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갈라디아교회 사람들이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을 누리는 자리에서 떠나 구약 율법의 의식과 절기들을 다시 지키고 육체의 모양을 내려하는 것에 대해 한 마디로 어리석은 일이며 마귀의 꾀임에 빠져서 어리석고 허무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3:1)
만일 사람이 율법을 지킴으로써 즉 육체로 경건의 모양을 내려 하는 것으로써 참 경건이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면 당연히 그것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안되기 때문에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다. 사람이 육체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그리스도가 우리를 싸 안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겠는가?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은 사람이 그 육체대로는 결코 하나님의 목적에 이를 수 없으며 결코 영광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증하는 분명한 증거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스스로 영광을 얻으며 스스로 살려고 발버둥치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 산다는 것은 육체의 생각과 능력대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육체의 생각, 육체의 욕망을 한 말로 요약하면 '내가 무엇이나 되며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자기를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허무한 생각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불어넣은 생각과 욕망이 아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자녀로 지음 받았으며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서 살 자로 지음 받았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광과 행복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섬기는데 있다.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안에 있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세상에 나와 있으니 자기가 절대적인 존재인 줄로 생각하지만 실은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처럼 지으신 이의 뜻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일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그 무엇과도 상관없이 절대적으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그릇으로, 하나님의 밭으로, 하나님의 도구로 즉 하나님과 관련하여 존재할 따름이다. 이것을 모르면 망상에 빠지는 것이다.
타락이란 사람이 사탄에게 속아 바로 이 사실을 모르게 된 것이다. 자기가 혼자 있으며 스스로 살 자인 것으로 착각하게 된 것이 바로 타락이다. 본래 육체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것이므로 스스로의 영광을 추구하는 따위의 행동은 하지 않는다. 육체는 하나님의 그릇으로서 하나님을 담고 하나님을 표현하며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것이다. 거기에 담길 생각은 당연히 하나님의 생각이다. 그러므로 정상적이라면 사람은 그 육체의 소욕대로 살아도 된다. 왜냐하면 육체의 소욕이 곧 하나님의 욕망이며 따라서 육체대로 산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락한 후에는 육체대로 살아서는 안되게 되었다. 왜냐하면 육체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허무하고 거짓된 사탄의 망상과 일치하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타락 후 육체는 항상 하나님 없는 자기의 존재, 하나님 없는 삶의 영광과 행복을 생각하며 추구하게 되었다.
육체대로 생각하고 육체대로 행동하면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멀리하고 진리를 멀리하는 길로 가게 된다. 그것은 육체의 타락한 본성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갈5:17)라는 말씀처럼 육체의 생각과 욕망은 언제나 성령(하나님의 생각)을 거스르는 것이다. 육체가 간절히 원하는 것들 곧 오늘날 사람들이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간절히 추구하는 많은 것들은 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사람에게 불어넣은 정상적인 욕망과는 다른 것들이며 하나님이 정해놓은 길 안에서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사탄은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속이는가? 만일 사탄이 신자들에게 처음부터 육체의 더러운 정욕대로 살아라, 육체의 정욕을 추구해라고 속삭인다면 아무도 그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탄은 그렇게 하지 않고 육체로 선한 일을 하며 육체로 경건의 모양을 내라고 속삭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거룩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라고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에 미혹당하여 그렇게 하고 있다. 몸 단장을 깨끗하게 하고 의식과 절기를 경건한 모양으로 지키고 자기들이 정해 놓은 기준을 따라 최소한의 선한 일을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 수고와 정성이 공로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자기의 현재와 미래의 삶을 안전하고 복된 삶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그래도 좋은 사람이며 살아있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궁극적으로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타락한 육체는 약간의 선한 일을 하고 이런 저런 방식으로 경건의 모양을 낸다 하더라도 여전히 타락한 육체일 뿐이다. 그것은 어떤 일과 어떤 모양으로 꾸미더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 타락한 인류는 그 본질상 사탄에게 속아 (생명의 길에서 떠나) 허무한 일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사탄의 종일뿐이다. 그대로 가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사탄과 함께 쓰레기 통에 들어갈 신세일뿐이다. 사탄은 이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계속 자기의 말을 듣고 허무한 육체의 영광을 추구하도록 하기 위해 이것을 깨닫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있다.
무엇이 육체의 영광을 이루는 길이며 무엇이 사람이 참으로 사는 길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육체를 더 이상 쓸 수 없는 것으로 판정하셨으면 그것으로 육체는 끝난 것이다. 하나님이 육체를 그리스도 안에서 폐기 처분하셨으면 더 이상 육체는 쓸모가 없는 것이며 거기에 의심을 하거나 시험을 해 보려고 스스로 나서서 무엇을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길은 오직 십자가이다. 예수를 믿음으로써 자기를 버리고 하나님을 취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의 길이다. 이것 말고 조금이라고 다른 길이 있고 다른 가능성이 있다면 예수는 결코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을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교회 신자들에게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3:3)라고 말했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친다는 것은 성령의 길을 따르다가 도로 육체의 길로 가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성령의 길이 무엇이고 육체의 길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성령의 길은 십자가의 길이다. 아니 성령의 길이나 육체의 길이나 크게 보면 다 십자가의 길이다. 다만 누구를 십자가에 못박느냐 하는 문제일뿐이다. 성령의 길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고 육체의 길은 남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길은 (사탄에게 속아 하나님의 지음 받은 정상적인 자리에서 벗어난) '자신의 허무한 생각과 야망'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고 육체의 길은 그러한 자기의 생각과 야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는 축구 열풍에 휩싸여 있다. 16강에만 올라도 대단하다 했는데 지금 4강까지 갔으니 좋아서 얼마나 난리인지 모른다.
축구는 왜 하는가? 축구를 하는 이유나 목적은 무엇인가? 이것은 입장에 따라 두 가지로 그 이유가 다르게 된다. 하나는 축구를 하는 사람들의 입장인데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즉 먹고 살기 위해서 그것을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공을 차는 것이 좋아서 즉 취미로 축구를 시작하는 것인데 나중에는 그것이 직업이 되어서 생계 수단으로 그것을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적이고 국민적인 입장이다. 정작 축구를 하는 사람들도 아닌 다른 사람들이 축구에 더 열광하고 목을 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축구를 통해 다른 나라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맛보고 그것으로 국가와 국민의 실력을 떨치며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바로 문제이다.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신자들까지도 이런 생각에 빠져 있다. 내가 싸움에서 이기는데서 영광이 온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번에 보니까 축구를 통해서 사람들은 이번에 이겼다는 것뿐 아니라 '나는 할 수 있다' 또는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것을 큰 소득과 수확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만일 사람이 십자가로 가지 않아도 된다면 즉 육체로 성공할 수 있고 육체로 참 영광을 얻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는 우리를 안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과 경쟁하고 싸워서 이김으로써 영광을 얻을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서 얻는 영광이 참되고 영원한 영광이 된다면 그리스도는 십자가로 가지 않고 우리로 그런 영광을 얻도록 도왔을 것이다.
두 사람이 줄을 서면 반드시 한 사람은 앞에 서고 한 사람은 뒤에 서야 하며, 한 사람이 위에 있으면 다른 사람은 밑에 있어야 한다. 둘 다 일등을 하고 둘 다 앞에만 있고 둘 다 위에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추구한다. 모두 앞에만 서기 원하고 모두 위에만 서기 원한다. 그래야만 산다고 생각하고 그래야만 영광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사탄에게 속은 육체의 허무한 생각이다.
그러므로 육체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거기에는 결코 영구한 평안이 있을 수 없으며 영구한 만족이 있을 수 없다. 산이 있으면 골짜기가 있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것이지 어찌 끝없이 올라만 가고 끝없이 위로만 가겠는가?
우리가 어떤 나라를 이기고 또 우리 개인이 어떤 사람을 이기면 우리는 기쁨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상대방은 그렇지 못하게 된다. 하나님이 정하신 길은 형제가 함께 서로 도우며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길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누르고 다른 사람을 이기면 그 이기는 사람은 적어도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두 사람이 다 괴롭고 망하게 해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싸우면 두 사람이 다 승리자가 될 수 없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최소한 한 사람이라도 승리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다 실패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리이다.
그러므로 육체의 말을 들으면 안된다. 내가 살고 내가 영광스러우려면 저 사람과 싸워야 하고 저 사람을 이겨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안되는 것이다. 내가 사는 길은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진리)대로 사는 것이며 형제를 사랑하며 섬기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대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