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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과 니고데모와의 대화 (2)

이상봉 2010.05.04 14:41 조회 수 : 3490

제14과 니고데모와의 대화 (2)

 

요한복음 3장
 

20.물과 성령으로 거듭남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15) 


주님께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니고데모는 사람이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느냐(다시 태어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사람은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는가? 니고데모는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것이 거듭나는 것인 줄로 생각했다. 그러나 거듭난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은 백 번을 거듭나더라도 똑 같다. 역사가 반복되는 것은 후대 사람들이 이전 사람들의 일에 만족하여 그대로 행하고자 했기 때문이 아니며 후대 사람들이 이전보다 나은 삶을 살려고 하는 뜻이 없어서도 아니다. 

 

그들은 결코 이전 잘못과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람이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손자는 할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아니요 (어떤 의미에서 두 번 거듭난) 다른 사람이지만 그가 할아버지의 자리에 가면 똑 같은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생명이 같기 때문이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이것은 몇 번을 고쳐서 거듭 되더라도 마찬가지다.  


거듭나는 것의 실체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영)을 받아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살아나는 것이다. 육신에 어떤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과 생각에 어떤 변화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육신의 문제가 아니라 영의 문제고 정신의 문제다. 거듭난다는 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려면 하나님의 영(말씀, 정신)을 받아야 한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11,12)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일에 대해 반응하는 존재가 되려면 말씀과 성령이 필요하다. 이 두 요소 곧 ‘말씀’과 ‘성령’을 주님은 ‘물’과 ‘성령’ 이라고 표현하셨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왜 말씀을 물이라고 표현하셨는가? 말씀이 사람을 씻어 새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아예 이 두 가지를 하나로 엮어서 말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5:26,27) 


결국 거듭난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영(정신)을 받음으로써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과 마음을 헤아리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 그는 거듭난 것이며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게 되면 그는 거듭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거듭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생명의 말씀(빛, 계시)이다. 주님의 제자들이 거듭나서 하늘에 속한 사람들이 된 것은 그들이 주님으로부터 생명의 말씀(살리는 말씀, 살아 있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유대인들이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 하나님께 대해 죽어 있었던 것은 그들이 생명의 말씀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고 주님이 오셨을 때도 여전히 죽은 채로 있었던 것은 그들의 관심이 다른 데 있어서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말씀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요6:26, 27)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5:40-44)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적으로 없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지 못했다. 그들이 하늘에 속한 삶을 소망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바랐으며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그것을 만나지 못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구원을 베풀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이 육신에 속한 자 곧 하나님께 대해 완전히 죽어 있는 자였기 때문이다. 말씀이 없으면 누구나 이러하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그들이 물(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자 즉 영에 속한 자가 아니라 육에 속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오직 신령한 사람만 신령한 것을 알아본다.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3,14)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말씀(영, 정신)을 받은 사람이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그러므로 성령의 일을 받아내지(감지하지) 못하는 사람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육신적인 사람 곧 모든 것을 눈에 보이는 대로 느끼고 반응하는 사람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영의 세계를 느끼고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보는 것으로 행하는 사람이 아니요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세계는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명백히 실재한다. 바람(공기)이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듯이 영의 세계도 그러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공기)의 존재를 느끼는 것은 그 흐름 때문이다. 육신적인 사람은 성령으로 행하는 사람(삶) 곧 영적인 사람(삶)을 위험하고 종잡을 수 없는 사람(삶)처럼 생각한다. 그것은 그러한 사람이 인간의 상식이나 육신의 보편적 감각대로 행하지 않고 다른 원리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사람(육신)의 감각대로 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종잡을 수 없이 마구잡이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사람의 감각보다 더 뛰어나고 정밀한 하나님의 감각대로 행하고 있는 것이다. 바람이 이리 저리 불 때 사람들은 그것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 같이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공기의 온도 차이에 따라 일정하고 규칙적인 흐름을 보이는 것이다. 성령으로 행하는 사람도 이와 같다.  


거듭난 자란 육신의 감각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감각(영의 인도)을 따르는 자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는 주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진 자 곧 하나님을 아는 체 하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하나님을 부르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다. 영이 살아 있고 영의 인도를 따라 행하는 그가 바로 하나님과 함께 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3,14) 


아담에게서 난 것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하나님은 왜 아담을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가? 아담(육신)은 죄로 인해 죽어서 살아계신 하나님과 자리를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래서 난 것은 절대로 위에서 살 수 없으며 위에서 난 자와 자리를 함께 할 수 없다. 유대인들이 수백 년간 말씀을 들어도 새롭게 되지 못하고 여전히 육신적인 사람으로 남게 되었을 때 그들의 미래는 정해진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요7:33,34)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저가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저가 자결하려는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요8:21-24)  


약속된 구원자가 왔지만 이스라엘은 그를 받아내지 못했다. 그것은 그들이 여전히 ‘아래서 난 자’로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아래서 났다’는 이것이 바로 결정적인 멸망 요소이다. 아래서 난 자 곧 육신에 속한 자는 이 세상에 속할 수밖에 없고, 이 세상에 속한 자는 하늘에 속한 것을 받아내지 못하며 마침내 세상이 망할 때에 함께 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생명이 결정한다. 하늘에 속한 생명은 하늘 나라(天國)를 원하고 땅에 속한 생명은 세상을 원한다. 영에 속한 자는 신령한 세계를 육에 속한 자는 세상을 원하는 것이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오직 각자의 생명대로 정해진 길로 가는 것이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5-8)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5:16-21) 


그러므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나무에 달려 저주를 받았고 우리를 위해 거듭나서 하늘에 올라가셨다. 그를 알면 알수록 물로 씻기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될 것이며 그를 알면 알수록 영이 살아나서 하나님의 세계에 깊이 참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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