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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과 -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2010.05.06 14:37

이상봉 조회 수:4848

 

 

 

제22과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9:14-29)



인간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은혜



2.하나님의 주권적 선택 (9:6-29)



1.본문 9:14의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라는 말에서 '그런즉'이란 앞에서 말한 어떤 사실을 가리키는가?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롬9:11-14)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란 하나님이 그 주권으로 자기의 기뻐하는 자를 (그 인간적 자격과 상관없이) 자기 백성으로 택하시고 부르시는 것이다.


 

2.사람이 선한 일이나 악한 일을 하기도 전에, 태어나기도 전에, 어떤 사람은 택하시고 어떤 사람은 버리시기로 작정하는 하나님의 행위는 (버림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불공평하고 불의한 행동이 되지 않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롬9:14-23)


 

사람이 그 지음 받은 자리에 그대로 있다면, 즉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로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중 하나라도 버리시지 않을 것이며 버린다면 하나님은 불의한 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범죄로 인해 처음부터 하나님께 대해 죽었으며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이 사실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세상 가운데서 단 한 명이라도 건지신다면 (하나님은 전혀 불의하시지 않을 뿐 아니라) 그만큼 자비로우신 것이다. 은혜와 긍휼을 의와 공평과 혼동해서는 안되며 둘은 서로 전혀 다른 것이다. 죄인 가운데 일부에게 은혜를 베풀어 건지는 것은 전혀 불의나 불공평과는 상관없는 일이요 그것은 오직 주권에 따라 은혜를 베푸는 일이다.


 

3."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는 9:15의 말씀은 긍휼히 여김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긴다는 뜻인가? 아니면 무슨 뜻인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을 긍휼히 여긴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기 싶은 사람 곧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 자기 아들 자기 백성으로 삼기를 기뻐하신 사람을 긍휼히 여긴다는 것이다. 은혜와 긍휼은 상대방의 형편과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이기 때문에 자격 여부가 있을 수 없고 또 자격을 따진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


 

4."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는 9:16 말씀에서 무엇이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인가?


 

원한다는 것은 구원을 원하는 것이고 달음박질한다는 것은 구원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과연 세상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도 구원 얻기를 원하며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철학자들이나 종교인들과 같은 많은 구도자들이 진리를 추구하고 선에 이르기를 원하며 의로운 삶을 향해 달음박질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구원에 이른 사람은 없다. 아니 그들이 원하는 구원을 얻었을 지는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참된 구원을 얻은 자들이 없다. 사실 은혜가 없이는 구원의 참된 의미조차 알 수 없는 것이다. 사람에게 무엇이 부족하며, 인간 삶에 무엇이 진정한 문제인지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참된 구원을 갈망하며 그것을 얻을 수 있겠는가?


 

혹 스스로 구원을 갈망하다가 마침내 영생에 이르게 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는 사실 스스로 (원함으로 혹은 달음박질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그 안에 빛을 비추셔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절망적인 실상을 보게 되었기 때문에 구원을 갈망하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긍휼의 빛이 없이는 아담으로서는 안된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은혜(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없다. 오직 하나님께서 긍휼로 택하신 자만이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열망하며 그것을 위해 달음박질하는 것이다.


 

5.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긍휼히 여기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그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며 하나님의 구원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바로의 경우처럼 어떤 사람을 강퍅케(악하고 고집이 세게) 하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께서 억지로 사람을 강퍅하게 만드시는 것인가?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롬9:17,18)


 

하나님께서 사람을 강퍅케 하신다는 것은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으신다는 뜻 이상의 다른 적극적인 뜻은 없다. 사람의 강퍅함은 본래적인 것이다. 그것은 사람이 타락하여 사탄과 연합하고 하나님을 거절한데서 생긴 결과일 뿐 하나님께서 억지로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을 강퍅케 하신다는 것은 착한 사람을 억지로 악하게 만든다는 뜻도 아니고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억지로 방해한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하나님을 거절하는 악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신다는 뜻이다. 인간의 악한 마음은 매우 견고한 것이어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긍휼을 베푸사 돌이키게 하시지 않는다면 절대로 하나님께로 돌아서지 않는다.


 

6.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긍휼히 여기시지 않음으로써(강퍅케 하심으로써) 어떤 사람들이 강퍅케 되었다면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강퍅함에 대한 책임이 없는가? 혹시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억지로 강퍅케 하셔서 강퍅하게 되었는데 왜 우리를 나무라십니까?"라고 항변한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답하실 것인가?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롬9:19-23)


 

위에서 살핀 대로 바울은 사람의 강퍅함이 하나님의 책임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께 죄의 책임을 돌리며 항변하는 자들에게, 책임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를 따지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대해서 말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필요에 따라 지음 받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를 지은 창조주에게 어떤 문제로든 이러쿵저러쿵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책임으로 말하자면 죄의 책임을 먼저 말해야 한다. 그리고 그 죄의 책임은 범죄한 인류 자신에게 있다. 사람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범죄한 사람 자신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얼마든지 모든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물으실 수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다 심판하시지 않고 그 중에서 얼마를 당신의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긍휼과 은혜로 건지셨다. 이것은 곧 나머지의 사람들을 그 죄와 멸망 가운데 내버려두시기로 하셨다는 말과 같다. 이것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공평(형평)의 원리에 맞지 않다고 말하지만 은전(恩典)을 베푸느냐 베풀지 않느냐 하는 것은 공평(공의)과 상관없는 문제이며 오직 창조주의 특권이요 절대 주권에 속하는 문제이다.


 

7.바울은 여기서 하나님과 사람을 각각 무엇에 비유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암시하고 있는가?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롬9:21-24)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딤후2:20,21)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고후4: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3:16, 6:19,20)


 

하나님과 사람은 로마서 9장에서는 각각 토기장이와 (그가 만든) 그릇으로 비유되었고, 고린도후서 4장에서는 각각 내용물(보배)과 그것을 담는 그릇으로, 그리고 고린도전서 3장에서는 각각 주인과 그의 거처(집)로 비유되었다.


 

8.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은 각각 무엇을 가리키는가?


 

일반적으로 볼 때 긍휼의 그릇은 택함을 받은 자들을 가리키고 진노의 그릇은 택함 받지 못한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단지 이러한 일반적인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구체적인 대상을 염두에 두고 말하고 있다. 먼저 바울은 아브라함의 두 아들 곧 이삭과 이스마엘을 각각 긍휼의 그릇과 진노의 그릇으로 말하고 있으며 또한 이삭의 두 아들 야곱과 에서 중에서는 야곱이 긍휼의 그릇에 해당하고 에서는 진노의 그릇에 해당한다. 그러나 바울이 궁극적으로 말하려 한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은 각각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교회이다. 유대인들은 구약 시대에 그들에게 보내진 모든 선지자들에게 불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을 거스르다가 마침내 그들을 찾아온 하나님의 아들(주 예수님)을 대적함으로써 결정적으로 자신들이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진노의 그릇'이라는 사실을 나타내었다.


 

9.바울이 사람을 진노의 그릇과 긍휼의 그릇으로 표현한 까닭은 무엇인가? 이런 말을 함으로써 바울이 강조하고자 한 사실은 무엇일까?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롬11:36)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10:31)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1:12,14)


 

바울이 말하고자 한 것은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았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도구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존재는 하나님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으며 인간 삶은 하나님의 영광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인가?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두 가지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다. 첫째는 마5:16이나 벧전2:12에서 언급되고 있는 바와 같이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영)을 좇아 삶으로써 그 삶 속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즉 착한 행실과 의로운 삶,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둘째는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긍휼을 입어 은혜의 구원을 받거나 혹은 버림을 받아 진노 중에서 멸망되는 일 자체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사람의 구원이나 멸망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은 그런 일들이 다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죄인이 돌이켜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일이 되고, 죄인이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당하는 것 역시 하나님의 공의가 어떤 것인지를 나타내는 일이 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10."만일 하나님이 그 진노를 보이시고 그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라는 9:22 말씀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진노의 그릇들을 당장 멸망시키지 않고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는 까닭은 무엇인가?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롬2:4)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3:9)


 

로마서 9장 전체를 통해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한 때 하나님의 약속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이 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써 구원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된 사실이 매우 안타깝고 답답한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일은 어디까지나 (어떤 사람은 택하시고 어떤 사람은 내버려놓을 수 있는)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되어진 일이므로 누구든지 왈가왈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9:18-21) 아마도 이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어떻게 그리 하실 수 있습니까?'하고 항변하는 것을 가정하여 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9:22에서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버려 두기로 작정된)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혹은 그와 같은 이방 불신자들을 즉시 심판하시지 않고 오래 참으시면서 기회를 주실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포기하고 이방인들을 건지실 수도 있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인 것처럼 진노의 그릇으로 전락한 이스라엘을 즉시 멸하시지 않고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주권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혹 현재 하나님의 구원을 누리고 있는 이방인 교회의 신자들이 하나님께 "하나님, 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불신앙적인 이스라엘을 오래 참고 기다려주십니까?"하고 항의하는 것을 가정하여 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바울의 이러한 표현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는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주권이 있으며 또 실제로 그것을 행사하여 사람의 뜻과 전혀 다른 일들을 전개해 나가시지만 그분의 마음 깊은 곳에는 세상(사람)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들이 참으로 살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11.하나님께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신다는 9:23 말씀은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에게 어떻게 하신다는 말인가?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3:4)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8:29,30)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살후2:14)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벧전5:1,10)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벧후1:4)


 

부르신 자들을 하나님의 말씀(생명)으로 연단하셔서 그들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하시겠다는 것이다. 사람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이것이 바로 (영원하신)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또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12.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긍휼의 그릇은 누구인가?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롬9:24)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2:11-22)


 

긍휼의 그릇이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우주적 교회 곧 먼저 부르심을 받은 옛 하나님의 백성들과 그들 중 다수의 실패로 인해 나중에 새로 부르심을 받은 새 하나님의 백성들을 포함한 모든 택한 자들을 가리킨다.


 

13.호세아 선지자의 글에 예언된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호세아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롬9:24,25)


 

"내가 나를 위하여 저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저희는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호2:23)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호1:10)


 

호세아 선지자의 글에 예언된 사람들이란 처음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 곧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사람들 중에서 부르심을 받은 이방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14.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에 대해 어떤 사실을 예언했는가?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롬9:27-29)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毁滅)이 작정되었음이라 ....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사10:22, 1:9)


 

15.처음에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구원을 얻지 못하고(남은 자만 구원을 얻고) 처음에는 택함 받지 못했던 이방인들이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된 것이 하나님의 섭리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롬9:1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롬9:8)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롬2:28)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고전1:26-31)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2:8,9)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4:23)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주권)'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것이 근원이다.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것은 사람이 그 자신의 공로와 자격으로 얻을 수 없는 구원을 하나님의 은혜로 얻음으로써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이스라엘(유대인)이 약속의 구원을 얻지 못한 것은 그들 자신의 까닭이기도 하다. 즉 그들이 하나님의 의, 곧 하나님의 약속의 구원(구원자)을 겸손히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의를 붙잡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16.유대인들 중 남은 자만 구원을 얻고 나머지는 다 버림을 받았다는 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나타냄에 있어서 혹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나타냄에 있어서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롬9:27-29)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의로움을 인함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너는 광야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격노케 하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으되 호렙 산에서 너희가 여호와를 격노케 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너희를 멸하려 하셨느니라" (신9:6-8)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신7:6-8)


 

유대인이라고 해서 특별히 구원을 얻을 까닭은 없다. 하나님은 한 번도 그들을 무조건 다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없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에게 구원을 약속하신 것은 사실이며 그 구원이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구원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구원은 약속을 믿고 붙잡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물론 그런 믿음은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유대인들이 다른 이방인들과 달리 특별히 구원을 얻을 근거도 없으며 다 구원을 얻을 이유는 더욱 없는 것이다. 사실 약속과 은혜가 아니었다면, 즉 그들의 소행만을 근거로 삼았다면 유대인들 중 아무도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유대인들 중 일부, 곧 남은 자(씨)라도 구원을 얻은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다. 남은 자만 구원을 얻은 것은 비정상적인 일이 아니라 정상적인 일이며, 굳이 그것을 비정상적이라고 한다면 몇 명만 구원을 얻고 나머지는 버림을 받은 것이 비정상적이 아니라 다 버림받아야 할 죄인들 중에서 몇 명이라도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 비정상적이고 이상한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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