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과 자기 생명을 영원히 보존하는 길
요한복음 12장
89.그리스도의 영광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저희가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짜온대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12:20-26)
유월절을 보내려고 예루살렘으로 온 사람들 중에는 헬라인들도 있었다. 그들 중에 몇 명이 빌립에게 와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일은 일상적인 일이 아니라 특별한 일이었으므로 빌립은 주님께 바로 가서 말하지 않고 친구 안드레에게 가서 그 일에 대해 먼저 상의했다. 그리고 함께 주님께 가서 그 일에 대해 말했다. 주님을 찾아온 헬라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아마도 그들은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이방인 가운데서 구원 얻을 자로 택하신 첫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이제 주님에 대한 놀라운 소문을 듣고 주님을 만나려고 온 것이다.
이방인(헬라인)들이 메시아(구원자)를 만나겠다고 찾아온 것은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약속의 구원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따라서 주님은 유대인뿐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셔야 한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다. 그 헬라인들의 방문을 받으신 주님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하셨다.
주님은 그 사건을 하나의 표징(表徵) 곧 주님에게 일어나게 일련의 일들의 전조로 보신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이 말씀하신 바 人子(그리스도)가 영광을 얻을 때란 어떤 때를 말하는 것인가? 그에게 임박한 영광의 시간이란 무엇을 두고 말한 것인가?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시는 것이다.
헬라인들의 방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한 사람을 통해 온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될 때가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표적이다. 첫 사람 아담의 실패를 회복함으로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둘째 사람 인자(그리스도)에게 드디어 그 목적을 달성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왜 헬라인들의 방문이 이러한 일의 표징이 되는가? 하나님의 계획은 세상을 건지고 새롭게 하되 먼저 아브라함의 자손들(선택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을 건지시고 그 다음으로 이방인들도 건지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방인인 헬라인들이 주님께 경배하러 온 것이다. 이것은 (온 세상을 건질) 때가 찼다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예수를 만나러 온 일 자체는 비록 작은 사건이지만 그것은 온 인류가 지금 주님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그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표시이며 또한 장차 그처럼 온 인류가 주님을 찾으며 섬기게 될 것임을 보여주는 표시이다.
아무튼 이 사건은 주님께 바로 지금이 그가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로 가야 할 시간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죽을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 때를 욕된 때로 보지 않고 영광의 때로 보셨다. 사람들에게 멸시와 고난을 받고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을 상실의 시간이 아니라 회복의 시간으로, 수치의 시간이 아니라 영광의 시간으로 보신 것이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을 주님은 영광을 얻는 것으로 보셨다. 사람의 상식으로 그것은 영광이 아니라 수치와 멸망이요 끝장이다. 그러나 주님은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보셨다. 그는 사람의 영광(영원한 생명의 누림)은 육신의 생명을 보존하고 그 욕망을 이루어줄 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이 다하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때 (하나님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았다. 그것이 진리이다. 우리도 그것을 보아야 한다. 진리는 이것이니, 사람이 자기를 보내신 이의 뜻에 생명이 다하도록 순종하는 것이 바로 생명을 보존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사실이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에게 충성하는 것이 생명을 위하는 가장 좋은 길이며 영광을 얻는 가장 확실한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주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여기서 주님은 영원불변한 생명의 원리를 말씀하셨다. 모든 생명 안에는 자기 생명을 보존하고 번성케 하는 성질이 들어 있다. 생명은 어떻게 그의 생명을 보전하고 확대해 나가는가? 그것은 ‘자기 생명의 씨를 땅에 묻어 썩게 함으로써’ 이다. 즉 한 번 죽고 다시 사는 과정을 통하여 생명을 이어가고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원리란 조금 죽고 크게 사는 것이며 잠시(한 번) 죽고 영원히 다시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생명체는 예외 없이 이 원리를 따르고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목적을 거부하기까지 자기(육신의 생명)를 아끼고 귀히 여기는 자는 결코 영생할 수 없다. 묻히는 것을 거부하는 씨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으며 그 생명 자체도 보존할 수 없다.
하나님의 모든 뜻은 자기를 아끼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한 알의 밀처럼 자기를 버릴 수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아브라함이 천하 만민에게 복을 끼칠 수 있는 믿음의 조상,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기 독자를 아끼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치는 죽음을 기꺼이 감수했기 때문이다. 주 예수님이 그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완성하는 분이 되어 천하 만민들에게 약속된 복을 끼치게 된 것도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했기 때문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영광은 (십자가로 가는) 그의 길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의 인격과 삶(사역)은 다 죽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는 그 한 가지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는 것은 그의 길을 받아들여서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목적에 헌신하는 인생을 살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른 영광도 없고 다른 길도 없다. 오직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고 다시 삶으로써 많은 열매를 거두는 그 한 가지 영광과 그 한 가지 비결이 있을 따름이다.
90.내가 이를 위해 이때에 왔나이다
주님은 요한복음 12:27에서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셨다. 이러한 주님의 말씀은 주님이 영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형상을 입은 하나님 곧 육신을 입은 한 사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의 대표자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히2:18, 5:8,9 참조) 그는 육신의 원함도 알고 있었지만 사람의 참 길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는 생명의 일시적 욕망과 영원한 욕망 사이에서 잠시 갈등했지만 결국 생명의 진정한 필요를 추구했다. 그래서 결국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순종의 길을 갔다.
주님은 사람이 결코 자기 육신의 생명을 이 땅에서 영원히 보존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하기 위해 지음 받은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셨다. 그는 또한 인생의 목적이 육신의 안락과 평안을 추구하는데 있는 것도 아님을 아셨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에 순종할 수 있었다. 이것은 주님이 진리로 승리하셨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기록된 길을 반드시 깊이 깨닫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단지 지식으로써가 아니라 생명의 체험을 통해서 깊이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자기(육신의 욕망)를 거슬러 아버지의 뜻에 순종할 수 있다.
몸이 약한 사람들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은 거기서 벗어나고자 부단히 애를 쓰며 고난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충만해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살아서 어떻게든 하나님을 나타내는데 있기 때문에 그것만 이루어지면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일이든지 만나든지 우리는 “내가 이를 위해 이때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라고 말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육신과 영혼에 가장 좋은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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