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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과 아버지를 따라 일함

이상봉 2010.05.04 15:00 조회 수 : 2774

제22과 아버지를 따라 일함

 

요한복음 5장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날은 안식일이니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5:1-18) 


31.하나님과 그의 말씀(율법:안식일)을 모름
 

주님은 명절을 맞이하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전국의 유대인들이 반드시 참석하여야 하는 유대인의 명절은 유월절(요6:4)과 오순절(행2:1)과 장막절(초막절, 요7:2)이었다. 예루살렘에 계실 동안에 주님은 오랜 질병으로 고통 당하는 한 사람을 성전 곁 베데스다 못가에서 고쳐주셨다. 그런데 마침 그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일한다고 주님을 비난하였다. 주님은 자기를 비난하는 자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오늘도 일하시니 나도 오늘 일한다’고 하시며 그 비난에 반박하셨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거나 병 고침을 받는 것은 사실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며 오히려 안식일의 성격에 맞는 일이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막2:27)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안식일을 주신 것은 사람으로 그 날에 (죄와 고통 그리고 욕심과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삶에서 놓여) 쉼과 자유를 누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모든 고통과 질병은 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앙과 욕심 이 두 가지에서 오는 것이다.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4,15) 안식일은 사람이 이러한 불신앙과 그에 따른 헛된 몸부림에서 놓여 사람으로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라고 하나님이 만들어놓으신 장치이다.  


주님 당시에 이스라엘에 그렇게 많은 병자들이 있고 심지어 귀신들린 자들까지 많았던 것은 이스라엘이 안식하지 못하는 나라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들이 그렇게 안식하지 못하는 지경에 놓이게 되었던 것은 그들이 불신앙과 죄(탐욕)로 하나님을 거스르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식일을 안 지켜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안식일을 주신 하나님과 그의 구원을 몰랐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이스라엘이 고통 가운데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죄 때문이었다. 죄가 있는 한 안식과 평강(平康)은 없다. 죄는 무엇이며 어디서 오는가? 이스라엘의 가장 큰 죄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한 불쌍한 형제가 오랜 질병과 고통에서 놓임 받고 안식과 자유를 누리게 되었을 때 축하하고 감사하는 대신 그를 비난하고 정죄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몰랐으며 하나님이 율법을 통해 그들에게 요구하신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마12:7) “나는 인애(仁愛)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6:6) 


안식일은 일을 중단하고 쉬도록 한 날이다. 그러나 일만 사람을 안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일보다 더 사람을 안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죄와 고통이다. 즉 사람이 서로 미워하고 다투며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사람으로 안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다. 미워하고 괴롭히는데 어떻게 안식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왜 서로 미워하고 다투는가? 그것은 사람이 사탄에게 속아서 그렇게 해야 ‘살 수 있다’고 착각해서 그런 것이다. 사람 안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포용할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것은 그가 다른 사람과 ‘생존 경쟁’을 하기 때문이다. 경쟁이라는 이것이 바로 사람을 옭아매는 사탄의 가장 큰 올무이다.  


사람은 무엇 때문에 경쟁하는가? 내가 살려면 저 사람이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경쟁이란 한 물건을 놓고 두 사람이 겨루는 것이다. 내가 먹으려면 저 사람이 굶어야 하고 내가 높아지려면 저 사람이 낮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투고 경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고 속은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하나님의 창고에는 온 세상 사람이 다 가져다 써도 모자람이 없는 풍성(豊盛)이 있다. 마귀는 이것을 보지 못하고 오직 눈앞에 놓인 물질만 보도록 사람을 속인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생활을 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풍성이 어떠한지를 체험토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메마른 광야에서 그의 백성들이 (다투지 않고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늘로부터 만나를 내려 주셨다.  


사람이 이러한 하나님의 풍성을 알면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다. 또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죄를 지을 필요도 없고 죄를 짓지 않으면 질병과 고통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순서대로 정열하면 이렇다. ①불신앙 → ②욕심 → ③죄(경쟁하고 미워함) → ④질병과 고통(안식 없음) 


이런 이유 때문에 주님은 자기가 고쳐주신 사람에게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물론 각각의 질병과 고통이 다 각각의 죄와 불순종과 직접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체적으로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사람을 고통과 저주로 몰아넣는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모르는 것과 하나님의 길에서 떠나 자기대로 행하는 것이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호6:5,6) 여기서 말하는 아담의 죄, 이것이 바로 사람의 궁극적인 죄다. 그것이 무엇인가? 불신앙과 무지와 교만이다.  


여기서 말하는 교만은 무슨 교만인가?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생각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음 받은 존재가 자기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어리석은 생각이 바로 가장 큰 교만이고 가장 큰 죄다. 그러므로 하나님 알기를 힘써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3) 이스라엘은 만일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왜 안식일과 기타 율법들과 말씀들을 주셨는지 알았다면 그들은 안식일에 일한다고 주님을 비난하지 않았을 것이다.(마12:7) 


32.주님의 일의 원칙 - 아버지의 원대로, 아버지의 일을 따라서
 

주님의 모든 행동의 원칙은 오직 하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이다. 주님은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이 사람들의 습관(전통)이나 관념(생각)에 맞는지를 주의하시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시는가 하는 것과 하나님이 자기를 그리로 인도하셨는가 하는 것에만 주의하셨다.  


안식일에 사람이 생각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이 그 날에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가 하는 것이다. 안식일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사람에게 생명을 주고 더 풍성히 누리게 하는 것이다. 주님은 하나님의 이러한 마음을 따라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을 정죄하거나 심판하기보다는 생명을 주어 살게 하기를 힘썼다.  


안식일에 일하지 말고 쉬어야 한다는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안식하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뜻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과 거기에 따른 모든 규정은 사람을 제한하고 죽이려고 내신 것이 아니라 살게 하려고 주신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 대부분의 율법은 사람을 정죄하는 도구로 쓰였다. 안식일 역시 그러한 이유로 사람을 묶어 두고 규제하는 날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을 안식하게 하려고 만들어 놓은 날이 사람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그러나 주님이 오셔서 사람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베풀고 죄와 고통을 치료하셨을 때 안식일은 진정으로 사람을 안식케 하는 날이 되었다. 주님이 안식일에 38년 동안이나 죄와 질병에 묶여 고통 당하던 죄인을 치료하여 안식케 하신 것은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뜻을 가장 충실히 받든 것이다. 안식일에 일을 하고 안 하는 것보다 더 큰 중요한 것은 사람을 살리고 안식케 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의 자녀들이 안식일에조차 죄와 질병에서 놓임 받지 못하고 고통을 당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아들은 이러한 아버지의 소원과 일하심을 따라서 안식일에 일을 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인 우리의 길이다. 아들은 어디까지나 아버지를 따라 가는 것이다. 아버지를 따르는 것, 그것이 바로 아들의 길이다. 아들의 할 일은 아버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살피며 아버지가 지금 일하고자 하는지 쉬고자 하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높이는 가장 실제적인 길이다. “내가 이르노니 성령을 좇아 행하라”(갈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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