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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과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들 (8:14-25)


거룩한 삶의 길


4.성령(생명)으로 말미암는 자유와 승리의 삶 (8장)


2.하나님의 영광을 상속받을 아들들 (8:14-30)


1.바울은 하나님의 영(성령)으로 인도를 받는 사람들을 무엇이라고 칭했는가?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8:1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갈4:4-9)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들, 하나님의 영으로 삶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로서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와 하나님의 관계가 온전한 관계 즉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즉 종이 주인을 아는 것처럼 아는 것인지 아니면 아들이 아버지를 아는 것처럼 아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그를 아신다'고 인정하시는 상태에 있다면 그는 하나님과 참되고 온전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인 상태이다. 하나님의 영을 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깊은 속 사정, 곧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아들이라고 불릴 수 없다.


 

2.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면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고 다만 儀文 律法만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들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였다고 할 수 있는가?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롬8:15)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 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갈4:24-31)


 

법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신약 성도들처럼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영을 받지 못한 고로 하나님을 아버지처럼 알지 못했으며 아버지처럼 섬기지도 않았다. 그들은 다만 두려움으로 주인 섬기듯 하나님을 섬겼을 따름이었다. 그러므로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계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3.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아닌 어떤 다른 관계, 예컨대 주인과 종 또는 상인과 손님 같은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긴다면 그것은 정상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라고 할 수 없는가? 즉 하나님과의 사람의 관계는 반드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여야만 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지 못하고 섬기는 사람들의 행위는 무엇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갈4:8.9)


 

아들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을 받아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모든 섬김, 즉 성령으로 말미암는 참된 계시(지식) 없이 단지 지식적으로, 종교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섬기는 것은 모두 우상 숭배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다 자기가 필요해서 자기가 만든 신을 섬기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마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으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놓고는 그것을 '이것이 바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다' 하고 섬긴 것과 같다. 그런 식의 섬김은 아무리 보기에 그럴듯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것이다. 누구든지 인격이신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참으로 경험해 본다면 하나님은 사랑의 아버지로서 외의 어떤 관계로도 지속적인 관계를 가질 수 없는 분임을 알 것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사랑과 기쁨과 안식, 자유는 누리지 못한 채 오직 종처럼 억압과 두려움에 매여서 억지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잘못 섬기고 있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을 전혀 섬기고 있지 않은 것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하나님대로 알지 못한 채 자기 방식대로 섬기는 사람은 전혀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며 그의 행위는 오직 자기가 만든 神(偶像)을 섬기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4.종의 영을 받은 사람과 아들의 영을 받은 사람의 차이에 대해 말해 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롬8:15)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요15:14-15)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갈4:7-9)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4:31,5:1)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으니 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또한 모세는 장래의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히3:2-8)


 

첫째, 아들은 아버지를 알아본다. 아들의 영을 받은 사람은 헛된 우상을 하나님인 줄 알고 섬기지 않고 오직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알아보고 그를 섬기며 또한 그의 보내신 자를 알아보고 그를 영접하며 그에게 순종한다. 아들은 하나님을 남처럼 두려워하지 않고 아들처럼 담대히 그에게로 나아가서 그에게 안긴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알아듣는다. 그의 생명 안에 아버지의 마음과 뜻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그 말을 순종한다. 자기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자는 자기 안에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의 열망과 하나님의 마음이 제 것으로 역사하기 때문에 그것을 듣지 않을 재간이 없다. 아무라도 이 생명이 없으면 아무리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해도 그것이 안된다. 자기 뜻과 하나님의 뜻이 다른데 어떻게 순종이 되겠는가? 그러므로 아들과 종의 큰 차이는 말씀을 알아듣느냐 못 알아듣느냐 하는 것과 거기에 순종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에 있다.


 

셋째, 아들은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로 모시는 자이므로 헛된 세상사에 매여 종노릇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고 그 뜻대로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를 추구하는 일에만 매진할 뿐 다른 모든 세상사에는 자유한다. 종은 마지못해 하나님께 순종하지만 아들은 기쁨으로 순종한다. 종은 마지못해 하나님께 자기를 드리지만 아들은 기쁨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나라가 곧 자기 나라이며 아버지의 일이 결국 자기 일이기 때문이다.


 

5.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며 어떻게 확증할 수 있는가?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롬8:16)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 (요15:19-21)


 

"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요17:14,16)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나타내며 확증하는 외적 표시(mark)는 따로 없다. 오직 우리 안에 계시며 역사하시는 성령님이 유일한 증거이며 근거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자기 안에서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확증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밖으로부터) 확증할 길은 없다.


 

그러나 때로 세상이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것은 우리와 세상의 생명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와 세상 사람들의 생명이 다르므로 삶도 다르다. 그러므로 세상은 알아서 우리를 (자기들과 다른 자로) 알아보고 우리를 핍박하고 거절함으로써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속한 자임을 드러내 주게 된다.


 

6.바울은 8:14에서 왜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그리스도인)들을 '아들'이라고 표현했을까? 하나님께는 딸이 있을 수 없는가? 바울이 이 말을 사용함으로써 강조하고자 한 사실은 무엇인가?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골3:10,11)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고전12: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고전16:13)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엡4:4-6)


 

'아들'이라는 말은 남녀 성별을 따라 사용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의 [생명 안에서 하나된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다. 하나님과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우리의 관계는 [동일한 생명을 가진, 그러나 수직적 관계, 주종적 관계에 있는 서로 다른 두 존재]이다. '형제'라는 말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역시 남녀 성별에 따라 남자 동기(同氣)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 아니라 [동일한 생명을 가진 수평적 관계의 두 존재]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는 아들만 있을 뿐 딸은 없으며, 우리에게도 역시 형제만 있을 뿐 자매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오직 남자 아들과 여자 아들이 있으며, 우리에게도 오직 남자 형제가 있고 여자 형제가 있는 것이다.


 

성경은 오직 생명의 많고 적음, 즉 생명의 주종(主從) 관계를 따져서 남자와 여자, 혹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설정한다. 교회(그리스도인)는 하나님을 향해서는 언제나 여자의 위치(이끌림을 받는 자, 생명을 의지하는 자, 순종하는 자의 위치)에 서며, 생명 없는 세상을 향해서는 언제나 남자의 위치(이끄는 자, 생명을 주는 자, 다스리고 지배하는 자의 위치)에 선다. 교회는 하나님을 향해서는 언제나 아들과 종의 위치에 서며, 세상을 향해서는 언제나 아버지와 왕의 위치에 선다.


 

7.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는 어떤 지위를 자동적으로 얻게 되며 그것을 어느 수준으로 누리게 되는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8:32)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2:5,6)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후3:18)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빌3:21)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3:4)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눅22:30)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요17:2)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鐵杖)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26,27)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계20:6)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롬8:17)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후1:5)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요15:18-20)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빌1:29)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예수 그리스도)이 누린 모든 지위를 똑같이 누리게 된다. 그것은 이 세상과 영원한 나라에서 영생과 영광을 누리는 것과 아울러 세상에서 주님이 아버지의 뜻을 따라 행하다가 고난과 수치를 받으신 것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다. 다만 그 영원하신 아들과 그로 말미암은 우리 사이에 주종 관계(창조자와 피조물로서의 관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별도의 문제이다.


 

8.하나님의 아들인 우리가 땅에서 고난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4:10,11)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빌3:10-12)


 

첫째, 세상과 우리가 서로 생명이 다르고 길과 운명이 다르기 때문이다. 꼭 고난을 받아야만 하는 어떤 이유가 있어서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사실은 하나님을) 싫어하고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고난을 받는 것이다.


 

둘째, 고난은 우리가 육신 즉 타락한 몸, 죄의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몸이 부활(구속)을 입기 전까지 그리스도인은 육신의 욕구와 영의 욕구간의 차이로 인해 세상에 사는 동안에 고난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은 몸을 이렇게 쓰라고 요구하시는데 육신(자아)은 몸을 저렇게 해달라고 요구하니 그 사이에서 몸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이 불가피하고 그렇게 하자니 몸은 괴로운 것이다.


 

9.성도가 땅에서 받는 고난을 사소한 것으로 간주하고 능히 이길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롬8:18)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후4:16-18)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지어다" (벧전4:13-19)


 

첫째, 하나님의 아들인 우리에게는 땅에서의 삶을 능가하는 영원하고 완전한 새 삶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생명의 능력으로 역사하사 우리 삶에 의욕과 희망과 힘을 불어넣어 고난 중에서도 능히 의롭고 거룩한 아들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우시기 때문이다.


 

10.온 세상의 피조물 전체가 고대하는 바는 무엇인가?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롬8:19-21)


 

만물이 고대하는 바는 이 땅에서 마귀가 사라지고 그의 모든 거짓말, 그 거짓말에 사로잡혀 만물을 도탄에 빠트린 사람들, 그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저주, 마귀로 말미암은 모든 거짓된 질서와 파괴의 흔적들이 다 사라지고, 하나님이 처음 천지를 창조하실 때의 그 목적, 그 질서(관계), 그 자유대로 만물이 회복되는 것이다. 만물은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모든 만물이 새롭게 되는 것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이 일은 먼저 사람이 회복됨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에 만물은 마귀를 이기고 하나님의 생명을 나타낼 하나님의 아들들의 등장을 간절히 기다려 왔다.


 

11.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어떤 사람이며 또 그런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 어떻게 온 세상의 구원이 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 곧 마귀를 이기고 세상을 새롭게 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이어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이들이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그리스도와 합하여 마귀를 멸하고 세상에서 쫓아내기 때문이다.


 

12.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굴복케 하시는 이, 곧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했는데 왜 하나님은 피조물이 그렇게 되도록 허용하셨을까?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저가 천사보다 얼마큼 뛰어남은 저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 오직 누가 어디 증거하여 가로되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잠깐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케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저에게 복종케 하셨은즉 복종치 않은 것이 하나도 없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히1:1-4, 2:6-10)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은 유일하신 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의 구원자가 되고, 그 하나님의 독생자와 그에게 속한 (구속받은)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서 다시 만물을 구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만물로부터 존귀와 영광을 받고 높여지는 것이다. 이런 일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따라 마지막날까지 어김없이 진행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피조물(세상)이 한시적(限時的)으로나마 허무한데(사탄에게) 굴복되도록 허용하신 것은 이처럼 '아들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13.오늘날 피조물들이 어떻게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며 탄식하고 고통하는지 실상에 대해 말해 보라.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3:17-1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롬1:24-32)


 

인간 타락 후에 온 결과들, 즉 {사망}(연약해짐), {혼돈과 무질서} - 사람과 하나님의 잘못된 관계(예를 들어 우상 숭배), 사람과 사람의 잘못된 관계(예를 들어 전쟁과 지배), 사람과 다른 피조물의 잘못된 관계(예를 들어 환경 파괴와 오염), 피조물과 피조물끼리의 잘못된 관계(예를 들어 약육강식) 등을 생각해 보라.


 

14.바울은 8:23에서 자신과 로마교회 형제들을 포함한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자들'이라고 칭했다. 그 의미는 무엇인가?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롬8:23)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계14:4,5)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란 초대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 안으로 구속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바쳐진 일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란 성령의 역사(일) 중 처음 행해진 역사라는 뜻이다. 최초의 구속받은 자들인 바울과 로마 교회 형제들은 성령의 첫 열매인 것이다. 성령님은 이 첫 사역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이 완전히 성취되는 그 날까지 쉬지 않고 계속 일하실 것이다.


 

첫 열매는 언제나 완전한 수확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것이 목표이다. 땅 위에 있는 성도가 바라보고 있는 완전한 성령의 열매는 첫째, (신자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몸의 救贖}이고, 둘째, (전체 구속사적 입장에서 볼 때) {모든 택한 자들의 구속}, 그리고 {만물(하늘과 땅)의 완전한 회복}이다.


 

15.바울이 23절에서 자신이 무엇을 탄식하며 고대하고 있다고 했는가? 또 그는 왜 그렇게 자신의 현재의 상태에 대해 탄식했는가? 그리스도인의 현재 상태와 그것의 불완전함에 대해 말해 보라.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롬8:23)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롬7:14-25)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고후5:1-9)


 

이 땅에 있는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을 얻고 자유와 승리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속박과 한계 및 고통은 모두 죄의 몸과 관련된 것이다.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옛 사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역사로 말미암아 (죽었으므로) 원리적으로 말하면 믿는 자(그리스도인)의 삶을 제한하거나 구속하지 못한다. 그러나 육신적 연약함은 여전히 존재한다. 즉 굶으면 배고프고, 배고프면 생명의 여유를 나타내기 어려운 것이 바로 동물로서의 인간 곧 육신을 가진 인간의 한계이다. '몸은 죄로 인해 죽은 것'이다. (롬8:10)


 

아담의 범죄 후 인간은 실제적으로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과 같이 실제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인류의 사망은 그 영의 사망에 기인한 것이다. 영이 죽음으로 인해 몸은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 받지 못하게 되고 이렇게 되니 몸은 다른 피조물들과 같이 전적으로 육체(오직 생물적인 작용에만 반응하는 동물적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몸이 죄로 인해 죽었다는 실상이다. 바울이 탄식하며 소망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자리에서 벗어나 몸의 구속을 입고자 하는 것이다.


 

16."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라는 24절 말씀에서 '소망'은 무엇과 같은 뜻인가?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5:1-4)


 

소망은 믿음과 같은 말이다.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은 우리 자신 안에 혹은 세상에 소망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안에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말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처럼 세상도 구원을 얻을 것인데 그것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승리와 다스리심에 근거를 두는 것이다.


 

17.성도의 참 소망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것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소망과 비교해 보고 차이점이 있으면 말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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