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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과 물과 피

이상봉 2010.05.05 14:51 조회 수 : 4885

제78과 물과 피

 

요한복음 19장
 

141.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하는 물과 피
 

“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요19:31-34) 


여기서 요한은 주님의 죽음과 관련된 두 가지 특징적인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하나는 그의 뼈가 꺾이지 않고 보존되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의 몸에서 피와 물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 중 피와 물이 나왔다는 사실에 대해 요한은 요한일서 5장에서 따로 해석을 했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요일5:6-8) 여기서 요한은 물과 피가 바로 (성령과 함께) 예수가 그리스도-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는 증거물이라고 말한다. 요한에 의하면 예수가 그리스도(하나님,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거하는 것은 물과 피 그리고 성령 세 가지이다.  

 

1. 물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는 성육신 즉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오셨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스도가 사람으로 났다는 것이며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이다. 영에게는 물과 피가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물과 피가 있었다. 이것은 그가 천사(영)가 사람이며 따라서 천사를 대표하거나 천사를 위하는 분이 아니라 사람을 대표하며 우리를 위해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우리가 죽는 것처럼 그도 죽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와 같이 예수는 우리의 죽을 운명을 몸소 경험하고 그 자리에서 승리와 해방을 가져다 주기 위해 사람(의 대표자)으로 오신 그리스도이다.  


물이 지닌 두 번째 의미는 씻음이다. 물은 일차적으로 (마심으로써) 생명을 유지하게 수단이지만 씻는 수단이기도 하다. 주님이 흘리신 물은 사람을 씻어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만드는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나타낸다. 주님은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에게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결국 사람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나야함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물은 하나님이 그의 능력으로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게 하시며 진리로 온전케 하시는 것을 나타낸다. 에베소서 5:26-27에서 바울은 주님이 교회를 자기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는 영광스런 신부로 세우시기 위해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케 하신다고 말했다. 이와 같이 물은 피로 말미암아 죄가 처리된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온전케 하는 주님의 활동을 상징하는 요소이다.


2. 피는 그리스도가 사망으로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이기셨음을 나타낸다. 만일 주님이 죽기를 무서워하여 십자가를 피했다면 인류를 살리려는 하나님의 사랑은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이 흘리신 피는 그가 인류의 구원자로 오신 그리스도임을 증거하는 증거물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3:8) 그리스도가 피를 흘렸다는 것은 그가 마귀의 사망 권세를 깨기 위해 몸을 던진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낸다. 그의 피는 그가 ‘사망으로’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없앤 하나님의 아들임을 나타내는 증거이다.(히2:14) 또한 피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피는 하나님이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희생시켰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피가 없었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사람을 살리려는 하나님의 확고한 의지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3. 성령은 사람 속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시는 분이다. 그는 진리의 영으로서 사람에게 진리를 밝히는 일을 하신다. 진리가 무엇인가? 진리 중의 진리는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과 그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났다는 것이다.  주님은 사람(세례 요한)의 증거를 받으셨을 뿐 아니라 성령의 증거도 받았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요일5:9-11)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였느니라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거를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일시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요5:31-37) 하나님이 친히 그리스도를 증거한다는 것은 성령을 통해서 사람 안에서 말씀하시는 것이다.

 

142.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
 

그리스도의 피는 무엇을 말하는가? 피는 일반적으로 죽음(사망)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는 그가 죄인들을 위해 희생되셨다는 사실 즉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들을 위해 죽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우리는 앞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하는 세 가지 증거 즉 물과 피와 성령에 대해 생각했는데 이 중 물과 피는 십자가와 아울러 주님의 죽음을 상징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물과 피와 십자가 이 세 요소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는가를 말해준다. 물과 피와 십자가는 다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다 주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 세 요소가 우리에게 역사하는 방향은 다르다. 


주님이 흘리신 보혈은 우리의 죄 용서와 관계 있다. 피는 우리에게 죄 사함을 가져다 준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은 어린 양의 피를 보시고 사람의 죄를 용서하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피를 통해 사람의 과거를 처리하신다. 사탄에게 속아 하나님을 떠나 범죄하고 타락한 옛 삶은 그 자체로서 죄이다. 이것은 피로 처리될 수 있다.   


어떻게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처리할 수 있는가? 사실 하나님은 피를 본다고 해서 사람의 죄를 잊어버리시거나 없었던 것으로 여기실 수 있는 분은 아니다. 하나님은 어떤 대가로도 죄를 용서하실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사람은 있는데 그의 죄만 따로 없어질 수는 없다. 죄는 본질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용서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가 피로 말미암아 처리되었다는 것은 죄가 피로 말미암아 ‘실제로’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즉 피는 곧 (사람의) 사망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어린 양의 피를 보고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은 그 피가 사람이 죽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물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피는 두 방면에서 작용했다. 하나는 죄인의 운명을 지고 율법의 요구대로 값을 지불한 것이다. 즉 주님의 피는 사람의 죽음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주님은 우리를 속량하셨다.(갈3:13) 그러므로 사람은 죄로 인해 율법의 저주를 다시 받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그 피가 우리에게 뿌려졌을 때 우리의 생명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 있어서 피는 생명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피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타낸다. 피로 상징된 그리스도의 생명은 사람의 참 생명이다. 이 생명이 사람에게 흘려져서 사람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산 자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주님의 생명을 나타내는 이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죽은 자가 아니라 살아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아니라 아들로 당당히 나아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은 십자가 자체이다. 십자가는 죄만 아니라 옛 사람 즉 육적(肉的) 자아(自我) 자체를 처리하는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는 요소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듦에 있어서 다른 어떤 역사들보다 근본적인 것이다. 죄인은, 전에 지은 죄를 용서받을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근본적인 변화 즉 사람 자체가 바뀌어서 앞으로 계속 죄를 짓지 않고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될 필요가 있다. 사람은 처음에는 죄를 지어 죄인이 되었지만 지금은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로 근본적인 처리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피로서 죄를 처리하는 일이나 물로 씻어 온전케 하는 것을 어느 정도 경험하지만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의 온전한 아들의 자리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은 여전히 자기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그리스도의 필요 외에 자기 필요(죄를 지을 필요)라는 것이 남아 있다. 그래서 다시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는” 상태란 바로 이런 자리에서 오는 것이다.(딤후3:6,7)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우리 모두는 같은 경험을 한 것이다. 모든 인간은 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끝났다. 이것은 우리가 믿으나 안 믿으나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다만 이를 믿는(실제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실제로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에 대해 산 생명’을 누릴 수 있고 믿지 않으면 계속 사탄에게 속아 죄인으로 사는 것이다. 우리 생명이신 주님은 우리에게 자기의 생명을 완전히 주시려고 십자가를 지시고 피와 물을 쏟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 가지를 깊이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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