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에 내가 내 백성의 거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곳에는 파리 떼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나는 세상 중의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에 구별을 두리니 내일 이 표징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8:22,23)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생축과 애굽의 생축을 구별하리니 이스라엘 자손에 속한 것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 (9:4)
"이스라엘 자손의 거한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더라" (9:26)
파리 떼 재앙부터는 애굽 백성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역을 구분하여 재앙이 임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바로에게 재앙을 나타내심에 있어서 하나님이 누구이시며(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어떻게 철저하게 세상을 심판하시는가를 점진적으로 보여주셨다.
심판은 항상 개인별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심판은 오히려 집단별 장소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 노아 홍수 때 구원은 오직 방주에만 있었다. 하나님은 그때 누구 누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다만 방주를 지어놓으셨을 뿐이다. 그때 구원은,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땅에는 재앙과 심판이 있고 방주 안에는 그것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 가족만 구원하려 하신 것이 아니고 온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홍수를 미리 경고하셨다. 그러므로 온 세상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홍수를 피할 방주를 지었거나 최소한 노아가 만든 방주 안으로라도 들어갔더라면 그들은 심판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온 애굽 땅에는 파리 떼가 있고 이스라엘이 거하는 고센 땅에는 그것이 없었다. 또 온 애굽 땅에는 우박이 있고 이스라엘이 거하는 고센 땅에는 그것이 내리지 않았다. 또 모든 애굽인과 그들의 가축에게는 악질과 독종이 임했지만 고센 땅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가축들에게는 그것이 임하지 않았다.
이것은 모두 어떤 장소의 문제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한 개인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느 장소 어느 자리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이다. 만일 애굽인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이미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서 그를 두려워하며 믿었다면 그들은 자기가 있는 곳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고센 땅으로 위치를 옮김으로써 화를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애굽인들 중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미리 가축들을 집으로 들여 대피시킴으로써 화를 면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 보내어 네 생축과 네 들에 있는 것을 다 모으라.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릇 들에 있어서 집에 돌아오지 않은 자에게는 우박이 그 위에 내리리니 그것들이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바로의 신하 중에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그 종들과 생축을 집으로 피하여 들였으나, 여호와의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 자는 그 종들과 생축을 들에 그대로 두었더라" (9:19-21)
애굽에 내린 최후의 재앙, 최후의 심판은 유월절 밤에 있었던, 장자를 죽이는 재앙이었다. 그때 하나님은 애굽인과 이스라엘 사람을 차별하셨다. 그러나 실제로는 애굽인을 골라서 죽이고 이스라엘인들을 골라서 지나가신 것이 아니라 다만 문에다 양의 피를 바른 집은 넘어가고 그렇지 않은 집들은 다 재앙을 내린 것이다. 이 역시 장소의 문제이다.
이 모든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구원은 다만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느 어느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기 아들을 사랑하시며 오직 그를 영화롭게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생명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그 아들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영원한 노아의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리고 영원한 고센 땅, 영원한 피 발린 집 역시 그리스도이다.
애굽 땅에 내린 하나님의 심판이 보여주는 것은 세상은 다 심판 아래 있다는 사실이다. 때가 이르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없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조금씩 무너져가고 있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뿐이다. 우주 가운데서 유일하게 남는 것, 유일하게 확장되고 충만케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 받는 아들뿐이다. 이 진동치 못할 나라를 남기기 위해 하나님은 세상의 나머지 모든 것을 제거하며 정리하실 것이다.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은 결코 노아 홍수로 끝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지금 그 강도를 높이며 계속 진행되고 있다. 애굽인들에게 하나님이 피에서 개구리로 개구리에서 이로 이에서 파리로 파리에서 악질과 독종으로 악질과 독종에서 우박으로 우박에서 메뚜기로 계속 강도를 높여나가셨듯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은 결코 중단되지 않고 계속 강도를 높여나가실 것이다. 과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간단(間斷)없이 진행되어온 전쟁과 기근, 전염병, 지진 등의 모든 재앙들은 세상을 흔드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나타내는 작은 현상들일 뿐이다.
여기서 건짐을 받기 원하는 사람은 자기 개인을 하나님 앞에서 말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나 어떤 동물 혹은 어떤 세상의 개체에 관심이 있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그의 생명을 받은 사랑하는 아들 그리스도에게 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그에게로 들어가야 한다. 그의 생명, 그의 인격, 그의 말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내가 이번에는 모든 재앙을 네 마음과 네 신하와 네 백성에게 내려 너로 온 천하에 나와 같은 자가 없음을 알게 하리라 내가 손을 펴서 온역으로 너와 네 백성을 쳤더면 네가 세상에서 끊어졌을 것이나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9:14-16)
애굽에 재앙을 내리신 하나님의 목적은 애굽인들을 다 죽이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의의 하나님이시므로 죄를 싫어하시는 것이지 애굽인을 싫어하시는 것이 아니다. 애굽인이든 히브리인이든 하나님을 믿고 그의 세계 안으로 들어온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죽이실 이유가 없다.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은 거기에 속한 자들이 하나님이 만드신 땅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의 아들들을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벨로부터 주 예수님까지 의인들은 단지 그들이 의롭다는 이유로 즉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 이것을 하나님이 어떻게 그대로 두실 수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며 재앙을 내리시는 것은 그들로 죽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살라고 하시는 것이다. 어떻게 산다는 것인가? 재앙을 보고서 하나님을 알고 두려워하며 믿으라는 것이다.
우박 재앙을 내리기 전에 하나님은 재앙을 면할 수 있는 길을 말씀해 주셨다. 그리하여 애굽 사람들로 하여금 예방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하셨다.
"내일 이맘때면 내가 중한 우박을 내리리니 애굽 개국 이래로 그 같은 것이 있지 않던 것이리라 이제 보내어 네 생축과 네 들에 있는 것을 다 모으라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릇 들에 있어서 집에 돌아오지 않은 자에게는 우박이 그 위에 내리리니 그것들이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9:18,19)
왜 그렇게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그 지으신 사람이나 짐승들을 아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애굽인과 그 소유를 치신 것은 그들을 괴롭히고 죽이고자 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랬다면 그들은 벌써 다 죽었을 것이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부득이 행하신 것이다.
앗수르 니느웨로 보내진 요나가 그 성 사람들이 혹시 자기의 경고를 듣고 구원을 받게 될까봐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전하기를 싫어할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욘4:10,11)
하나님이 애굽인들에게 예방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것은 또한 애굽인들이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구원을 누릴 수 있도록 길을 여신 것이다. 그 결과 실제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구원을 베푸시는 것을 곁에서 지켜본 많은 애굽 사람들이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애굽에서 나왔다.
하나님이 사람을 이끄시고자 하는 최종적인 구원의 자리, 궁극적인 구원의 자리는 어디인가? 바로 그리스도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말씀)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요8:31-37)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요14:15-23)
구원의 자리는 바로 주님의 말씀이다. 오직 진리 안에 거하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 주님의 말씀은 주님의 생명을 대표한다. 요한이 여기서 계명이라고 말한 것이 바로 그 생명, 그 말씀을 가리킨다. 주님 안에 있는 사람은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다 알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무지하다. 주님 안이라는 것은 곧 주님의 말씀 안이다. 사람을 구원하고 자유케 하는 것은 진리 곧 주님의 말씀이다. 이 말씀, 이 진리는 주님의 길과 운명 안에 녹아 있는 어떤 명백한 사실이다.
어떤 명백한 사실인가? 그 첫째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마음,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다. 둘째는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랑과 연합의 정신 곧 사람을 사랑하며 용납하는 마음이다. 이런 것이 바로 진리 중의 진리이고 말씀 중의 말씀이다. 만물에게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 또는 진리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것 같은 진리 즉 자연 법칙 같은 것은 여기에 비하면 진리도 아니다. 모든 사실과 진리보다 훨씬 더 큰 진리가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마음과 정신이다.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는 이 진리야말로 우주를 지탱하고 있는 가장 큰 진리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진리 안에 거하는 것이 바로 노아의 방주로 들어가는 것이요 고센 땅에 머무는 것이요 집 문설주에 피를 바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