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과 양의 문이신 그리스도
요한복음 10장
68.목자와 강도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예수께서 이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셨으나 저희는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10:1-15)
이 비유에서 양(羊)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양의 우리(울타리)는 이스라엘 나라를, 문지기는 하나님을, 문(門)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방법을 가리킨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 즉 ‘양의 문(羊門)’이다. 양의 문이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만들어 놓으신 구원의 길(방법, 계획)을 말한다. 그러므로 양의 문이란 곧 구원의 문이고 생명의 문이고 진리의 문이다.
하나님이 마련하신 구원의 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언약(약속의 말씀)이었다. 하나님은 그 언약을 율법이라는 형식에 담아서 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율법 곧 하나님이 그 종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 주셨던 약속의 말씀들이 곧 양의 문이다.
누구든지 이 문으로 들어와야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율법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율법은 많은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한 가지를 말한다. 그것은 바로 약속의 구원자 그리스도를 믿고 바라보라는 것이다. 율법은 이것을 하라 저것을 하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다 사람이 구원을 얻으려면 자기를 내려놓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은혜의 구원을 붙잡아야(믿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은혜의 구원 그리고 믿음, 이것이 핵심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 두신 그의 성전과 제사제도 및 안식일제도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사실을 항상 상기시켰다.
율법은 먼저 사람의 죄를 드러내고 그의 무능을 지적한다. 그것은 율법이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에게 맞는 여러 가지 선한 삶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첫째,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을 요구한다. 율법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에 맺은 언약의 성실한 이행을 위한 ‘언약서’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믿을 것과 사랑할 것과 두려워하며 조심할 것을 요구한다. 십계명을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 것과 우상을 만들지 말 것과 안식일을 지킬 것과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며 해롭게 하지 말 것을 요구하신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언약의 당사자로서 마땅히 나타내어야 할 삶의 모습을 제시하신 것이다.
언약서로서 율법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라는 것이다. 예컨대 이스라엘 백성이 그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것은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기 때문인 것이다. 살인이나 간음이나 도둑질을 하지 않고 이웃을 존중해야 하는 것 역시 그들의 마음이 선해서가(이웃이 사랑스럽게 느껴져서가) 아니고 그 이웃들의 아버지요 보호자이신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계시니 그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의식하므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의 기본이다. 믿음의 기본은 매사에 ‘하나님을 인식하고 사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언약에 충실한 최소한의 삶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요구는 궁극적으로 사람에게 다만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지만 세상의 도덕적 기준으로 보면 선하고 거룩한 삶을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 아버지의 성품을 본받아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 그러한 하나님의 요구에 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죄인이요 무엇보다도 그 ‘믿음’이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나님처럼 선하고 진실하지 못한 것은 사람의 형편이 하나님처럼 여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유롭지 못하면 너그럽지 못한 것이다. 왜 여유롭지 못한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을 여유롭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훼방꾼은 ‘생존에 대한 불안’이다. 선하게 살면 삶을 유지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아무도 경쟁이나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다 경쟁을 하고 전쟁을 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아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율법(하나님을 믿고 여유롭게 살아라는 요구)을 주실 때 그들의 삶에 대한 보장을 하셨다.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출19:4-6)
하나님은 과거(출애굽)뿐 아니라 장래에도 그의 독수리 날개를 펼쳐서 이스라엘이 선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 보호하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고 느긋한 삶(거룩한 삶)을 살기 힘들다는 것을 미리 아시고 사람들의 행동(믿음) 범위를 매우 단순하게 좁히셨다.
어디까지 어떻게 좁히셨는가? 믿음의 범위를 언약(약속의 구원)에 대한 믿음 한 가지로 좁힌 것이다. 다른 것은 다 실패하더라도(못 믿더라도) 언약에 대한 믿음 곧 약속의 구원을 사모하고 갈망하는 마음 하나만은 유지하라고 하신 것이다. 율법의 두 기둥 중 한 기둥인 성전과 제사제도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배려의 산물이다.
제사제도는 어린 양(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구원의 약속을 이스라엘에게 상기시키며 그것을 미리 체험케 한 제도이다. 안식일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안식(구원)을 상기시키며 미리 체험케 한 일상적 장치였다. 하나님은 결국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가 아닌 단 한 가지를 요구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선한 삶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을 믿고 가까이하기를 요구하셨다. 그리고 그 믿음마저도 극히 단순화시켜서 그들이 오직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예비하신 은혜의 구원을 사모하며 붙잡기만을 요구하신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결국 율법은 사람에게 행위(선한 삶)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며 다만 그것을 붙잡으라고(믿으라고) 요구하는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것이 율법 곧 양의 문이라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사람들을 이 문으로 즉 사람들이 자기의 죄를 깨닫고 은혜의 구원을 갈망하도록 인도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주님은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들이 있다고 했다. 그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유대교 지도자들이다. 주님은 그들이 목자가 아니고 도둑과 강도라고 하셨다. 양을 위하는 참 목자인지 양을 늑탈하려는 강도인지를 무엇으로 구별하는가? 양의 우리에 들어갈 때 양의 문으로 들어가는지 다른 데로 들어가는지를 보면 된다. 물론 결국은 목자인지 강도인지 다 드러나게 되지만 그때는 때가 늦으므로 다 훔쳐가기 전에 미리 그것을 분별해야 한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한다고 다가갔지만 하나님이 정한 문으로 들어가지 않았으므로 강도와 도둑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자기들이 만들어낸 거짓 종교의 문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했지만 자신들은 회개하지 않았으며 죄의식(상한 심령)도 의를 사모하는 마음도 없었고 은혜와 구원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완전하며 아무 문제도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그들이 드린 제사는 회개와 은혜의 구원을 붙잡는 마음의 표현이 아니라 선행과 공로에 불과했다. 주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소경이라고 하셨다.(요9:41)
만일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유대교 지도자들이 율법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했다면 그들은 문으로 들어온 참 목자로 인정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을 잘못 이해했고 잘못 사용했다. 그들은 율법을 세상 종교의 계율처럼 만들었다. 그리하여 은혜의 도구인 율법은 사람들을 짓누르는 죽은 의문(儀文)이 되었고 무거운 짐이 되었다. 그들에 의해 율법은 어떤 이들에게 자기를 자랑하는 도구가 되었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도구가 되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이런 것들로 살지 못한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도 지키지 못하는 율법의 계명을 사람들에게 지키라고 줌으로써 세상 종교가 하는 것처럼 인간의 더럽고 추악한 것을 종교의 위장된 거룩으로 덮는 일을 부추겼다. 결국 거기서 나올 수 있는 것은 위선(외식) 밖에 없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겉으로 볼 때 율법을 붙잡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참 목자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율법을 하나님이 주신 용도와는 다르게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문으로 들어오지 않고 담을 넘어 들어온 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날 때부터 소경이었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고침 받은 형제를 보고 축하는커녕 터무니없는 트집을 잡아 그들에게서 쫓아내었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목자의 자리를 벗어 던진 사람들의 모습이다. 따라서 양들 또한 그들을 따르지 않고 도망하려 했다.
살리는 영으로, 생명으로 다가가지 않는 모든 목자는 가짜다. 자기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평안과 기쁨이 있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인격(말씀이 육신이 된 것)을 가지고 다가가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고 그 생명을 더 풍성하게 할 수 있다. 양을 위해 양 우리로 들어가는 참된 문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정신으로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주님은 진실로 참 목자이다. 그는 율법이 말한 길로 들어왔다. 그는 율법을 지켰을 뿐 아니라 자신의 희생으로 율법(은혜의 약속)을 완성했다. 그는 그의 거룩하고 진실한 삶으로 율법을 완성했을(율법의 의미를 완전히 드러내셨을) 뿐 아니라 죽음으로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킴으로써 율법을 완성했다. 그는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전케 했으며 율법이 말해온 바를 이루었다. 그러므로 문지기(하나님)는 그의 음성을 알아들었고 양도 그의 음성을 알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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