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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도가 될 자격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 가운데 일어서서 가로되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예수 잡는 자들을 지로(指路)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數) 가운데 참예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로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저희가 두 사람을 천(薦)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1:15-26)


사역이 시작되기 전에 베드로는 유다가 빠진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채움으로써 12명의 사도를 다시 구성하고자 하였다. 사도가 될 자격은 주님과 함께 다니며 주님의 삶과 가르침을 목격하고 체험한 사람이어야 하고 또한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두 가지였다. 여기에 후보로 추천된 사람은 요셉과 맛디아 두 사람이었다. 그 중 맛디아가 되었다. 혹자는 요셉에게는 여러 별명들이 붙어 있는 것을 미루어볼 때 그의 경력이 대단히 화려하고 유명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고 짐작한다. 그러므로 요셉과 맛디아 중에서 맛디아가 된 것은 요셉이 미약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서) 너무 대단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사람의 강한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에 적합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도는 왜 꼭 열 두 명을 채워야 하는가? 12라는 숫자는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암시한다.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 또는 사도가 12명이어야 했던 것은 그들이 이스라엘 교회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본래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나는 것이다.(요4:22) 유대인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이 뜻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반드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바쳐져야(회복되어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이를 위해 12 사도가 세워졌다. 그러므로 12 사도는 먼저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다음에 (그렇게 해서 형성된 유대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온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의 선두에 선 사람들이다.


2.오순절에 임한 성령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의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기이히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의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찜이뇨 우리는 바대 인과 메대 인과 엘람 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 인과 아라비아 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다 놀라며 의혹하여 서로 가로되 이 어찐 일이냐 하며"(2:1-1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의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여기서 바람은 성령을 상징한다. 바람으로 묘사된 이 성령은 에스겔 37:9-14에서 생기로도 표현된 바 있다. 에스겔이 그의 환상의 골짜기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예언하면서 바람에게 죽은 자들 위에 불라고 명령하였을 때 그들 위에 불어서 그들을 새 생명으로 채운 것이 바로 이 바람 곧 성령이다.
또 주님께서 위의 에스겔의 환상에 빗대어 니고데모에게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3:8)고 말씀하신 것도 성령을 바람으로 묘사하신 것이다.


이렇게 성령께서 주님의 약속대로 예루살렘에 모인 무리들에게 바람 같이 임하셨다. 성령을 받은 무리들은 거기 모인 여러 해외 거주 유대인들의 출신 지역 언어들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제자들은 이스라엘 갈릴리 지방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이전에 한 번도 사용해 보지 못한 각 지역 언어를 따라 하나님에 대해 말했다. 그들은 아마도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에 대해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말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의 역사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볼 수 있다. 성령이 사람에게 임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방언인가?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최종적인 열매는 아니다. 최종적인 일은 하나님의 큰 일 곧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깨닫고 누리며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이시며 인격이다. 성령은 단순히 하나님의 능력이나 은사가 아니다. 어떤 신기한 일과 능력은 성령이 임함으로써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일 뿐이다. 성령이 임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실 때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난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마음이 변하고 인격이 변한다는 것이다. 부드러운 마음과 평안한 마음, 감사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사람이 진실하고 성실한(믿을만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성령이 오신 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신 세 번째 형태이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구약 시대에 자기를 여러 모양과 여러 형태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드러내신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꿈이나 음성으로 혹은 천사(사자)로 자기를 나타내셨다. 모세에게 하나님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또는 (시내산에서) 능력과 음성으로 자기를 나타내셨다. 또 하나님은 자신을 이런 개인들에게만 나타내신 것이 아니라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나타내셨다. 시내산에서 천둥과 벼락을 통해서 자기를 나타내신 하나님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서워하는 백성들을 위해 당신의 택하신 (모세와 같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자기를 나타내셨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이 자기를 나타내신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율법과 선지자이다.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내신 것이다.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요5:37,38)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보지 못한 것은 그들의 때에 하나님이 자기를 나타내신 방법(선지자들)을 인식하고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들을 그들이 살아서 활동하는 당대에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그들에게 순종하지 않았다. 엘리야 같은 선지자조차 당대에 모든 백성들에게 외면당하고 홀로 거하는 처지에 놓여서 낙담할 정도였다.(왕상 19장)
마태복음 21장의 비유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바처럼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들을 언제나 교묘하게 거절하고 핍박했다. 그들은 선지자들은 높이고 공경하는 척 했지만 어디까지나 지나간 후에 그렇게 한 것이고 당대에는 (자기들을 책망하는) 선지자들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다. 포도원 농부들이 과실을 거두러 온 주인의 종들을 때리고 죽였다는 말이 바로 이것을 설명한 것이다. 결국 주인은 마지막에 그의 아들을 사람들에게 보내게 된다.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가로되 저희가 내 아들은 공경하리라"(마21:37) 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나타나신 두 번째 형태는 아들로 나타나신 것이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1:1,2) 요한은 이 아들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증거한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바울도 그렇게 말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골1:15) 그리스도는 이렇듯 하나님이 더 좋은 모양으로 그리고 더 가깝고 친밀하게 사람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다.


세 번째는 성령을 통해서 나타내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임마누엘의 실현 즉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임하신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 자신은 그것이 가장 좋은 형태의 임마누엘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5-7)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인가? 성령이 오시는 것이다. 성령이 오셔서 하나님이 그 자녀들 속에 들어가시는 것이다. 이것은 곧 하나님이 사람들의 생명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진정으로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게 되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대표하는 자가 되게 된다. 그래서 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한일서 4:12)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사랑(생명, 영)이 깃든 사람들이 곧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란 하나님의 영이 깃든 사람들을 나타내는 말이다. 즉 성령을 받은 사람이다. 이 말은 결국 성령을 받은 사람이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성령을 받은 사람을 하나님의 종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 속에 실제로 하나님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과 하나님이 한 장막 안에 함께 거하시는 것이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계21:1-3)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거하고자 여러 시대에 걸쳐 수많은 일을 하셨지만 그 목적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이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을 거쳐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부어짐으로써 성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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