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과 그리스도를 영접함
요한복음 1장
8.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1:9-13)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聖子, 獨生子)이 사람으로 오신 분이다. 사람으로서 그의 외형은 가히 종(빌2:7)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작고 초라한(사53:2) 모습이었지만 그는 분명히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며 우주 만물의 주권자였다. 그가 이스라엘 땅에서 이스라엘인으로 태어나신 것은 하나님의 자녀(백성)가 되는 특권을 받은 이스라엘인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정작 그 땅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들의 구원자로 영접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극히 소수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고 영접하였는데 그러한 그들의 행동(영접, 믿음)은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이었기 때문도 아니고 그들이 받은 교육이나 그들이 처한 환경이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택하심에 의한 것이었다.
정상적이라면 하나님의 약속에 무지했던 이방인들보다는 약속을 기다렸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더욱 주님을 영접해야 했고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도 율법에 무지하고 가난한 민중들보다는 율법 지식이 많고 책임 있는 자리에 앉아 있던 유대교 지도자들이 더욱 주님을 영접했어야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는 특권 곧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는 사람의 형편에 달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택하심(은혜)에 달린 것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11:25-27)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6,17)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 곧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을 알아보고 영접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이다. 이는 진리를 알아보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며 하늘에 속한 보화를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것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오늘에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한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형제를 알아보고 영접하는 문제가 된다. 이것은 영 분별하는 문제 곧 성령을 받은 사람을 알아보느냐 하는 문제이다.
누가 성령의 사람,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가? 오직 같은 영을 받은 사람, 같은 생명을 소유한 사람이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2:11-13)
주 예수님이 세상에 계셨을 때 그를 알아보고 영접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들이었다.(눅2:25) 하나님의 영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사람을 그의 외모가 아니라 그의 생명을 따라 판단하며 취할 수 있도록 도우신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이러한 투시(透視)의 눈 곧 사람을 육체(외모)대로 보지 않고 그의 생명을 따라 판단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자의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신비적인 측면과 자연적인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예컨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건강을 주신다고 할 때 그 방법은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그의 질병을 즉각 고치시는 것이 될 수도 있지만 그로 하여금 규칙적인 생활과 좋은 음식을 취할 수 있는 여건, 절제의 능력 등을 주셔서 건강한 몸을 누리게 하실 수도 있다. 이 둘 중 하나님이 일반적으로 쓰시는 것은 자연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비적인 은혜만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는 사람을 알아보고 영접하거나 거절하는 (영 분별의) 문제에 이 원리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은 소위 ‘투시의 은사’ 같은 신비적 은혜를 받음으로써 얻게 될 수도 있지만 평소에 성령 안에서 사람을 판단하는 훈련 곧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그의 말과 행동에서 나타나는 생명(정신, 인격)을 하나님의 말씀과 비추어 분별하는 훈련을 거듭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경험적으로 볼 때 소위 투시의 은사 같은 것이 주어지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며 그것은 비상한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주어지는 예외적인 일임이 분명하다.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그 자녀들이 신비적 능력을 마음대로 구사하도록 허락하시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의 육체적 능력이 강화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이 약한 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히 나타나게 하시는 것이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7-9)
그러므로 평소에는 성령을 좇아 살지 않고 육체대로 사람을 판단하고 육체대로 모든 일을 하다가 어느 날 (필요가 있을 때) 갑자기 눈이 밝아져서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진리를 분별하며 참 형제들을 영접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주님 당시 유대인이 주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이 항상 사람(육체)의 영광을 추구하며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요5:4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요7:24)
육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육체의 영광이 없는 사람 곧 외모가 좋지 않은 사람은 (그 속에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결코 받아들이지 못한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한 것은 어떻게 보면 주 예수님이 자기를 초라한 육체 안에 감추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뚫고 속에 있는 보화를 챙길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누구라도 다 그때의 유대인들과 같이 행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의 영으로 행하지(살지) 않는 사람 곧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과 그의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그러므로 성령으로 살기를 힘써야 한다. 사람을 육체로 판단하지 않고 영으로 판단하는 이러한 능력은 어느 날 갑자기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일생동안 날마다 영으로 사는 법을 익히고 연습해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을 육체대로 판단하지 않고 그 생명대로 판단하는 것이 완전히 몸에 배이도록 해야 한다. 혈(血)과 육(肉)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주심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의 특징은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역시 혈과 육으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생명 여부로만 사람을 대한다는 것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
주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주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주님을 나의 生命으로 곧 나 자신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그의 길과 운명을 사람(나)의 진정한 길과 운명으로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람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았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유지되며 결국 그리스도께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삶의 방향을 그쪽으로 잡는 것이 바로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로 지음 받은 것이다. 그런데 사탄에게 속아서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할 자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아들 노릇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아들이 아니라고 해서 아들 노릇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들의 자리에서 떠나 있기 때문에 아들의 권세와 지위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무슨 엄청난 대가(代價)를 치르고 아들의 지위를 쟁취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가 아들임을 깨닫고 그 자리로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의 그런 본래 자리 곧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인생의 영광스러운 지위를 똑똑히 ‘보는’(깨닫는)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는 볼 수 없고 누군가 비춰주어야만 볼 수 있는 것이다. 누가 인류에게 이 빛을 비추는가? 바로 주 예수님이다. 그는 우리에게 인생이 무엇인지,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게 하신 빛이다.
주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주님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는 것뿐 아니라 그가 우리에게 비춘 빛 즉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을 위해 드려져야 할 존재’라는 사실을 또한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곧 그의 이름을 믿는 것이다. 그의 어떤 이름을 믿는다는 것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름이다. 주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사람이신 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또한 (그가 우리에게 알게 하신 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서 자기를 하나님의 목적에 드리는 것이다.
주님은 자기를 믿는 모든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이끄실 것이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12:32) 그는 어디로 우리를 이끄시는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의 이름 안에 답이 나와 있다. 주님은 지금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로 이끌고 계시며 그 결과 우리는 장차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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