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과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요한복음 7장
51.생명과 영의 길, 죽은 종교의 길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7:19)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것을 지키지는 않았다고 책망하셨다. 이방인과 달리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 율법은 다만 법과 규칙에 지나지 않았고 영과 생명은 아니었다. 그들은 율법이 진정으로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몰랐으며 율법의 정신과 핵심적 내용은 버려 둔 채 껍데기(형식)만 붙잡고 있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율법에 따른 많은 종교적 활동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들이 아무도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책망하신 것이다. 이것은 거짓된 신앙이다. 이러한 거짓된 신앙은 마치 집을 지었는데 모래 위에 짓거나 아니면 풀과 짚으로 지어서 금방 무너지게 되는 것과 같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고전3:12-15)
사람이 무엇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마지막에 다 남는 것은 아니다. 율법을 지키고 종교 생활을 해도 하나님을 섬기며 말씀에 순종한 것으로 인정을 받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오직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로 받아들여서 순종하는 사람만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고 싶었지만 아직 죽이려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주님은 그들이 자기를 죽이려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주님이 그 유대인들 안에서 ‘살인자 마귀’를 보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혼자 스스로 주님을 대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주하는 악한 자의 손 안에서 그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리새인과 장로들을 비롯한 유대교 지도자들은 하나님께 대한 오래 묵은 불순종과 교만, 주 예수님에 대한 시기심과 질투심으로 이미 마귀에게 깊이 사로잡혀 있는 상태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틀림없이 예수를 죽이게 될 것이었다.
사람의 행동은 절반은 스스로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고 절반은 자기를 지배하는 자에 의해 타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스스로 하는 절반이란 그리스도를 따를 것인가 육체대로 살 것인가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인가 마귀의 거짓말을 들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열든지 마귀의 허탄한 거짓말에 귀를 열든지 둘 중의 하나를 하는 것이다.
이까지가 굳이 말하자면 자기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음 행동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진다. 성령이 그를 인도하든지 마귀가 그를 이끌든지 둘 중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의 인도를 받기로 했다면 그는 자동적으로 말씀의 인도를 받게 되고 마귀의 거짓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면 그는 자동적으로 허탄한 생각과 욕심에 빠져 거짓과 살인의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를 인하여 괴이히 여기는도다.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주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주느니라. 모세의 율법을 폐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온전케 한 것으로 너희가 나를 노여워하느냐?”
유대인들이 괴이히 여긴 주님의 한 가지 일이란 주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것이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주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했으며 율법의 참된 정신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바와는 달리 진리에 무지했으며 어둠 가운데서 헤매고 있었다.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유대인들은 8일 만에 할례를 실시했다. 그들은 그 날짜를 넘기지 않기 위해 8일째가 안식일일지라도 할례를 시행했다. 그들은 분명히 형식적으로 볼 때 안식일에 (중요한) 일을 하지 말라는 율법을 위반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은 전혀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것에 대해서는 율법을 위반했다고 시비를 걸며 죽이려고 했다. 그들이 이런 행동을 한 것은 표면적으로 보면 율법 때문인 것 같지만 실은 마귀로 말미암은 시기심과 살인 정신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문제가 된 할례에 대해 생각해 보자. 할례는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 때문에 했는가? 할례는 사람의 육적 자아를 제거한다는 표시를 몸에다 내는 의식이다. 할례는 육으로서의 인간을 폐기하고 영으로서의 참된 인간으로 되살림으로써 사람을 온전케 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이 병자나 귀신들린 자를 치료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온전케 하기 위해 행해진 일이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할례라는 행위의 배경에 있는 이러한 영적 실체를 제대로 알았더라면 절대로 주님의 사역에 대해 안식일 위반이나 율법 위반이라고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할례를 안식일에 행한 것은 안식일의 정신이나 규정과 상충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누구든지 진정한 안식을 누리기 위해 반드시 먼저 거쳐야 할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주님이 행하신 일들도 마찬가지이다. 육적 삶에는 참 안식이 없으며 오직 위로부터 난 생명으로 행하는 삶 속에서만 안식이 있다. 할례는 그것을 나타내는 한 표시였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신 일은 안식일에 못할 일이 아니라 도리어 안식일에 꼭 해야 할 일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안식일의 정신과 가장 잘 부합되는 당연하고도 적절한 사역이었다.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주님과 유대인들 간에 분명하게 드러나는 차이점 중 하나는 義에 관한 것이었다. 주님은 의로우신 반면 유대인들은 불의했다. 공의의 율법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이 불의하다는 것은 (이방인과 비교해서가 아니라 주님과 비교해서, 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상적인 기준에 비추어볼 때) 그들이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며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기보다는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세상 영광을 구하며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신대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저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7:33-36)
유대인들이 이렇게 주님을 외모로 판단하며 거부한 것과 또 그들이 불의하고 율법의 정신을 거스려 행동한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생명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주님과는 난 곳이 다르며 생명이 달랐다. 주님은 위에서 난 자인데 비해 유대인들은 여전히 아래서 난 자인 채로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생명이 다르면 서로 알아볼 수 없으며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영원히 평행을 이룰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님은 유대인들에게 “내가 너희와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고 하셨다. 세상이 영원히 그리스도를 찾아도 만나지 못하고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올 수 없는 까닭은 무엇인가?
세상은 그리스도가 땅에 있는 동안 일시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수 있지만 그리스도가 세상을 떠나신 후에는 그리스도가 가는 곳으로 갈 수 없고 영원히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다. 주님의 이러한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은 “저 사람이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교포)유대인들에게로 가려는가? 혹은 자살하려고 하는가?” 하며 의아해 했다. 그러나 만일 주님이 가시는 곳이 외국이라면 유대인들도 따라 갈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죽어서 가는 곳이라면 그들도 따라 죽음으로써 주님이 가신 곳에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가시는 곳은 세상이 갈 수 있는 어떤 장소나 상태가 아니요 천국 곧 하나님이 계신 곳이므로 하나님을 거절한 자,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들은 갈 수 없는 것이다. 주님이 가시는 곳은 ‘사람이 하나님과 완전하고도 영원히 연합하여 사는 세계’이다. 이것은 또한 ‘형제가 사랑으로 연합하여 영원히 동거하는 세계’ 라고 말할 수 있다.
천국에는 주님과 같은 어린 양들 외에는 갈 수 없다. 거기에는 이리나 염소는 갈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받아들이는 자가 아닌 자들, 마음이 교만하여 따지기를 좋아하고 판단하기를 좋아하며 진리는 거절하는 무리들은 갈 수 없는 곳이다. 하나님과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자들은 결코 갈 수 없는 곳이다.
사실 하나님은 어떤 특별한 장소에 숨어 사람들에게 자신을 감추고 계시거나 못 오도록 막고 계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항상 거기에 그대로 계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거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는 곳 곧 주님이 지금 가시는 곳에 갈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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