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17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누가복음 14:25-33)
주님은 그를 찾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셨다.(눅9:23) 왜 그래야 하는가? 주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그들과 그들의 욕망과 그들의 세계(이스라엘, 세상)를 보존하고 더 좋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폐하고 새로운 사람,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계를 만들려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눅12:51)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10:35,36)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 화목과 평화인데, 왜 주님은 미움과 다툼, 분쟁(불화)과 고통을 말씀하셨는가? 먼저 버릴 것을 버리고 이별할 것과 이별해야 새롭고 완전한 것을 얻고 진정한 기쁨과 평화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나 어머니 ...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7-39) 이 말의 핵심은 아버지나 어머니, 아들과 딸, 자기 자신을 미워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생명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다 살기 때문이다.
먼저 몸을 살리지 않으면 지체도 살지 못한다. 몸의 어느 기관에 암이 생긴 사람은 그것이 자기 몸의 일부인데도 반드시 그것을 미워하며 그것과 불화하고 결국 그것을 버린다(잘라낸다). 세상이 영원히 갈 것 같으면, 부모 자식 관계가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하나님의 나라) 관계라면, 그리고 육신의 욕망(탐심과 정욕으로 점철된 세상)이 생명과 기쁨과 평화를 가져다준다면 무엇 때문에 그것과 분쟁하며 그것을 버리겠는가?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빌3:19) 세상을 버리고 폐해야 하는 것은 그들의 신이 배(腹)요 그들의 영광은 부끄러운 것이며 그들의 자랑은 썩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세상의 몰이해와 배척 가운데서 고난 당하고 피를 흘리며 만들어진 교회만 진정한 교회로 인정하시며 그렇게 성장한 성장만 진정한 성장으로 인정하신다. 로마제국이나 중세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기독교가 세상의 열렬한 지지와 환영을 받으며 확대되고 강해진 것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로마제국 이후 많은 사람들이 진리와 십자가(자기 부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교회로 들어왔고 그 결과 기독교는 세상을 좌우하는 큰 세력으로 성장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세상의 수호신, 제국의 수호자, 가정의 수호자로 생각했고 주님이 그런 역할을 해주기를 원했다. 그때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그러한 세상의 기대에 부응하여 그리스도가 마치 세상을 위한 분인 것처럼 소개하고 제시했다. 그 결과 그릇된 영접과 그릇된 연합이 이루어졌고 그 결과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주님이 오시기 전 선지자들도 세상에 대해 같은 입장을 가지고 일을 했다.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렘1:9,10)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선한 행실이나 화목을 돕는 선생이 아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자녀들이 부모에게 복종하고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함으로써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게 하거나 국민들이 국가에 충성하게 함으로써 더 부강한 나라를 만들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의 삶과 가르침은 오직 사람을 십자가로 끌고 가서 처리함으로써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한 것이며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이 개조라면 개조고 변화라면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이것을 변화나 개조라고 할 수 없고 그저 파괴이고 분쇄라고 한다면 주님은 변화와 개조를 위해 오신 분이 아니라 파괴와 분쇄를 위해 오신 분이다. 주님은 단지 건설하고 세우는 분도 아니요 단지 파괴하고 폐하는 분도 아니다. 그는 폐하고 세우며 파괴하고 건설하는 분이다. 그는 이전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신다. 그러므로 주님께로 오는 사람은 이것을 해달라 저것을 해달라고 하거나 주님을 이리 오라 저리 오라고 할 것이 아니라 조용히 그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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