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죄에 대해 혹은 육신에 대해 죽은(무력한) 자가 된 것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산(유용한) 자로 드리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죽음을 아는 사람은 또한 하나님을 섬기는 헌신의 삶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로마서 6장 후반부 곧 6:12-23의 말씀은 헌신에 대한 말씀이다. 롬6:12,13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명했다.
롬6:12,13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올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이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드리라]는 것이다. 이 말은 13,16,19절에서 다섯 번이나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 [드리라]는 말은 그냥 우리가 생각하는 헌신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 드리라는 것은 우리 옛 사람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바울이 여기서 드리라고 하는 것은 우리 옛 사람에 속한 열심과 재능과 지혜와 힘을 드리라는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하나님께 대해 죽었기 때문에 아무리 드려도 소용이 없다.
6:13에서 바울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우리 자신을 드리라고 했다. 우리를 드리되 옛 피조물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곧 새 피조물을 드리라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의 헌신의 출발점이 어디인가를 알려 준다. 사람이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려면 옛 창조에 속한 것으로는 안된다. 오직 죽음을 지나 부활에 이른 것을 드려야 한다. 그러므로 드리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먼저이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죽음을 아는 지식(빛)이 가장 먼저고 다음으로 믿음(간주함)이 따르며 마지막으로 헌신(드림)이 따른다. 이 순서가 틀리면 안된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사실을 우리가 참으로 알 때 우리는 자연적으로 자신을 죽은 자로 여기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 산 자로" 여기게 된다. 이 지점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을 주님께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거듭난 생명 곧 부활을 경험한 우리 자신은 다 하나님의 것이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차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게 되어 있다. 그러나 죽음을 거치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하나님께 드릴 수 없으며 쓰일 수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옛 창조에 속한 모든 것을 십자가에서 정죄해 버리셨기 때문이다. 생사람은 하나님께 소용없으며 헌신이 되지도 않는다. 오직 부활한 것만이 하나님께 헌신될 수 있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말은 이제 후로 나는 나의 전 생명을 주님께 속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第三 단계 : "너희 자신을 드리며"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린다는 것은 우리 몸의 각 지체를 드린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 몸은 이제 죄에 대해서는 죽은(실직한)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 몸의 지체를 온전히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드려야 한다. 바울은 이 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롬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모든 지체, 모든 기능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우리 눈에 우리 자신과 우리의 소유들이 우리 자신의 것으로 보이는 한 우리는 결코 헌신할 수 없다. 이것들이 다 하나님의 것으로 보여야 참으로 우리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부활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자기에 대하여 살아 있는 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대하여서만] 살아 있는 자이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기차를 타고 가는데 그의 좌석 앞과 옆에는 다른 3명의 승객이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카드놀이를 하자고 제안했다. 모두 좋다고 했으나 이 형제만 가만히 있었다. 그들은 이 사람에게 함께 하자고 권했다. 그 때 그 형제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여러분을 실망시켜 드리게 되어 미안합니다. 나는 손을 가지고 오지 않아서 당신들과 카드놀이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놀라서 "도대체 그것이 무슨 말이요?" 라고 물었다. 그때 이 형제가 말하기를 "이 양손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나를 사신 분의 것입니다." 라고 말을 했다. 그리고는 그에게 일어났던 변화를 설명했다. 그는 이제 자기 몸의 모든 지체가 자기 것이나 그 누구의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참 헌신이요 거룩이다.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롬6:19) 우리는 그 형제와 같이 이 말씀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주님께 성별됨
무엇이 거룩인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우리의 마음 가운데 있는 악한 생각을 제거하면 우리는 거룩하게 될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성별(거룩히 구별)할 때 되는 것이다. 구약 시대에는 사람이 하나님께 속한 자로 택함을 받아 공중 앞에서 기름부음을 받으면 거룩하게 되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 즉 성별된 자로 여김을 받아 오직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만 모든 것을 하게 되었다. 사람뿐 아니라 제물로 드려지는 양 같은 동물이나 성전에 바쳐진 금처럼 물질도 그렇게 성별되었다. 그것들은 그 속에 있는 어떤 좋지 않은 성분들을 제거함으로써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 바쳐짐으로써 거룩하게 되었다. 히브리어로 거룩은 qodesh인데 이 말은 구별이라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거룩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오직 "여호와께" 거룩인 것이다.(출28:36) 나는 이런 저런 수양을 해서 깨끗하게 되었으니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망상에 빠진 것이다. 자신을 전부 그리스도께 드릴 때 그것이 바로 거룩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사업에 자기들의 돈이나 재능을 바치면 그것은 곧 헌신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물론 헌신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헌신으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헌신은 사람이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 구별하여 온전히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는 것이기 때문에 그보다 못한 것은 헌신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위해 구별된 사람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직에 의해 이것도 하고 저것고 하는 것이다. 바울은 자기의 인생 길에 대해 말할 때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라고 말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정해놓으신 길이 있었음을 밝혔다. 바울 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길도 하나님에 의해 정해지며 또한 그 길대로 걸어야 한다. 참된 헌신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길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오직 그 길만을 가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하나 뿐이고 그것은 소중한 것이다. 또 그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할 자유도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기쁨을 구한다면 우리 인생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할 뿐 아니라 마지막에는 자신에게도 영광이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인생을 하나님의 목적에 온전히 바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놓일 자리에 놓인 물건처럼 빛나게 될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나는 나 자신을 위하여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하여는 모든 것을 원한다"고 말했다. 건축가에게 자재를 주지 않고 건물을 만들어 주기를 기대할 수 없는 것처럼 주님께 우리 자신을 드리지 않고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고 온전한 인생으로 만들어 주실 것을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생명을 주님께 바치지 않는다면 주님 역시 우리 안으로 오셔서 그의 생명으로 나를 대신하여 살아 주실 수 없는 것이다.
종이냐 ? 노예냐 ?
우리 몸이 주님께 속해 있고 자신에게 속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늘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른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느끼려면 먼저 하나님께서 나를 소유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느껴야) 한다. 나에 대한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면 나는 감히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롬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여기의 종은 노예를 의미한다. 롬6장 후반부에는 이 말이 여러번 사용되었다. 우리말에서 종과 노예는 차이를 가지고 있다. 종(머슴)은 주인을 위해 일하지만 주인이 싫으면 그만 두고 나올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섬길 수도 있다. 그러나 노예는 다르다. 노예는 주인을 섬길 뿐 아니라 그의 소유이기 때문에 원치 않는다고 해서 그를 섬기는 일을 그만둘 수도 없고 또 주인을 바꿀 수도 없다.
우리는 주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계약 관계나 고용 관계에 있는가? 그렇지 않다. 주님은 우리를 고용한 것이 아니라 (율법의 저주에서) 값을 지불하고 나를 사셨다.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고전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종일 뿐 아니라 주님의 소유된 노예이다. 또 주님이 나를 사셨을 뿐 아니라 거기에 부응하여 우리도 또한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렸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스스로 주장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시든지 이유를 달지 말고 "예, 그것을 행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경우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그들이 자신의 위치를 확실히 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요구하시면 사람들은 자기가 그런 일을 할 사람이라고 생각지 않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그대로 자기 자리에 머물러 있으려고 한다. 그러나 반면에 세상이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해 오면 그것도 수용할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이 세상에서도 이미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그들의 요구에 자연스럽게 부응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이 사용하시기에도 너무 멀리 있고 세상이 사용하기에도 너무 멀리 있어서 어디에도 쓸모 없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서는 (완전히 죽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는 않고) 고장이 난 상태이고 하나님과는 다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보이는 비극이다.
우리가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것은 일상적인 생활에서 기본적으로 늘 수행해야 할 일이다. 언제나 특별한 일에만 자기를 바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일상적이고 평범한 삶에서 성공적인 헌신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런 특별한 자리에 갖다 놓아도 별 볼 일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것이므로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말고 모든 일에 주님의 소유권과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헌신하려면 선교사나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 알아서 하실 일이고 우리는 선교사나 기타의 특별한 일을 하게 되기 전에도 얼마든지 헌신을 할 수 있으며 또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해주신 장소와 환경은 다 내가 일할 자리이다. 학교든, 사무실이든, 부엌이든, 교회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해주신 것은 무엇이나 최선의 것으로 여기고 그 일을 위해 자신을 바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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