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과 니고데모와의 대화 (1)
요한복음 3장
19.거듭나야 함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15)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고 율법선생이고 공회원이었다. 공회는 오늘날의 국회나 정부 기관과 같은 곳이지만 제정일치(祭政一致) 사회인 이스라엘에서는 종교적 의사 결정을 하는 곳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니고데모는 이스라엘의 정치 및 종교 지도자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주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선생’(3:10)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니고데모가 밤에 주님을 찾아왔다. 그가 밤에 주님을 찾아온 것은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것은 그때 유대 지도층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예수께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혹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하게 한다 하나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를 말하는 자가 없더라”(요7:12,13)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함이러라”(요9:22) “그러나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요12:42,43)
니고데모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다. 많은 관원들 중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고 그나마 드러나게 믿은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니고데모도 그러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나 결국 생명은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니고데모는 그의 마음과 입장을 끝까지 감출 수 없었고 결국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 그 중에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저희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상고하여 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하였더라”(요7:48-52)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沈香)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요19:39)
니고데모는 주님을 만났을 때 이렇게 말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이것은 그가 주님을 믿고 있다는 표시였다. 그는 나름대로 주님을 인정하며 높이는 말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들으신 주님은 대뜸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왜 주님은 이러한 대답을 하셨는가? 니고데모가 한 말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실상 즉 영적 무지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는 주님을 선생(랍비)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가 주님을 하늘에서 온 선생으로 인정한 이유가 그가 행하는 놀라운 이적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주님은 그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셨다. 니고데모의 생각이 온전치 못한 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주님은 지식을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라 사람을 구원하고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그리스도’이셨다. 그는 반드시 이것을 보아야만 했다. 만일 이것을 보았다면 그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5:8) 라고 말한 베드로처럼 또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 라고 말한 베드로처럼 주님의 그리스도이심을 인정하는 말을 했을 것이다.
둘째, 니고데모는 주님이 행하신 이적(異蹟)만 보았지 주님의 생명은 보지 못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람들에게 이적만 보이신 것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을 주셨고 그것을 통해 ‘살리는 영’을 사람들에게 보이셨다. 다만 이런 것은 육적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고 이적은 보이는 것이다. 니고데모가 주님을 찾아와서 주님의 권세를 말하면서 다만 이적만 말했다는 것은 그가 주님의 반(半)만 보았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주님은 그에게 사람의 죽음(생명 없음)과 생명을 얻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 말씀하시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나라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땅히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어야 했고 그들의 실상에 대해 깨닫고 있었어야 했다. 즉 자신이 영적으로 죽은 것과 자기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고 거듭나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니고데모를 비롯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은 필요하지만 그 구원은 물리적인 구원이고 세상적 생활적 구원이지 인간 자체의 구원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생명에 문제가 있고 영적 상태에 문제가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바리새인이요 율법선생인 니고데모는 세상 종교인을 대표하고 있다. 그는 모든 것이 지식과 노력으로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배우고 훈련하면 무엇이든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는 생명에 대한 인식이 없다. 영이 죽은 상태 곧 사람이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정신을 빼앗긴 상태에서는 지식과 훈련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으며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거듭나서 생명을 바꾸는 것과 배워서 지식을 얻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사람에게 드리워져 있는 근본적인 저주-마귀의 사망 권세-를 해결하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의 구원은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죽고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갈 자가 없다.
그렇다면 (사람으로서) 하늘에서 내려온 자가 누구인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죽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을 받음으로써) 하늘에서 내려온 자가 되어야 한다. 결국 주님이 말한 ‘하늘에서 내려온 자’란 죽고 거듭난 자이다. 주님은 이러한 사실 곧 하늘에서 온 자(죽고 부활한 자)만 하늘(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셨고 부활하여 승천하셨다.
니고데모는 하나님의 나라가 사람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라는 사실을 몰랐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만 사는 곳이다. 거기는 하나님의 정신(영)과 마음을 가진 자만 거할 수 있고 ‘사람(아담, 육)’은 거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는 사람은 반드시 그 본래 옷(아담의 생명)을 벗고 하늘로부터 온 새 옷(아들의 생명, 성령)을 입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영의 세계이므로 육적인 사람은 들어갈 수 없고 영적인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이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그들은 혈통과 지식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아무리 좋아도 어디까지나 육에 속한 것이다. 하늘에서 통하는 혈통은 그리스도의 혈통(생명) 뿐이며 하늘에서 통하는 지식은 오직 생명의 지식뿐이다.
하나님(율법)에 대해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생명의 지식이 아니라면 아무 소용도 없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을 속에서부터 ‘아버지로 아는’ 생명의 지식이 있어야 한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8:14-16)
하나님을 알되 속에서부터 제것으로 알아야 한다. 나이가 들면 부모의 마음을 알게 되듯이, 소녀가 성숙해지면서 여인의 마음을 가지게 되듯이, 아이가 자라서 사탕의 기쁨을 넘어 사랑의 기쁨을 추구하게 되듯이, 사람 속에 하나님의 생명(말씀, 정신)이 충만해짐으로써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그 심령을 제것으로 헤아리는 자가 될 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영적 지식이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자는 그 생명이 자라감에 따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는 참 아들(그리스도)이 되며 하나님을 자기 생명의 느낌으로 깊이 아는 자가 된다.
이스라엘은 오랜 세월 하나님을 배우고 체험해왔으므로 마땅히 하나님을 알았어야 했다. 그러나 니고데모와 이스라엘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몰랐으며 그 인격과 성품을 몰랐다. 그들은 여전히 육신에 속해 있었으며 땅에 소망을 두고 있었다. 그들과 이방인의 차이는 단지 그들의 육은 조금 선하고 조금 좋은 모양(교양)을 갖춘 육이고 이방인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선하고 그럴듯한 육이라도 육은 육일뿐이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고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니고데모와 이스라엘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생명에 대한 무지, 영적 감각이 없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이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그것은 치명적인 것이며 사람을 죽음과 멸망으로 인도하는 해독(害毒)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주님이 자기를 찾아온 니고데모를 반갑게 맞이하면서도 그를 책망하시며 진리로 일깨우신 것은 그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가 선한 일과 지식과 사람의 열심과 훈련만을 말하고 하나님의 생명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회가 니고데모 때의 이스라엘과 같은 영적 상태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세계는 교양이나 학습, 종교나 문화 활동을 하는 곳이 아니다. 여기는 죽고 부활하는 세계이며 생명의 능력을 경험하는 곳이다. 이것을 모르면 교회도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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