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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11:14-15


우리는 사탄의 시험과 술책에 대해서 살펴보려는 계획에 따라서 2주 전에 그 첫 시간으로 '사탄이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 주는 새해 첫 주여서 이 주제를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이 그 둘째 시간이 되겠습니다. 오늘은  그때에 이어서 '하나님의 자녀도 사탄에게 속을 수 있다'고 하는 사실과 그 속는 실상이 어떠한지에 대해 같이 생각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사탄의 궤계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바 아니로라"는 바울의 말처럼 '적을 알고서 이기는' 생활을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사탄은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 했는데 가장하는 것은 속이려고 가장하는 것이입니다. 자기 모양을 좋은 것처럼 꾸며서 사람으로 자기 실체를 못 알아보도록 덮는 것이 가장이지요. 사탄은 그것의 명수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사탄에게 늘 속습니다. 사탄이 힘들여서 사람을 속이기 때문에 사람은 언제나 사탄에게 속아왔고 지금도 많이 속고 있습니다. 디도서 3:3을 보면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 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이미 사탄에게 속아 있음을 지금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 라고 했으니까 바울 자기도 그렇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바울도 옛날에 속아 있었던 사람이란 말이죠. 그런데 바울이 속아 있을 때의 실상이 어떤가를 생각해 보면 우리가 뭔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뭘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까? 사탄에게 속아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 사람의 마음이나 생활이 굉장히 악하고 문제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탄에게 속아 있을 때도 그런 사람이 아니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즉 일반적으로 볼 때 그는 상당히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이지요.

사탄에게 속는다는 것은 악하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악하다는 것은 속는 것의 나중 결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바로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사탄에게 속고 있으면서도 속는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속는다라는 것은 악하다는 말이 아니고 그냥 속는 겁니다. 사람들은 자기 성품이 착하고 또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성실하고 좋으니까 나는 사탄에게 속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속지 않은 것이 아니고 단지 속은 걸 모르는 것이죠.

바울은 처음에는 사탄에게 속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교회를 때려잡으려고 돌아다니는 사탄의 도구였지만 만일 그 무렵의 바울을 우리가 만나 봤다면 그는 상당히 의롭고 좋은 사람이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속는다는 것은 단지 사탄이 준 것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속는다는 것은 알고 받는 게 아닙니다. 모르고 받는 겁니다. 알고 받으면 그냥 내가 받았다 하지 속았다 하지는 않잖아요. 상대방이 주는 뭔가를 받기는 받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받았다는 것이 바로 속은 것이지요. 그러므로 속는다는 것은 일단 어리석다고는 말할 수 있겠지만 악하다든지 나쁘다든지 못됐다든지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속은 사람은 결국은 사탄이 준 것을 자꾸 제 것으로 쓰게 되고 그러다 보면 처음에는 단지 속은 사람이고 어리석은 사람이던 것이 결국에는 사탄과 같이 악하고 거짓된 사람으로 바뀌게 되지요.

거듭난 그리스도인도 얼마든지 사탄에게 속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많은 부분에서 이미 사탄에게 속아 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제가 이런 말을 할 때에 "아니요, 내가 속다니요? 속았다면 내가 벌써 알고 있지 모를 리가 있습니까?" 라고 말하면 안됩니다. 알게 넣어 주면은 속은 것이 아니지요. 아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중입니다. "내가 오늘날 왜 이렇게 되었는가? 나는 본래 이런 삶을 원치 않았는데 왜 이렇게 미움과 갈등과 죄와 불의 가운데서 헤매고 있는가?" 돌아보면 그것이 바로 악한 자가 나에게 와서 뭔가를 집어넣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부패하고 미혹되기 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는 체질을 갖고 있다는 말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17:9) 인간의 마음에 대해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렇게 깊이 탄식한 것에 대해 우리도 깊이 깨닫고 탄식해야 합니다. 또 히브리서 기자도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팍케 됨을 면하라."(히3:13) 이 무슨 말입니까? 매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가 피차 붙들어 주지 않으면 우리 마음은 죄의 유혹으로 인해 딱딱하게 굳어지고 그때 사탄이 들어와서 자기 거짓말을 우리 안에 마음대로 주입하고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혼미하게 되어 가지고 예수를 못 믿게 되고 진리에서 멀어지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고후4:4)
바울이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이 비취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탄이 그것을 막아서 우리로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문제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야 항상 있지요. 그리스도도 항상 있고 그가 이루신 역사도 항상 그대로 있고 복음도 항상 전파되고 있지요. 그러나 문제는 사람의 마음에 사탄이 역사하여 그 빛을 못 보게 만든다는 겁니다. 빛이 우리 속에 있는 어두움을 물리치고 우리 속에 있는 모든 허망한 생각들을 다 떨쳐내기까지 빛을 철저히 보아야 하는데 사탄이 그것이 안되도록 가로막고 있는 겁니다. 이 세상 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기 때문에 예수의 영광의 빛이 효과가 없게 되는 거지요.

자동차에 썬팅을 세게 해 놓으면 밖에서 해가 뜨나 지나 아무 관계가 없지요. 사탄이 바로 이렇게 하려고 사람을 속입니다. 사탄은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사람도 그가 방심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습니다. 다음 말씀들을 유의해 보시면 사탄이 신자를 속이는 실상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될 것입니다. 우선 야고보서 1장 22절 말씀을 보십시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이건 무슨 말입니까? 道라는 것은 말씀을 말합니다. 즉 말씀을 행하지는 않고 듣기만 하거나 좋다고만 하는 사람은 자기를 속이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아! 맞다. 좋은 말씀, 옳은 말씀이야, 그렇게 살아야지" 하며 끄떡끄떡 해 놓고는 실제로는 (차일 피일 미루든지 혹은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는 것은 어렵단 말이야고 하면서) 행하지 않는 것이 사탄에게 속아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야고보의 이 말씀을 근거로 우리 마음이 사탄의 의해 혼미하게 되고 속아 있는지 어떤지를 점검해볼 수 있을 겁니다.


다음에 야고보서 1장 26절을 보면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않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말을 할 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말을 한다면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하게 되고 덕을 세우며 사람의 영혼에 유익을 주는 말을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실제로는 자기를 자랑하거나 남을 욕하고 비난하는 말을 해서 사람을 찌르거나 사람을 피곤케 합니다. 별 생각 없이 아무 의미도 없고 유익도 없는 말들을 마구 늘어놓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사람들이 자신을 진실하고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속은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않고 그대로 주절주절 입을 여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혀를 사탄에게 맡겨놓은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 건데도 그는 생각하기를 '나는 경건하다' '나는 별 문제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속에 그런 습관과 성질이 있다는 걸 압니다. 그것은 상당히 많은 것을 아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아! 나는 입만 열면  마음에 없는 쓸데없는 말들을 늘어놓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시간을 죽이는 사람이구나" 라고 탄식합니다. 어떻게 아느냐 하면 자꾸 그런 일을 반복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고 하다보니 아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나는 이제부터 함부로 입을 열지 말고 주님께 내 입을 맡겨야지"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질 않고 별 생각 없이 여전히 입을 그냥 풀어놓는 겁니다.

자기 속에 육신적인 요소, 사망의 성분이 들어 있는 줄 알면서도 영으로써 그것을 죽이지 않는 것입니다. 영으로 죽인다는 말은 육신의 정욕과 습관이 자기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자기를 통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늘 말씀을 가까이하고 주님 앞에 엎드리며 의지하는 것이 혀를 재갈 먹이는 것입니다. "주여 나는 정말 입은 이잘 생겼지만 나오는 것은 구정물과 독약만 쏟아내는 사람입니다. 나를 붙들어 주시고 내 입의 파숫군이 되셔서 늘 함께 해 주십시오." 이렇게 말해야 하는데 그러질 않고 태평스럽다 는 이것이 바로 사탄에게 속아 있는 것입니다.

태평스러운 사람은 왜 태평스럽겠습니까? 자기가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거죠. 매일 실패하는데도, 매일 입만 열면 딴 사람에게 괴로움을 주고 성령의 책망을 받는 데도, 하나님 앞에 실질적으로 엎드리며 맡기지 않고 여전히 "그래도 나는 잘해낼거야" 하는 식으로 육신대로 사는 것은 자기를 과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는 상식도 있고 교양도 있고 제법 통제력도 있으니 닥치면 다음에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거죠. 이게 바로 사탄에게 마취 주사를 맞은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고쳐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문제의 원인을 모르고 문제 자체를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으니까요.


요한일서 1장 8절에 가면 사도 요한이 이런 말을 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이니 할 것이요"
우리 마음에 이걸 물어봅시다. 우리 마음을 한번 점검 해봅시다. "교회 오면 자꾸 죄인, 죄인 하는데 내가 무슨 죄인이냐? 내가 무슨 살인을 했나? 도둑질을 했나? 그냥 인류는 죄인이다 하는 것까지는 인정할 수 있지만 내가 실제로 무슨 죄인인 것은 아니지 않느냐?" 이런 마음이 여러분 안에 없습니까? 만일 겉으로 이런 말은 안하더라도 여러분 안에서 이런 생각들이 있거나 혹은 평소에는 그런 생각이 없더라도 누가 와서 여러분에게 회개하고 십자가를 받아들이라고 말하면 이런 생각들이 솟아 나와서 "왜? 내가 뭣 땜에 그런 말을 들어야 되는가?" 하는 반발이 나온다면 여러분은 사실상 사탄에게 속아 있는 겁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사람들은 사탄에게 속았다 하면 그것을 아주 엄청난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상당히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일입니다. 우리는 사탄의 여러 속임수에 대해서 즉 사탄의 전략과 전술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많지만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사탄에게 속을 수 있으며 이미 많은 부분에서 속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부터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기본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3절에서 바울은 다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은 스스로 속임이니라."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서 자기가 뭐가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탄에게 속았다는 이야기죠. 바울은 뭘 가지고 이런 말을 했겠습니까? 갈라디아서 6장 1-4절까지 나오는 내용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정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서로 짐을 져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은 스스로 속임이니라. 각각 자기 일을 살피라."

이것은 어떤 형제의 허물이나 실패를 보고 어떤 반응,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 하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어떤 형제가 허물과 실수와 실패를 나타내 보였을 때에 그걸 보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합니까? 마땅히 이래야 되지요. "아! 통탄스럽다. 왜 인류는, 왜 아담은 하나님 말씀을 안 듣고 사탄의 말을 들어 가지고 이렇게 어리석고 이렇게 허무한 존재가 되었는가! 왜 이렇게 서로 미워하고 물어뜯고 싸우고 죄 짓고 간음하고 도둑질하고 헛된 일을 추구하게 되었는가! 왜 우리는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거듭 저지르며 이렇게 부끄럽게 되고 이렇게 망하게 되었는가?" "왜 우리는 예수님이 구원자로 오셔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이루어 놓았는데도 그를 믿고 의지하여 승리하지 못하고 이렇게 실패하고 못난 모습을 또 보여야 되는가!" 이렇게 탄식하고 통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실패를 통탄하는 한편 저 사람의 저 실패와 연약이 바로 자기 모습인 것을 알고 안타까워하며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저것이 바로 내 속에 들어 있는 본성이고 내 문제다"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겁니다. "오늘은 이 형제가 이런 실패와 잘못을 저질렀지만 내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알아야 하는 거지요.

한편으론 죄와 실패를 통탄하고 한편으로는 사탄을 미워하고 저주하며, 한편으로는 형제를 긍휼히 여기고 한편으로는 그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자신을 돌아보며 자기를 일깨우는 것이 바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반응입니다. 성령께서 도와주셔서 우리가 다 승리할 수 있기를 원하고 얼른 주님이 다시 오셔서 세상 모든 악과 마귀를 없이하시기를 원하는 마음이 그리스도인이 품을 정상적인 마음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을 그렇게 하지 않고 형제를 비판하고 정죄하며 자기를 높이는 태도를 취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사람이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서도 된 줄로 생각하면 사탄에게 속은 것이다" 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형제의 실패가 나의 승리가 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한다고 해서 내가 잘하는 사람이나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의 실패를 보고 좋아하거나 그것으로 자기를 위로하며 자기는 참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모두 사탄에게 깊이 속은 것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7,8절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또 그전에 고린도교회에 대해서 이런 말도 했습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전6:9,10)

바울이 말하고자 한 것은 많은 사람이 놀랍게도 '심은 대로 거두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으며 그것은 어리석은 망상이며 그것이 바로 사탄에게 속은 것이라는 얘깁니다. 심기는 죄를 심고, 심기는 게으름을 심고, 심기는 육신의 혈기와 정욕대로 행하는 것을 심고, 심기는 하나님을 슬프게 하고 불순종하는 것을 심어놓고, 거두기는 (하나님은 은혜가 참 많으신 분이시니까) "너는 잘했다. 나와 함께 영원히 살자" 하는 것을 거둘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에게 속은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사람의 희망 사항과 진실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인생의 미래는 오직 하나님이 정하신 진리대로 됩니다.

물방울이 계속 댓돌 위에 떨어지면 결국 나중에 그곳에 구멍이 뚫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에 살던 초가집이나 스레트 집에 보면 그런 구멍 패인 돌들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하물며 계속 하나님을 거스르고 불의를 저지르며 진리를 역행하여 사는 사람이 어떻게 나중에 의와 진리의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영원히 함께 살겠습니까? 오직 심은 대로 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안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을 안합니까?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지금 당장은 아무 일이 없으니까 그렇지요. 현재 게으르고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주님을 의지하지도 않고 자기 할 일도 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지도 않고 진리의 길로 안가도 별 일이 없으니까 장차도 그렇게 될 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거나 불순종하면 하나님이 당장 벼락을 내려 심판을 하면 그런 생각을 안 할 텐데 그렇지 않으니까 "야! 하나님은 참 좋은 분이야. 그래서 은혜의 하나님이라고 하는거지. 내가 이렇게 살다가도 언제가 죽으면 하나님은 나를 기뻐하며 잘 받아주실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공부 안하는 학생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3학년 말에 대학 입시 치는 그 날까지는 공부를 전혀 안해도 별 일이 없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입시 치는 그 날까지 공부 안해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단 말입니다. 그냥 편안하고 좋지요. 오히려 코피 터지게 공부하는 사람만 불쌍하게 보이지요. 그러나 문제는 거두는 그 날에 생기는 거지요. 베짱이가 여름 내내 노래부르며 바이올린 켜고 보내지만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괴로움은 양식 걱정, 연료 걱정이 생기는 추운 겨울에 가서 생기는 겁니다.
우리는 속으면 안됩니다. 사탄은 계속해서 "괜찮다. 괜찮다. 그냥 이렇게 살아라.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도 어디 별일이 있더냐? 그리스도가 어디 오느냐? 전부터 재림한다 어쩐다 해도 오기는 어디 오더냐? 안심해라. 네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 이렇게 우리를 속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당장 별일이 없으니까 육신대로 사망을 심으며 '이렇게 살아도 죽으면 어떻게 좋은 대로 가겠지' 하며 세월을 허송하는 사람은 사탄에게 확실하게 속은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눈 밭에 드러누운 술주정뱅이가 몸이 얼어죽어 가는데도 술로 마취가 되어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 엎드러져 자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정말로 괜찮습니까? 자기가 괜찮다고 느끼고 있으니까 괜찮은 것입니까? 그러는 사이에 그는 시체가 되어가고 있는 겁니다. 위기를 느끼나 못 느끼나 아침이 되면 죽은 시체로 누워 있게 되기는 마찬가지지요. 내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속지 마십시오. 심는 대로 거둡니다.

예수의 생명이 괜히 우리에게 부어진 것이 아니고 그런 망상과 무기력과 실패의 자리에서 우리를 일으켜 세워서 하나님을 향해서 달려가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그 부름의 목적대로 이기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부어진 겁니다. 그런데도 주님을 향해 달려가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자유를 가지고 정욕을 위해서 살고 육체의 기회로 삼아 마구 살아간다면 그 사람의 마지막은 죽음과 멸망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고린도전서 3장 18절에서 바울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 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건 뭡니까? 세상 지혜를 가졌다고 해서 자기가 지혜롭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 말이죠. 그렇게 생각하면 사탄에게 속고 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내가 머리도 좋고 교육도 많이 받았고 경험도 많으니 뭘 하더라도 아주 잘 할 수 있으니 인생도 내 원대로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속은 생각입니다. 세상 생활을 성공적으로 산다고 해서 인생 전체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준대로 잘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준, 곧 최후의 날에 하나님이 사람을 받아들이실 것인지 버리실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 적용될 그 판단 기준과 원칙은 우리가 흔히 진리라고 말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사람들이 어릴 때부터 배우고 경험하면서 배운 인간 상식이라는 것과는 일치하는 부분도 있지만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상식과 진리, 사람의 일반적인 생각과 생명의 길 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컨대 세상 사람들은 힘을 삶의 방법과 지혜로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으뜸이 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하든지 기술과 기타 능력을 연마하든지 아니면 하다 못해 주먹이라도 키우든지 해서 어떻게 하든지 힘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힘으로 사람들을 눌러서 높은 자리로 올라가야 으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남 놀 때에 열심히 공부하고 기술을 익히고 돈을 벌고 해서 다른 사람 위로 올라가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남의 종이 되고 남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뭇 사람의 끝이 되어야 으뜸이 된다는 것입니다. 큰 자가 되려면 자기를 낮추고 남을 섬겨야 한다는 하나님의 원리는 세상 상식과는 반대인 것처럼 느껴지지요.

이것 뿐 아니라 많은 부분에서 세상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는 다릅니다. 목숨을 얻고자 하면은 잃고 하나님과 그 나라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세우신 법칙이고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건전한 세상 상식이 있고 영리하다고 해서 자기가 참 지혜자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인생은 잔꾀로 형통할 수 없고 하나님께는 사람의 생각이나 고집, 잔꾀가 통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인생을 지으실 때부터 세워놓으신 그 법칙에 충실해야 삶을 얻고 형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하나님의 진리는 어디서 얻으며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그리스도는 그 자신의 삶을 통해 진정한 인생의 길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로 가야합니다. 그러지 않고 단지 "나는 영리하고 아는 게 많으니까 나대로 가면 돼" 라고 해서는 안되는 겁니다.

여러분이 이미 자기 꾀대로 사는 것이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께 엎드려서 묻고 그 인도를 받아 사는 것'을 참 지혜라고 생각하고 계시다면 문제는 그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실천을 하지 않는 지식은 그 자체가 기만입니다. 생명은 지식으로 시작하지만 지식이 전부는 아닙니다. 지식은 행동을 위한 기초일 뿐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평소에 실제로 하나님께 엎드리는 일을 그다지 하지 않는다면은 그것은 여러분의 속 마음에 "나는 잘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깊이 자리잡고 있는 겁니다. 평소에 여러분들이 기도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안 기울이고 형제들의 말을 마음을 열고 깊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미 여러분은 자기를 신뢰하고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15장 33절에서 바울은 또 한 가지, 사람의 속고 있은 실상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이것은 사람이 죄와 접촉을 하고서도 그것이 자기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별 신경을 안 쓰는 것을 말합니다. 죄와 접촉하고 악한 자들과 교통하는 데도 자기가 죄에 물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를 너무 큰 자로 생각하는 것이며 결국 사탄에게 속아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사람들은 죄에 대해서 너무나 안일하고 허술한 태도를 취합니다. 무방비로 자기를 열어놓고 사는 겁니다. 아무 데나 가고 아무나 만나고 아무 일이나 하고 싶은 대로 해 버립니다. 그리고 마땅히 가야 할 자리와 마땅히 만나야 할 사람은 소홀히 합니다. "초보자들은 몰라도 내가 꼭 말씀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진리의 훈련을 거쳐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회 모임이나 말씀 집회나 형제들과 교제하는 자리에 꼭 갈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자기가 굉장히 힘이 있고 죄와 정면 충돌을 해도 자기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런 생각이 바로 사탄에게 속은 헛된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은 돛단배가 거대한 풍랑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근거없는 과신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죄를 가볍게 물리칠 수 없습니다. 내가 얼마나 약한 자인가! 바람 앞에 등불처럼 얼마나 작은 자이고 아무 것도 아닌 자인가 하는 것을 깊이 깨닫지 못하면 주님을 의지하지 않게 되고 주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고 사탄에게 지지 않으려고 해도 틀림없이 실패하게 됩니다.

지난 한 해를 지내오면서 우리가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계속 경험한 것이 무엇입니까? 매일 같이 "나는 참 약하구나 그런데 비해 사탄은 정말 강하고 집요하구나" 하는 것 아닙니까? 물론 그런 가운데 우리가 체험한 또 하나의 사실은 "그런 중에서도 하나님이 나를 참 잘 지켜 보호하셨고 큰 은혜를 베푸셨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 정도에 비해 하나님은 우리를 훨씬 더 붙드시고 보호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이런 모습으로나마 앉아 있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죄 정도야 내가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고 처리할 수 있다"고 건방을 떨어서는 안되겠지요. "사람 하나 만나고 하고 싶은 일 하나 하는 것 정도야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나는 얼마든지 그런 것을 이길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이 사탄에게 속는 것은 언제나 자기 속에 하나님의 생명도 있지만 타락한 본성 곧 사탄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어리석음도 함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데서 옵니다. 이것을 알면 거기에 맞게 대비를 해야지요. "주여! 나는 악하고 약한 본성으로 인해 사탄이 조금만 시험을 해도 자빠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이렇게 고백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지혜입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돕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교만한 마음으로 사탄에게 속지 말고 주님께 가서 주님과 모든 일에 동행함으로써 이기는 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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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음 (고린도후서 13:8) (녹취) - 황정자 자매 이상봉 2010.05.02 4847
56 진리 안에 있도록 형제를 권면함 (녹취) - 이성숙 자매 이상봉 2010.05.02 4537
55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역사 (고후13:13) / 2002.3.24 이상봉 2010.05.02 5053
54 기뻐하며 온전케 됨 (고후13:11) / 2002.3.17 이상봉 2010.05.02 4655
53 진리를 거스려 아무 것도 할 수 없음 (고후13:8) / 2002.3.10 이상봉 2010.05.02 4599
52 진리 안에 있도록 형제를 권면함 (고후13:5-10) / 2002.3.3 이상봉 2010.05.02 4424
51 믿음을 확증함 (녹취) - 이성숙 자매 이상봉 2010.05.02 4420
50 하나님께 쓰이도록 연단된 인격 (녹취) - 황정자 자매 이상봉 2010.05.02 4407
49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 (녹취) - 이성숙 자매 이상봉 2010.05.02 4503
48 사탄의 속임수 (녹취) - 이성숙 자매 이상봉 2010.05.02 4808
» 사탄에게 속음 (녹취) - 황정자 자매 이상봉 2010.05.02 4928
46 믿음을 확증함 (고후13:1-5) / 2002.2.24 이상봉 2010.05.02 5098
45 하나님께 쓰이도록 연단된 인격 (고후12:11-13:2) / 2002.2.17 이상봉 2010.05.02 4574
44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 (고후12:5-10) / 2002.2.10 이상봉 2010.05.02 5400
43 약한 것을 자랑함 (고후12:1-10) / 2002.2.3 이상봉 2010.05.02 5124
42 자기를 통해 그리스도를 표현함 (고후11:16-30) / 2002.1.27 녹취 이상봉 2010.05.02 4619
41 수동성의 위험 (고후11:13-15) / 2002.1.20 이상봉 2010.05.02 4567
40 사탄의 속임수 (고후11:14,15) / 2002.1.13 이상봉 2010.05.02 4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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