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과 성경의 증거를 받는 삶
요한복음 19장
139.유대인의 왕
로마총독 빌라도는 예수를 사형시키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로 애를 썼지만 유대인들의 집요한 요구에 굴복하여 결국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어주고 말았다. 주님은 다른 두 사람의 사형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렸는데 그의 십자가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가 붙여졌다. 이 명패는 죄수의 이름을 써 붙인 명패가 아니라 죄수의 죄목(罪目)을 써 붙인 명패이므로 주님의 죄는 그가 유대인의 왕이었기 때문이라는 셈이 된다. 빌라도가 주님의 명패에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자 유대의 대제사장들은 그렇게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써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빌라도는 그대로 유대인의 왕이라고 써서 붙였다.
주님이 달린 십자가에 붙은 이 유대인의 왕이라는 글은 히브리말 뿐 아니라 로마와 헬라말로도 기록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간섭에 의한 것이다. 온 세상이 다 이 유대인의 왕의 죽음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실은 유대인의 왕이 유대인의 집요한 요구에 의해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이다. 요한은 일찍이 이러한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요1:9-11)
이것은 비단(非但) 유대인만의 행위가 아니라 온 세상의 행위이다. 왜 죄도 없는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배척을 받고 죽어야 했는가? 그가 바로 왕이었기 때문이다. 왕이 왜 배척을 받으며 왕이 왜 죽어야 하는가? 왕은 왕인데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는 인간 왕, 세상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참된 통치를 펼치려는 진짜 왕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예수가 세상에서 배척 당하고 죽어야 했던 것은 사람들이 왕 즉 하나님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왕이 아니라 왕의 능력 즉 그들의 소원을 이루어주고 그들의 정욕을 만족시켜주는 것 한 가지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한편으로 간절히 왕을 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철저히 거부하며 배격한다. 그들의 구미에 맞는 왕은 사모하지만 조금이라도 그들의 (육신적) 욕망을 제한하고 의와 진리의 길로 이끌고자 하는 진짜 왕이 그들을 다스리려고 하면 철저히 거부하고 저항하는 것이다.
출애굽 후 사무엘 선지자 때까지 400년 동안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다. 주변 다른 나라에는 다 왕이 있었지만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친히 그들의 왕이 되셔서 그들을 다스리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을 듣지 않았고 그 결과 나라는 항상 외부의 침략에 시달려야 했다. 이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도 다른 나라 사람들과 같이 왕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사무엘에게 그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 사울이 왕으로 세워졌다. 그러나 당연히 사울은 하나님보다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까지 거기(인간 왕)에 매달렸다. 그들이 원한 것은 육체의 욕망을 이루어 줄 왕이었기 때문이다. 빌라도는 그가 써 붙인 죄패를 통해 자기도 모르게 이러한 사실을 유대인들과 온 세상에 잘 선포했다. 인간은 결코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하며 제대로 다스릴 진짜 왕을 원치 않는다고!
140.그리스도에 대한 예언들이 이루어짐
주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로마 군병들은 그의 옷을 제비뽑아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주님이 목이 마르다고 말했을 때 군병들은 우슬초에 매단 해융에 신포도주를 적셔서 주님께 마시도록 했다. 그리고 주님을 포함하여 십자가에 매달린 자들이 죽었을 때 군병들은 그들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다리뼈를 꺾고자 했다. 그런데 주님 곁의 두 사람의 다리뼈는 꺾였지만 주님의 뼈는 꺾이지 않았다. 그가 죽은 것이 확실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신 그들은 주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보았다. 나중에 주님은 부자인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무덤에 묻혔다.
지금 열거한 이 사실들은 모두 요한이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증거한 내용들이다. 그는 이러한 일들이 다 성경(예언)을 응하게(성취하게) 하기 위해 일어난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요19:23)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시22:17,18)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고 의뢰하였으므로 저희를 건지셨나이다 저희가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치 아니하였나이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이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저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저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모친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내 하나님이 되셨사오니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깝고 도울 자 없나이다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렀으며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고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시22:1-18)
이 시는 다윗이 자신의 고난 중에서 그리스도가 당하실 고난에 대해 예언한 시이다.
“이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려 하사 가라사대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요19:28-30)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시69:21)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내가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내 목이 마르며 내 하나님을 바람으로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무고히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내 머리털보다 많고 무리히 내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취치 아니한 것도 물어주게 되었나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우매함을 아시오니 내 죄가 주의 앞에서 숨김이 없나이다 만군의 주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로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로 나를 인하여 욕을 당케 마옵소서 내가 주를 위하여 훼방을 받았사오니 수치가 내 얼굴에 덮였나이다 내가 내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내 모친의 자녀에게는 외인이 되었나이다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내가 곡하고 금식함으로 내 영혼을 경계하였더니 그것이 도리어 나의 욕이 되었으며 내가 굵은 베로 내 옷을 삼았더니 내가 저희의 말거리가 되었나이다 성문에 앉은 자가 나를 말하며 취한 무리가 나를 가져 노래하나이다”(시69:1-12)
이 시 역시 다윗이 고난 중에서 그리스도를 말한 시다.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또 다른 성경에 저희가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요19:33-37)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그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시34:19,20)
이 시는 다윗이 블레셋 왕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체 하다가 쫓겨난 후 지은 시이다.
그리스도의 뼈가 꺾이지 않도록 보호된 것은 그의 부활을 염두에 둔 조치이다. 뼈의 보존은 부활을 상징한다. 살은 썩어 없어지지만 뼈는 썩지 않기 때문이다.(물론 물리적으로는 뼈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사라진다.) 이와 같이 주님이 죽은 후에 창에 찔려 살은 찢어졌을지라도 뼈는 꺾이지 않은 것은 그가 죽은 후에 (그 속에 있는 부활 생명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요19:1,34)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슥12:10)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 주라 분부하거늘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마27:57-60)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사53: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이왕에는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 무리가 그를 보고 놀랐거니와 후에는 그가 열방을 놀랠 것이며 열왕은 그를 인하여 입을 봉하리니 이는 그들이 아직 전파되지 않은 것을 볼 것이요 아직 듣지 못한 것을 깨달을 것임이라 하시니라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사52:13-53:12)
이 예언은 이사야가 그의 고난과 계시 중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과 받으실 고난에 대해 예언한 것이다.
이런 여러 증거처럼 주님의 삶은 모든 면에서 성경의 증거를 받은 삶 즉 성경을 응(應)하게 한 삶이었다.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있는 성경(기록)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에 대해 기록한(예언한) 성경이라고 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할 부분은 당연히 구약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메시아)에 관한 예언들이다.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성취된 구약의 예언은 332개나 된다고 한다. 그 중 주님의 죽음과 관련된 예언으로서 대표적인 것들은 이사야 53장이나 시편 22편, 34편, 69편 등 요한복음에서 인용된 말씀들이다.
이러한 예언 중 일부는 성경 저자들이 환상이나 어떤 방법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를 직접 기록한 것이지만 상당수는 하나님께 순종하던 성경 저자들(구약의 신앙 인물들) 자신의 간증이나 고백에서 나온 것이다. 즉 구약에 나오는 그리스도에 대한 많은 예언은 다윗이나 이사야처럼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신의 삶을 서술하는 가운데서 나온 것들이다. 그들은 미래에 있을 어떤 사람의 삶과 고난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의 삶과 고난을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리스도의 삶과 고난과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그렇게 생생하고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들 자신이 하나님께 순종함으로써 그 시대에 ‘의로 인해 십자가를 졌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악인들이 득세하는 시대에 이들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님이 자기 시대에 고난을 겪은 것처럼 많은 고난을 겪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각자의 시대에 중보(仲保)의 십자가를 졌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의 길을 걸었으므로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 분명하게 묘사할 수 있었고 자신이 십자가를 졌으므로 십자가의 고통에 대해 그토록 생생하게 예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성경에는 저자 자신들의 경험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그리스도를 증거한 예언도 많다. 그러나 그리스도에 대한 다수의 예언은 오실 그리스도 안으로(그리스도의 영 안으로) 미리 이끌림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살아 있는 경험을 통해 기록된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모든 삶이 그리스도에 대해 기록해 놓은 성경의 증거를 받았다는 것은 그가 참으로 그리스도(하나님의 아들)였다는 사실을 역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주 예수님이 성경의 증거를 받았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인인) 우리 또한 성경의 증거를 받는 삶을 살게 될 것이며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에서 어떤 대접을 받을 것이며 결국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일반적인 원리를 제시한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걸어가게 될 길은 어떤 길인가?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아들은 ‘사람을 사랑하며 남을 위해 수고와 희생을 아끼지 않는 삶’을 살 것이며 마침내 ‘십자가를 지고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처럼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목숨을 주기까지 해도 도리어 자기가 사랑한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거부를 당하며 오직 하나님께만 인정을 받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또한 성경은 우리가 ‘어린 양처럼 약하나 자신을 하나님과 사람을 위한 제물로 바침으로 그 어떤 强者라도 할 수 없는 큰 일을 하게 될 것이며 이로써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라고 말해준다.(사52:13-15)
그리스도에 대한 이러한 기록은 일차적으로는 주 예수님께 적용되는 예언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예언이다. 각각의 그리스도인들이 처한 삶의 여건은 다를지라도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본질적인 길은 같다. 우리의 길은 주 예수님에게서 나타난 바와 같이 ‘하나님을 드러내는 아들의 길’이며 (육신에게는) ‘십자가의 길’ 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우리는 범사에 주님과 같이 이 (그리스도에 대해 기록한) 성경의 증거를 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성경은 결국 ‘한 사람’을 증거하고 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표현된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는 하나님이 처음 지으신 바로 그 사람 곧 정상적인 사람이며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 바로 그 사람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얻고자 하신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생명으로 삼는 사람, 우주 가운데서 하나님을 온전히 나타낼 이러한 아들들을 얻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다. 하나님의 뜻은 그의 영원하신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수많은 아들들을 얻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다 이러한 사람들이 말한 것이며 이러한 사람들이 이러한 인생에 대해 말한 것이다.
주님은 성경(구약 예언)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구약의 지지만 받을 것이 아니라 성경보다 더 확실하게 하나님의 아들의 삶을 나타낸 ‘주님 자신’으로부터 지지를 받아야 한다. 우리가 오늘 주님의 길을 따라 걷는다면 우리의 삶은 주님으로부터 증거와 지지를 받는 삶이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주님뿐 아니라 주님의 생명을 받은 신실한 형제들의 증거를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바울이나 베드로, 요한 같은 사람이 바로 그들이다. 사실 신약성경의 많은 부분들은 바울을 비롯한 여러 충성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따라 산 자기의 삶을 고백한 것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 연약한 죄인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놀랍게 쓰일 수 있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 삶이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그리스도 안에 기록된 대로 살다간 형제들’의 고백(신약성경의 기록)과 일치하는 삶의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인정을 받고 어떤 증거를 받느냐 하는 것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으로부터 확실하게 증거를 받느냐 하는 것에 있다. 이렇게 우리가 성경의 증거를 받는 삶을 살려면 우리는 먼저 주님을 깊이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서 그 속에서 우리 길과 운명이 발견되어져야 한다. 또한 성경을 깊이 상고하며 거기에 나타나 있는 앞서 간 형제들의 간증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런 후에 그들의 길과 고백이 또한 우리 자신의 길과 고백이 되도록 우리 자신을 동일하게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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