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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과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

이상봉 2010.05.04 14:58 조회 수 : 3626

제21과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

 

요한복음 4장
 

29.하늘의 열매를 추수함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4:35-38)


생명의 역사는 느린 것 같지만 빠르게 진행된다. 곡식이 자라 여물게 되는 것이나 죽은 사람(죄인)이 살아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나 다 한편으로는 느리게 한편으로는 빠르게 진행된다. 누구에게 느리고 누구에게 빠른가? 씨를 뿌려놓고 열매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모든 성장은 너무 느리다. 반대로, 익은 곡식을 거두어야 하는 추수꾼에게 모든 성장은 너무 빠르다.  


세례 요한에 이르기까지 구약의 하나님의 사람들(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소식(약속의 말씀)을 세상(이스라엘)에 뿌렸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씨, 복음의 씨를 뿌렸다. 그리고 때가 이르러 주님과 제자들은 그 말씀을 듣고 결실한 자들 곧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도록 작정된 자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말씀하신 추수이다. 아담부터 주님 오실 때까지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이 바로 이것을 기다렸다.  

 

여자의 후손 또는 메시아로 알려진 그 구원자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모하고 기다렸던가! 하나님의 약속은 참으로 긴 시간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성취되게 되었다. 주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는 세상에 널린 추수거리들을 보셨다. 죄와 고통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생명들,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하나님의 구원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이 그의 눈에 보인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구원)에 참여하도록 예정된 모든 사람은 때가 이르면 부르심을 받는다. 이들의 특징은 그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이다. 곤고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자들인 것이다. 비가 움푹 패인 곳에 고이듯이 하나님의 구원은 오직 낮은 곳에만 임한다. 십자가의 강도나 사마리아 여인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는 다른 소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들은 사실상 인생 자체가 끝난 사람들이었다. 주님은 이러한 자들을 즉시 거두셨다. 넉 달이나 기다려야 할 일이 아니라고 보신 것이다.  


주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그의 신부감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익은 곡식을 거둔다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받을 자를 모집하는 것이다. 스스로 부유하고 스스로 충분한 자를 모으는 것이 아니고 자기를 사랑해줄 자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자, 하나님의 사랑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를 모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자연히 ‘흑암에 앉은 백성들,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임하게 되는 것이다.(마4:16) 


그러나 이것은 단지 신부감을 모으는 것이고 신부를 취하여 결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진짜 추수(결실) 곧 주님이 신부를 취하여 영광스러운 혼인 잔치를 열게 되는 일은 주님의 재림 때 이루어질 것이다. 마지막 날 주님은 자기의 신부가 되도록 부르심 받은 자들을 취하여 영광스러운 연합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것이 진짜 추수이다. 그때 주님의 영접을 받게 될 사람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고난과 인내의 시간을 보내며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케 된 사람들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신부를 예비하셨다가 마지막 날 안겨주실 것이다. 

 

그 아들이 진리에 속한 자이므로 신부는 반드시 진리로 자유케 된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 아들이 영광과 존귀로 가득한 자이므로 신부도 하늘의 영광과 권세로 존귀케 된 사람들이어야 한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 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1-24) 하나님을 따라(닮아)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 이것이 바로 추수가 예정된 하나님의 곡식(목표 작물)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러한 당신의 마음을 알리셨다. 사람들은 아직 여유가 있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에게는 여유가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시급한 것이다. 오늘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의사가 넉 달 후에 혹은 사 일 후에 오시오 라고 한다면 그는 좋은 의사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할 일꾼은 주님의 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일꾼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추수할 곡식이 눈에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일이 눈에 보여야 일을 할 것이 아니겠는가! 전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죽어가는 영혼들이 눈에 보이고 그들을 속히 건지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구령(救靈)의 열정, 이것이 기본이다. 

 

문제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다를 경우이다. 뿌리는 자는 속히 거두고자 하는 열정을 틀림없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뿌린 자는 가고 거두는 자가 뒤에 왔다면 이는 마치 계모와 같아서 영혼의 성장에 대한 열정을 그다지 가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는 우리에게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하나라고 말씀하신다. 그 까닭은 뿌리는 자도 하나님 안에서 뿌렸고 거두는 자도 하나님 안에서 거두기 때문이다.  


생명의 씨를 뿌린 자는 어디서 그 결실을 거두는가? 구약의 선지자들은 무엇을 기대하고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파하며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전파했는가? 백성들이 그것을 믿고 받아들여서 구원받는 모습을 다 보게 될 것을 기대하고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와 칭찬을 기대하고 그 일을 한 것이다.  


또 주님의 제자들이나 오늘 우리는 어떤 이유로 사람들을 급히 모으고자 하는가?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우리의 살과 뼈(갈비뼈)를 챙기도록 촉구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밖에서 누가 하라고 촉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우리 생명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몸을 이룰 지체들을 신속하게 모아야 할 생명의 필요가 있다. 이것이 우리로 추수할 곡식들(구원 받을 자들)을 거두러 다니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뿌렸느냐 누가 낳았느냐 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리고 하나님이) 그를 생명 안에서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으며 그는 지금 살아나서 내게로 와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뿌리는 자들에게 즉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도 교훈을 준다. 즉 뿌리는 자는 반드시 내가 뿌린 것을 내가 거두어야 한다고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지체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몸 안에서 하는 것이다. 지체가 단위가 아니라 몸이 단위이다. 그러므로 모든 일은 지체 자체의 생각과 느낌대로 이루어져서는 안 되고 반드시 몸(머리)의 생명이 지시하는 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30.전도자의 역할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거하므로 그 동리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요한복음 4:39-42) 


사마리아 수가 동네 사람들은 사마리아 여자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와 몇 일을 함께 있으면서 그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그들은 자기들에게 주님을 소개한 사마리아 여자에게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당신의 말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서 친히 말씀을 듣고 그의 참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이것은 사람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과정을 우리에게 잘 보여준다.  

 

전도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믿는 것은 하나님이 그 속에서 생명의 역사를 진행하심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10:14,15)  

 

그러므로 이 두 역사가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없으면 믿는 것도 없다. 그러나 전도로 모든 것이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성령께서 사람 안에서 역사하실 것을 구하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의 말과 노력으로 모든 것을 다 이루려고 할 것이 아니고 시간(인내)과 함께 성령의 역사를 사모해야 한다.  


전도에 있어서 사람의 역할과 기능은 단지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 우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사람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성령만 하실 수 있는 일을 사람이 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성령께 미루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말로 모든 것을 다 이루려고 해서는 안 된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1-5) 


많은 경우에 우리에게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때로는 깊이 개입해야 하지만 때로는 조용히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 바울은 이러한 면에서 우리에게 좋은 본이 된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내가 내 영혼을 두고 하나님을 불러 증거하시게 하노니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고전1:21-24) 그의 입장은 형제들의 믿음을 주관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요 오직 그들의 믿음을 돕는 자가 되고자 한 것이었다. 이것이 뿌리는 자와 추수하는 자가 반드시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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