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한일서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다’를 ‘사랑 안에 죄가 없다’로 바꾸어도 그것은 진리이다. 대부분 두려움이 욕심을 만들고 욕심이 죄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사랑 안에는 죄가 없다. 온전한 사랑이 죄를 내쫓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를 짓는 사람은 사랑을 온전히 체험하지 못한 것이다.”
비판과 정죄, 교훈과 훈계로는 사람을 살릴 수 없다. 오직 생명의 말씀 곧 사랑이 깃든 진리를 통해서만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면 죄를 깨닫고 버릴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위축과 저항, 자기 방어를 가져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죄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육체의 욕망)과 세상(사람으로부터 오는 사랑, 영광)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므로 버려야 한다. 그러나 버리고 싶다고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버릴 수 있어야 버린다. 하나님보다 세상이 좋으면 세상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좋아지는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느껴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을 알면 세상은 저절로 시시하게 된다.
죄와 허물을 드러내는 것(교훈과 책망)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진보하게 만들기도 한다. 듣는 순간에는 거부와 저항이 일어나지만 나중에 곰곰이 생각하는 동안 그 말이 영과 생명이 되어 사람을 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속에 생명의 여유가 있을 때만 그렇다. 그리고 생명의 여유는 비난과 정죄, 교훈과 책망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사랑과 용납을 통해서만 생긴다. 성령은 사랑의 영, 진리의 영, 위로와 감화의 영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하는 그 성령의 역사는 대개 (그가 사랑으로 감동시켜 놓은) 사랑의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범죄자를 교도소로 보내는 것은 처벌뿐 아니라 교도(矯導)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가르침과 훈련을 통해 죄를 청산하고 새 사람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교도소를 갔다 오면 죄를 청산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죄(죄 짓는 기술)를 배워 나온다. 죄를 뼈아프게 생각하고 반성하라고 벌(원치 않는 환경에 두고 억지로 일을 시킴)을 주는 것도, 죄를 버리고 선을 행하라고 가르치는 것(학습과 교훈)도 사람을 변화시키는데 별로 기여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작 도움이 되는 것은 보람 있는 일을 하거나 새로운 삶의 기회를 가졌을 때이다. 악기 연주단을 만들어 활동하거나 통신대학을 통해 공부하며 학위를 따거나 그들을 찾아온 좋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편지를 주고받으며 교제와 사랑의 재미를 맛보거나 불우한 이웃을 돕는 기회를 가질 때 그들은 이전의 삶에서 조금씩 벗어나 새 사람이 된다.
이것은 우리에게 죄는 생명의 결핍(두려움, 외로움, 가난함)에서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그러므로 훈계와 책망, 징계만 하는 부모에게서는 사랑스러운 자녀가 나오지 못한다. 생명의 여유(기쁨과 평화)를 가질 수 있게끔 사랑과 용납, 수고와 희생을 베풀고 그 위에서 진리를 (말이 아니라 삶으로) 가르치는 부모에게서만 선하고 진실한 자녀가 나올 수 있다.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방법, 사람을 죄와 육체(욕망)와 세상으로부터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방법은 율법과 정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주시는 것이다. 사람을 살리는 하나님의 유일한 방법은 인생의 결핍을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영원한 양식(그리스도)을 주어 배부르고 만족하게 하는 것이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3,4) 사람을 살게 하는 하나님의 새 방법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사랑과 안식의 사람(그리스도) 안으로 이끌어 안식케 하는 것이다. 이것을 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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