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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가로되 이것은 피 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마27:3-8)

자기 목적을 위해 선생을 판 가룟 유다는 그러한 자기의 행위를 후회하고 그 일을 되돌리고자 했다. 그러나 그것이 여의치 않자 결국 자살로 그 인생을 끝내고 말았다. 유다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그들로부터 받은 돈을 돌려주며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라고 말하며 자기의 일을 무르려고 했다. 그러나 대제사장 무리들은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고 말함으로써 모든 책임을 유다에게 돌리려고 했다. 그러나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그 말은 예수님이 무죄하다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만일 그들의 판결대로 예수님이 정말로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인이었다면 유다가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했다"고 말했을 때 '예수는 무죄한 자가 아니라 마땅히 죽을 죄인이다' 라고 당당히 반박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들이 시기와 욕심에 팔려 그들 스스로도 인정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 것을 부지 중에 드러낸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사형에 해당한다고 정죄할 때도 예수님에게서 어떤 분명한 죄도 찾지 못했으므로 거짓 증인들을 동원했다. 그리고 그 전에도 주님이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고 그들에게 물었을 때(요8:46) 아무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주님에게 행한 그들의 모든 행위는 자기의 양심을 속이고 진리를 거스른 죄악이었음이 분명하다.

유대인들로부터 예수님을 넘겨받은 로마 총독 빌라도는 여러 가지로 예수님을 심문해 보았으나 그에게서 아무 죄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했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요18:38)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관원들과 백성을 불러 모으고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을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어왔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사실하였으되 너희의 고소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 죄를 찾지 못하였고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저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저의 행한 것은 죽일 일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때려서 놓겠노라"(눅23:13-16)

빌라도는 자기뿐 아니라 유다 분봉왕 헤롯 역시 예수님에게서 죽일만한 뚜렷한 죄를 찾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며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강력하게 반발하며 기어이 예수님을 죽이도록 요구했다. 결국 빌라도는 자기 판단과 양심을 거스르고 주님을 사형에 처하도록 판결하고 말았다.

"무리가 일제히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없이 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하니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러라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저희에게 말하되 저희는 소리질러 가로되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한대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이에 빌라도가 저희의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저희의 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를 놓고 예수를 넘겨 주어 저희 뜻대로 하게 하니라"(눅23:18-25)

"대제사장들과 하속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서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는지라"(요19:6-9)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죄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한 죄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놀라서 예수님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더욱 느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어떻게든 놓아주려고 애썼으나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그를 정치적인 올무에 걸어넣었기 때문이다.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와서 박석(히브리 말로 가바다)이란 곳에서 재판석에 앉았더라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저희가 소리지르되 없이하소서 없이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가로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저희에게 넘겨주니라"(요19:12-16)

"빌라도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이는 저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러라 ...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막15:9,10,15)

빌라도는 예수님이 무죄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자기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무죄하고 의로운 자를 팔았다. 이러한 빌라도의 죄는 유대인들의 죄와 본질상 같은 것이다. 유대인들이나 빌라도는 다 같이 하나님의 영광보다 세상 영광을 더 추구했으며 의와 진리 또는 양심보다 기득권을 선택했다. 이것은 곧 그들이 자기 생명과 존재의 본성을 거스른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주님을 판 자나 주님을 죽이려고 한 자들이나 주님을 재판한 자가 다 같이 주님의 의로우심(무죄함)을 인정하였으며 자기들의 악함과 범죄함을 스스로 드러내었다.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마지막 날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날이 이르기 전에도 그들은 스스로 심판을 받고 정죄를 받아 결코 편치 못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심판하고 괴롭게 만드는 것인가? 바로 그들 안에 하나님이 심어놓은 그들의 양심이다.

주님을 판 가룟 유다와 주님을 죽이려고 한 대제사장들, 그리고 그들로부터 주님을 넘겨받아 재판을 한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존재하는 공통점은 그들 안에 양심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생의 특징이다. 이 양심은 하나님의 볼모와 같다. 이것은 사람으로 범죄하지 못하게 하며 혹 욕심을 이기지 못해 범죄하면 그들을 고민과 자책으로 몰아넣는다. 역설적이지만 양심 때문에 사람은 위선도 하고 거짓말도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태연히 악을 저지르며 노골적으로 죄를 짓지 그렇지 않은 척 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양심을 거스려 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처음부터 불리한 싸움을 하는 것이다. 양심은 사람이 악을 저지르고 파멸의 길로 가는 그 순간 사람 속에 전쟁을 일으켜 결코 그를 편히 지내지 못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볼모이다. 그리고 그것은 최종적으로 악인이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도록 그의 입을 막을 것이다.

유다에게 있어서 이 양심은 어떻게 역사했는가? 그는 무죄한 주님을 판 것에 대해 깊이 후회하며 자책한 결과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사탄은 그의 생각과 감정을 사로잡아 그로 의로우신 그의 선생을 유대인들에게 팔도록 하는 데 성공했으나 그 속에 하나님이 심어놓은 그의 양심은 결국 그러한 그의 어그러진 길을 근본적으로 부정하였으므로 유다는 그 속에서 갈등하다가 결국 자기가 (죄 가운데서) 일군 인생을 스스로 부정하고 말았다.

대제사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유다가 예수님을 무죄한 자라고 말했을 때 감히 그렇지 않다고 강변하지 못하고 유다의 말을 부지중에 수긍하고 말았다. 이것은 그들 속에 있는 양심으로 말미암아 의인을 죄인이라고 강변하며 억지를 부리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죽을 때까지, 이불 속에서까지 검은 것을 희다고 하고 흰 것을 검다고 말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유다가 준 은 삼십개를 대담하게 취하지 못하고 그것을 나그네의 묘지로 쓸 밭을 구입하는 데 사용하고 말았다.

그리고 빌라도의 양심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무던히 애를 쓰는 것으로 역사했다. 그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하찮은 유대의 한 죄수에 불과했지만 그 속에서 풍기는 권세는 그의 양심에 강력하게 역사하여 감히 주님을 함부로 손대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므로 만일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도록 내어주지 아니하셨다면 세상의 어떤 사람도 감히 하나님의 아들을 해치거나 죽일 수 없으며 함부로 입을 놀리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적 권세이며 하나님의 사람의 영광과 능력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진리의 힘이요 양심의 권능이다. 사람인 이상 아무도 이것을 거스를 수 없다. 양심을 가진 이상 아무도 진리를 거스르지 못한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고후13:8) 이것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를 받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의 형편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성도뿐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라도 똑 같이 진리를 거스르지 못한다.

진리를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거스를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아무라도 일시적으로는 하나님을 거스를 수 있고 진리를 거스를 수 있지만 영구히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세상의 주인이 하나님이고 만물이 그에게서 나서 그에게로 돌아간다는 이 우주의 근본 원리가 뒤집혀지지 않는 한 하나님과 그 진리를 거스리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대제사장들은 대담하게 의인을 죽이며 성령의 역사를 방해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 유다의 돈을 차마 도로 돌려 받지 못하고 그 돈으로 나그네의 묘지를 샀다는 것은 그들 역시 의의 관념을 가진 자이며 감히 의를 거스를 수 없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거스를 수 없다. 그러므로 반드시 진리를 따라가야 하며 의의 길로 가야 한다. 그것이 가장 좋은 길이다. 그리고 가장 쉽고 편한 길이다. 진리만이 사람을 자유케 하며 안식케 한다.


주님의 세상 마지막 순간들에 대한 기록을 보면서 우리는 누가 주인이고 권세자며 누가 종이고 겁쟁인가 하는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진리 안에서 행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신 주님은 당당하고 권세 있는 분으로서 주권자의 영광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를 대적한 모든 사람들은 다 비겁하고 두려워하는 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마태복음 27장에서 주님의 죽으심과 관련된 세 무리의 종들이 있다. 시기심과 이기심으로 인해 예수님이 죽을 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죽음으로 내 몬 대제사장들과 거기에 속한 무리들이 그 첫째이고, 예수님의 삶과 이적을 눈으로 똑똑히 보았고 그로부터 큰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권력자들의 사주를 받아 예수님을 죽이라고 소리친 예루살렘의 어리석은 백성들이 그 둘째이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사형에 해당하는 그 어떤 죄도 없다는 사실을 느꼈으면서도 자기 자리를 잃는 것이 두려워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준 빌라도가 그 셋째이다.

이 세 무리는 인생을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아들로서 주권자의 권세를 행사하며 살지 않고 마귀의 종으로 산 자들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 땅에서 하나님을 대표하여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위임 권세를 주셨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마귀의 거짓말에 속아서 그 권세를 스스로 포기하였다. 그들은 마귀의 거짓말에 속아서 세상의 헛된 영광과 권세를 좇아 거짓과 협잡과 살인을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의 주권과 영광을 버리고 스스로 마귀의 종이 되고 말았다.



한 가지 더 볼 부분은 주 예수님을 해치고 죽일 권세를 유대인들에게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고 언급하신 주님의 말씀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요19:10,11)

하나님이 유대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죽일 수 있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죽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왜 유대인들에게 그러한 일을 허락하셨는가? 그리고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한 것이 어째서 죄가 되는가? 하나님이 예수님을 유대인의 손에 죽도록 허락하신 이유는 그런 일이 옳은 일이어서가 아니라 그런 일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자들이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스르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거부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상에 내려오시면 그는 세상에서 반드시 배척되고 죽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누가 그 역할을 맡게 될 것인가 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바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일 가장 적임자라는 것이다. 즉 그들만큼 하나님을 싫어하고 강하게 적대하는 자들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손에 죽게 하신 것이다.

세상에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하는 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이 은혜로 남겨놓으신 복된 자들도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약속을 기다리는 자들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셨을 때 세상에서 극소수의 사람들이 그를 환영하고 그에게 축복했다. 누가 그 역할을 맡았는가? 어린 아기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를 축복하는 일은 시므온과 안나가 맡았다. 그들이 그 일을 맡은 것은 그들이 세상에서 그 일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오심을 기다린 자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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