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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주에 바울이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고 염려했는가에 대해 살펴보았다. 교회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는 형제들에게 어떻게든 그리스도와 그 진리를 생생하게 전하기 원했고 그것을 위해 그는 자기의 마음과 경험을 형제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11:26-30)

바울의 마음에는 오직 교회밖에 없었다. 그는 교회들로부터 사랑과 인정과 대접을 받기도 했지만 또한 그만큼 오해와 푸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들에 개의치 않고 끝까지 교회를 사랑했고 교회만 생각하고 염려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이처럼 크게 생각하고 염려하는 것은 주님보다 교회를 더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그렇게 교회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것은 신자가 그리스도보다 교회를 더 바라봄으로써 교회를 우상으로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염려는 옳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가 무엇이며 교회가 무엇이며 교회를 사랑하고 위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안다면 우리는 전보다 더욱 교회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오직 그리스도만을 원하시며 위하시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오직 교회만을 원하시며 위하신다. 바로 이러한 주님의 갈망 때문에 바울의 마음은 전적으로 교회에 있었다.

교회를 사랑하고 염려하는 마음으로 자기의 인격과 마음과 삶을 거침없이 소개하며 자랑하는 바울의 진술은 고린도후서 12장에서도 계속된다.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내가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사도의 표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내 자신이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한 일밖에 다른 교회보다 부족하게 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 너희는 나의 이 공평치 못한 것을 용서하라 보라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예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나의 구하는 것은 너희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이에 부모가 어린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덜 사랑을 받겠느냐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공교한 자가 되어 궤계로 너희를 취하였다 하니 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를 취하더냐 내가 디도를 권하고 함께 한 형제를 보내었으니 디도가 너희의 이를 취하더냐 우리가 동일한 성령으로 행하지 아니하더냐 동일한 보조로 하지 아니하더냐 이때까지 우리가 우리를 너희에게 변명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12:11-19)

여기서 특히 바울의 이 말은 그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12:15) 그는 자기 인생을 교회를 위해 허비했다. 그의 마음에는 오직 그리스도와 교회뿐이었다. 그의 인생은 온통 교회에 다 투자되었고 그래서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사람' 곧 교회뿐이었다.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고전9:1,2) "나의 구하는 것은 너희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고후12:14) 그가 구한 것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위해 그는 힘을 다해 복음을 전했고 그것을 믿는 자들을 섬겼다.
교회를 사랑하고 염려한 바로 이 바울의 마음과 인격이 바로 오늘날 우리까지 낳았고 우리를 키워서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다. 성경으로 기록되어 남겨진 그의 말씀들은 우리의 생명이 되고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알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 되었다. 그의 말은 어디서 왔는가? 성경은 어디서 왔는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단련되고 충만케 된 바울의 인격에서 온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바울의 인격은 그의 십자가의 체험에서 온 것이다. 그가 많은 환난과 주님의 다루심을 받으면서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또 체험한 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고 돕는 역사의 원천이 된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는 십자가에서 단련되고 은혜와 진리로 무장된 그의 인격 자체가 교회를 위한 하나의 큰 은사였다. 우리도 이러한 인격을 사모한다. 우리는 바울을 우리의 믿음과 교회 생활의 본으로 삼아 그를 따르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가 바울의 본을 따르려면 먼저 우리의 인격과 생명이 바울처럼 되어야 한다. 바울처럼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섬겨서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살리고 교회를 견고하게 건축하는 자가 되려면 먼저 바울처럼 주님을 깊이 따라야 하고 바울처럼 주님을 깊이 체험해야 한다. 바울의 일은 교회를 위한 봉사가 먼저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그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래서 그는 12장에 들어오면서 11장에서 하던 자기의 인격과 체험과 수고에 대한 자랑을 잠시 중단하고 그 자랑의 성격이 무엇이며 본질이 무엇인지를 말하기 시작한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이 말에 앞서 11장에서도 그는 자기의 자랑 중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11:30) 여기서 그가 말하는 약함이란 자기가 교회들과 형제들 때문에 수많은 고생을 하고 마음 아파하고 편치 않았던 모든 것과 그로 인해 전체적으로 그가 고달프고 괴로운 인생을 살았음을 말한 것이다. 그는 그 때문에 실제로 몸도 많이 약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말을 포괄적으로 생각하면 이 말의 의미는 바울이 교회 때문에, 즉 주님의 은혜에 항상 머물러 있고 그것으로 충만케 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를 많이 다루셔서 항상 약하고 곤고한 처지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핍박 때문이든 내적 두려움 때문이든 결국 이 모든 약함은 하나님이 자기를 그렇게 인도하셨기 때문이고 또 하나님이 자기를 그렇게 인도하신 것은 결국 교회 때문이므로 그는 교회를 위해 약하게 된 것이다.    


바울은 교회가 어떤 지위에 있는지를 생생하게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한 이상을 보았다. '셋째 하늘' 또는 낙원에 이끌려 가는 체험을 한 것이다. 이것이 어디에 있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는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보았다.

바울이 체험한 이 이상과 계시는 큰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이상과 계시가 바울로 하여금 교회를 사랑하며 크게 섬기는 자가 되도록 만들지는 못했다. 그로 진정 교회를 사랑하며 섬길 수 있도록 만든 것은 그의 십자가의 체험이었다. 그가 본 이상과 계시는 도리어 그로 하여금 자기를 자랑하고 교만하게 만들 가능성이 더 컸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이상과 계시를 그에게 유익으로 남도록 하기 위해 그를 큰 단련과 약함 가운데 두셨던 것이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12:7)

그는 주님에게 그의 육체의 가시를 제거하여 달라고 세 번 간구했다. 그러나 주님은 그로 그리스도를 깊이 누리고 그 은혜를 깊이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 가시를 제거해 주지 않으셨다. 그의 대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사람의)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상이나 계시를 보는 것보다 주님의 은혜와 십자가를 체험한느 것이 더 큰 일이며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교회를 위한 바울의 봉사는 그가 체험한 큰 이상과 계시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가 체험한 십자가와 약함과 믿음에서 온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하시는 교회에 온전히 봉사하고 사역하려면 그리스도를 반드시 깊이 알아야 하고 깊이 누리며 소유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려면 지식과 이상과 계시와 열심만 가지고는 안되고 반드시 주님의 은혜와 십자가를 깊이 체험해야 한다. 주님의 능력의 완전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할 수 없다. 그러나 주님의 능력을 확실하게 체험하려면 먼저 우리의 약함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고난과 십자가의 체험이 필수적인 것이다. 우리의 능력은 우리 자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그것을 믿는 믿음에서 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고통 가운데서 그의 능력을 실제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우리의 진정한 사역은 고통과 소모시키는 압력과 십자가의 죽이는 역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풍성함과 능력을 체험함으로써 형성되고 강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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