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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과 시편 1편

2010.11.28 01:45

이상봉 조회 수:5684


 

시편 1편은 잠언과 같은 지혜의 글 곧 지혜시(智慧詩)라고 일컬어질 수 있다. 시인은 그의 첫 시에서 지혜의 근본 또는 지식의 근본이 무엇인지를 말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잠1:7)이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明哲)"이다.(잠9:10) 시편 1편은 이러한 근본적 진리를 우리에게 강조한다.
시편 1편은 잠언 2장과 내용이 비슷하다. "내 아들아 ...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내리라 이 무리는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하며 행악하기를 기뻐하며 악인의 패역을 즐거워하나니 그 길은 구부러지고 그 행위는 패역하리라 ... 지혜가 너로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하리니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완전한 자는 땅에 남아 있으리라 그러나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겠고 궤휼한 자는 땅에서 뽑히리라"(잠2:1-22)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복이 무엇인가? 여기서 말하는 복은 은혜, 생명, 선(善), 구원 등과 같은 개념으로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좋은 삶' 곧 생명을 주신 것이다. 진실한 삶, 사람답게 사는 삶, '이것이 바로 삶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진정한 삶(을 누리는 것)이 바로 복이다. 육신이 원하는 어떤 것을 받거나 누리는 것이 복이 아니고 하나님이 태초에 정하신 진실한 인생(인간의 길)을 살 수 있는 그것이 복이다. 


어떤 사람이 복된 사람인가? 시인은 두 가지 측면에서 그것을 말한다. 첫째는 죽을(망할) 짓을 하지 않는 사람 곧 죽을(망할) 자리에 있지 않는 사람이고, 둘째는 생명을 사모하며 '사는 길'에 서 있는 사람이다. 즉 복 있는 사람은 생명의 원천을 붙들고 있는 사람이다. 결국 기준은 생명이다. 생명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고 생명이 없는 사람은 복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생명이 어디 있는가?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께 있으므로 궁극적 기준은 하나님인 것이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5:12) 이 말을 조금 바꾸면 "그리스도가 있는 자는 복이 있고 그리스도가 없는 자는 복이 없느니라." 이것을 시편 1:1,2의 표현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이와 같다. "복 있는 사람은 생명에 손해가 되는 바보짓을 절대 하지 않으며 그런 바보들과 자리도 함께 하지 않으며 오직 생명의 근원을 꽉 붙들고 있는 사람이다."

 
여기서 시인이 경계하는 것이 세 가지이다. 첫째는 악인의 꾀, 둘째는 죄인의 길, 셋째는 오만한 자의 자리이다. 꾀(council)는 생각 또는 정신을 말하고 길(way)은 생활(생활 방식, 태도)을 말하며 자리(seat)는 인격(인간 자체, 인생 자체)을 말한다. 이 셋은 악이 사람을 좀먹어 들어가는 각 단계를 순서대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꾀 → 길 → 자리, 이런 순서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귀가 사람에게 어떻게 접근해서 어떻게 정복하는가를 말해준다.


(1) 악한 꾀(counsel of the wicked)
악한 꾀 즉 악한(진실하지 못한) 생각을 가지는 것이 첫 단계이다. 사람이 악한 꾀를 가지게 되는 것은 마귀의 거짓말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인이 되고 악인이 되고 바보가 되는 첫 단계는 마귀의 거짓말(허망한 말, 진리가 아닌 이야기들)을 귀담아 듣는 것이다. 하와가 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다가 결국 선악과를 쳐다보게 되고 그것이 좋게 보이기 시작한 것처럼 사람이 마귀(세상, 악한 친구)가 말하는 악하고 헛된 말들을 방심한 채로 듣다보면 그 멸망의 길을 무슨 횡재의 기회나 되는 것처럼 쳐다보게 되고 그것을 취하고 싶어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마귀의 거짓말이 바깥에 있는 (남의) 것이 아니라 제것이 된다.
허탄하고 허망한 생각들을 자꾸 듣다보면 그것이 마음 깊이 받아들여져서 실제로 그런 일을 생각하게 되고 생각만 할 뿐 아니라 실제로 악한 계획을 세우고 추진하게 된다.


(2) 죄인의 길(way of sinner)
악한 꾀를 이루기 위해 실제로 죄를 지으며 사는 것이다. 이 두 번째 단계는 단지 실행의 단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죄가 생활화되는 단계를 말한다. 행위(acts)와 길(way)은 다른 것이다. 단지 어떤 행동(죄)을 하는 것과 죄가 삶의 방식이 되는 것은 다르다. 죄인의 길에 선다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 그의 삶의 방식과 태도가 된 상태를 말한다.


(3) 오만한 자의 자리(seat of mocker)
여기서 자리란 어떤 사람의 인생 또는 인격의 자리(자체)를 말한다. 그러므로 오만한 자의 자리란 그 사람의 자리(인격, 이름, 위치)가 '오만한 인간' 곧 하나님도 그 말씀도 그 심판도 눈에 뵈지 않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마음과 생활이 완전히 마귀에게 점령되어 매우 악하고 교만하게 된 상태를 말한다. 이것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 이제 악은 단순한 행위도 아니고 생활 방식도 아니고 그 단계를 넘어서 완전히 인격 자체 곧 그 사람 자체가 되어버린 상태를 말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마귀의 자식(요8:44)이 된 상태이고 마귀와 하나가 된 상태이다.

 
이사야서 14장에 나오는 바벨론 왕은 바로 이러한 오만한 인간의 전형(典型)이라 할 수 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어짐을 당하리로다"(사14:12-15) 자기 자리를 하나님 위에까지 높이겠다고 하는 이것이 바로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 있는 어리석은 인생의 모습이다. 이것은 창세기 3장에서 마귀가 아담과 하와에게 제시한 거짓말(마귀의 마음, 망령된 생각)이 사람에게 접수되고 실행되어 마침내 그 사람과 하나가 된 상태이다.


악한 자의 모의에 참가하는 것 즉 악한 말을 듣는 것 그리고 악한 일을 조금씩 하게 되는 것, 이것이 1단계이다. 그리고 그러한 일(죄를 짓는 것)이 일상이 되고 습관이 되어 몸에 배임으로써 이제는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 자신이 죄인이 되고 악인이 되는 이것이 2단계이다. 그 다음에는 양심이 마비되어 죄인의 길에서 행하는 것으로 인해 갈등이나 괴로움을 겪지도 않고 주저함이나 머뭇거림 없이 죄를 짓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게 된다. 이때 그는 하나님과 그의 말씀, 법과 진리, 양심과 심판을 우습게 여기며 하나님을 조롱한다.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시73:8-11) "예루살렘에 있는 이 백성을 치리하는 너희 오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말이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음부와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몰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를 삼았고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사28:14,15)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말3:14,15)


처음 악한 꾀를 좇는데서 시작된 것이 나중에는 마귀와 완전히 하나가 되고 마귀의 화신(化身, 자식)이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첫 단추를 잘못 꿰는 것 즉 마귀의 악한 말을 무심코 듣는 것이 모든 실패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두 가지 길을 본다. 하나는 악한 꾀를 좇고(walk) → 악한 길에서 행하며(stand) → 악한 자리에 앉는(sit) 것이고 또 하나는 그리스도의 자리에 앉고(sit) → 그리스도의 길을 좇고(walk) → 그리스도의 길에 서는(stand) 것이다. 
에베소서가 설명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는 이것이다.
1. 하늘(그리스도 안)에 앉아 안식하고 2. 그리스도의 길을 좇고(그리스도의 길로 행하고) 3. 하나님의 군사(이기는 자)로 견고히 선다.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의 순서는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하고 둘째, 그리스도를 따라 거룩한 삶(인생)을 살고 셋째, 마귀를 대적하고 받은 복을 굳게 지키는 것이다.
결국 소극적인 관점에서 말하자면, 우리는 악하고 어리석은 자들과 만나거나 대화하지 말아야 한다. 시인이 말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과 모이고 만나고 대화하고 삶을 같이 나누면 나눌수록 불행해지고 거기서 멀리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1절이 소극적인 측면에서의 의인의 특성을 묘사했다면, 본절은 적극적인 측면에서의 의인의 특성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율법이란 모세 오경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교훈)을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다.
적극적인 면에서 본 의인의 특성은 첫째,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 삶에 있어서 가장 귀하고 유익한 생명의 말씀으로 여겨 달게(기쁘게) 받아들이며 둘째, 그것을 항상 가까이하고 기억하며 삶에 적용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12:1)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가까이하며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의 인생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 곧 생명강가에 심겨진 생명나무와 같다.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계22:1,2)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1-3절에 묘사된 의인의 행복과는 대조적으로 악인의 실패 및 불행을 기록한 부분이다.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곡식을 까부를 때 낱알은 땅에 떨어지지만 겨(껍데기)는 가볍기 때문에 바람에 날아가 버린다. 악인의 삶은 굉장하고 화려한 것 같아도 때가 이르면 결국 다 사라질 수밖에 없는 허무한 것이다. 
죄인은 결코 의인의 세계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21:2-8)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므로 하나님의 나라에는 거룩한 자만 들어갈 수 있다. 누가 거룩한 자인가? 그리스도의 거룩으로 옷 입은 자이다. 아들의 생명으로 거듭난 자이다. 그 외에는 아무도 아들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이 말씀은 세상의 주권자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사람이 아무리 인생을 제멋대로 이해하고 제멋대로 살더라도 우주와 거기 거하는 천하만물 곧 사람과 인생(삶)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의 목적을 위해 사람을 지으셨으며 정해진 때가 되면 그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수납될 수 있는 인생인지 아닌지를 결산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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