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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십자가의 경계


두 창조

세상은 하나님이 지으셨지만 현재 이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그것이 사탄은 범죄한 인간의 육신을 이용하여 온 땅에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상 사탄이 [이 세상 임금](요12:13)이라고 불린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셨다. 이것은 둘째 창조라고 부를 수 있는 또 하나의 세계이다. 첫 창조는 완전한 것이었지만 이제 그것이 사탄의 손에 들어가 더 이상 하나님의 목적에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것을 돌아보시지 않는다. 그것은 이제 다만 옛 창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관심은 더 이상 옛 창조인 세상에 있지 않고 둘째 창조인 새 세계 곧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것이다. 옛 창조에 속한 것, 세상에 속한 것은 무엇이든지 이 새 나라에 옮겨질 수 없다. 우주에는 이제 이 두 세계가 있다. 문제는 우리가 어디에 속해 있느냐 하는 것이다.

 

바울은 골1:12,13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사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시고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고 했다.

 

골1:12-14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그 새 나라로 옮기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우리를 새 피조물로 만드시지 않으면 안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 나지 않는 한 새 세계에는 들어갈 수 없다. 아들의 나라는 아들의 생명을 가진 자만 들어가는 곳이다.

 

요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고전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육은 그것이 얼마나 교육을 받았던 얼마나 교양이 있던 얼마나 개선되었든 간에 여전히 육일 따름이다. 우리는 육으로 난 채 그대로 있는가? 아니면 성령으로 거듭났는가? 문제는 선이냐 악이냐가 아니라 육이냐 성령이냐 하는 것이다. 옛 창조에 속한 것은 결코 새 창조로 옮겨질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먼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를 멸하시고 다음에는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하여 새 생명을 제공하셨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성품과 새로운 기능을 가진 새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에 새 나라에 들어갈 수가 있게 되었다.

 

롬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 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테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를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세상에서 가장 큰 폭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자기에게서 나오지 않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쓸어 버리셨기 때문이다. 한편 세상에서 가장 큰 건설자는 부활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하여 당신의 택하신 자를 새 피조물로 만드셨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앞에는 新舊 두 세상이 놓여 있다. 사탄은 옛 세상에서 절대 주도권을 쥐고 있다. 옛 창조 안에 있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라도 죄와 사망의 그늘 아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옛 창조에 속한 모든 것이 없어질 것이며 또 거기에 속한 것들은 아무 것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옛 창조에 속한 모든 것이 소멸되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선언이다. 아담에 속한 것은 아무 것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피할 수 없다. 지금 십자가로 처리되고 새 피조물이 되면 장차 심판을 면할 수 있으나 최후의 순간에까지 십자가를 거절하고 옛 생명으로 사는 자들은 마지막에 소멸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빨리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그만큼 더 유익하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피할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신 것으로 인해 주님을 찬양하자.

 

세례는 십자가의 죽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한 행위이다.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롬6:3,4)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마가복음 16:16의 말씀은 세례가 구원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막16:16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이 말의 의미가 사람이 세례를 받을 때 거듭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세례로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죄나 죄의 권능으로부터 구원이 아니라 세상 혹은 특정 세계로부터의 구원이다. 우리는 전에 사탄이 지배하는 영향권 안에 속해 있었다. 구원이란 이런 세계에서 나와서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세례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부활함으로써 우리가 속한 세계를 바꾸었다는 표시로 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것은 거기에 무슨 특별한 신비적인 효과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바꾸었다는 사실을 선포함으로써 우리 자신이나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아예 우리를 다른 사람으로 알게 되기 때문에 구원하는 것이다.

 

바울은 갈6:14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세상에 대해 죽었다는 것은 세상 밖으로 나갔다는 말과 마찬가지로 세상으로부터의 구원을 말한 것이다. 베드로는 벧전3:20에서 노아와 가족들이 물에서 구원을 얻은 것을 세례에다 비했다. 노아와 가족들이 방주로 들어간 것은 부패하여 멸망 받을 세계에서 구원받은 것이다. 그 8명이 방주로 들어간 것은 심판 받을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구원이다. 계속해서 베드로는 "물은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벧전3:21)고 말했다.

 

벧전3:20,21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 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이 악한 세상에서 구출되었고 또 그것을 세례를 통해 표시하며 견고히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또 빌립보에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한 다음 간수와 그 집 사람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그때 간수와 그의 권속이 다 세례를 받았다.(행16:31-34) 세례를 통해 간수와 그 가족들은 그들이 심판 아래 있는 세상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음을 하나님과 온 사람들 앞에서 증거한 것이다. 이처럼 세례는 단지 물로 적시는 의식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는 굉장한 사건이다.


 

장사(葬事)는 종말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옛 창조를 심판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판결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례를 받는 것이다. 왜 세례를 받아야 하는가? 그것은 장사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옛 창조의 심판에서 벗어나려면 옛 창조의 세계에서는 죽고 새 세계에 속한 자로 다시 나야 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위험한 장소에 있는 사람이 거기서 사고가 나기 전에 미리 안전한 곳으로 도망치는 것과 같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롬6:4) 세례는 죽음과 부활 두 가지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세례 자체는 죽음도 아니고 부활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葬事이다. 누가 장사를 받는가? 죽은 자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례를 받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우리가 죽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죽은 자가 갈 곳은 무덤밖에 없으니 묻어달라는 것이다. 이것이 세례이다. 그러므로 세례는 자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고 그것을 간증하기 원하는 자가 받는 것이다. 그런 확신이 없는 자는 세례를 받을 수 없으며 받는다 할지라도 의미가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물으신다고 하자. "그리스도는 죽었고 나는 너를 거기에 포함시켰는데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우리의 대답은 무엇이어야 하겠는가? 이것이 대답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신 것을 나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장사지내주십시오." 이 장사가 바로 세례로 나타나는 것이다. 옛 세상과 새 세계 사이에는 무덤이 있다. 그것을 통과하지 않고는 새 세계로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은 나를 이미 십자가에 못박으셨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그것을 깨닫고 나를 무덤에 위탁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의 세례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의 십자가 안에서 나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선고를 확인하는 것이며 공포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내가 이제 옛 세상에서 끊어졌고 새 세계로 위치를 옮겼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더 이상 옛 세계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여기에 대해 바울은 롬6:2에서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라고 말한다. 바울이 말하고자 한 것은 "만일 네가 옛 세상에 계속 머물러 있으려 할 것 같으면 왜 세례를 받았는가? 만일 네가 옛 창조에서 계속 살 작정이었으면 애당초 세례를 받지 말았어야 했을 것이다."라는 것이다.

 

롬6:5에서 바울은 "세례를 받은"(6:3) 자들이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다고 했다.

 

롬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롬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이 말을 통해서 우리는 세례가 그리스도와 우리가 완전히 연합하여 함께 죽고 부활했음을 나타내는 상징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례 배후에 있는 참 뜻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므로 그의 죽으심이 우리의 죽음이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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