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lde1
slide2
slide3
slide4
"이 달 십 사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12:6,7)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에게 벌을 내리리라. 나는 여호와로라.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12:12,13)

애굽의 모든 장자들을 죽이시는 그 마지막 재앙의 날 밤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그들로 양을 잡고 그 피를 문에 바르도록 명하셨다. 어린 양의 피가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는가?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애굽인들의 장자만 죽인 것이 아니라 그 땅에 있는 모든 장자들을 죽이시려고 나섰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장자들을 죽이려고 하신 것은 그 땅을 심판하시려 한 것 즉 세상의 모든 죄를 심판하시려 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애굽인들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그 땅의 애굽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도 똑 같은 죄인들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칼날은 민족을 가리지 않으며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진리를 따라 의를 따라 심판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지 않고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잡아먹은 어린 양이 그들의 목숨을 대신하여 피를 흘리고 죽었기 때문이다. 그 피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흘린 피를 상징한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기 위해 자기의 피를 뿌리셨다.

그러므로 사망의 심판이 온 땅을 덮을 때 죽음이 이스라엘 사람의 집을 넘어간 것은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있었기 때문도 아니고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혈통을 가지고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그들의 집에 어린 양의 피가 발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뿐이다. 아담은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아담은 절대로 세상을 멸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칼날을 피할 수 없다. 아무도 죄를 보유한 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다. 그리고 또한 사람의 죄라는 것은 그 사람과 분리될 수 없다. 사람은 그대로 있는데 죄만 제거하거나 사람 안에서 죄의 뿌리를 뽑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죄(잘못된 행위)는 죄인 즉 잘못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므로 죄 문제는 반드시 사람 자체가 죽어야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그러므로 죄인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분명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인간의 모순된 욕망들 곧 육신의 모든 정욕과 야망을 그 분의 능력으로 다 이루어주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죄인을 받으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하나님이 하실 수 없다. 사실 알고 보면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것은 딱 한 가지뿐이다.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것은 그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정한 은혜, 하나님의 진정한 능력의 역사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그 안으로 우리를 넣고 우리를 처리하시는(죽이시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하실 수 있는 유일한 역사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실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바로 그것이다. 죽어야 할 것을 죽이는 것 그리고 하나님 자신의 새롭고 온전한 생명을 사람에게 불어넣음으로써 사람을 새롭게 하시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람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이고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참 능력이다.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일 자신들은 약속의 백성이므로 애굽인들과 다르다고 생각하고 그대로 있었다면 그들은 다 죽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심판의 칼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 칼은 오직 의와 불의만 알아본다. 그것은 오직 생명의 어떠함만 분별한다.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자가 아니면 아무도 하나님의 심판을 비켜가지 못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의 또는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자들이 아닌가? 아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독생자 외에는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다 타락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상실했다. 그러므로 다 죽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거듭난 자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모든 특권은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이 한 가지 사실 즉 십자가를 거친 자라는 이 한 가지 사실 위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져야 한다.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로 굳게 서 있어야 한다. 이 죽음을 놓칠 때 우리는 정말로 죽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자기 생명을 버리는 것이며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을 날마다 우리 안으로 깊숙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의로운) 자가 되어 사망의 심판을 면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심판을 통과하는 아들의 생명을 누리려면 먼저 우리 자신의 생명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날마다 순간마다 계속 되어야 한다. 자기를 부인함이 없이 아들의 영광스러운 생명을 누릴 수는 없다.  



피를 문에 바르는 것과 동시에 이스라엘은 양의 고기를 먹고 그와 아울러 떡과 나물을 먹어야 했다. 그 떡은 누룩을 넣지 않은 맨 빵 즉 무교병이고 나물은 양념하지 않은 쓴 나물이었다.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12:8,9)

어린 양을 불에 구워 먹으라고 한 것은 맛을 위해서도 아니고 소화가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오직 그 양이 자기를 십자가에서 번제와 같이 드린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에는 여러 제사가 있으나 가장 완전한 제사 형식은 번제(燔祭;불에 태워 드리는 제사)였다.

누룩을 넣지 않은 떡(무교병) 역시 순수하고 진실한 생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공급하기 위해 제공되는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누룩은 종종 진실하지 못한 것 즉 육에 속한 성분을 의미하고 있다. 애굽을 나가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새 삶을 시작하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룩을 그들에게서 완전히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너희의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고전5:6-8)

쓴 나물 역시 어린 양의 고기나 누룩 없는 떡과 마찬가지로 가미되고 윤색되지 않은 순수한 생명의 양식이신 주 예수님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흠 없는 어린 양의 고기를 먹고 누룩 없는 진실한 떡과 양념하지 않은 쓴 나물을 먹게 하신 것은 그들의 생명을 거룩한 생명으로 바꾸셨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시하기 위한 것이다. 애굽에서 나가기 전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살 때 소유하고 있던 자연적 생명 곧 그들의 육적 생명을 철저히 제거하고 대신 그리스도의 흠 없고 거룩한 생명으로 그들의 속을 채우려고 하셨다.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燒火)하라" (12:10)

어린 양의 고기를 밤에 다 먹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라고 한 것은 지난 주에 함께 생각한, 어린 양을 일부만 먹지 말고 한 마리 전체를 이웃들과 그룹을 만들어서라도 다 먹어야 한다는 사실과 함께 그리스도를 전체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진리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왜 우리는 그리스도를 다 받아들여야 하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여기서 출애굽과 관련하여 말하자면 출애굽이 어린 양의 고기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제 날이 새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나와서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될 것인데 그 새 삶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사는 삶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린 양의 고기로 상징되는 하나님의 생명(양식)을 충분히 먹지 않고는 그 삶을 시작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언제나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누리며 생명을 얻은 후에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에덴에서의 아담의 삶도 지음을 받은 후 곧장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감으로 시작되었다. 또 오늘 그리스도인들도 주의 날(일요일, 일주일의 첫 날)에 모여서 그리스도로 안식한 후 그 삶을 시작한다. 이것은 다 같은 원리이다. 그러므로 양을 충분히 먹지 않고는 애굽을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9 시내산 언약 (1) (출19장) / 녹취 이상봉 2010.05.03 6025
38 이드로의 등장과 조언 (출18장) / 녹취 이상봉 2010.05.03 5339
37 그리스도인의 싸움 (출17:8-16) / 녹취 이상봉 2010.05.03 5253
36 아말렉과의 싸움 (출17장) / 녹취 이상봉 2010.05.03 5291
35 만나의 의미 (2) (신8:2-6,15-18) / 녹취 이상봉 2010.05.03 5207
34 만나의 의미 (1) (출16:13-30) / 녹취 이상봉 2010.05.03 4980
33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 (출16:4-5,16-20) / 녹취 이상봉 2010.05.03 5079
32 치료하시는 하나님 (출15:22-16:5) / 녹취 이상봉 2010.05.03 4929
31 하나님의 역사와 찬양 (2) (출15:1-18) / 녹취 이상봉 2010.05.03 4840
30 하나님의 역사와 찬양 (1) (출14:31-15:18) / 녹취 이상봉 2010.05.03 4651
29 홍해를 건넘 (출14:21-31) / 녹취 이상봉 2010.05.03 6086
28 약속과 믿음, 행동 (2) (출14:15-20) / 녹취 이상봉 2010.05.03 5008
27 약속과 믿음, 행동 (1) (출14:10-16) / 2007. 8. 19 이상봉 2010.05.03 4575
26 믿음을 기르시는 하나님 (출13:17-14:4) / 2007. 8. 12 이상봉 2010.05.03 4912
25 장자의 나라 (출13:1-16) / 2007. 8. 5 이상봉 2010.05.03 6182
24 출애굽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 (출12:40) / 2007. 7. 29 이상봉 2010.05.03 4527
23 유월절을 지킴 (출12:1-19) / 2007. 7. 22 이상봉 2010.05.03 4627
22 우리의 싸움 (출12:11-23) / 2007. 7. 15 이상봉 2010.05.03 4684
»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 (출12:1-14) / 2007. 7. 8 이상봉 2010.05.03 4504
20 새로운 인생의 출발 (출12:1-14) / 2007. 7. 1 이상봉 2010.05.03 5242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