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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의 피 (마26:26-30) / 2006. 11. 5

2010.04.30 16:24

이상봉 조회 수:7613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 (마태복음 26:26-30)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 유언한 자가 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또한 이와 같이 피로써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 9:11-22)

이 말씀은 주님이 우리를 위해 흘리신 보혈의 가치와 능력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말씀이다. 마태복음 26:28에서 주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시면서 떡과 잔을 나누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는 언약(신약)의 피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언약은 왜 피로 세워졌는가? 언약을 확고히 하기 위함이다.

첫 언약(구약)도 물론 피 없이 세워진 것은 아니다. 모세는 율법으로 백성들과 언약을 세울 때 그들 위에 피를 뿌렸다(출 24:8).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속죄의 제사를 드릴 때도 반드시 피를 흘려야만 했다. 그래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다. 또 대제사장들이 일 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제사를 드릴 때도 피 없이는 하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은 주 예수님이 인류의 속죄를 위해 영원한 성소에 들어가실 때 피를 흘리실 것을 예표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피 없이는 하나님을 만족케 하실 수 없다. 이처럼 하나님이 사람과 맺은 모든 언약은 다 피로 맺어진 것이다. 따라서 모든 언약은 하나님조차도 변경할 수 없는 확고한 것이다.

주님의 보혈의 가치와 능력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설명될 수 있다.  

첫째, 주님의 피는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한다. 곧 우리를 정결케 한다. 그것은 주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대속(代贖)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주님의 피는 우리로 하나님 앞에 담력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게 만든다.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10:19).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9:14)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죄의 송사를 받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의 양심에 자유와 담력을 가져다준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였으므로 하나님께로 당당히 나갈 수 있다.

하나님께 당당히 나갈 수 있다는 말은 사람이 하나님을 능히 섬길 수 있다는 말이다.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6:10-14)

셋째, 주님의 피는 우리로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만들었다. 우리는 주님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 자신을 얻게 되었다.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요6:56).

주님의 피로 세운 새 언약으로 인해 우리는 단지 죄 사함을 얻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죄 용서를 받는 것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은 모두 전에 잃었던 것을 되찾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을 얻어서 하나님과 완전한 연합을 누리는 것은 전에 잃었던 것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전에 없던 것을 새로 얻는 것이다. 아담도 에덴동산에서 생명나무의 열매는 먹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을 받게 되었다.  


하나님은 주 예수님의 피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모든 영적인 복은 주님의 피로 세운 이 언약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복은 임시적이거나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확실하고 견고한 것이다.
주님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역사의 성격에도 변화가 왔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기 전까지 하나님의 구원은 전적으로 은혜의 성격을 지닌 것이었지만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후에는 은혜의 역사임과 동시에 공의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주님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기 때문이다.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느니라"(롬5:21)
이제는 은혜 혼자서 왕 노릇하고 우리를 영생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의로 말미암아(더불어) 왕 노릇하고 우리를 살리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의는 우리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 곧 하나님의 공의와 신실하심이다. 하나님은 한 번 피로 약속을 맺은 이상 그 언약을 반드시 지키신다. 그러니 하나님이 의롭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가 확실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영생을 보장한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은 우리가 피로 맺은 언약을 붙들고 하나님께 죄 용서를 구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용서하셔야 한다. 우리가 빛 가운데서 우리의 죄를 참으로 깨닫고 그것을 자백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신다. 여기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약속이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생활이다. 죄 때문이든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이든지 하나님과 오랫동안 교제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흔히 "내가 많은 잘못을 저질렀고 하나님을 오랫동안 잊고 지냈는데 지금 내가 하나님께 나간다면 아무리 피와 언약을 붙잡고 나간다 해도 하나님은 나를 뻔뻔스럽다고 책망하실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보혈과 언약을 붙잡고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하나님은 설사 우리가 밉더라도 우리를 반드시 받아주시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주님이 아니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주님이 이제 우리를 위해 자기를 주셨으니 우리는 그의 피를 보증으로 삼아 모든 것을 당당히 얻을 수 있다. 주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것을 당당히 얻을 권리가 있다. 우리는 보혈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그것을 우리 생각이나 느낌대로 알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알아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보혈로 말미암아 히브리서 8:10-12에서 말하고 있는 신약의 세 가지 축복을 받았다. 그것은 죄 사함을 받는 것과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 것과 속으로부터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이것은 다 피를 근거로 세워진 확고한 언약에 기초한 은혜의 선물이므로 하나님께 당당히 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자들은 신약에서 약속된 이 복을 하나님께 당당히 구할 줄 모른다. 그것은 그들이 보혈의 가치를 모르며 따라서 하나님께 나아갈 때 이 피를 의지하여 나아가지 않고 여전히 자기를 바라보며 자기를 의지하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다 신약에 근거한 것이며 신약은 주님의 보혈에 근거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께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언약에 근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구할 수 없다. 그러나 언약에 근거하면 무엇이든지 당당히 구할 수 있고 다 받을 수 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께 더 이상 자비와 동정을 구걸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것을 주시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1:4)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1:3,4)

언약 안에서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마치 맡긴 물건을 찾아오는 것과 같다. 따라서 오늘날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구할 때 우리는 마치 받을 수 없는 것을 애걸복걸하고 졸라서 받는 듯한 태도를 취할 필요가 없다. 물론 하나님께 기도할 필요조차 없다거나 교만한 태도로 하나님께 나가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자이므로 항상 그 앞에 낮고 가난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단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방법이 언약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응당 받을 것을 약속에 따라 받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께 당당히 기도해야 한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대하시는 것은 단지 자비와 긍휼의 차원이 아니라 공의의 차원 곧 그의 신실하심(약속을 잘 지키심)을 나타내는 차원에서 하시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감사와 찬송으로 하나님께서 이 언약을 속히 실행하시도록 기도하는 일이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이 언약을 굳게 붙들고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해 언약을 잊은 듯이 행하기도 하신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을 즉각 깨워드려야 한다.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신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사62:6,7)

이처럼 하나님은 그 약속의 백성들이 종일토록 잠잠치 않고 하나님을 향해 언약의 성취를 촉구하도록 명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아삽은 언약 백성인 유다가 이방인들에 의해 고난을 받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하나님께 그의 언약을 상기시키는 일을 했다.

"여호와여 이것을 기억하소서 원수가 주를 비방하며 우매한 백성이 주의 이름을 능욕하였나이다 .... 주의 가난한 자의 목숨을 영영히 잊지 마소서 언약을 돌아보소서 대저 땅 흑암한 곳에 강포한 자의 처소가 가득하였나이다"(시74:18-20)

우리도 이와 같이 항상 하나님의 언약을 스스로 확인하며 또한 그것을 하나님께 확인시켜드림으로써 언약의 이행을 촉구해야 한다. 겸손한 자세로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을 믿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언약의 성취를 촉구해야 한다.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히13:20,21)


이 기도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언약의 피로 다시 살리신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도 그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모든 삶에서 승리를 누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구하는 기도이다. 우리는 언약으로 보장된 영생(아들의 생명) 안에서만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고 순종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런 기도를 드려야 한다. 피로 세운 확실한 언약을 붙들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는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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