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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과 거룩에의 요구

2010.05.06 15:47

이상봉 조회 수:3890

제5과 거룩에의 요구

5.민수기 5장

2.남에게 끼친 손해의 배상 (5:5-10)


민수기 5:1-4이 개인의 신체적 부정에 대한 규례라면 5:5-10은 사회 생활에 있어서의 부정에 관한 규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6절에서 말하는 '사람들이 범하는 죄'는 7,8절 내용에 비추어 볼 때 다른 사람들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끼친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주로 이기적인 탐심, 곧 마음의 부정에서 비롯되어 사회 전체의 공익과 이웃의 권리를 침해하는 범죄로 귀결된다.


한편 6절에서 이웃에 대한 범죄를 "여호와께 패역하여 그 몸에 죄를 얻거든"이라고 한 것은 사회적 부정이 결국 인간의 내면적 부정으로 말미암는다는 것과 그 부정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임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웃에게 끼친 손해를 배상할 때에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내면적 부정을 씻는다는 의미에서 속죄제를 드려야 했다.(8절) 또한 이웃이 당한 물질적 손해뿐 아니라 정신적 피해까지 보상하려는 노력이 따라야했다. 오분의 일을 더하여 갚으라는 규례(7절)나 4,5배로 변상하라는 규례(출22:1)는 물심 양면의 피해 보상을 규정한 것이다. 이렇게 할 때 가해자는 하나님과 피해자로부터 용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탄에게 송사거리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처럼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철저히 처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32:1-5을 보면 다윗은 자신의 범죄에 대해 각고(刻苦)의 마음으로 회개했다. 형제들에게 막대한 폐를 입히고도 그것을 사소한 일로 여기고 하나님께 몇 마디의 말로 형식적인 회개를 한 것을 가지고 모든 문제를 처리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이다. 마5:23,24에서 주님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폐를 끼쳤거나 어떤 걸리는 문제가 있을 때는 반드시 그것을 먼저 처리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될 수 없음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지내는 신자나 교회는 암에 걸리고도 건강한 체 하는 사람과 같다. 즉시 처리하면 낫게 될 병도 두고 있다가 때를 놓치면 회복 불능의 중병이 된다. 죄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초대 교회는 죄를 처리하고(행5:1-6) 죄를 서로 고하여(약5:16) 교회의 순결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함에 있어서 인색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 거룩에의 요구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4:3)  구원 받은 성도로서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관심과 목표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과 같이 거룩하고 하나님과 같이 진실하고 하나님과 같이 의롭고 하나님과 같이 사랑이 많은 존재가 되어 참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 이르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사탄의 종 된 자리'에서(죄인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의인으로) 칭함만 받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겉과 속, 이름과 실제가 다 같이 거룩한 자(성도)가 되도록 만들려고 부르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의 '아들'로 삼으셨다는 것은 이미 우리의 목표가 우리를 부르신 아버지와 같이 되며, 같은 생명을 누리고, 같은 인격을 가지며, 같은 일을 추구하게 되는 데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직후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11:44,45) 라고 명하신 바 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거룩한 삶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요 생명이요 운명이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도 거룩한 삶은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생명 안에 새겨진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연약한 육신을 가졌다고 해서, 세상 모두가 거룩하지 않다고 해서, 거룩한 삶을 사는데 방해되는 유혹거리와 장애물들이 많다고 해서, 거룩한 삶을 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거룩한 삶은 '죄를 알지도 못하는 생명'을 지닌 자들(고후5:21, 요일3:9)에게 있어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1:14-16)  


그러면 거룩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구별을 의미한다. 모든 속되고 부정한 것으로부터 구별(분리)되는 것이 거룩이다. 여기서 속되고 부정한 것이란 하나님의 성질과 맞지 않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온전히 알지 못하면 거룩은 이루어질 수 없고 따라서 거룩한 삶을 살려면 반드시 하나님을 힘써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과 맞지 않는 모든 것을 정죄하고 거부하고 떠나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사52:11, 고후6:17, 7:1) 민수기 5장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해 먼저 알려주고 그 백성들이 그러한 하나님에게 맞게 살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했을 때는 부정을 씻는 일을 하고난 후에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정결케 되기 위해 속죄제와 소제, 속건제 등의 제사를 함께 드렸다는 사실은 우리가 죄를 온전히 처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가지는 일은 단지 우리 편에서 몇 가지 일을 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도 해야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지고 희생을 당하시는 대속(구속)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우리가 모든 부정 곧 망령된 행실에서 구원을 받는 것은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때문이다.

3.간음죄의 예방 (5:11-31)


여기서 제시된 규례는 모든 사회 질서의 기초가 되는 '가정 질서'의 유지를 위한 규례이다. 가정의 유지를 위해서는 간음이 철저히 방지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가정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의와 거룩이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최소한의 장(場)을 펼치신 것이다. 인간의 연약함을 감안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완전하게) 사랑하고 서로 (완전하게) 돌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가정을 만드시고 부모와 자식이 함께 있으면서 서로 사랑하고 섬김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는 체험을 하게 만드신 것이다. 그러므로 가정 질서는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가정의 파괴를 가져올 수 있는 모든 죄에 대해 철저하게 경계하셨다.
십계명 중 하나님은 제6,7,10계명을 가정 유지를 위한 규례로 할애하셨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간음하지 말지니라"(출20:14)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출20:17)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정 질서가 유지되기를 얼마나 열망하시는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규례 역시 그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반영한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은 남편에게 (부정한 행위를 한 것으로) 의심받는 여인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판결 기준을 제시하셨다. 그 절차(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아내의 순결에 의심을 품은 남편이 아내를 데리고 그리고 예물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나아간다.(11-15절)


②제사장은 의심받는 여인에게 쓴 물로 인한 저주의 적용을 알려주고 맹세시킨다.(16-22절)


③그 후 실제로 그 쓴 물을 마시게 하여 순결 여부를 드러낸다.(23-28절)


본문은 이러한 법 운용이 가정의 진정한 평화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29-31절) 이러한 까다롭고 다소 무서운 분위기의 재판 과정을 두신 것은 여인을 압제하고 괴롭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심받는 자에 대한 진실을 밝히려는데 그 목적이 있으며 인간 상호간의 신의를 회복하게 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더 나아가 범죄한 자에 대한 준엄한 심판의 경고로서 본질상 타락한 인간의 악한 욕망을 억제하는데도 그 목적이 있다.


그런데 남자는 아니고 여자만 '의심의 법'의 대상이 된 것은 다소 불공평한 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이 시대가 남성 중심의 고대 사회라는 현실적 여건을 감안하여 그렇게 하신 것으로 보인다. 최근을 제외하고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가 거의 남성 우월 또는 남성 중심의 사회였던 것은 하나님께서 창세기 3장에서 범죄한 남녀 인류에게 저주하신 내용에 의한 것이다. 여성은 끊임없이 남자를 지배하고 주장하려고 하지만 (선악과를 혼자 결정하여 따 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한 것처럼) 남자는 그러한 여인을 힘으로 다스려 주장하게 되는 굴레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얻음으로써 서로 사랑하고 순종하는 새 질서가 회복되기 전까지는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도 아직은 그런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일단 남자 중심의 질서를 인정하신 것이다.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은 남녀가 실질적으로 불평등하게 다루어지도록 일을 하시지는 않는다. 질서상 남자가 머리가 되도록 하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공의의 원칙을 넘어서게끔 허용하시지는 않는다. 본문에서 간음의 혐의를 받고 있는 여자를 재판하여 그 혐의의 사실 여부를 드러내게 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당시 사회에서 이런 법이 없다면 사회적 지위가 약하고 항변할 힘이 없는 당시의 여성들은 단지 혐의만으로도 무고하게 죽임을 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레20:10, 신22:22) 뿐만 아니라 정결한 여인은 잉태할 수 있게 하심으로써 억울한 누명에 대한 보상도 받게 하셨다.

⊙ 유일한 심판자이신 하나님


본문에는 간음한 여인을 실사(實査)하는 방법이 나오는데 그 방법은 의학적으로나 일반 상식으로 납득할만한 방법은 아니다. 그것은 오직 간음 혐의를 받은 여인의 순결 여부를 판단하는 최종적 심판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전제로 한 판단 방법이다. 의심의 소제(11-15절), 제사장의 저주 선언과 여인의 맹세(16-22절), 쓴 물을 마시는 행위(23-28절) 등은 다만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쓴 물에 어떤 효험이 있어서 여인의 간음 여부를 가렸던 것이 아니라 만물을 적나라하게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 직접 이 문제에 개입하셔서 순결한 여인은 보호하시고 부정한 여인에게는 벌을 내리셨던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에서는 아무리 은밀한 죄라도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시90:8)과, 하나님만이 모든 죄와 부정을 통찰하시며 범죄한 자들을 공정하게 판단하실 수 있다는 사실(시119:137)과, 하나님만이 부정한 자들을 정결케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사1:18, 겔3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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