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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오늘날 사람들이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대적하며 함께 지음 받은 형제들 곧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며 싸우고 죽이는 것은 사람이 거짓말과 살인의 아버지인 사탄의 종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본래 그런 존재가 아닌데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사람의 생각 속에 사탄에 그의 거짓말과 악한 생각을 넣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무릇 말은 영이요 생명이다.(요6:63) 말(생각, 사상)이 영이요 생명인 것은 그 말이 단지 공기를 울리는 소리가 아니라 말하는 자의 인격과 생명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탄의 말을 듣는 것은 사탄의 영을 받는 것이요 사탄의 생명을 취하는 것이다. 악령에 사로잡힌 자 곧 신접(神接)한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세상의 어느 누구도 알면서도 사탄을 믿거나 사탄을 자기 안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없다. 다 마귀를 싫어하고 욕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사탄의 종이 되고 마귀의 자녀가 되어 그가 기뻐하는 일들을 한다. 이것은 오직 사탄의 말을 들었기 때문에 되어진 일이다.
이것을 보면 사람은 단순한 존재이다. 사람의 삶 또한 단순하게 결정된다. 인생은 사람이 누구의 말을 듣느냐 하는 것에 의해 결정된다. 누구의 말을 듣느냐 하는 것이 사람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누구의 말을 듣느냐 하는 것은 결국 누구의 영을 받으며 누구의 생명을 받느냐 하는 것이다. 사람은 마귀의 말을 들으면 마귀의 자식이 되고 마귀의 종이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아들의 말씀을 듣는 것은 아들의 영을 받는 것이요 아들의 생명(영생)을 받는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교회 신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영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더 이상 마귀의 자녀나 마귀의 종이 아니며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종도 아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안다. 그것은 아들 안에는 아버지의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생명이 있으면 같은 마음이 생기며 같은 마음이 있으면 같은 말을 하고 같은 일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갈라디아교회 신자들은 마땅히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정상인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살지 않고 율법과 육신의 세계로 돌아가서 도로 종의 삶을 취하였다. 이것은 전혀 아버지의 마음과 같지 않은 마음을 품은 것이며 전혀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자처럼 아버지의 아들이 아닌 자처럼 엉뚱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왜 갈라디아교회 신자들은 이렇게 되었는가? 그것은 그들이 사탄에게 다시 속아서 자기의 회복된 위치, 구원받은 신분,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로 서 있는 복된 자리를 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참으로 약한 존재여서 진리를 깨닫고 그 안에서 자유와 기쁨을 누리다가도 금방 사탄에게 속아서 그것을 놓치고 도로 죄와 허무한 인생의 자리로 떨어져 헤매는 일이 허다하다. 이것은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사람은 사탄의 교묘한 거짓말에 금방 속는다. 우리가 잠시라도 주님에게서 눈을 놓치면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에서 사탄의 종으로 떨어지고 만다. 이것은 명분(이름)이나 신분이 그렇게 변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실제가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면 죄를 지어도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러나 죄를 짓는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께 무슨 소용이 있으며 무슨 영광과 기쁨이 되겠는가? 하나님은 그 자녀들이 속지 않고 당신의 목적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사람이 가장 잘 속는 부분은 자기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어서 자신이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부분이다. 마귀는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속여서 사람으로 결코 그 지위를 누리지 못하게 만들려고 한다. 우리는 단순히 내가 하나님을 아는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도 하나님을 알고 또한 하나님도 나를 아시는 세계에 와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아들이 되는 세계이고 또한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 되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는 세계이다. 이것을 바울은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신다는 말은 참으로 놀라운 말이다. 과연 하나님은 사람이 그를 알기 전에 먼저 사람을 아시고 그 안으로 부르셨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8:29)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롬11:2)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딤후2:19)
여기서 안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안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과 사람이 하나님의 아시는 바가 된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사람이 하나님의 아신 바 됨 없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종교적인 앎이다. 나 혼자 즉 내가 알고 싶은 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마음대로 아는 것이다.
본래 사람은 이런 세계 안에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그리스도 안으로 이끄사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생명 안에서 본질적으로 알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참으로 사람을 아신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의 자녀들을 돌아보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아는 이 앎은 사람을 겉으로 아는 피상적인 앎이 아니라 본질을 꿰뚫는 참된 앎(지식)이다. 하나님은 사람 또한 이렇게 하나님을 알도록 당신의 생명을 사람 안에 부으셨다. 이 생명대로 산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의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탄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람(신자)으로 하여금 자기 안에 이러한 생명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하도록 사람을 속인다.
구약 시대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없었으므로 결코 하나님을 참되게 알지 못했으며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참으로 알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의 영 안에서 하나님을 안다. 누가 우리를 가르치지 않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그의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발전하고 확대되어 어느 날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아시는 것처럼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13:12)
우리 생명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케 되는 날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며 우리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함께 있는 형제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온전히 알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마땅히 사랑할 대로 사랑하고 또 그와 같이 형제들을 마땅히 사랑할 대로 사랑하게 될 것이며 아울러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낮출 대로 낮추며 그에게 드리게 될 것이다.
이 일은 반드시 주님이 재림하신 후 곧 우리 몸이 영광스럽게 변화된 후에나 있을 일은 아니다. 주의 영이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있으며 그것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3:17,18)
 
다시 갈라디아서 본문으로 돌아가 보자. 여기서 바울은 갈라디아교회 형제들에게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고 말했다. 단순히 내가 하나님을 안다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안다고 인정하시는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 보통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자가 하나님의 깊은 속사정까지 다 아는 그런 지식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종의 마음이 아니라 아들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아들의 영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따라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그 뜻을 제 것으로 다 아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성경에 하신 모든 말씀이 먼 나라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고 내 말처럼 느껴지며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가'가 아니라 '너무도 당연한 말씀이구나' 하고 느껴지는 것이다.
사탄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속여서 그들로 하나님의 아들 됨을 누리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쓴다. 자기를 여전히 종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짐과 멍에로 받아들이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알게 되면 하나님이 누구이며 그의 마음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면 범사에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된다. 즉 하나님이 매사에 일일이 성경이나 혹은 다른 방식으로 자기에게 무슨 지시를 내리고 명령을 하고 말씀을 하시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생명이 자기 안에서 모든 것을 깨닫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만 가지를 일일이 다 가르쳐야만 사람이 갈 길을 알고 하나님을 따를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으로 세울 언약이 이것이니 내 법을 저희 생각에 두고 저희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저희에게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내게 백성이 되리라 또 각각 자기 나라 사람과 각각 자기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주를 알라 하지 아니할 것은 저희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히8:10,11) "너희는 주께 받은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2:27)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신 바가 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확증할 수 있는가? 기도의 응답을 통해서이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요일5:12-15)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와 교통하신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또한 그것을 행하도록 독려하신다. 우리는 이러한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다시 기도로 하나님께 아뢴다. 이러한 간구는 사람의 자의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가르치심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응답의 확신이 있다. 그러므로 응답이 오기 전에도 기도자의 마음에는 평안이 있고 기쁨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구한 것을 얻는다.
그리스도가 오시고 성령이 오시기 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런 식으로 가질 수 없었다. 그들은 어떤 일을 만났을 때 그 일이 과연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두려움과 염려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하나님이 그 일을 처리하신 후에야 안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 해결이 이루어진 후에도 사람들은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 알고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일이 과연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인지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 처리된 것인지 전혀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불확실성 속에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런 불확실성과 그로 말미암는 불안과 염려에 빠지지 않고 모든 일에 안식을 누릴 수 있다. 우리가 이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생명의 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지식, 이 생명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을 알게 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며 그의 계획에 대해 친구와 같이 아들과 같이 다 알고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내게 있어서 아직도 잘 되지 않는 일 중에 하나가 전화를 걸 때 상대방이 부재 중이어서 음성 메시지를 남기는 일이다. 그것은 혼자서 중얼거려야 하는 것인데 나는 그것이 너무도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아서 어떤 때에는 말을 횡설수설하다가 도저히 계속 할 수 없어서 중간에 끊어버리고는 "아 이거 곤란하게 되었구나 어떻게 다시 돌이키는 방법이 없나" 하고 고민한 적도 있다. 왜 이것이 이렇게 어색한 일이겠는가?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기도가 이런 식이라면 참으로 곤란한 일이다. 그것은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던 일이다. 즉 혼자 하나님 믿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를 안다고 하시지 않는데 나 혼자 하나님을 아는 척 하며 무엇인가를 계속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받았다고 하지 않는데 나는 열심히 드리고 있는 것이다.
자동응답기에 대놓고 혼자 말하는 것만큼이나 답답한 일 중의 하나가 상대방이 듣는지 안 듣는지 혹은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확신할 수 없는 가운데서 말씀을 전하거나 교제를 나누는 일이다. 교제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려면 내가 하는 말에 상대방이 대꾸를 하든지 어떤 방식으로든지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하고 반응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더라도 내 편에서 상대방이 내 말을 알아듣고 있다는 확신만 있다면 계속 말을 할 수 있다. 이런 확신은 내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으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나는 말을 계속 진행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화나 교제에는 반드시 반응이 있어야 한다. 내가 상대방을 안다고 하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상대방이 또한 나를 안다고 해야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와 교통할 아들로 지으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을 알아야 하며 그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밑바닥부터 아신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을 너무나 모른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셔서 사람으로 하나님을 알도록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은 성령 아래 있고 속으로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여기에 주의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다.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이 내면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육신의 말만 듣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영원히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육신의 말을 듣지 않고 영의 말을 듣는 습관을 익혀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싸움이다. 성령을 좇아 행하느냐 아니면 그냥 생겨먹은 대로, 몸에 익은 습관대로, 마음과 생각이 내키는 대로 사느냐 이 싸움인 것이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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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아신 바 됨 (갈4:7-9) / 2002. 8. 18 이상봉 2010.05.03 3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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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때가 차매 (갈4:1-5) / 2002. 8. 4 이상봉 2010.05.03 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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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아브라함의 복 (갈3:13-22) / 2002. 7. 21 이상봉 2010.05.03 4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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