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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 (출16:4-5,16-20) / 녹취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제 육일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예비할찌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 (출16:4-5)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의 식량대로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인수대로 매명에 한 오멜씩 취하되 각 사람이 그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취할지니라 하셨느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모세의 말을 청종치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출16:16-20)

읽은 말씀속에 하나님이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서 그 백성들을 먹이시는 내용이 나와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출16:4) 일용할 양식을 하루하루 하나님이 주시고 하루하루 거두는 그러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성도에 대한 하나님의 모든 공급의 법칙은 바로 이겁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이 가르쳐주신 마태복음 6장에 나와있는 기도의 내용을 모르는 분이 없을겁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그러나 우리는 사실은 불만이 있습니다. 왜 한꺼번에 넉넉히 주셔서 우리로 걱정없이 살게 하시지 않고 꼭 날마다 필요한 만큼만 주시는가? 하는것이죠. 그것은 아마 여러분 마음안에 질문도 있고 대답도 있을겁니다. 그 대답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날마다 그와 함께 있도록 그것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로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날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계속, 어느한때 사랑하고 뒤에는 모른척 하는 것이 아니고, 계속 그의 곁에 있으며 그의 은혜를 누리며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날마다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죠.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와 늘 같이 있고 싶은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것인가? 우리에게 양식을 일용할 만큼이 아니라 한꺼번에 왕창 주셔가지고 더 아쉬움이 없게끔 그렇게 주신다면 어떻게 되는가? 우리가 사람을 믿을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사람이 우리의 경험상 믿을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 결과를 비관적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이 구비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더 이상 찾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을 것이고 더 이상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찬송하지도 아예 하나님을 안믿을 겁니다. 이것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체질을 아시는 분이니까, 하나님은 한꺼번에 모든 것을 주시지 않고, 그때 그때 조금씩 우리에게 주셔서 항상 그와 함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간단하고 분명한 원리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 하는 이것은 완전한 삶의 틀입니다. 아무 문제가 없어요. 하나님이 일용할 양식을 주시면 우리가 광야길에서 아무 부족함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다만 이런식으로 사는데는 한가지,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일용할 양식을 받더라도 걱정없이 편안히 살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꼭 평생 교육비를 보험으로 넣어 놓던지, 통장에 넣어놓고 그것을 손에 꽉 쥐고 학교 다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부모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부모가 언제 직장에서 떨어질지도 모르는데, 그렇지만 그런 것을 다 보장을 받고서 그때서야 편히 잠을 자고, 그때서야 학교를 가는 것은 아니지요. 이건 뭡니까? 부모를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까지 나에게 해준 것으로 볼때 앞으로도 '내가 공부하기 싫은 것이 문제지, 내가 공부할 수 없도록 돈을 부모가 안 대주고 돈을 못 대주는 것이 문제다'라고는 아이들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사람도 그정도의 믿음은 필요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편안하게 살수가 없어요. 하나님 나라에서 편안하게 살려면 첫째조건이 믿음입니다.

이 하나님을 못 믿으면 우리가 하루하루 사는것이 매일 불안한 줄타기 하는것처럼 그렇게 될 겁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적합하지 않은거죠.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지 말고, 가서 자기방식대로 따로 미더운 인생을 살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알므로서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편안하고 안심이 되는 그런사람이라면 여기 들어와서 사는데 아무 문제가 없고 또 그게 제일 좋습니다. 우리가 이런 믿음이 있으면 이제 우리 생활에서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숨쉬게 하시고 하루 해뜨고 하루 해지고 이렇게 하듯이 우리에게 오늘 하루 살게하시는 이걸로 충분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개인적인 평안과 감사뿐 아니라 이게 밖으로 흘러나가서 우리 인생이 여유롭게 될 수가 있습니다.

지금 이것과 관련해서 우리가 조금 전에 후반에 읽었던 부분있죠? 16장 16~18절 말입니다. 여기 보면 식량을 거두는데 '한 사람당 한 오멜씩을 취하라' 그랬습니다. 한 오멜이라는 것은 한 항아리 정도쯤 되는거에요. 조그마한 항아리인데 '그날 하루 세끼 먹을 양식 정도의 분량을 거두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식구가 4명이면 4명 다 나가야 되는것은 아니고, 한사람이 나가서 4명분을 거두어 오는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우리가 이때 무슨 그릇이라고 하는게 규격통일된 양푼이나 스텐 냄비같은게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나무껍질이나 이런걸 가지고 그럭저럭 엮어가지고 있는 바구니 같은 것 하나 있으면 그것만 해도 대단한 그런 상황 아니겠습니까? 지금 여기 광야에서 아무것도 없는 상황인데, 그런 통이라는게 뭐 규격품이 아니지요. 그런데 거둘때 아무래도 자기식구보다 넉넉하게 거두어 오겠지요. 4인분 같으면 4인분 될만큼 딱 재어 가지고 더 되면 덜어내 버리고 이렇게 거둬오지는 않을겁니다. 아마 많이 거둬오겠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힘이 없거나 게을러 빠졌든지 그래가지고 거두는데 조금밖에 못 거둬오는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희안한 일은 집에 와서 식구대로 분배를 해보면 딱 맞다 이겁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 (출16:17,18) 희안한 일이죠. 이건 분명히 하나님의 무슨 마술같은게 작용한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많이 거둔사람도 남지않고, 적게 거둔사람도 모자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늘에서 우선 이 식량이 내려온 것 부터가 기적아닙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뭔가 하루하루 양식을 주신다는 자체가 기적인데, 사실 아까 초두에 기도할때도 제가 그 마음이었습니다만,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있다는 자체가 기적입니다. 이 기적이 전제가 안되고 나머지 기적을 말하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죽는사람은 왜 죽습니까? 이 세상에 병균이 모자라서 우리가 덜 죽습니까? 환경이 죽을 환경이 안되어서 우리가 안죽습니까? 죽을라면 얼마든지 죽을 수 있고, 우리가 세상에서 위험에 처할려면 얼마든지 처할수 있는데, 하나님이 어쨌든 살게 하시는 겁니다. 심판의 날까지 세상의 불신자들 조차라도 하나님이 보존하십니다. 우리가 그런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다' 이렇게 말하면 안됩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여기서 거두었을 때에도 남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그것 알면 어떻게 행동하면 됩니까? 알면 우리의 생활속에서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해야 됩니까? 하나님의 모든 공급이라는 것은 소유를 위해서, 다시 말해서 축적하도록 쌓아놓고 ‘아! 편안하다 이제 걱정없겠구나’ 이렇게 하라고 주신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생명의 실제적인 필요를 위해서, 그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서 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공급에는 결코 과부족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실제로 보면 능력이 다 다르지요. 우리가 장사를 하든지, 직장생활을 하든지 뭘 하든지 간에 돈버는 것이나 수확하는 것이 다 같지를 않습니다. 유능한 사람들은 많이 벌어요.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적게 벌지요. 적게 번다고 해서 죽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은 다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안에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구요 이 세상에서라도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라도 인간이란게 굉장히 이기적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모두들 한푼이라도 더 벌고 더 뺏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지만, 세상의 전체적인 구조는 어떻습니까? 가난한 사람들에게 예를 들어서, 아무힘도 없고 70,80되어서 병석에 드러누워 있는 그런 노인들에 대해서 어떻게 합니까? 국가에서 한달에 몇십만원씩 줍니다. 밀가루라도 줘서 먹고 살게하고, 그 다음에 복지센타 이런데 연결 해가지고 몸이 불편하거나 이런 사람들 가서 돌아보게 합니다. 이것 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입니까? 이것 다 사람의 심령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들어있고, 그런게 사람을 쑤셔서 자극해서 만들어 낸거에요. 이건 하나님이 시킨 일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의를 찾아볼 수가 없고, 선한 마음과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이러한 것을 보기 어려운 것 같은데도 이 세상 전체를 놓고 보면, 그 가운데 한쪽에서는 전쟁도 있고 죽이고 빼앗는 것도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실행되게끔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모든 공급이 언제든지 남는것도 없고 모자라는 것도 없도록 그렇게 되어 있다는 한 원칙을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많은 것 같지만, 나중에 가보면 필요이상의 것은 다 없어지고 말아요. 여러분, 돈 많아보세요. 한번 앞으로 재주가 있든가 해서 돈을 한번 많이 벌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돈 많이 벌면요 그 돈이 그렇게 계속 쌓여가지고 자기의 생명이 되고 자기의 미래가 되고 그렇게 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필요이상의 돈, 그건 물론 현재의 필요 만이 아니고 미래의 필요까지를 포함해서 말이죠. 필요이상의 돈은 어디 가서 허튼데 다 쓰든지, 자연히 다 날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강도질을 하거나 무슨 도둑질을 하거나 사기를 쳐서 돈 버는 사람들 보십시오. 전에 어떤 사람보니까, 타짜였다 하는 사람, 지금은 예수를 잘 믿고 있든데 그 분이. 자기가 카드도박판에서 하룻밤에 10억 인가를 딴적도 있답니다. 20~30년전에 하룻밤에 십억을 땄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한달 내에 다 날리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그러니까 여자집이나 술집 이런데 가서 여자들에게 몇천만원씩 1억씩 푹푹 쥐어주는 겁니다. 우리생각 같으면 팁은 한 만원만 주고 재겨놓았다가 그렇게 평생 호화스럽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그 사람이 그렇게 살수 있는 사람같으면 땀흘려서 하루에 만원씩, 2만원씩 벌고 그렇게 살았겠지요. 그 돈은 절대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돈도 벌수 있었고, 그러니까 한방에 왕창 무슨 대박을 터뜨리는 그런것을 추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돈을 벌수 있었고 그 다음에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을 또 절대로 지킬수가 없다는 겁니다. 반드시 날리게 되어있다는 것이지요. 그 사람은 지금 산청 어디서 물고기 잡고, 옥수수 심고 그렇게 사는데 아주 행복하게 살더라구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문자그대로 하나님이 주시는 겁니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너 살아라’ 해서 오늘 우리에게 이런저런 경로로 무슨 장사를 하든지, 뭘 하든지 해서 벌어먹고 살게 하는겁니다. 이것은 전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줄 알아야 되요. 하나님이 만나로 꼭 내려주는 것만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만나라는 형식으로 기적적으로 주면, 보기도 쉽고 이해하기도 쉽고 ‘아이구 하나님에게서 왔구나’ 이렇게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모든 것이라도 전부 하나님이 주시는 겁니다. 그런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은 전부가 대원칙이 뭐냐하면 ‘사는데 필요한 만큼만 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많이 거두는데요?’ 많이 거두면 어떻게 합니까? 다음날 아침되면, 우리 안읽은 그부분 보십시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아무든지 아침까지 그것을 남겨 두지 말라 하였으나 그들이 모세의 말을 청종치 아니하고 더러는 아침까지 두었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노하니라” (출16:19,20) 뿐만 아니라 21절 보니까 “무리가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고 해가 뜨겁게 쪼이면 그것이 스러졌더라” (출16:21) 이거는 조금 다른문제이긴 하지만, 어쨌든 일용할 양식 이상의 것들은 하나님이 남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까 사기를 치다시피해서 떼돈을 버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남기지 않는것이 아니라 자기가 저절로 다 날리는 것이지만, 만일 어떤 사람이 꽁꽁 쥐고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날리실 것입니다. 전도서에 보면 ‘많은 재물을 모은 큰 부자가 나중에 죽을때 보니까 그 사람은 쓰지도 못하고 그 모아놓았던 것이 딴사람에게, 남좋은 일 다 하는걸로 끝나더라’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큰 재벌들 이런사람들 보면, '그것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고 생명 구원하는 데 썼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을 막판에 꼭 남기는데, 그 사람들 보면 자기는 걸어다니고, 옛날에 무슨 회장이다 뭐다 하는 이런 사람들 보면 평생 고생하면서 떨어진 옷 기워입어 가면서 그렇게 살다가, 된장국물이나 호박잎 이런 것 가지고 식사를 늘 했다고 해요. 그런거야 한달에 월급 50만원이나 100만원만 받아도 먹고살수 있는건데, 그 사람들은 수백억 수천억 재산을 가지고도 그렇게 살고, 회사까지도 건강을 위해서 걸어다녔다고 그래요. 그런데 남는 재산은 뭔가? 자식들이 피 터지게 싸우는 거기에 도구로 쓰이는 것 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룸싸롱같은데 가서 보복폭행사건 이런거나 일으키는 그런것 뿐이지요.

우리가 하나님앞에서 은혜로 받는 모든 것들은 꼭 우리의 생명에 보탬이 되는 그 정도만 남고, 나머지는 다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해야 됩니까? 우리가 미리 써야지요. 만일 어떤 사람이 손에 힘이 없어가지고 가져오는걸 조금 밖에 못가져왔다고 합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두배세배나 거두었다면, 만나는 그렇게 되지는 않아요. 만나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교훈을 각인시켜주기 위해 아마 그랬던것 같은데, 적게 거둬와도 양이 충분하게 되어지고 남는 사람도 없어지거나 썩어지거나 해서 저절로 맞춰졌어요. 그런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는 그렇지 않지요. 월급을 1000만원 받는사람도 있고 50만원 받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20배 차이나는 이거는 우리가 서로 맞춰야 됩니다. 저절로 돈이 옮겨다니지는 않아요. 그런데 우리가 이 지식이 있다면 그렇게 하는게 절대 힘든일이 아니지요. 우리가 떠래미하는 무슨 채소나 생선이나 빵 이런거 파는거 보세요. '오늘 이거 지나고 나면 값이 똑 떨어져서 못팔거나 아니면 몇분의 일 가격으로 떨어진다' 그러면 지금 내가 30%정도 깎아서 파는게 힘드는 일입니까? 우리가 백화점 같은데나 할인점에 가면 밤11시나 12시나 이래되면 그 떠래미파는 사람들 나와가지고 ‘반값에 팝니다’ 하면서 큰 선심 쓰듯이 떠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실은 그때 우리가 사도 물건은 괜찮은 것이고, 그 다음에 값도 저렴하니까 서로에게 좋은일 하는거지요.

우리인생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많은 것들이 있는데, 이것들을 하나님의 삶의 정하신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주시하는 사람이라면 미리 나누는게 좋습니다. 그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헛되이 염려하지 마세요. 헛되이 탐욕을 부리지도 말고, 괜히 염려하지 마시라고요. 만일 어떤 사람이 암만 노력해도 죽밖에는 못번다 그러면 어떤사람이 죽에다가 밥이라도 몇술 보태줄 수도 있는거고요. 우리가 하나님안에 있을때, 그 다음에 그것도 안되면 죽만 먹고도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일은 다 마치고 갈수도 있습니다. 걱정할 필요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이것을 지금 몇 년 배우게 됩니까? 이 광야 생활을 한것이 40년이죠. 가나안에 들어갔을때 첫해 농사지어서 생산물이 나오기까지 그렇게 되었으니까, 40년 이상의 세월을 이것 매일 체험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배웠어야 되겠죠. 이 사람들이 항상 '하나님의 손안에서 우리 삶은 보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일 염려 하지 말고 오늘 하루하루 하나님이 주시는 것들을 받아서 감사하고 잘쓰고 그 다음에 생명의 힘을 가지고서, 건강을 가지고서 하나님 찬송하고 사람들을 사랑하고 이렇게 하나님의 목적대로 인생을 사는 데에 거기에 관심을 갖자 거기에 신경을 쓰자' 이렇게 되었어야 되는데 중요한 사실은 이게 안되었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것은 인간의 체질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아담이 타락했다 하는것은 하나의 그냥 하는 말이 아니구요. 정말로 사람이라고 하는것은 희안한 물건이라는 것입니다. 정말로 왜곡되고 비뚤어진 존재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 사실을 지식적으로 안다고 해서 '우리는 그렇지 않을거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부인하는 내용은 자기의 두려움과 걱정과 염려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탄에게서 온 거짓말입니다. ‘너는 잘못하면 죽을거야’ ‘너는 말라 비틀어질거야’ ‘이렇게 가만있다가는 큰일날거야’ 이런 생각들이 엄습해 올때 우리가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분이 나를 공중의 먼지같은, 존재도 아닌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나를 만들어내셨고, 오늘 이 자리로 이 정도까지 키우셨다 하나님이 나를 그의 아들의 영광에 이르기까지 완전하게 변화시키고 완전하게 만들어 가시는것도 그건 확실한 일이다, 그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나에게 와서 그런 얘기 하지마라’ 하고 여러분들이 사탄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을 해야 됩니다. 이걸 매순간 하셔야 되요. 그리고 우리가 이런 말씀으로 피차 가르치고 권면해야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신기한 일을, 집에 양식을 가져왔는데 적게 가져온 사람도 나중에 보니 딱 맞고, 많이 가져온 사람도 저절로 다 없어지는, 그런 기적을 체험한다는 것이 적은 일입니까? 이것을 매일 체험하는 데도 그걸 못 배운다는 것입니다. 못배우는 내용중의하나가 이사람들 생활속에서 나타났는데, 이게 뭡니까?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출16:4) 뭘가지고? 6일째 되는 날에는 이틀치 양식을 거두어 오도록 하나님이 해 주겠다는 겁니다. 이틀치 양식을 거두어 왔을때 문제가 뭡니까? 하루가 지나면 썩어버리는것 아닙니까? 그런데 희안하게 토요일이 안식일이라고 할때, 금요일날은 이틀치 양식을 거두어 왔는데, 그것이 토요일까지 지나도록 안썩는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기적이지요. 하늘에서 양식이 매일 자고나면 아침에 이슬 내리듯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것도 기적이고, 이걸 많이 거두나 적게 거두나 그 양식이 우리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이 충분하다는 그것도 기적이고, 그 다음 또 뭡니까? 6일째 되는 날에는 이틀치 양식을 가져왔는데 썩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하시는게 뭡니까? '7일째 되는날, 토요일에는 거두러가지 마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일이니까. 하나님 주는 것을 떠먹는 그것도 일이니까, 사실은 일도 아니지만, 그래도 쉬어라는 것입니다. 이 쉼이라고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것 아닙니까? 지금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서 하나님이 사람을 먹여 살린다는 것은 '사람이 수고하고 일하고 몸부림 쳐가지고 자기 목숨을 부지하고 자기 삶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벌써 말해주고 있지요. 그 자체가 그것 아닙니까?

우리가 농사꾼이 땀흘려 일 한다고 하지만, 땀흘려 일 한다고 하는것은 사실은 생명이 자라게 하고 곡식이 자라게 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곡식이 자라고 곡식이 만들어지고 하는것은 전부 하나님이 100%하는 일이고, 우리는 뭡니까? 그것을 거두어 먹는 일을 하는거지요. 작년에 하나님이 주신 곡식가지고 그것을 뿌려 놓았다가 말하자면, 복권 사는것과 똑 같습니다. 1등 복권 사는데 큰 수고를 했다 할수 있습니까? 복권 1000원 주고 하나 샀다 이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10억원이 되었다 하면, 그 10억원을 만드는데 내가 큰 기여를 한게 뭐 있습니까? 복권 사는 그것도 '신발 닳구고 고생많이 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것은 아니잖아요. 결국 이것 자체가 뭡니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산다는 거고, 그분이 거저 주셔서 사는 인생이니까 걱정하고 염려하고 이마에 땀이 나도록 그렇게 인생자체를 분주하게, 하나님 말씀도 다 잊어버리고 사람이 뭐하고 살아야 되는가? 이런것도 다 간데 없도록 그렇게 먹고사는 자체에 온 신경을 집중하지 마라' 이것입니다. 그래서 '토요일에는 아예 거두러 가지도 마라' 이것입니다. 그래서 '토요일에는 왕창 쉬어라' 이겁니다. 소젖 짜먹고 양젖 짜먹는 이런일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에요. 사실은 공짜로 애기가 엄마 젖꼭지 대놓고 빨아먹는 그것아닙니까? 그게 무슨 일이라 할수 있습니까? 그렇지만 ‘그것도 하지 마라’ 이겁니다. 그러니까 완전하게 휴식을 취함으로서 우리가 뭔가를 말을 하는거지요. ‘아! 내가 산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살게 하시는 것을 그저 받아 챙기는 것 뿐이구나’

그럼 직장다니는 것은 일 아니냐? 직장다니는 것이 일은 일이지요. 무슨 일이냐 하면, 돈 벌어 먹고 사는 일이 아니고,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살게했다면 뭔가 목적이 있을것 아닙니까? 사람이 살아 있으면 뭔가를 해야 되지 않습니까? 노래를 하든지, 드러누워서 뒹굴든지, 산에 올라가서 야호! 하든지 사람이 뭐를 할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일이 뭐냐하면, 딴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보람있는 일을 하는거라는 말입니다. 농사짓는 사람은 가만 생각하면은, ‘나는 이거 안하면 굶어죽습니다. 그러니까 밥 벌어 먹기위해서 이거 합니다’ 틀렸습니다. 그게 아니고 '하나님이 그저 주시고 우리는 그걸로 다 사는데, 그것을 다른사람에게 갖다 주려고 하는거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그래서 내가 하나님이 주신것들을 가지고, 서로 나누고 누리는 생활을 하는 겁니다.

차 운전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죠. 버스 운전하는 사람이 자기가 사람들을 업고 뛰어다닙니까?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내가 살아있고 힘이 있으니 뭐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뭔가 노는것도 다 따지고 보면 일인데, '내가 놀아도 보람있는 일을 하면서 놀겠다' 그래 생각하면 되는거죠. 등산다니는 사람이 놀기삼아 자기 혼자 등산다니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게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여러사람들을 이렇게 산에 건강에 도움되도록 이리저리 좋은데 데리고 다니고, 운동하는 것도 지도하고 이렇게 한다고 합시다. 그럼 이게 뭡니까? 그게 가이드 아닙니까. 직업이라고 하는 것은 벌어 먹고 살기위해 하는 것은 아닙니다. 벌어먹고 사는것은요. 벌어먹는다는 말도 필요없고, 산다고 하는것은 하나님이 살게 해서 사는겁니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와서만 하나님이 먹여살리는 것은 아닙니다. 뭘 해서라도 살게 하는겁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싫다고 해 보세요. ‘나는 너 보는 것만도 싫다’ 그러면 우리가 어디가서 사람들 사이에서 일할수 있겠으며, 어디가서 돈을 벌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필요해서, 누군가 우리를 원하게 하시고, 결혼하게 하시고, ‘너 내옆에 있어라’해서 우리가 어떤사람의 곁에서 뭔가 해줄수 있고, 뭘 가르치든지, 말동무가 되어 주든지, 뭘 해서라도 우리가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그 사람에게 기쁨이 되고, 그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인생을 살게 하신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먹고살게 하는 수단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속에 두신 생명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거지요.

이런 원리를 우리가 항상 생각하고 말을 해야 됩니다. 이게 찬송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안식일을 지켜야 했던, 어느날 한날에는 전혀 일하러 안나가고 가만히 앉아서 누워서 놀고먹는 그런날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졌어야만 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그걸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자기자식이 구두닦이해서 돈벌어서 등록금 마련하고 이런것 원치 않습니다. 어떤 부모가 그런것을 좋아하겠습니까? 하나님은 특히 부자이시고, 우리를 위해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셨는데, 우리가 그 아들의 모든 승리와 모든 이루신 역사가 눈앞에 있는데도 ‘지금부터 내가 새로 시작하겠다 내가 죄와 싸워서 이기고 내가 세상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모든 수고를 내가 해서 인생을 만들어가겠다’ 그렇게 하면 안되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첫 출발지점 아닙니까? 새 인생을 시작하고 새 나라를 시작하는 지점인데, 이 자리에서 이들이 ‘어떻게 그 인생을 생각하고 앞으로 걸어갔어야 되었는가’ 이것을 하나님이 가르치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인생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안식케 하셨고, 이 안식안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게 했다면, 우리가 인생의 전체적인 틀을 그렇게 짜야 합니다. 사람은 외적환경을 자꾸 쳐다보고서 이 하나님의 안식을 참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는 타락한 마음을 극복하고 그리스도안에서 아버지의 아들이 아버지의 부유한걸 가지고 아무런 힘들지 않고 걱정없이 살아가는 이 인생을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성령이 여러분에게 그것을 가르치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양자인것을 성령이 우리에게 가르치지 않습니까? 왜 우리는 그런 것들을 무시하고 스스로 자꾸 걱정거리를 만들어 놓고, 그것에 대해서 인간적인 해법을 또 내세워가지고, 그것으로 또 어떤 해답을 얻어야만 내가 마음을 놓는 그런 일을 왜 자처를 하느냐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사는것이야 말로 성실하고 인생을 책임있게 사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것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것은 그냥 인생을 제멋대로 방치하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없이 게으르고 지혜없이, 규모없이 사는 그것하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감사하고 안식하면서 주님을 의지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사람은 창조된 그 첫 순간부터 안식을 했다는 것을 늘 이야기 하지요. 사람은 6일째 만들어졌지 않습니까? 그리고 7일째 바로 하나님이 바로 쉬셨습니다. 사람은 천지만물이 사람을 위해서 다 구비되고 난 다음에, 뒤에 딱 나와가지고 그 다음에 안식하는 것부터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일요일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말하는 달력으로 말하면, 일요일은 한주일의 첫날입니다. 여러분 달력표를 보십시오. 일요일이 제일 끝에 있는것이 아니고 첫 날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날 일하지 아니하고 쉼으로써 한 주간을 시작하는 겁니다. 동일한 원리입니다. 세상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세상속에서 이런 장치를 마련한 것에 아무생각없이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알든 모르든 인생은 쉼으로 시작한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주말은 토요일입니다. 우리는 첫날부터 6일동안 일하고 마지막날 쉬는게 아니에요. 우리는 첫날에 쉬고 그 다음 6일 동안 일하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영원히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이렇게 '복된 자리에서 지음받았다'는 이것을 알고 챙기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복을 누리고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꼭 안식일을 지키라고 아주 강조를 많이 하셨어요. 누구든지 하나님과 함께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안식일을 철저히 지켜야만 되는겁니다. 일을 하지않고 쉬는것은 비록 딱 정한 하루지요. 옛날로 말하면 토요일 그날인데, 이 하루의 안식일은 나머지 6일과 그들의 전체 생애가 ‘나는 내가 몸부림쳐서 사는게 아니고 하나님 은혜로 사는거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셔서 내가 사는거다’ 라는 것을 간증하는 겁니다. 그것을 절대적으로 놓쳐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70년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때 역대기를 쓴 기자 에스라가 뭐라고 그 사실을 해석했느냐면, 이스라엘이 70년간 안식년을 안지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490년 동안 7년에 한번씩 1년씩 왕창 놀아야 되는데, 그 때는 완전히 농사를 안 짓는거에요. 우리로 말하면 직장쉬고 완전히 그냥 노는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안 믿으면 농사지어서 한해 한해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은 불안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6년째 되는 해에 오늘 여기 만나처럼, 2년치 양식이 아니라 3년치 양식을 벌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기적 아닙니까? 하나님 믿고 살면 걱정할 것이 사실은 없는데, 이스라엘은 한번도 안식년을 못 지켰습니다. 그 490년동안 사울때로부터 마지막 멸망한 시드기야왕 때까지 한번도 1년을 왕창 풀(full)로 논적이 없었어요. 마음이 불안하니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나와 있지만 여기서 마음을 완전히 풀고 하나님께 맡기지 못합니다. 여기 앉아서 기도를 해요, 그러니까 그거는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가지는게 아닌가? 좋은 관계를 가지는게 아니에요. 그 자리에서 뭘 기도하느냐 하면 하나님이 '걱정하지 마라'고 한 그 내용을 전부 기도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게 사실 일이어야 되는데, 그게 그 사람이 하나님앞에서 기쁘시게 하는 일인데, ‘하나님이 다 살게 해주시니 나는 정말 할게 없습니다. 심심하니까 내가 가서 사람들에게 뭔가 보탬이 되는 일 좀 하고 살랍니다. 나도 일좀 해봅시다’ 이래 되야 되는데, 이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음으로서 인생이 시간이 남고 여유롭고 마음이 푸근해지면 그런사람들은 일도 잘해요. 그런 사람보고 '밖에 나가서 뭘 좀 하라' 해보세요. 내가 다른사람에게 뭔가를, 짜장면 한그릇을 팔더라도 기쁨이 있지요. 짜장면 한 그릇을 먹고 즐거워하는 인생에게 내가 즐거움을 선사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냐, 재료좋은 거 쓰고, 그래가지고 먹고서 맛있어 하고 그런 것을 보고 내가 기뻐하고 그렇게 살건데, 같은 장사를 해도 그게 돈벌어 먹는 그게 아니고, 인생이 하나님앞에서 윤택하고 여유로운 인생을 살게 되는거라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못 믿으니까 벌어먹고 살기 위해서 짜장면 한그릇 판다면, 짜장면 한그릇 팔면 돈 얼마 벌겠습니까? 그러니 그것을 할때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고 그것에다 더러운 재료들 쓰고 불친절 하고 '많이 사먹긴 사먹되 조용히 5분만에 먹고 빨랑빨랑 꺼지던지, 그래가지고 나에게 돈 좀 많이 벌어줘야 되는데, 왜 여기 앉아가지고 짜장면 한그릇 먹는데 이리 오래 앉아있고, 잡소리가 많으냐' 그렇게 될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농사짓는 사람들도 그렇고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짜증이 날수 밖에 없는겁니다.

인생을 이렇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살게 하시는 것을 못 믿으면 결국 코스가 풀코스입니다. 이게 쭈욱 연결되어 있어요. 여러분 얼굴에 웃음이 있는지 없는지, 여러분이 가정이나 직장에서 행하시면서 그 마음이 어떠한지 늘 체크하십시오. 성령이 여러분 안에서 ‘이거 잘하고 있다 너 참 정상적인 길로 가고 있다’ 그렇게 말하면 그건 된거고요. 그렇지 않고 여러분안에서 뭔가 서로 자기 마음안에서 스스로 싸우고 있고, 불안이 엄습하고 하나님앞에서 기도할려고 할때 찝찝하고 그런것 같으면 이제 여러분의 생각을 내려놓고 생각을 바꿔야 되요. 그래서 먼저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건지셨는지,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쳐다보시기를 바랍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신것 처럼 수십가지의 복잡한 과정과 어려움을 거쳐서 하나님이 힘들게 건져내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왜 죽이겠어요? 왜 굶기겠어요? 매일매일 이 양식이 내려오게 하는 것을 보세요. 그러면 하나님앞에서 믿고 쓸데없이 이틀치 사흘치 막 이렇게 탐욕부리지 말고 그날 딱 쓸것만 딱 가져오고, 그 다음에 또 혹시 많이 가져왔으면 모자란 사람에게 그 자리에서 바로 나눠줘야지요. 우리 인생이 그길로 가길 바랍니다. 그렇게 갈 때 우리인생은 사는게 사는것 같고 감사가 되는 인생이, 마음에 안식하는 인생이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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