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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기다림 (행1:3-5) / 2008. 8. 10

2009.06.06 22:41

이상봉 조회 수:7533

성령을 기다림


 사도행전 1:3-5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1:3)

주님은 죽고 부활하신 후 사십 일 동안 세상에 계시며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일들'에 대해 말씀하셨다. 40일 동안 주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는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이것을 이해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곳 곧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 받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곳은 의와 진리가 흐르는 곳이며 사랑과 자비가 있는 곳이며 성령으로 말미암는 기쁨과 평화가 있는 곳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임하셔서 사람들을 다스리심으로 시작된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은 그가 부르시고 언약을 맺으신 이스라엘 민족에게 임하시고 그들 안에서 다스리기 시작하셨다. 그 후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졌고 그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되었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이 땅에서 펼치는 하나님의 대리자들로 간주되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고 왕도 사라지게 될 무렵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리는 한 사람이 일어나서 강력한 왕이 되고 그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완전하게 실현하게 될 것이라는 하나의 믿음이 백성들 가운데서 형성되었다.(단2:44, 7:13,14)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신약의 가르침들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의 소망을 실현시킨 분이다. 그는 이 땅에 그야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몰고 왔다.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12:28) 주님이 땅에 계실 때 많은 악한 영들이 쫓겨나갔고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주님이 땅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의 나라는 최소한 사람들에게 '가까이 와 있는' 상태가 되었다.(마4:17, 눅10:9,11) 그러다가 주님이 죽고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가신 후 하나님의 나라는 능력으로 이 땅에 확실히 임하였다. 성령이 사람들에게 임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은 사실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는 것으로 끝나는 책이다. 사도행전 1:3에서 누가는 주님이 사십일 동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으로 사도행전의 서두를 장식했다. 그리고 사도행전 마지막 부분(28:30)에서 누가는 바울이 로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담대히 전파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으로 그의 기록을 끝맺는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행28:30,31)


바울이 로마에서 전파했다는 하나님의 나라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것이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땅에 계신 그의 마지막 40일 동안 그의 제자(사도)들에게 하신 말씀 역시 그(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였음이 틀림없다. 즉 주님이 제자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가르침 역시 그 자신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천국(하나님의 나라)이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는 그리스도의 나라인 것이다. 그것은 저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기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사람들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누가복음 24장에서 누가는 이러한 사실을 설명했다.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24:25-27) 주님은 모세와 선지자의 글을 포함한 모든 구약 성경의 내용이 곧 자기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세와 선지자들이 말한 것이 어째서 다 그리스도에 대해 말한 것인가? 그것은 모세와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은 결국 하나님의 임재(臨在, 임하심)와 통치(統治, 다스리심)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24:44-48)

이 말씀에서 주님은 성경의 모든 예언과 약속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제자들에게 설명하셨다. 성경이 궁극적으로 말하는 바는 '그리스도가 죽고 부활하신 후 그의 영이 제자들에게 부어짐으로써 그 제자들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즉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에 천국이 임하고 그것을 제자들이 온 세상에 전파한다는 그것이 바로 성경의 예언이자 약속인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 복음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에 임했으니 그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누릴 수 있다는 소식이다. 이에 대해 조금 깊이 생각해 보자.

천국(하나님 나라) 복음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리를 통해 지금까지 세상을 장악하고 있던 마귀가 세상에서 쫓겨나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그리스도가 장차 다시 세상에 임하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심으로써 세상을 완전히 새롭게 하며 자기 것으로 접수하실 것이라는 내용이다. 즉 천국 복음이란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리로 말미암아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것과 그 결과로 장차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세상을 확실하게 접수하실 것이라는 두 가지 내용으로 되어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확실하게 접수하셨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장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며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정리(회복)하실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천국 복음을 전할 때는 반드시 이 (두 번째) 사실이 함께 전파되었다.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를 구원한 후 그의 식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10:42) 또 바울도 아테네의 아레고바오에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천하를 공의로 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행17:31) 바울과 베드로는 복음을 전할 때 그리스도가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빠뜨리지 않고 말했다.

이처럼 천국복음을 전할 때 사도들은 먼저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에 대해 증거했고 다음으로 그가 현재 교회를 통해 왕으로서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증거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가 장차 세상에 심판자로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며 그의 택하신 자들은 거두어들이시고 나머지는 멸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말했다. 그리하여 결국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이며 모든 무릎이 주님의 발아래 꿇게 될 것이며 모든 입들이 그리스도를 주(主)로 고백하게 될 것이다.(빌2:10,11)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1:4,5)

세상을 떠나기 전에 주님은 제자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것을 말씀하셨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사람이 성령으로 젖게 됨을 의미한다. 사람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임함으로써 그 속이 하나님의 정신과 권능으로 충만케 된다는 것이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전에는 누구도 그러한 자가 없었으며 그러한 일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땅에서 기는 인생이 어떻게 하늘의 세계에 이렇게 깊이 참여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전에 약속하신 바이며(요엘2:28,29)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실제로 이루어졌다.

이제 하나님의 사람은 껍데기(명목)만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 그 속도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진 진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때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것으로 충만케 된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3-7) 베드로가 형제들에게 그들이 사모하는 모든 덕목(德目)을 제것처럼 가져다 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성령) 안에서 그것들을 사람에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자신을 사람에게 주셨다. 참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 곧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사람에게 주셨다. 주님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 사실이다.

사람은 먹는 대로 내놓는다. 지식과 생각을 먹었으면 지식과 생각을 내놓고 생명과 능력을 먹었으면 생명과 능력을 내놓는다. 이스라엘은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할 자로 세움 받은 백성이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세상을 구원하는 자로 세움 받았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런 일을 할 힘이 없었다. 일은 능력으로 하는 것이지 생각이나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말과 생각은 그가 어떤 세계를 '희망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고, 능력은 그가 어떤 세계를 '실제로 살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대해 단지 '생각하고 아는' 사람들일 따름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세계를 알 뿐 그것을 실제로 누리지는 못했다. 그래서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 실제로 보여줄 수는 없었다. 이것이 바로 능력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이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단지 '좋은 생각(가르침)' 뿐이었다. 착하게 살고 거룩하게 살아라,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본받아 살아라, 이 말을 하는 것이 그들의 한계였다. 이것이 바로 '물로' 세례를 받은 것이며 '육체로만' 할례를 받은 것이다. 이스라엘은 속까지 하나님의 생명의 물로 씻겨진 자들이 아니고 단지 겉만 씻겨진 사람들이었다. 이스라엘은 마음까지 할례를 받은 자가 아니라 다만 육체만 할례를 받은 자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룩이라는 개념(생각)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지만 그것의 실제는 내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주님의 제자들은 이제 전혀 다른 차원의 사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그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물로 다른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 수 있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면 성령으로 다른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 수 있다. 이것은 차원이 다른 사역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을 말하고 자기가 경험한 것만을 내놓을 수 있다. 내가 모르는 것, 내게 없는 것을 내놓을 수는 없다. 요한이 물로 세례를 베풀었다는 것은 그가 땅에 속한 사람이고 육에 속한 사람이었음을 상징한다. 이것은 요한이 하찮고 육신적인 사람이었다는 말이 아니라 그가 속한 시대가 그런 시대였다는 것이다. 그의 시대는 사도들이 속한 시대(신약시대)만큼 복되고 완전하지 못한 시대였다. 주님은 요한이 그의 시대(구약 시대)에 있어서는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라고 일컬어질 탁월한 인물이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자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가 속한 시대가 사람이 물뿐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세례를 받는) 시대에 미치지 못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요한은 영과 진리(실제)의 시대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모형과 그림자의 시대에 속한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실체가 아직 드러나지 못한 시대 곧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일들이 모두 육신적이고 땅의 것으로만 표현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다. 그러므로 요한은 하나님의 나라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외쳤지만 사람들에게 그 구체적 실체에 대해 말해줄 수 없었으며 그것을 사람들에게 실제로 안겨줄 수는 없었다. 그는 다만 그러한 때가 올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증거함으로써 사람들로 천국을 준비케 할 따름이었다.  

요한이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이다. 물로 세례를 주는 것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물은 단지 사람의 겉을 씻을 수 있을 뿐 사람의 속을 씻을(변화시킬) 수는 없다. 속 사람의 변화는 오직 성령으로써만 가능하다. 물론 요한이 물로 사람을 씻은 것은 단지 그 사람의 겉만 씻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새롭게 변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그 일을 실제로 할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요한이 한 행위는 그리스도가 오셔서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의 말씀을 들은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자이며 그의 영(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자들이 받았던 그 성령 세례를 받은 것이다. 우리는 단지 주님의 말씀을 들었을 뿐이고 주님의 영을 받은 사람들과 함께 있었을 뿐인데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 까닭은 주님의 말씀이 곧 영이요 생명이기 때문이다.(요6:63) 주님의 말씀이 곧 영이요 생명이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참으로 들은 자는 주님의 생명에 적셔진 것이며 주님에게 사로잡힌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참으로 듣고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칼처럼 사람을 찔러 쪼개고 변화시키는 능력을 그 속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 사실을 의식하든 못하든 하나님의 영은 그를 사로잡아 하나님께로 이끌기 때문에 그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말씀을 제대로 들었느냐 못 들었느냐 하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한다. 일은 오직 그의 생명만큼, 그의 인격만큼 한다. 오늘 우리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면 우리는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 수 있다. 우리에게 참으로 주님의 영으로 적셔진 사람이요 주님의 말씀에 깊이 사로잡힌 사람이라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우리가 있는 이 세계로 능히 이끌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하고 물로만 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는 단지 물로만 세례를 줄 수 있을 따름이다. 이스라엘이 그랬듯이 그런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세계를 말로만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가 본 만큼 다른 사람을 인도할 수 있으며 자기가 먹은 만큼 내놓을 수 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선한 일을 사모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하기를 원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잘 되지 않는 것은 그들이 물로만 세례를 받고 성령으로 세례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신비적 체험을 하지 못했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참으로 주님의 권세 있는 말씀에 깊이 사로잡혀 인격이 변하고 삶이 변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주님의 정신으로 흠뻑 적셔지고 주님의 마음으로 그 속이 충만케 된다면 다른 사람을 능히 영과 진리의 세계로 이끌 수 있다. 말씀에 깊이 감동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진리의 말씀으로 감동시킬 수 있으며 그를 하늘의 세계로 이끌 수 있다.

만일 오늘 우리가 사람들에게 단지 물로 세례를 베푸는 이상의 것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느껴진다면 우리는 주님을 더 깊이 알고 더 깊이 따라가야 한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지식과 (경건 생활이나 전도의) 훈련이 아니라 주님의 영으로 깊이 감동되며 주님의 세계를 깊이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깊이 알고 그 사랑을 깊이 체험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이 떠날 즈음에 큰 사역의 위임을 받았다. 그들은 온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했다. 그러나 주님은 성령을 받기까지는 조금도 움직이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오직 성령을 기다려야 했다. 성령을 받아야만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원리는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무지한 자가 되어서도 안 되고 일하기 싫어하는 게으름뱅이나 용기 없는 겁쟁이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지식이 있고 열심이 있고 용기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서둘러 일하러 나가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반드시 성령으로 감동되고 충만케 되어 그리스도의 모든 것이 우리 안에서 먼저 흘러 넘치게 해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나라를 실제로 세상에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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