 뿐 하나님께서 친히 그 능력으로 다 물리쳐 주셨다.
2.이스라엘이 받은 시험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임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항상 기쁘고 행복하며 감사와 안식을 누렸어야 할 것이다. 과연 그러했는가?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여러 과정을 겪고 고생스럽던 땅 애굽에서 나오게 되었을 때 그들은 기뻤고 ‘이제는 되었다’고 안도했으며 하나님께 감사도 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소망도 가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광야 길을 걷는 중 그들은 반복되는 광야 생활로 인해 거의 내내 고통과 짜증을 느꼈으며, 현재의 어려움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모두들 불평하고 원망하며 다투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에 빠지고 만 것이다.
마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시험했는가?
첫째, 하나님과 그 약속을 믿지 못하도록 시험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 있을 동안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오랫동안 애굽에서 편안히 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조상에게 분명히 가나안을 그들의 땅으로 약속하셨다. 하지만 애굽에서 아무 문제 없이 편히 거하게 되니 그 약속에 대해 기억하고 유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가 하나님께서 애굽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악한 왕을 일으켜서 그들을 괴롭게 하자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여러 표적을 일으킨 끝에 마침내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셨다.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가려면 광야를 거쳐야만 하며 가나안 땅에 지금까지 거주하던 강한 원주민들을 쫓아내어야 하는데, 이스라엘은 이번에는 바로 이 광야 길의 고생과 강한 가나안 원주민들의 존재로 인해 가나안에 대한 소망이 희미해지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은 그들이 평소에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잡지 않고 있었고 또한 마귀의 시험에 무방비로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다. 그들은 조상들의 교훈을 잊고 있었다. 창세기 말씀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구전되어 내려오는 말씀을 기록한 것이다. 모세가 그토록 상세히 알고 있는 조상들의 역사 곧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그토록 망각하고 있었을까? 이것이 바로 마귀의 시험이 곧바로 먹혀들게 된 원인일 것이다.
둘째, 우상 숭배와 음행 등의 범죄를 저지르도록 시험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는 우상을 만들어 그것을 자기들의 신으로 붙잡고자 했다. 그리고 애굽을 그리워했다. 그리고 모압 왕이 여자들을 동원하여 올무를 놓음으로써 쾌락의 기회가 오자 금방 빠져들고 말았다. 이스라엘은 조금도 하나님의 약속의 세계에 대한 기대가 없었고 그것을 위해 인내하고 희생하는 것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잠시도 참지 못했다.
육신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의 말로는 어떤 것이었는가? 죽음이었다. 그들은 다 광야에서 엎드려 죽고 말았다. 하나님의 약속 외에 이스라엘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삶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에 주목하지 않고 엉뚱한 망상을 품었다가 그들은 돌아갈 데가 없이 되고 만 것이다.
3.신자가 받는 시험
오늘날 마귀는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시험하는가?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행한 시험과 마찬가지이다.
첫째, 하나님의 약속이신 그리스도를 끝까지 믿고 따르지 못하도록 시험한다.
생활의 고통과 방해, 생각(믿음)의 혼란과 의심, 교회 안팎에서 겪는 시험들로 인해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 진리와 영생에 대한 관심과 소망과 열심을 잃게 만든다. 마침내 그리스도, 진리 어쩌구 하면 짜증이 나고 ‘그 따위가 다 뭐냐’ 하는 생각이 나게 만든다. 처음에 죄악 가운데서 시달리며 세상에서 고통으로 헤맬 때는 하나님의 구원이 그립고 그것을 달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조금 주님을 따르다 보면 육신에 고통이 오고 하나님의 약속은 눈에서 멀어 보이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가? 내가 소망하는 이것이 과연 성취 가능한 실제인가?’ 하는 의심이 들고 불평과 원망과 짜증과 다툼이 생기게 된다.
둘째, 세상에 빠지며 범죄하게 만든다.
전에 즐기던 세상 재미들, 세상 죄들이 하나 하나씩 되살아나며 그리워지게 만든다. 그리고 그리로 돌아가서 거기서 기쁨과 인생의 만족과 의미를 찾도록 만든다. 그리고 막연하고 자기 말을 잘 들어주지도 않는 하나님 대신 자기를 손 쉽게 도와줄 수 있는 각종 ‘사람의 도움’을 찾는다. 이것이 바로 음행이며 우상 숭배에 빠지는 것이다. 신자의 마음에서 믿음과 소망을 제거하면 그 다음은 마귀 마음대로 된다. 이런 저런 세상 일들을 눈에 보여주고 갖다 붙여주면 저절로 범죄하며 세상에 빠져들게 된다.
셋째, 교만하여 방심하도록 만든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만 벗어나면 다 된 줄로 생각했다. 그러나 광야 길에 접어들었을 때 그들은 넘어지고 말았다. 이스라엘은 분명히 애굽에서 나올 때 구원 받은 것이며 홍해를 건널 때 구원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마침내 완전한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구원의 끝은 어디인가? 나그네 길의 끝은 어디인가? 이스라엘의 구원은 광야를 벗어나는 순간 이루어지는 것인가? 거기가 나그네 길의 끝이었던가? 그렇지 않다. 거기에도 요단 강이 기다리고 있었고 강력한 가나안의 원주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가나안 땅에 완전하게 안주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인가? 그렇지도 않았다. 그 땅에 들어가서도 그들은 전쟁과 질병과 재앙에 시달렸다. 거기에도 완전하고 영원한 안식은 없었다. 그들이 완전한 구원을 누리는 것은 그들이 죽음으로 이 땅을 벗어나서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땅에서는 완전한 안식이 없으며 마귀의 시험은 계속된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동안에는 누구도 방심해서는 안된다.
사실 구원은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는 동안에도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기로 오래 전부터 작정하셨고 그것을 하나님의 계획표대로 진행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많은 과정을 거쳐야만 했고 그 과정 과정마다 사탄의 시험이 있었고 따라서 그때마다 약속의 백성들에게는 믿음과 인내가 필요했던 것이다.
교만과 방심은 금물이다. 아무도, 개인적으로 말하면 세상을 떠나는 그 날까지, 역사적으로 말하면 마귀가 세상에서 완전히 쫓겨나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 땅에 완전히 서게 되는 그 날까지 방심해서는 안된다. 시험은 마지막 날까지 계속 될 것이다. 마귀는 자기 죽는 날까지 한 명이라도 더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사람을 미혹할 것이다. 가장 훌륭한 교회, 가장 견고한 신자, 가장 확실히 섰다고 생각되던 그 사람이 마귀의 가장 강력한 시험의 대상이 된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3:14-19)
특별히 우리는 인간의 죄악성에 대해 깊이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악하다고 말씀하신다. 타락한 순간부터 인간은 악한 자가 되었고 그 생각의 성향이 언제나 악한 쪽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택할 수도, 거부할 수도 있는 주권적 자유적 존재이다. 마귀의 꼬임에 빠져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고 선악과를 먹은 것은 인간의 이 주권과 자유가 악한 쪽으로 작용한 것이다. 자기를 지으시고 복 주시고 영광스럽게 한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바로 악이고 이 악함이 인간 안에 내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믿지 않으면 죽으며 믿지 않으면 망하고 만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못 믿는 것을 인간의 연약함 탓으로 돌리고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것을 능력 문제로 돌리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시각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히3:7-13)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하나님은 하나님의 명백한 약속, 분명한 증거들을 믿지 않는 것을 악이라고 말씀하신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한 데서 나온 것이다. 그가 하나님을 믿었으면 선악과를 먹지 않았을 것이다. 왜? 하나님은 분명히 사람에게 그것을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먹으면 죽는다는 것은 매우 좋지 않은 것임에 틀림없다. 아니 죽지는 않고 해가 되기만 해도 그것을 먹지 않을 터인데 ‘반드시 죽는다’고 한 것을 ‘먹을만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하나님을 얼마나 불신하고 믿지 못했는가 하는 것을 나타낸다.
인류의 모든 악은 이 불신앙(믿지 못함)에서 나왔다. 우리는 이 ‘믿지 않는’ 악에서 벗어나야 한다. 서로 매일 권면하여 이런 죄악에 빠지게 되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과 그로 인해 불평과 원망과 다툼과 세상 삶으로 빠지는 것을 보통 일로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
마귀가 시험하는 것은 우리가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일이지만 시험을 물리치는 것은 주님의 도우심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시험을 두려워하지 말자. 시험을 만날 때 도리어 기뻐하며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물리치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1:2-4)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이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약1: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