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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1.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자유의 근원

갈라디아서 5:1-6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유와 권세과 영광을 얻었으니 다시는 이 아들의 자유와 영광을 얻지 못한 채 죄의 종, 율법의 종, 정욕의 종, 세상의 종, 사람의 종으로 행하던 이전 생활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특별히 바울이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자유는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곧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려는 노력(구원을 얻으려는 노력)을 중단하고 성령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서 사람과 하나님이 하나 되도록 역사해 나가시는 것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러한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곧 인간 노력으로부터의 자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은 그 폭을 조금 넓혀서 (단지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그 내용에 따라 나누면 다음 몇 가지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죄(罪)로부터의 자유.
둘째는 세상(세상 영광과 자랑)과 사람(사람의 사랑과 인정과 칭찬)과 육신의 정욕으로부터의 자유.
셋째는 무지(無知) 곧 허탄(虛誕)하고 허무한 생각 또는 마귀의 거짓말(속임수)로부터의 자유.
넷째는 율법 곧 인간 자신의 노력으로부터의 자유.  

첫째 자유 곧 죄로부터의 자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 죄로부터의 자유는 곧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어쩌다보니 짓는 것이 아니라 죄의 생명 또는 죄의 성질이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가리켜 성경은 죄와 사망의 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죄로부터의 자유는 단순히 죄를 억제하고 범죄하지 않으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의 생명 또는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기는 더 강력한 생명이 우리 안에서 역사해야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이 말씀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거듭난 우리 안에 역사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 법이란 아들을 받아들인 사람 안에서 역사하는 아들(그리스도)의 생명을 가리킨다. 이 생명은 죄를 이기는 생명이요 죄를 알지도 못하는 생명이기 때문에 우리로 범죄하지 않게 만들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게 만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죄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되며 정죄 없는 세계에 살게 되는 것이다. 정죄 없는 세계 또는 죄로부터의 자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아들의 생명은 우리에게 {죄책(罪責)으로부터의 자유}를 가져다 준다. 이는 곧 그리스도의 이기는(거룩한) 생명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의 자유' 및 '양심의 가책'으로부터의 자유를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표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처리하셨기 때문이다.  
둘째, 이 생명은 우리에게 문자 그대로 {죄로부터의 자유}를 가져다 준다. 이는 곧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에게 '더 이상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준다는 말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성령)이 우리 속에서 우리를 가르치고 감동시키고 책망하고 간섭함으로써 우리로 범죄하지 못하도록 역사하시며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도록 역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단지 (죄를 짓고는) 용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범죄하지 않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자유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그리스도의) 승리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투쟁하여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리스도를 바라보기만 하면 얻는 것이다. 우리(사람)의 대표자이신 그리스도가 이기셨기 때문에 그의 생명(운명) 안에 있는 우리는 모든 매임에서 놓임을 받는다. 이것을 분명히 알면 우리는 더 이상 죄에 매이지 않으며 죄책에 매이지 않을 것이다.

죄로부터의 자유는 다른 차원으로 설명될 수 있다. 즉 죄로부터의 자유는 성령을 좇는 사람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죄는 성령이 오면 물러가는데 그것은 성령이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말미암아) 육신을 통제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조종하기 때문이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3:17) 여기서 우리는 둘째 자유의 근거를 발견한다. 즉 세상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는 것과 육신의 정욕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비결을 알게 된다. 이런 것들은 피하고자 한다 해서 피해지는 것이 아니다. 육신이 살아 있는 한, 사람의 눈이 영적 세계를 보는 기관이 아니라 바깥의 사물을 보는 기관인 이상 우리는 눈에 보여지고 귀에 들려지는 세계에 대해 초연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하려면 그 속에 무언가 그 이상의 것을 볼 수 있는 다른 기관이 하나 더 붙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영이 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영이 그 속에 있어서 그 삶을 인도 받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8:9,14)
성령은 사람의 영과 연합하여 사람을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의 삶으로 이끄신다. 그러므로 거룩한 삶 또는 죄로부터의 자유는 영이 살았느냐 죽었느냐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사람이 실제로 성령의 인도를 받느냐 그렇지 않고 육신대로 사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죄란 하나님의 말씀(진리, 뜻)에서 벗어난 삶(행위)이다. 왜 사람이 진리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가? 그것은 육신을 통제하는 어떤 장치의 기능이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즉 영이 죽은 것이다. 영이 죽은 상태에서는 동물적 육정이 사람을 지배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죄로 나타나는 것이다. 죄란 定함(통제, 절제)이 없는 행동이다. 몸(삶)이 하나님의 뜻(정하심)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동물적 본성에 따라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것이 바로 죄다. 영의 통제를 받지 않는 인생, 하나님의 생명을 따라 살지 않는 인생이 바로 타락한 인생이며 이 타락한 몸이 빚어내는 모든 행동(삶)이 바로 죄다.
그런 가운데 주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 생명이 되시고 우리의 영을 회복시키셨기 때문에 우리는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므로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롬6:6,12,16-22)
이 말씀은 그리스도가 어떻게 우리를 죄와 (그것의 근원인) 육신의 정욕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하셨는지를 말함과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당당히 죄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섬겨나갈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케 해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죄의 종 된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죄로부터 자유하고 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누리려면 이 그리스도의 역사를 분명하게 알고 믿어야 한다. 우리의 승리는 믿음에 달려 있다. 그리스도의 이루신 승리를 믿음으로써 그의 이기는 생명 안에 거하면 자연스럽게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것이고 반대로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승리를 보지 못하고 자기 의지와 노력으로 죄와 싸워나가는 사람은 실패하는 것이다.

셋째 자유 곧 무지(無知)와 허무한 생각으로부터의 자유는 진리의 말씀을 소유함으로 말미암는다. 성령이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시면 사람은 마귀의 모든 거짓말과 허무한 생각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 된다. 죄는 곧 그릇된 행동이며 그것은 그릇된 생각에서 나온다. 탈선을 하는 사람을 보면 그 마음 속에 "이렇게 하면 인생이 따분하지 않고 재미있으며 멋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 있다. 이러한 생각이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길)에서 떠나 그릇된 길로 떨어지게(탈선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인생을 모르는데서 온 것이다. 인생의 행복이 육체의 정욕을 만족시켜주는데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가 인생의 본질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무지이다. '내가 꼭 무엇인가를 가져야되겠다', '꼭 무엇인가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이 인생의 행복과 즐거움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거나 적어도 그렇게 해도 된다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인생이 크게 낭패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무도 그것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죄에 대한) 매임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어떤 행동을 원치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지 않을 수 없어서 매여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것이 해서는 안될 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무지에 매여 어떤 일을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죄는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육신의 정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그것을 한다. 이것은 바로 죄에 매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행동들은 하나님 보시기에는 분명히 죄지만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태연하게 그런 일들을 한다. 이것이 바로 무지와 사탄의 속임수에 매여 있는 것이다.  
많은 죄들이 무지와 연결되어 있다. 세상을 사랑하고 육체의 욕망을 다 채우려는 것은 그것이 자기에게 생명(삶의 활력과 만족)이 되고 행복이 되고 기쁨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잘못된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죄는 계속 짓게 되어 있다. 하나님보다 세상, 하나님의 영광보다 세상 영광,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보다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더 사랑하는 한, 그리고 "배는 음식을 위하고 음식은 배를 위한다"는 말씀(고전6:13)처럼 몸을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쓰지 않고 육신 자체의 정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쓰는 한 죄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죄로부터 자유하려면 반드시 주의 영이 사람 속으로 들어가 그에게 진리를 가르치시며 깨우치셔야 한다. 인간이 무엇이며 삶이 무엇이며 참 행복이 무엇이며 사람의 영광과 만족과 기쁨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를 깨닫지 못하면 사람은 계속 허무한 것을 추구하며 그것 때문에 범죄하고 헛된 일을 하는 것이다.  

넷째 자유 곧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곧 육신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다가 실패하는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자. 사람은 잘못된 목적 곧 육신의 정욕 때문에 범죄하며 헛된 일을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바른 목적을 추구하는 경우에도 그 방법이 잘못되어서 헛되고 그릇된 일을 하기도 한다. {율법 안에서 의로워지려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추구하며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추구한다. 이것은 분명히 올바른 목표이며 올바른 열망이다. 그러나 마귀는 이런 사람들 안에서도 작용하여 그의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였다.
많은 사람들이 죄로부터 자유를 갈망하며 거룩한 삶으로의 회복, 인간다운 삶으로의 구원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그 길과 방법이 오직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자(아들) 안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 자신의 죽은 행실을 의지하여 그러한 목표에 도달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이것은 항상 실패했다. 그러는 중에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조용히 그를 따르는 일군의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과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노력과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을 자연스럽게 섬기며 그의 뜻대로, 그의 원대로 살게 되는 것을 체험했다. 이것이 바로 율법으로부터 자유를 얻은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 넣으시고 그의 생명으로 살게 하시는 것이다. 그때 모든 것은 (그 사람의 육신적 능력과 수준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의 수준과 능력대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자이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사람의 자유가 오직 {그리스도}와 {성령}과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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