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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과 믿음, 행동 (1)


출애굽기 14:10-15


1.약속과 믿음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의 군대가 그들에게 다가오자 거의 미칠 지경이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한편 모세를 크게 원망했다.
"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14:10-12)
이러한 백성들의 태도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볼 수 있다. 그들은 애굽에서 오래 머무는 동안 이미 철저한 애굽인이 되어 있었다. 몸만 애굽의 노예였던 것이 아니라 마음도 애굽의 노예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출애굽기 14:1-4을 보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이 처하게 될 상황을 그 백성들에게 미리 예고하셨고 백성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인도에 따라 여기까지 이른 것이다.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자 그들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약속은 사라지고 오직 두려움과 불신앙만 가득하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도 그 약속도 열 가지 표적을 통해 그들을 애굽에서 건지신 하나님의 능력도 믿지 못하는 패배적이고 비관적인 정신의 소유자였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오늘날에도 몸만 애굽(세상)을 빠져 나왔을 뿐 마음은 여전히 애굽에 있어서 그저 육체의 평안과 육체의 일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들은 결국 약속의 땅(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부르신 목적은 그들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함이다. 이것을 모르고 그 마음이 여전히 세상에 속한 자로 남아있는 사람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연단을 받아야 한다. 그리하여 패역(悖逆)하고 불신앙적인 애굽인(옛사람)의 허물을 다 벗어야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늘에도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행동한다. 그토록 하나님을 체험하고서도 새로운 어려움만 만나면 마치 이전에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처럼 불신앙적이고 완고한 태도를 보이며 하나님을 원망하며 낙심한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타락한 인간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여준 행동은 인간이 얼마나 절망적인 죄인인지 그리고 맙坪?얼마나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주권적인 은혜의 산물인지를 말해준다.

예를 들어 훗날의 일이지만 다윗이 절망적인 위기를 만났을 때 나타낸 모습을 보면 그가 본래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별 수 없는 인간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망하리니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경내에서 나를 수색하다가 절망하리니 내가 그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일어나 함께 있는 육백 인으로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삼상27:1,2) 그러나 결국 상황은 어떻게 흘러갔는가? 그의 부정적인 예상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처음 계획대로 되었다. 사울은 길보아 산에서 죽고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왕이 된 것이다.

잠시 혼란이 있을지라도 일은 언제나 결국 하나님의 정하신 대로 된다. 악인이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일은 없으며 거짓이 영원히 진리를 이기는 일은 없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며 만사는 언제나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흘러간다.

다윗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대표적 믿음의 사람 중 하나인 엘리야도 마찬가지였다.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왕상19:4-14)
엘리야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갈멜산에서 방금 체험했지만 이세벨의 끈질긴 핍박에 두손 두발을 다 들고 말았다. 사실 그의 절망은 단지 이세벨 때문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같이 진리의 편에 서지 않고 우상과 거짓 쪽에 붙어 있었던 데서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한 번 낙심하게 되자 엘리야는 하나님이 어떤 격려와 위로를 하시고 어떤 약속의 말씀을 주셔도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고 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큰 세 가지 표적을 보여주심으로써 그의 능력을 입증하셨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처음과 똑같은 낙심의 말을 했다.(왕상19:9-14) 그러나 결국 상황은 어떻게 흘러갔는가? 이세벨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길에서 비참하게 죽고 엘리야는 하늘에서 내려준 병거를 타고 하나님께로 갔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그리고 다윗도 엘리야도 은혜가 없이는 하나님의 목적에 이를 수 없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전15:10)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를 받아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열려 있고 우리의 손과 발이 하나님의 일에 장단을 맞출 수 있도록 은혜를 받아야 한다.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은혜(믿음, 지각)가 없으면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저주로 생각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광야에서 죽어 엎드러지도록 하기 위해 애굽에서 애써 건져내셨다고 말하는 오류에 빠졌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을 행하시고 어린 양의 피를 뿌리시면서 그들의 생명을 건지신 것이 어찌 광야에서 매장되게 하기 위함이겠는가?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기쁘시게도 할 수 없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어려움을 해석하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은 어려움 안에서 하나님을 해석한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신실하심 안에서 바라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름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어떤 시련과 위기를 만나더라도 그는 언제나 일을 낙관하며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어려움 속에서 두려워하면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그가 믿는 대로(?) 거친 광야에서 엎드러지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민14:2,3) 이러한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언제나 그들의 믿음에 부응하는 것이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민14:27-33)


2.믿음과 행동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14:13,14)

사탄이 성도들을 위협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일시적이나마 허락하시는 것은 그것을 통해 성도의 믿음을 시험(단련)하고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체험토록 하기 위함이다. 믿음의 사람은 위기에 처했을 때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펼치시는 구원의 손길을 지켜보며 즐길 수 있다. 위기를 만날 때 인간의 자연적 본성은 '무엇인가를 좀 해보려고 우왕좌왕하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은 그런 본성을 누르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가만히 서 있게' 만든다. 벽에 부딪힐 때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좋은 일은 하나님을 믿고 그의 일을 지켜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싸울 수 있도록 자리를 내 드리고 가만히 서서 그의 구원을 지켜보는 것이 최선이다.

불신앙은 사람으로 하여금 시련과 위기를 만날 때 하나님이 그 일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계시다고 생각하게 만들며 따라서 자신의 힘으로 무언가 애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절망적인 상황에서 사람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아무 것도 없다. 어차피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다.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인해 무익한 자신의 노력을 자제하고 하나님 앞에 가만히 서 있게 만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요동치 않고 평안함을 누릴 수 있게 만든다.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지켜보는 것은 상황을 무시하거나 회피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며 사실은 일을 가장 잘 처리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14:15)

왜 부르짖을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시는가? 이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이끌어 들이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어떤 난관이나 방해를 만나더라도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권위와 권능으로 백성들을 데리고 가나안을 향해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 만나는 모든 문제는 그에게 위임된 하나님의 권세(지팡이로 대표됨)를 행사하며 돌파하면 된다.

문제는 환경이 어떠하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어떠하냐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곤경 여부가 아니라 약속 여부이다. 하나님의 뜻이 섰으며 약속이 있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어떤 길을 가도록 명하시고 그 목표에 이를 것을 약속하셨다면 길을 가다가 만나게 되는 어려움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일지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지 약속을 따라 행하지 않고 자기 뜻에 따라 임의로 행할 때 모든 일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확실하고 약속이 확실하게 있다면 약속을 따라 진행하는 도중에 만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일일이 하나님께 말할 필요조차 없다. 담대히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마태복음 8:24-26을 보면 주님의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는 동안 풍랑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며 주님을 깨운 기사가 나온다. 이때 주님은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라고 하시며 책망하셨다. 그 이유는 그들이 단지 풍랑을 보고 두려워했기 때문이 아니라 8:18에서 이미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호수 저편으로 건너갈 것을 명하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명하셨다는 것은 곧 제자들이 배를 타고 무사히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게 될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풍랑이 일든지 벼락이 치든지 배는 어차피 호수를 무사히 건너게 되어 있는 것이다. 제자들이 주님의 명령과 약속을 깊이 깨닫고 있었다면 위경(危徑)에서라도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라고 외치며 절망 중에 주님을 깨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신자들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할 때와 가만히 서서 기다려야 할 때와 행동해야 할 때를 올바르게 분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르짖어야 할 때에 가만히 있거나 행동을 해 버리기도 하고, 가만히 서서 기다려야 할 때에 부르짖거나 행동을 해 버리기도 한다. 모세처럼 마땅히 행동을 해야 할 때에 자꾸 부르짖기만 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어차피 영적 삶은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약속과 믿음을 따라 진행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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