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과 구원과 심판
요한복음 3장
20.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3:16-21)
니고데모를 비롯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구원관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은 구원하고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이방인은 심판하여 멸하신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이스라엘에게만 구원이 있고 세상은 죄인이므로 희망이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사람을 차별없이 사랑하시며 그들을 건져 하나님의 자녀로 삼기를 원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구원은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고 은혜로 얻는 것이다. 구원은 사람의 필요와 생각에 따라 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필요와 계획에 따라 얻는 것이다. 사람 가운데 구원 얻기에 적당한 훌륭한(경건한, 의로운) 자도 없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런 사람만 건지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당신의 계획에 따라 세상의 죄인들을 불러 건지고자 하신다.
그리스도가 오신 것은 이러한 하나님의 필요와 계획을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세상 가운데서 얼마간의 사람을 살려서 그의 아들로 삼으려 하는 것이다. 문제는 누가 그 대상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행위의 기준(자격)으로 보나 은혜의 기준으로 보나 세상 가운데서 오직 이스라엘 사람만 구원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교만하고 악하여 그동안 힘써 하나님의 의(구원, 언약)를 좇지 않았기 때문이다.(롬10:3)
도리어 하나님의 기준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준과 반대에 가깝다. 즉 세상에서 가장 구원받을 근거가 희박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불러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실 것이라는 것이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6-2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8,9)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세상(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세상 정신과 세상 길을 사랑하며 인정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를 사랑하며 아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8,9)
이것은 첫째, 하나님이 사람(아들)을 필요로 하시고, 둘째, 하나님이 그 필요로 인해 친히 ‘사람을 만드셨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되도록 즉 하나님의 아들이 되도록 지음 받은 영광스런 존재이다. 비록 마귀에게 속아 타락했다 하더라도 그 근본적인 효용(필요)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는 탕자가 더럽고 무가치한 자이지만 돌이켜 아버지 집으로 가는 순간 다시 아버지의 기쁨이 되는 소중한 자가 된 것과 같다. 우리는 항상 사람을 사람의 필요와 시각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필요와 시각으로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21.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 세상을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세상이 이미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 아래 놓여 있기 때문이다. 생명과를 버리고 선악과를 먹은 순간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의 길에서 떠난 것이다. 이것은 생명줄을 스스로 끊은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아기가 뱃속에서 탯줄을 스스로 끊고 독자적 생존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과 같다.
형식적인 논리로 보면 하나님은 아직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셨다. 이 심판은 세상 마지막 날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말하자면 세상은 이미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으며 확실하게 저주 아래 놓여 있다. 배가 파선하여 물이 배에 차오르면 그 배에 탄 사람들은 이미 심판과 저주 아래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죽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세상이 물(심판, 사망) 아래 놓여 있다고 말씀하신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3:3-7)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롬1:18) 그러므로 즉시 물(사망)에서 나오지 않으면 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세상은 지금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다. 여기서 구원은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이 부르실 때 즉각 세상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바로 이 일을 위해 오셨다. 그는 사람을 불러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구원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태로) 심판인 것이다.
그리스도는 어떤 물리적 장소로 사람을 불러 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으로 사람을 불러 건지시는 분이다. 구원의 자리는 바로 그리스도 안이다. 그의 인격과 생명, 그의 길과 진리, 이것이 바로 사람의 구원의 자리이다. 왜 그리스도가 사람의 구원의 자리인가? 사람의 실패와 저주와 멸망이 바로 사람이 그 자리를 벗어난데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자기를 드려 아들로 순종하는 자리이다. 이것이 사람이 지음 받은 본래 자리이며 사람이 생명과 평안을 누리는 유일한 자리이다. 이것이 탯줄을 달고 있는 자리이며 생명과를 먹는 자리이다.
결국 심판이란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신 그리스도(아들)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특별히 악한 일을 하거나 하나님을 특별히 대적해야 죄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죄고 심판인 것이다. 오늘에 있어서 ‘유일한 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오신 다음에는 세상에 수많은 죄가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가지 죄가 있을 따름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살 길을 거부하는 죄보다 더 큰 ‘죽을 죄’가 없다. 물에 빠진 자의 유일한 ‘심판 받을 죄’는 구명 보트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가 물 위에 있을 때 어떤 ‘죽을 죄’를 수없이 지었더라도 그것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고 생명의 구원(구명 보트)을 거절한 그것 때문에 죽는 것이다.
주님은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 분이 아니다. 그러나 결국 세상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심판과 멸망을 받을 것이다. 주님이 세상을 심판하고 정죄하는 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주님으로 말미암아 定罪되고 멸망된다면 그것은 그들이 자기 세계를 사랑하여 하나님이 건지고자 하는 그 빛의 세계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직 그것이다. 빛이 세상에 왔는데 어두움에 속한 자들이 어둠을 사랑하여 이 빛을 거부한 행위가 바로 하나님께서 문제삼으시고 심판하시고자 하는 유일한 죄이다. 주님은 결코 사람들이 과거에 범죄한 것을 문제삼으시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심으로 그 죄들을 용서해 주시려 하신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기들이 현재 머물고 있는 어두움의 세계를 사랑하여 계속 머물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리하여 주님이 인도하시는 빛의 세계를 거부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경험하지 못하고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빛을 거절하는 것은 빛이 비췰 때 자기들의 악함과 수치가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의 멸망이 그의 헛된 자존심과 교만 때문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 자기 뜻과 肉情을 따라 살기를 끝까지 고집하지만 않더라도 사람은 주님이 빛으로 자기에게 다가올 때 구원의 소망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스스로 잘못된 줄 알면서도 하나님 앞에서까지 헛된 자존심을 내세우는 바람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빛으로 나오지 못하므로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거절하는 까닭은 하나님의 시각에 따르면 그들이 어둠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들이 이미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자들이라는 증거이다.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2:9)
하나님은 마귀에게 사로잡혀 하나님의 길을 거절하는 인류에게 이미 심판을 선언하셨다. 그들은 거짓말을 좋아하며 진리를 싫어하며 사는 길 곧 하나님의 길을 힘들어하고 육체대로 행하다가 마침내 죽는 길을 좋아한다. 이러한 사람은 멸망 받기로 작정된 인류 가운데 들어 있는 것이다.
이들은 종교를 가지고 신앙 생활을 해도 꼭 이상하고 그릇된 신앙을 가지며 거짓된 마귀의 이적을 신봉하고 성령의 역사를 알아보지 못한다. 반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은 진리를 사랑하며 신령한 사람을 알아본다. 그들은 생명의 길을 알아보고 그리로 가기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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