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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사백 삼십 년이라. 사백 삼십 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12:40)


역사는 눈에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실 보이는 부분은 보이지 않는 부분의 결과일 뿐이다. 우리 앞에 있는 저 산을 보면 산이 온통 푸르다. 나무들과 풀들이 덮여 있어서 산이 온통 푸른 것이다. 그러나 저 푸른 산은 저절로 푸르게 된 것이 아니다. 절반은 하나님이 사람으로 하여금 뜻을 세우고 일을 하게 하셔서 생긴 결과이고 절반은 하나님이 거기 있는 수많은 생명체들로 하여금 생명의 활동을 전개하도록 하신 결과로 그렇게 된 것이다.

옛날에 많은 산들이 민둥산이었다. 땔감으로 삼으려고 나무를 다 베어간 것이 가장 큰 원인이고 전쟁이나 산불로 인해 소실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에 나무가 없으니 홍수가 나고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생겼으므로 우리 앞 세대 사람들이 나무를 새로 심고 산을 가꾸어야 되겠다고 하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그 뜻에 의해 저 산이 푸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저 푸른 산은 사람이 나무를 심어서만 저렇게 된 것은 아니다. 저 산에는 사람이 심은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풀들을 비롯하여 우리 눈에 저절로 형성된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식물들이 있다. 그것들은 어떻게 저기에 있는 것인가? 그것도 다 원인이 있고 과정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즉 하나님이 생명체들로 하여금 생명을 위해 씨를 날리게 하시고 여기 저기 자리를 잡게 하시고 자라게 하심으로써 되어진 일인 것이다. 그러니 저절로 된 것 같지만 저절로가 아니고 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뜻)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이처럼 역사는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되어진 어떤 일 이면에는 그것이 그렇게 되도록 작용한 어떤 사람의 뜻이 있고 그 너머에 사람으로 그런 일을 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오게 된 출애굽의 역사 역시 그러하다.

세상이 오늘 이와 같은 모습을 하는 것은 사람이 이런 저런 뜻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은 왜 그러한 뜻을 가지고 있었는가? 사람의 배후에서 역사하는 두 가지의 보이지 않는 뜻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는 하나님의 뜻이고 다른 하나는 마귀의 뜻이다. 즉 세상의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말씀의 결과이거나 마귀가 그 거짓말과 악한 뜻으로 사람을 속이고 괴롭힌 결과이다.

이스라엘과 관련하여 이 두 가지 뜻은 어떻게 작용했는가? 하나님은 갈대아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불러 그의 나라의 시작으로 삼으셨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한 복된 가족을 가지게 하셨고 그 손자 야곱 대에 이르러 하나님은 그 가족을 애굽으로 이주하게 하셨다. 그리고 거기서 430년을 지내게 하시며 그들을 큰 민족이 되게 하셨다. 그러던 사이 그들은 애굽의 노예가 되었는데 이제 때가 되매 하나님은 그들을 거기서 건져내어 다시 가나안으로 들이려고 하시는 것이다.

또 하나의 뜻은 하나님의 원수 마귀의 뜻이다. 그는 오래 전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 요셉을 해치기 위해 그의 형들에게 악한 마음을 심고 그를 죽이도록 부추겼다. 그러다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결국 그를 애굽에 종으로 팔아 넘겼다. 그리고는 약속의 땅에 살고 있는 야곱의 가족들을 기근으로 어렵게 만들어 그 땅을 떠나게 만들었다. 이 모든 일을 통해 마귀는 하나님의 계획을 제대로 훼방하고 무산시킨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마귀의 궤계를 거꾸로 이용하셨다. 요셉은 애굽에서 종이 아니라 구원자가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은 애굽에서 형통하고 번성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아 큰 민족이 되었다. 430년 전에 하나님은 그의 백성(야곱의 가족)을 70명밖에 소유하지 못했지만 그로부터 430년이 지난 지금은 200만 명이나 되는 '여호와의 군대'를 소유하시게 되었다. 그들이 애굽에서 바로의 종으로만 있다면 200만 명이 아니라 2000만 명이라도 하나님께는 아무 소용이 없겠지만 하나님은 이제 대 군대가 된 그들을 그 땅에서 끄집어내어 도로 약속의 땅으로 넣으시려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실패하거나 손해보시는 일이 없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다는 것은 애굽에 노예로 묶여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믿기 어려울 만큼 큰 일이었다. 그 일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다. 그만큼 그것은 어렵고 큰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각으로는 그 일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고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들어간 것 자체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애초부터 자기 백성을 애굽에 영원히 살게 할 뜻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 세상에 속할 자가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건져내신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당시 세상의 중심지 중 하나인 갈대아 우르 사람이었다. 거기서 그를 건져내어 가나안으로 들이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며 그가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들어갔을 때 도로 불러 올리신 분도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의 후손이 애굽에서 영원히 종으로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들을 자기가 정한 땅에 심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도록 정하셨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함이니라"(사43:21)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지음 받은 백성이 세상 영광을 찬송하거나 세상 삶에 눌려서 찬송과 영광이 없는 채로 신음하는 것은 하나님이 허용하실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찬송하고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찬송은 어디서 나오는가? 사람은 타락하여 하나님께 대해 죽어 있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데 저절로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일은 없다. 찬송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체험하고 맛볼 때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고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간단히 말하면 어려움에 처해 곤고하게 되어야 한다. 사람은 그래야 비로소 하나님을 돌아본다. 그러니 결론을 말하자면 결국 가난하고 곤고한 자가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것이다.

"내 영혼이 여호와로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가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 이름을 높이세 ...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34:2,3,6-8)

모든 것을 다 가진 자, 편안하고 아무 걱정 없는 자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아니라 곤고하고 고통 중에 있는 자가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 가게 된 것은 하나님의 다목적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 두신 것은 그들을 큰 민족으로 키우고자 하는 뜻과 아울러 그들로 하나님의 크신 구원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고자 하는 뜻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은 비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다 해당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어떠한 곳으로 가서 피곤하고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은 언제나 이러한 두 가지 하나님의 뜻의 결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세상에 남겨졌으며 세상의 어떤 곳으로 가서 어떤 형태의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과 결혼하게 된 것도, 그리고 어떤 모양의 자녀들을 갖게 된 것도, 또한 자녀가 없는 것도 그리고 우리에게 돈이나 건강이 있거나 없는 것도 다 하나님의 어떤 목적 때문에 형성된 삶의 형태이다.
우리는 어쩌다 보니 애굽으로 가며 니느웨로 가며 바벨론으로 온 것이 아니다. 우리 삶의 이면에는 하나님의 자녀를 고통스럽게 하고 하나님을 저주하게 만들려는 마귀의 방해 공작이 언제나 있다. 그러나 순전히 그것 때문에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애굽으로 가게 하시고 니느웨로 가게 하시고 바벨론으로 가게 하셔서 여기에 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이 보내신 것은 목적이 있고 일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우연이란 있을 수 없으며 그냥 그저 그렇게 사는 삶이란 있을 수 없다.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간 것을 다시 반추해 보라.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가서 사는 것은 본래 하나님의 진정으로 원하시는 바는 아니었다. 야곱과 그 자손들은 본래 가나안에서 살고 싶었지만 사실 가나안에는 이미 그 땅의 원주민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이 가나안의 한 귀퉁이에 살고 있기는 했지만 가나안 전체를 그들의 소유로 하여 거기에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있는 형편은 아직 아니었던 것이다. 가나안은 그때까지 아모리 족속을 비롯한 그 땅 원주민들의 땅이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 갔더라"(창12:1-5)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처음부터 거기에 뿌리를 내리기가 어려웠다. 왜냐하면 그 땅에는 이미 원주민들이 있었을 뿐 아니라 기근과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창12:6)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창12:10)

그리고 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 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창15:13-16)

아브라함을 그리고 나중에 야곱의 가족들을 애굽으로 가게 만든 것은 가나안과 중동 지방의 기근이었다. 이 기근은 자연적 이유로 말미암은 것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 땅의 죄악으로 인해 그 땅을 징계함으로 인해 생긴 일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와 정착하여 살게 되었을 때 기근은 사실상 100% 하나님의 징계로 말미암은 것이었음을 생각할 때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야곱의 가족을 괴롭게 하려고 기근과 재앙을 내린 것이 아니라 그 땅에 있는 죄인들을 징계하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다. 하지만 아직 그 땅에서 아모리 족속들을 완전히 제거하거나 쫓아낼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직 더 기다리시기로 하셨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불러 위와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의도는 가나안을 자기 백성에게 주어 하나님을 찬송하는 나라로 세우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 그 땅에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을 완전히 심판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애굽의 한 휴양지로 옮겨놓고 가나안의 심판 날을 기다리게 하신 것이다.

여기서 심판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기로 하자.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며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죄인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무고한 사람을 절대로 일없이 죽이거나 괴롭히시지 않는다. 그것은 마귀가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서 즉 자기 나라를 세우기 위해 그 땅에 살고 있는 자들을 그냥 죽이거나 쫓아내실 수는 없다.

세상 마지막 날에 있을 최후의 심판 때에는 하나님은 각 개인별로 죄를 물어 심판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 날이 이르기 전까지는 오직 어느 땅, 어느 사회가 전체적으로 부패하여 도저히 그대로 두실 수 없다고 판단될 때만 본보기로 국지적인 심판을 내리신다. 소돔과 고모라가 그랬고 여리고를 비롯한 가나안 도성들이 그랬고 모압과 암몬, 에돔과 두로와 시돈, 앗수르와 바벨론과 기타 크고 화려한 도성들이 그런 이유로 인해 심판을 받았다. 그 도성들은 다 사치와 쾌락과 죄악이 전 사회적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을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에 심판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다 이스라엘과 관련된 나라들이었다. 즉 단지 죄가 충만하다고 다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해로운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심판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진행되는 하나님의 심판은 그 사회에 하나님이 손대지 않으면 안 될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고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된 직접적인 문제가 있어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가나안에 있는 원주민들은 아직 아브라함의 때에는 죽고 망해야 할 만큼의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단지 가끔 기근과 전쟁과 고통으로 어려움을 겪을 정도였지 완전히 불타고 망해야 할 상황은 이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땅에 심을 자기 백성들을 잠시 애굽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안다면 출애굽이라는 것은 얼마나 당연하며 쉬운 일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보다 하나님이 더 기다린 일이며 하나님이 큰 열심으로 반드시 수행할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인생을 살 때 이러한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아는 것이 이래서 중요한 것이다. 이것을 모르면 우리는 방향타를 잃은 배처럼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게 되며 어떤 일,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어떻게 생각해야 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모르게 된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을 알고 있으면 우리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이 일이 왔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으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안식할 수 있다.

주님의 제자들이 배를 타고 주님을 기다리다가 또는 주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가다가 바다에서 풍랑이 일고 물결이 심해져서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을 때 주님은 그들이 두려워하며 요동하는 것을 보시고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셨다.
"예수께서 무리가 자기를 에워쌈을 보시고 저편으로 건너가기를 명하시니라 ...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좇았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마8:18,23-26)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다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櫓)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제자들이 그의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지르니 저희가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더불어 말씀하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시고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막6:45-52)

누구나 다 위험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실제로 주님이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왜 주님은 그들이 두려워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하신 것인가? 그것은 주님이 그들과 함께 있었으며 또한 그들과 함께 건너편으로 가서 복음을 전할 계획을 세워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주님으로부터 그런 계획을 들었으며 주님으로부터 사역을 위임받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자신의 형편이나 주위 환경을 보고 주님을 따른 자들이 아니라 주님을 믿고 자기 인생을 주님께 맡긴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주님이 어떠하냐 하는 것이다. 환경이 바뀌고 흔들려도 주님이 바뀌지 않고 흔들이지 않았다면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이다.

주님의 계획은 처음부터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자"는 것이었다. 건너가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능력을 베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바다를 건너야만 되었다.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하신 바이다.
이것을 안다면 바람이 부느냐 안 부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들이 바다에서 물결로 흔들리게 되느냐 고요하게 항해하느냐 하는 것은 작은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흔들리든 고요하게 있든 중요한 것은 바다를 건너 일하러 간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한 번 정하시고 약속하신 일은 환경에 의해 꺾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계획은 사람의 반대에 의해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사탄의 훼방에 의해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어떤 자연적이고 인위적인 문제에도 방해받지 않는다. 잠시 어려움은 있을 수 있고 잠시 지연될 수는 있어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모든 뜻은 그가 처음 정하신 그대로 성취된다.

이것을 안다면 우리가 우리 인생에서 신경 써야 할 유일한 일은 하나님의 처음 정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뿐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왜 부르셨으며 어디로 인도하시는가 하는 궁극적인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아들로 부르셨으며 당신을 체험하고 당신의 영광을 맛보게 하시며 그로 인해 당신께 감사하고 찬송하도록 부르셨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바이며 우리의 미래이고 운명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인생의 여러 과정 속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과 좋은 일과 슬픈 일을 겪는 것은 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고 진행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일 뿐이다.

처음에 말한 바와 같이 애굽에서 나오는 것은 큰 일이다. 붙잡고 있는 자가 절대로 놓아주지 않으려 하고 있고 더구나 그 붙잡고 있는 자가 세상에서 가장 크고 힘있는 나라의 왕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참으로 작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환경도 하나님의 처음 뜻을 건드리지 못한다. 하나님의 뜻은 자기 백성을 애굽으로 보내 400년 동안 살찌우게 하는 것이며 그 400년 동안 가나안 원주민들의 죄가 가득 차게 됨으로써 이스라엘을 통해 그들을 심판하는 것이며 그 후에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 땅에서 처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바대로 하나님을 누리며 찬송하는 자기의 나라와 백성이 되도록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계획이기 때문에 일은 반드시 그대로 되게 되어 있다. 일은 바로의 생각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주위에서 일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이 정하신 그대로 된다. 주님을 믿고 찬송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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