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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과 주님의 큰 기도 (3)

이상봉 2010.05.05 14:18 조회 수 : 4560

제66과 주님의 큰 기도 (3) 

 

요한복음 17장
 

120.아들의 일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17:4)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땅에 있는 아들에게 하라고 요구한 일은 무엇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4:34,35)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은 추수(하나님의 구원)를 기다리는 곡식(사람)들을 거두는 것이다. 주님의 일은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는 것이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living soul)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life-giving spirit, 생명 주는 자)이 되었나니”(고전15:45)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요5:17-21)
 

이 말씀들은 주님의 일이 사람을 살리며 그 생명을 온전케 하고 풍성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주님의 일은 그것 외에 다른 것도 있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5:22-30)


여기서 말하는 주님의 일은 심판이다. 이것은 적극적으로 한 일은 아니고 다만 주님의 주된 사역(구원 사역)에서 파생된 것이다.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요12: 47,48)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요5:45)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7,18)

 

이 말씀들은 주님이 적극적으로 세상 죄인들을 정죄(고소)하거나 심판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세상이 그리스도의 구원을 거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심판(저주, 멸망)에 처하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일은 세상을 구원하고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다. 주님은 그의 구원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마지막 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서 우리가 이렇게 되었다는) 핑계를 대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사람들을 사랑하셨으며 그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증거하셨다.

 
주님이 하신 이러한 일은 곧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사람이 해야 할 일 곧 하나님이 그 자녀들에게 요구하시는 본질적인 사역(삶)은 어디까지나 사람을 사랑하며 영혼을 살리는 것이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살아야(살아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살려면 생명의 원천이신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잡아야 한다. 그 안에서 삶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안식과 만족과 기쁨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체험해야 한다. 그렇게 확실하게 살아서, 또 다른 사람들에게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인간이 무엇인지, 살아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빛을 비출 때 우리는 두 가지 사역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보여주며 그의 구원을 전할 때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는 구원을 얻는 것이고 거부하면 심판 가운데 영원히 머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역도 저절로 두 가지가 된다. 우리는 한 가지 일을 하는데 결과는 구원과 심판 두 가지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과가 없다고, 사람들이 우리의 말을 듣지 않고 우리를 대적한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가 없다. 그것도 사역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일을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수도 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하라고 주신 일은 제자들을 부르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그들을 통해서 다시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주님의 일생은 이 목적을 위해 바쳐졌다. 즉 주님의 일은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서 거룩히 여김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임하고 하나님의 모든 뜻이 땅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었다.   


주님은 이 일을 제자들에게서부터 시작하셨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주님은 처음부터 세상과는 상관이 없었다. 그가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도 사실이고 세상(사람들)을 사랑하신 것도 사실이지만 주님의 사역(일)은 세상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다. 주님은 오직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사역하셨을 뿐이다. 주님은 본래 세상 일에는 관심이 없는 분이다. 우리도 그렇다. 우리의 관심은 하늘에 있고 아버지께 있고 아버지의 뜻(아들의 나라를 세우는 것)에만 있다. 주님은 사람을 사랑하셨고 사람들을 구원하셨지만 그의 최종적인 관심은 사람에게 있지 않았으며 사람 자신을 위해 그런 일을 하신 것도 아니다. 그의 최종적인 관심은 어디까지나 오직 아버지(하나님)를 어떻게 영화롭게 하느냐 하는 데 있었다. 


그래서 주님은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다 구원하려고 하지 않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그의 영광을 위해, 그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아들에게 주신 자들을 불러모으는 일을 하셨다. 주님은 오직 자기가 택하시고 기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 또 실제로 그들만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나아와서 주님 안에 거했다. 주님은 그러한 사람들을 데리고 사랑하며 온전케 하셨다. 


우리의 관심사도 이와 같다. 우리의 궁극적 관심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 사람을 건지는 일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주님은 그것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고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최종적이고 궁극적이고 목적은 아니다. 그 모든 일은 하나님의 통치가 땅에서 다시 회복되도록 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물론 사람은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받으며 하나님의 목적이 된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이 말씀은 주님의 사역의 방향이 오직 택함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자들에게 집중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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