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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바울은 자기가 결코 은혜를 폐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우리는 은혜가 아니고서는 결코 하나님 앞에서 구원(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마땅히 은혜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것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은혜와 관련하여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거나 잘 알지 못하고 있는 몇 가지 사실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 은혜는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자에게) 아무 근거나 차별 없이 거저 주어지는 것이다.  

둘째, 은혜는 사람의 어떤 부족과 약함을 메우고 돕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 자신 또는 사람의 일을 완전히 폐하고 대체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은혜는 사람 대신 하나님이 일하는 것이지 사람의 능력에 무엇을 보태거나 돕는 것이 아니다.

셋째, 은혜는 나중에 갚아야 하는 채무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거저 주는 은혜요 은사(선물)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선행이나 거룩한 삶을 거두기 위해 먼저 은혜를 투자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은혜는 사람을 채무자로 만드는 것이 된다.  

넷째, 은혜는 공짜가 아니다. 그것은 큰 대가를 지불한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림에 있어서 미안한 생각을 가지거나 주저할 필요가 없으며 당당히 그것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은 죄인의 죄를 그냥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생을 근거로 하여 용서하신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처음 두 가지 사실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번 시간에는 세 번째와 네 번째 사실에 대해서는 살펴보자.  


은혜와 관련하여 주의해야 할 세 번째 사실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은혜란 사람을 하나님께 빚진 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은혜는 돈을 빈 사람이 나중에 그것을 갚아야 하는 것과 같지 않다는 말이다. 즉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도움(은혜)을 잠시 빌려 구원을 얻은 후 나중에 노력하여 선한 행위와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께 그 은혜를 갚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은혜는 문자 그대로 은혜와 선물이며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지 거기에 무슨 보답이나 후속 조치가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은혜를 입은 성도 곧 은혜로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 거룩한 삶, 은혜를 입은 자 다운 삶을 요구하시지 않는가?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분명히 그것을 원하시며 요구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은혜는 은혜로 끝나는 것이지 은혜 받은 자를 채무자로 만들지 않는다면서 하나님은 왜 은혜 받은 사람에게 은혜 받은 사람다운 열매를 기대하시며 요구하시는가? 그것은 우리가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자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은혜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이다. 즉 우리가 은혜로 받은 것은 하나님의 생명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법적 칭의만을 얻은 것이 아니라 실제 의롭고 거룩한 생명을 얻었다. 우리가 받은 선물(은사)의 실체는 하나님의 아들의 거룩한 생명이다. 이와 같이 은혜는 생명이므로 그것을 받은 자는 저절로 선한 행위를 하며 거룩한 삶을 살게 되어 있다. 거룩한 생명을 받은 사람은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은혜를 받으면 당연히 선행이 나오고 거룩한 삶(사람)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안 나오면 그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며 그것은 결국 신자가 사탄에게 속아서 헷갈리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 하나님은 신자를 일깨우신다. 즉 은혜를 받은 신자가 그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를 책망하시며 일깨우신다. 그러나 그 내용은 은혜를 갚으라고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너는 선한 생명을 받은 자이니 선한 삶에 네게 맞고 이전의 악하고 거짓된 삶은 네게 맞지 않다. 그것은 이제 네 삶이 아니다 네 갈 길은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의 길이다"라고 성도를 일깨우는 것이다. 그리하여 더 이상 사탄에게 속지 않고 자기가 받은 생명 곧 새 생명(영생)대로 살 수 있도록 도우시는 것이다.

이처럼 은혜는 그 자체가 생명이고 생명의 능력이므로 하나님은 결코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신 후 그에 따르는 후속 조치를 인간 스스로 나타내도록 요구하시지 않는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제는 내가 스스로 열심히 노력하여 거룩하고 선한 삶을 삶으로써 하나님께 보답을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은혜의 세계가 아닌 율법의 세계로 도로 떨어져 버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노리는 것이다. 신자의 갈 길은 영원히 그리스도라는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고 그 안에 거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세 번째 사실을 요약 정리해 보자. 은혜는 결코 빌려 받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일시적으로 빌려주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만일 은혜가 빌려 받는 것이라면 우리는 나중에 반드시 은혜를 돌려 드려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은혜가 될 수 없고 오직 빚이 될 뿐이다. 은혜는 결코 후불제 상품이 아니다. 은혜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 그 어느 때에 있어서도 우리에게 어떤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모든 사람에게 값(대가) 없이 주어지는, 문자 그대로 '은혜'이며 나중에라도 결코 그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가 처음에는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나중에는 그 구원을 자신의 힘으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며 헛된 부담을 가지고 헛된 수고와 노력을 하고 있다. 많은 신자들이 은혜의 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은혜를 받은 후에는 은혜에 걸맞은 행동을 하려고 무진 애를 쓴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것을 도로 빼앗아 갈 것처럼 생각한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빚을 지고는 갚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사람과 같다. 이것은 다 은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은혜는 영생 곧 생명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한 번 받으면 다시 돌려줄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돌려줄 필요도 없지만 다시 돌려줄 수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우리의 생명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미 태어난 사람을 돌이킬 수 없듯이 거듭난 생명 역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한 번 난 것을 어떻게 다시 돌이키겠는가?

물론 거듭난 신자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는 반드시 선한 행동을 해야 하며 세상 사람과는 달라야 하고 하나님의 아들답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모든 뜻을 받들어 섬겨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생명 자체가 그런 생명이어서 그런 것이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하거나 은혜를 갚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은혜는 결코 갚을 수 없는 것이다. 은혜는 한 번 베풀어져 버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나중에 어떤 보상의 의미가 담긴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그저 상대방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지 (즉 또 다른 은혜를 베푸는 것이지) 은혜를 갚는 것이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은혜는 갚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어떤 행위로도 보답할 수 없다. 목숨을 건진 것을 보상하려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의 목숨을 은혜의 내용으로 제공했다. 그것을 어떻게 갚겠다는 것인가? 만일 우리에게 은혜를 갚을 힘이 있다면 우리는 처음부터 은혜를 받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고맙고 감사하다고 해서 그것을 갚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맙고 감사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것뿐이지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거나 갚을 수는 없다.  

우리는 앞에서 은혜를 받은 자가 선하고 거룩한 삶을 살며 하나님께 몸을 바쳐 충성하는 것은 그 생명이 그러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것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말할 수 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며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나 구원을 지키고 확고히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그렇게 하도록 속에서부터 강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며 우리 안에 있는 그의 생명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한 행동과 충성된 봉사는 구원을 지키기 위해서나 구원에 보답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구원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 모든 삶은 오직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이 하나님을 지향하기 때문이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 안에 있는 아들의 생명도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닮은 거룩하고 선한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네 번째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보자. 네 번째 사실은 은혜는 공짜가 아니고 큰 대가를 지불한 것이기 때문에 신자가 은혜를 누림에 있어서 조금도 주저하거나 소극적일 필요가 없고 모든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인의 죄를 그냥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생을 근거로 하여 용서하신다. 많은 신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의 관용 가운데서 그냥 죄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결코 죄를 간과하거나 묵과할 수 없다.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결코 죄인을 그저 용서하실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죄 있는 사람을 구원하여 의롭게 만드는 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 여기에 바로 그리스도의 희생이 개입된 것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롬3:23-26)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표로서 하나님 앞에서 피를 흘렸기 때문에(죽음으로 죄의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이다. 이것은 우리를 의롭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의도 유지하게 만들었다고 바울은 말한다. 만일 하나님이 실제로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진짜 심판을 행함 없이 동물 제사만으로 또는 말로 그저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며 죄인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으셨다면 하나님은 불의한 분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대표로 삼아 실제로 피 흘려 죽게 하심으로써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도 의롭게 만드신 것이다.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롬5:21)

여기서 바울은 죄는 스스로 왕노릇하지만 은혜는 의로 말미암아 왕노릇한다고 말한다. 은혜는 스스로의 힘으로 왕노릇하지 못하고 반드시 의의 뒷받침이 있어야 왕노릇할 수 있는 것이다. 왕노릇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은혜가 견고히 역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죄와 그로 말미암은 사망과 고통은 모든 사람에게 확고하게 왕노릇하고 있다. 그것은 누구든지 다 지배하고 있으며 거부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왕노릇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은혜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왕 노릇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모든 사람의 죄를 지고 죽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의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행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의 의의 뒷받침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면 하나님은 결코 그리스도의 피(십자가)를 요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요일1:7-9)

여기서 요한은 하나님은 자비와 사랑이 많아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미쁘시고 의로우사 그렇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는 자를 '반드시' 용서하지 않으면 안되며 반드시 그의 아들로 받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 즉흥적인 자비를 구하는 것처럼 하면 안되며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은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에서의 성취를 바탕으로 하는 것으로서 그것을 구하는 것은 조금도 빚을 지거나 동정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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