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과 하늘에서 내려온 떡
요한복음 6장
45.생명의 양식이신 그리스도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저희가 묻되 그러면 우리로 보고 당신을 믿게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 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요6:28-36)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모세처럼 계속 그들을 먹여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주님은 출애굽 당시 광야의 유대인들이 먹었던 것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하나님이 그 떡을 주신 것은 단순히 그 백성들의 목숨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로 하나님을 알고 그 안에서 영생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 주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을 알았으므로 사실상 모세는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세를 거역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거역했음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떡은 얻어먹으면서도 하나님 자신은 신뢰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떡을 먹고도 생명을 얻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표적을 매일 체험하면서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망하고 말았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떡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언제나 이러하다. 주님은 이러한 과거 역사를 지적하시며 유대인들의 불신앙과 영적 무지에 대해 책망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니까 안 믿는다 모세니까 안 믿는다 이런 문제가 아니고 누가 오더라도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5:43,44) 사람을 구하는 한 하나님은 받을 수 없고 세상 영광을 구하는 한 하늘의 영광은 받을 수 없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자기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라 하시므로 유대인들이 예수께 대하여 수군거려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제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요6:37-46)
주님께서 자기가 하늘로부터 내려온 떡이라고 했을 때 주님의 출신 및 어린 시절과 배경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육(肉)으로 아는 것이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라도 예수를 육으로 대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나사렛의 한 비천한 젊은이 이상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오직 위로부터 받은 계시가 있는 사람만 예수를 그리스도로 알아볼 수 있다. 그의 외모가 아니라 그의 인격과 생명을 볼 수 있어야 그가 하늘로부터 오신 분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는 2천년 전에만 계셨던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곁에도 계신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은 형제들이 바로 그 그리스도이다. 이들을 알아보고 존중히 여기는 일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유대인들이 2천년 전에 인간 예수를 그리스도로 알아보는 일만큼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이 일 역시 계시 곧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의 지체들을 알아보고 하나님의 뜻을 참으로 아는 지식을 얻는 것은 혈육과 세상 상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통찰력과 지혜는 사람 자신에게서는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가 과연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가? 누가 하나님을 알아볼 수 있는가? 오직 하나님이 택하신 자 곧 하나님이 그 아들에게 붙이신 자만 그렇게 할 수 있다. 사람이 자기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 같지만 (그것도 한편으로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그를 미리 아시고(택하시고) 그를 부르신 것이 먼저이다.
주님이 무리들에게 이 말씀을 하실 때 그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가운데 하나를 말씀하셨다. 그것은 그리스도에게 속하도록 선택된 사람들이 세상 마지막 날에 세상(마귀)과 함께 망하지 않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나라 곧 그리스도(아들)의 나라가 이 땅에 서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뜻이다.
왜 오직 아들인가? 왜 오직 그리스도인가? 왜 그들만 살아남는가? 그것은 아들만이 아버지를 알기 때문이다. 아들만이 아버지와 한 생명을 가진 자로서 아버지를 섬길 수 있으며 아버지와 함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이 밝히신 하나님의 뜻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이 아들이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럿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많은 아들을 가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29)
만일 그리스도가 혼자 아버지를 섬기고 아버지와 영광을 누리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면 그는 세상에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이미 하늘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으므로 굳이 죽고 부활하실(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 아들을 닮은 많은 아들들을 원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세상에 왔고 그들을 위해 드려졌던 것이다.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19)
하늘에서 내려온 떡은 오직 이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는 온 세상을 위해 왔고 드려졌지만 결과적으로 생명을 얻은 사람들은 이 사람들뿐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이 본래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11:25-27)
과연 모든 일은 결국 그러한 하나님의 뜻대로 되었다.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요17:11,12) 제자들은 극히 약하고 위태로운 자들이었지만 주님이 세상을 떠나가신 후 그들은 주님만큼 강하고 담대하며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되었다.
그것은 그들이 하늘로부터 온 떡(생명의 말씀)을 먹었기 때문이며 성령께서 평생 그들 안에서 그 떡을 되새김질시켰기 때문이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6:47-51)
출애굽 당시 광야의 유대인들이 먹었던 만나는 그들의 조상들이 먹지 못한 신기한 양식이었다. 하나님이 이러한 양식을 그들에게 제공하신 것은 반드시 먹을 것이 없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먹을 것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올 때 한 달 분의 양식을 가지고 나왔다. 한 달이라면 이스라엘이 능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고도 남을 시간이므로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중간에 사정이 바뀌어 광야에서 4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게 되었기 때문에 만나 같은 양식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일 이스라엘을 속히 가나안으로 이끌어 일 이주일 안에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들이셨다면 만나 같은 것은 먹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긴 광야 생활을 체험하게 하시고 만나를 먹도록 하신 것은 그들로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함이며 떡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생명의 원천임을 배우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2,3)
그러므로 만나는 단순한 양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와 사랑과 권능을 이스라엘에게 알게 하기 위한 표적의 양식이었다. 이스라엘이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기적의 양식을 먹을 때마다 하나님을 배웠다면 그들은 그 양식을 통해 생명을 얻었을 것이다. 식물로서의 만나 자체는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않게 하는 양식이 아니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표적의 떡으로서의 만나는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않게 하는 하늘의 양식인 것이다.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6:52-58)
유대인들이 자기가 생명의 떡이며 자기 살과 피를 먹어야 생명을 얻는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듣고는 무슨 소리냐고 수군거릴 때 주님은 그 풍유와 비유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로 설명하시지 않고 다시 한 번 그대로 반복하셨다. 왜 주님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이런 말씀을 계속 반복하셨을까? 그것은 어차피 들을 귀 있는 사람만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기 때문이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10:26,26)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요8:43-45)
왜 못 알아듣느냐 하면 (그들이 거짓에 속한 자들이어서) 그들 안에 진리가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말이 어려워서가 아니고 관심이 없고 자기가 원하는 것이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못 알아듣는 것이다. ‘진리를 말하는데 왜 못 알아듣느냐, 진리를 말하는데 왜 반대하느냐’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못 알아듣고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못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의 말씀은 사람을 가르는 시험돌이다. 듣는 사람이 진리를 사랑하는 자요 진리에 속해 있는 자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시금석(試金石)인 것이다. 주님이 종종 비유를 사용하여 말씀을 전하신 까닭이 여기 있다.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막4:33,34)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마1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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