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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주에 바울이 고린도교회 형제들에게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라고 말한 것에 대해 상고했다. 그는 고린도교회 형제들이 자신들을 돌아보기를 원했다. 그들의 믿음이 참된 믿음인지, 자신이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거듭난 새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지, 매순간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고 있는지를 확증하기를 원했다. 이러한 그의 권면은 그가 고린도교회에게 한 마지막 권면이었다. 어쩌면 이것은 권면이라기보다는 무서운 경고와도 같았다.
그는 왜 그런 말을 했는가? 그 목적이 13:7-10에 이렇게 나와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리운 자 같을지라도 너희로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의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이를 인하여 내가 떠나 있을 때에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파하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세를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바울이 고린도교회 형제들에게 마지막으로 믿음을 확증하라고 권면하며 경고한 것은 그것이 그들이 살 수 있고 더 풍성한 생명의 세계로 진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말은 일차적으로 권면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점검하고 또 점검하며 다지고 또 다지는 것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권면 자체도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오늘 형제를 권면하는 것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 방법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권면의 내용
바울이 형제들을 권면한 내용 몇 군데를 살펴보자.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5:8,9)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히2:1-4)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3:1)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히3:12-14)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히4:9-14)
나그네의 목표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안식에 이르는 것이다. 그 방법은 무엇인가?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며 이미 안식한 앞선 형제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육체로서 우리 앞에 존재하지 않는 그들을 어떻게 누리는가 바로 그들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그들의 말씀은 그들의 생명이며 영이다. 그 말씀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에게 그들 말한 자들의 인격을 알게 하며 그들이 누렸던 진리를 우리도 누리도록 만든다. 그러므로 바울은 말씀의 가치에 대해 말하며 그것에 청종하도록 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히6:1-8)
이것은 협박이 아니라 사실, 실제를 말한 것이다.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의 목적에 들어가지 못하면 누구든지 버리운 자가 되는 것이다.
권면의 목적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6:9-12)
여기서 바울은 어떤 마음으로 위의 말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권면의 목적은 그 내용이 어떠하든지 덕을 세우기 위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고후12:19하)
"내가 떠나 있을 때 이렇게 쓰는 것은 대면할 때에 주께서 너희를 파하려 하지 않고 세우려 하여 내게 주신 그 권세를 따라 엄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고후13:10)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6:13-18)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통해 그 백성들에게 약속의 말씀과 권면의 말씀을 주시는 심정이 어떠한가를 보여준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라고 말한 후 바울은 이어서 "우리가 버리운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치 않게 하시기를 구하노니 이는 우리가 옳은 자임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직 우리는 버리운 자 같을지라도 너희로 선을 행하게 하고자 함이라"라고 말했다. 이것은 바울이 그들에게 하고 있는 권면과 책망의 목적이 결코 바울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자신의 영광과 권세를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형제들의 실제적 유익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바울이 자신에 대해 간증하고 해명하고 자랑한 이유는 그들에게 전해진 그의 말 곧 바울이 전한 복음의 가치와 신뢰성이 그것을 전한 자신의 인격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가 그들 안에서 깊이 신뢰되고 받아들여지게 되도록 하기 위해 자신이 버리운 자가 아니고 악한 자가 아니며 참 하나님의 사도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이어서 담담하게 하나의 사실을 말한다.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의 강한 것을 기뻐하고 또 이것을 위하여 구하니 곧 너희의 온전하게 되는 것이라"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기신 사람들 곧 교회와 형제들의 생명의 유익을 위해 살 수밖에 없고 모든 것을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말하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그가 자신과 진리의 관계에 대해 말한 부분은 하나님께 들려진 사람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바울은 어떤 필요에 의해서 진리를 전한 사람이거나 이번에는 진리를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진리를 전한 것이 아니고 자기 안에 있는 것이 진리뿐이고 진리가 자기를 온통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진리를 전했다. 그는 설사 자기가 의도적으로 진리를 말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거나 혹은 진리를 감추거나 적당히 변형시켜서 좀 편하게 살고 싶어도 그렇게 안되는 사람이었다. 자기 안에서 역사하시는 이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말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그러므로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은 그의 인생(삶)에 있어서 선택 사항이 아니라 움직일 수 없는 운명이었다. 생명이 진리의 생명이므로 진리 외에 다른 것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모든 형제들 곧 고린도교회의 형제들도 그런 운명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며 그들이 진리 안에서 함께 행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가 "우리가 버리운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 .... 우리는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직 진리를 위할 뿐이니"라고 한 것은 바울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고린도교회 형제들을 포함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은 진리의 종이다. 흑암의 권세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사람(골1:13)은 마귀와 그의 죄 및 세상과 육신의 정욕에서 자유케 된 한편 그리스도와 그 진리의 종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항상 하나님의 사람 안에서 역동하고 있으며 그를 가르치며 일깨우며 책망하며 감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형제들에게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 말한 후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 안에 계신 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라고 반문 형식으로 말한 것은 그들 안에 이미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2:27) 바로 이것이 신약 성도의 모습이고 삶의 방식이고 특권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변명할 수 없고 아무도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말해도 소용없다. 성도의 양심은 이미 진리에 의해 규정되어 있고 전적으로 진리의 지배를 받고 있다. 겉 사람이 아무리 이런 저런 변명과 이유를 가지고 진리를 거스려 행동할지라도 속 사람은 그것이 틀렸으며 그럴 수 없는 것이라고 이미 자기를 찌르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형제들에게 행동을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고 여러 말로 말하지 않고 다만 "네가 누구인가를 알고 행하라"고만 말한다. 이것을 하라 말라가 아니라 "네 속에 계신 분이 너를 어디로 인도하며 네게 무엇이라고 말씀하는지를 들으라"는 것이다.
요한도 마찬가지였다. 적그리스도에 대해 즉 이단에 대해 형제들이 그에게 질문을 했을 때 그는 간단히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그리고 한 말이 바로 앞에서 본 요일2:27의 말씀 곧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매사에 누가 우리를 따라다니며 일일이 우리를 가르쳐야만 갈 길을 알고 할 일을 아는 사람인가? 그렇지 않고 사실상 아무도 우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는 오직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그 사랑 안에서 그와 교통하는 것만 필요할 뿐 (그것만 된다면) 다른 것은 아무 것도 필요 없다.
물론 우리는 어떤 형제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동안 가르침을 받아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런 가르침으로 인해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 것이고 오늘 이 진리의 자리에 서 있게 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안에서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이런 종류의 가르침은 그 형식과 모양은 가르침일지라도 사실은 그리스도를 공급하는 생명의 역사이다. 우리가 지혜와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형제들 간에서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며 위로하고 책망하는 것은 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누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고 생명을 돋우고 세우는 일이지 결코 할 일을 가르치고 행위를 지도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살아계시고 능하신 참 하나님으로서 사람 안에서 그 행할 바를 완전하게 가르치시며 모든 것을 주장하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형제를 대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가 그 안에 계시며 그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참되고 신실한 분으로서 그를 온전한 길로 이끄신다는 것을 믿고 다만 그에게 그 그리스도 안에 견고히 붙어 있을 것과 그에게 순종할 것만 말하면 된다.
물론 우리는 형제에게 어떤 행동을 직접 지시하거나 권할 수도 있다. 그것은 같은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의 생명을 확인하는 작업이며 서로의 생명이 같은 생명임을 나타내는 한 표현 방법이다. 우리는 선을 독려하고 악을 버리게끔 압박함으로써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을 자극하고 자기 정체성을 일깨울 수 있는 것이다. 이모로든 저모로든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 안에서는 하나님이 만족하실 수 없는 어떤 삶의 모양도 나타나서는 안된다. 조금이라도 악을 행하거나 선에 인색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그런 것을 볼 때 어떤 식으로든 바로 잡아야 한다. 우리는 형제들 안에서 진리가 희미하고 어둠의 세력이 확장되거나 자리를 잡는 것을 태연하게 바라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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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하나님께 쓰이도록 연단된 인격 (고후12:11-13:2) / 2002.2.17 이상봉 2010.05.02 4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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