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6. 20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4:7-11)
바울은 자신을 금그릇이나 은그릇이 아닌 질그릇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냥 질그릇이 아니라 보배를 담은 질그릇이었다. 질그릇과 보배, 이것은 모두 바울의 인격을 표현한 말이다. 이 둘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이지만 바울 안에서 하나가 되어 있었다. 고린도후서를 읽어보면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인격 곧 약함과 강함, 허술함과 완벽함, 감정과 의지가 서로 교차되며 투영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담의 자손, 육신을 지닌 연약한 인간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바울 곧 영광스럽고 강인한 하나님의 사람이 교차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보배를 질그릇에 가지고 있다, 이것이 고린도후서의 핵심 메시지이다. 복음서나 바울의 다른 서신들은 주로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고 있으나 고린도후서는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자인 사람을 말하고 있다. 만일 고린도후서가 없다면 우리는 바울이 성취한 사역은 알 수 있어도 그런 일을 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참으로 완전한 그리스도인이었다. 완전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가? 많은 사람들이 완전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일에도 슬퍼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미소를 지으며 감사하고 찬송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일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근심하거나 눈물을 보인다면 그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린도후서를 읽어보면 바울은 분명히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종종 슬퍼했고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곤경에 처했을 때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졌고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고후1:8,9)고 했으며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다”(고전2:3)고 말했다.
위인전이나 영웅전을 읽어보면 훌륭한 일, 대단한 일을 한 사람들은 날 때부터 무언가 달랐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큰 뜻을 가지고 있었고 의지가 굳고 감정에 요동되지 않고 시련과 역경을 이기고 뜻을 담대하게 이루는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위인들의 탁월한 인격과 능력, 생애는 그들을 이용하여 목적을 달성하려는 지도자들과 그들을 그린 전기작가의 손에서 대부분 과장되고 포장된 것이다.
조선시대 군인인 이순신은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모든 국민들에게 충효사상과 멸사봉공의 정신을 가르치는 모범 국민의 역할을 하기 위해 성웅(聖雄, 거룩한 영웅)으로 높여졌다. 그래서 그는 강하고 지혜롭고 효자이고 충신이고 의인이고 겸손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말에서 활을 쏘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도 끄덕 않고 버들가지로 다리를 싸매고 다시 나가 시합을 하는 등 강인한 정신과 육체의 소유자였고, 일본이 쳐들어오기 전에 미리 국방의 필요성을 느껴 거북선을 제작하고 군량미를 비축하며 군사들을 훈련시키는 혜안과 준비성을 갖춘 사람이었고, 전쟁이 터졌을 때는 기묘하고 대담한 전략을 세워 적들을 다 물리치고 국가 방위 임무를 온전히 수행했고, 그 전쟁 중에도 일기를 쓰고 시를 쓰는 등 정신적 품격도 높은 사람이었고, 모함을 당해 억울한 고통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개의치 않고 다시 국가를 위해 백의종군하였고, 마침내 적의 총탄을 맞아 죽게 되었을 때에도 자기를 생각하지 않고 맡은 직무에 충실하기 위해 자기의 죽음을 알리지 말도록 했던 사람이다. 너무나 위대하고 거룩하다.
물론 상당 부분은 실제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그렇게 기계적일 정도로 합리적이고 강인하고 게다가 앞의 성질과 모순되는 여유와 따뜻함과 (약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허술함까지 갖춤으로써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선한 가치들을 완벽하게 갖춘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순신이나 세종대왕이나 많은 위인들에게 남다른 인품과 능력, 업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도 우리와 같은 연약한 인간으로서 약함과 약점과 실수가 있었다. 결국 위인전이나 영웅전에서 그리고 있는 위인과 영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의 관념과 희망 속에 있는, 위인전을 통해 만들어낸 존재에 불과하다.
백보를 양보하여 세상에 그런 완벽한 인격과 능력의 소유자들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크게 사용된 사람들 가운데는 확실히 그런 사람이 없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기드온, 사무엘, 다윗, 솔로몬, 베드로, 요한, 바울과 같은 성경의 위인들 그리고 루터나 칼뱅, 쯔빙글리 같은 종교개혁자들, 웨슬리, 존 번연, 허드슨 테일러 같은 근대의 훌륭한 전도자들, 잔느 귀용이나 조지 뮐러, 워치만니 같은 근대의 믿음의 인물들 중 어느 누구도 연약함과 허물은 없고 온전히 아름답고 영광스럽기만 했던 사람은 없다. 그들은 모두 질그릇이었다. 그러므로 일을 할 때나 시험을 만날 때 강철의 용사처럼 쉽게 처리하지 못했고 약함과 두려움 가운데서 떨며 주님을 간절히 의지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님의 인격과 능력의 통로였고 주님의 인격과 능력의 증인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를 자랑할 수 없었고 언제나 주님을 말하고 주님을 자랑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1:29) 그렇게 해서 그들은 보배를 담고 있는 영광스러운 질그릇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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