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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과 온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전망
(11:17-11:36)





인간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은혜


4.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 (11:1-29)


2.감람나무의 비유 : 이방인 교회들도 그리스도의 길(은혜와 믿음의 길)에서 떠나면 버림받을 것임 (11:13-24)


1.로마서 11:17-24에서 말하고 있는 바 참감람나무(뿌리를 포함한 나무 전체)와 돌감람나무(뿌리를 포함한 나무 전체)는 각각 무엇을 의미하며 돌감람나무에서 꺾여져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진 가지와 참감람나무에서 꺾여진 가지(원 가지)는 또한 각각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에서 나무는 때로 사람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류를 나무에 비유하는 것이다. 감람나무는 사람을 그 기름(감람유)으로 향기롭게 하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그 열매로서 즐겁게 한다. 이것은 다 하나님의 노선 안에 있는 정상적인 인류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고, 타락한 인류는 돌감람나무, 가시나무,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나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참감람나무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 받은 회복된 인류를 가리킨다. 처음에는 구약 이스라엘이 여기에 속했다. 그때 이방인들은 돌감람나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점차 이스라엘은 참감람나무의 지위를 상실하고 그 자리에 돌감람나무에 해당하던 이방인들이 들어오게 되었다.


 

2.하나님은 사람(경우)에 따라 仁慈(인자)하신 분으로, 혹은 嚴威하신(엄하신) 분으로 다르게 드러난다. 어떤 사람들(경우)에게 인자하게 드러나며 어떤 사람들에게 엄위하게 드러나는가?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롬11:22)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약2:13)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6:12,14,15)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골1:21-23上)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히12:28,29)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2:24-27)


 

인자하신 하나님과 엄위하신 하나님은 같은 분이시며 사람으로 하여금 인자(仁慈)나 엄위(嚴威)를 느끼게 만든 원인이 되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예수 그리스도의 사역)도 다 한 역사일 따름이다. 그런데 그것이 이렇게 두 가지 상반된 형태로 드러나는 까닭은 받는 사람이 그것을 다르게 받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합당하게 받는 사람은 인자하신 하나님을 누릴 것이며 합당하지 않게 받는 사람은 엄위하신 하나님을 겪게 될 것이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든 새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이방인들이든 다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으로 은혜를 받은 자들이다. 이들이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으로, 구원의 주로 지속적으로 경험하기 위해서는 자기들이 받은 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그것을 유지하기에 합당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바로 안다는 것과 은혜를 유지하기에 합당한 자세를 취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바로 안다는 것은 은혜를 은혜로(은혜인 줄) 알고, 인자(사랑과 긍휼)를 인자로 아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은혜로 알지 못한다. 값없이(대가없이) 주어졌다고 하나님의 은혜를 싸구려 물건 대하듯이 가치 없이 대한다.


 

은혜에 합당한 자세(반응)를 취한다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을 참으로 아는 바탕 위에서 겸손과 감사의 태도를 취하며 그것을 '믿음으로 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은혜를 누리는 가운데 자신도 타인에 대해 동일한 은혜와 인자로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恩惠(仁慈)는 오직 은혜를 은혜로 알고 겸손과 감사로 받는 자에게만 누려지며 유지된다. 왜 그런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신 목적 또는 은혜를 주시는 목적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은혜의 목적은 자기 신뢰와 자기 찬양을 그치고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찬양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그것을 통해 십자가(인간 죽음)의 필요성을 깨달으며 겸손하게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지 않고 도리어 마음을 높이며 자기를 자랑하고 나타내는 계기로 삼는다면 그는 곧 넘어지게 되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엄위를 맛보게 될 것이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의 대부분이 그랬고 오늘날 많은 신자들도 이스라엘 백성의 전철을 밟고 있음은 지극히 안타까운 일이며 그것은 다 택한 자들을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책동(마24:24)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3.은혜를 받았으나 은혜에 견고히 서지 못하고 넘어지는 상태 곧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고후6:1)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자세히 말해 보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롬11:20下)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1:10-13,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2:8,9)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 형제들아 내가 지금까지 할례를 전하면 어찌하여 지금까지 핍박을 받으리요 그리하였으면 십자가의 거치는 것이 그쳤으리니 너희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 베어버리기를 원하노라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갈5:1-13)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히6:4-8)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히12:14-16)


 

1. 높은 마음을 품는 것 -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과 자유와 영광을 얻은 자들이 마치 자기가 잘나서 그것을 획득한 것처럼 자랑하고 그것이 없는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는 것


 

2. 자기가 받은 은혜만 크고 온전한 것으로 생각하고 남이 받은 은혜는 무시하는 것, 그것으로 형제들끼리 서로 판단하고 다투고 분열하는 것


 

3.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아 방종하고 정욕대로 사는 것.


 

어떤 사람들은 구원은 은혜로 얻는 것이지 인간의 자격과 행실로 얻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죄를 심상하게 생각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죄는 땅에서 육신으로 사는 동안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며 육체대로 행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외식하는 것보다는 육체의 정욕 그대로 행동하는 것이 진실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들은 진리의 지식, 자유를 이유로 하며 혈기대로 정욕대로 행하고 만다. 이것은 다 사탄에게 속은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는 것이다.


 

4.바울은 복음을 거부하는 유대인들을 일단 제쳐놓고 상대적으로 복음을 잘 받아들이는 이방인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했다. 그는 자신의 그런 행동의 궁극적 목적이 어디에 있다고 했는가?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롬11:13,14)


 

바울의 마음은 자기의 사역을 통해서 유대인들이 (이방인 안에서 누려지는 생명의 복을 보고) 자극을 받아서 구원을 받게 되는 데 있었다.


 

5.이런 바울의 마음에서 반영되고 있는 바 '인간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은 무엇인가?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롬11:25-27)


 

유대인과 이방인들 중에서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 남김 없이 다 구원을 받게 되는 것


 

3.남은 자들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임 (11:25-32)


 

6.이스라엘의 장래와 관련하여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지혜 있다 함'(자기 생각)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나님의 비밀(계시)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롬11:26)


 

하나님이 (뒤에 일으키신) 이방인 교회를 통해서 (먼저 약속의 백성이 된) 이스라엘을 자극하고 구원하심으로써 하나님이 작정하신 온 세상이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


 

7.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온 이스라엘}은 무엇을 의미하며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해 보라.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다음과 같은 여러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① 혈통적 의미의 이스라엘 곧 모든 유대인들이 장차 빠짐 없이 다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② 정치적 의미의 이스라엘 곧 이스라엘 나라가 장차 회복되어 국가 단위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③ 여기서 말하는 온 이스라엘은 영적 이스라엘, 곧 유대인과 이방인을 다 합친 교회를 의미하며 따라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이 그리스도의 교회가 복음 증거에 의해 완성된다는(그 數가 채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④ 온 이스라엘이라는 말에는 별 뜻이 없고 단지 그것은 유대인들 중에서 (하나님이 택하신) 남은 자의 총수(總數)를 의미한다. 이는 마치 이방인들 중에서 택함 받은 자들이 다 구원을 받게 되어 온 이방인이 다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장차 다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여러 견해 중 세 번째 또는 네 번째 견해가 현대 개혁주의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인 듯 하다. 첫 번째 두 번째 견해는 유대인들 또는 세대주의자들의 견해이다.


 

8.바울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복음으로 하면 하나님의 원수 위치에 있지만 택하심으로 하면 여전히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요 약속의 백성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택하심과 약속이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과 상관없는 것일 수도 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적용되는 그런 별도의 택하심과 사랑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는가?


 

또 온 이스라엘이 장차 구원을 얻는다고 할 때 이스라엘은 다른 이방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반드시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들이는(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가? 아니면 복음(예수 그리스도)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특별 조치로 바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것 외의 다른 구원의 방법은 없다. 설사 모든 유대인들이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몽땅 구원을 받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방법은 반드시 (하나님의 방법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 외의 다른 길은 있을 수 없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4:12) 세대주의자들을 비롯한 어떤 사람들처럼 하나님이 그 처음 약속을 따라 유대인들을 이방인과 달리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닌 별도의 방법으로 구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크게 잘못 이해한 것이며 성경의 경륜을 근본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9.하나님의 恩賜(은혜 베푸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는 말은 다른 곳에 나오는 몇몇 진술과는 상충되는 듯이 보인다. 다음에 제시한 각 말씀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생각해 보고 말하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롬11:2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민23:19)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창6:6,7)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고 그 종들을 인하여 후회하시리니 곧 그들의 무력함과 갇힌 자나 놓인 자가 없음을 보시는 때에로다" (신32:36)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로 이스라엘왕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삼상15:11,35)


 

하나님의 선택에 착오나 후회가 없다는 이 진술은 바울이 하나님의 구원 경륜(계획)의 확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한 말이다. 더 직접적으로는 장차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택하심과 약속을 따라 반드시 구원을 받게 될 것임을 확신한 데서 나온 말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영원(永遠)의 차원에서 한 말이요 하나님의 신실하신 본질(성품)을 바탕으로 한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진술할 때 이런 차원에서만 진술하지 않고 인간 歷史(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나타나셔서 그의 뜻을 이루어 나가시는가 하는 차원에서 하나님의 행동을 진술하기도 한다. 그때 하나님은 종종 인간적인(歷史的인) 방식으로 설명된다. 역사 현장에서 하나님은 항상 사랑과 자비가 충만하고 변화가 없으신 무덤덤한 할아버지가 아니라 기뻐도 하시고 슬퍼도 하시고 화도 내시고 후회도 하시는 분으로 언급된다.


 

따라서 롬11:29의 진술은 이런 식으로 하나님을 언급하는 자리에서는 적용될 수 없는 말이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결코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속에 있는 뜻을 넘어서거나 변동시킬 수 없으며 오직 그 뜻이 이리 저리 펼쳐지는 과정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고전1:8,9, 고후7:1, 살전5:23,24, 히6:7-9)

5.하나님의 주권과 경륜에 대한 찬송 (11:33-36)


 

10.바울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 대해 피력한 후 다음과 같은 찬양으로 그의 말을 맺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바울이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 말한 후 이러한 찬양을 덧붙인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바울은 이 편지(로마서 9-11장)를 읽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도대체 정확히 무엇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인지 그럴 뜻이 없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방인을 포함하는 신약 교회를 새 이스라엘 또는 참 이스라엘로 여기시고 더 이상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는 일이 없을 것인지 아니면 그것과는 별도로 장차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인지에 대해서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어떤 때는 소망이 있는 것처럼 말하다가 어떤 때는 소망이 없는 것처럼 즉 이미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처럼 말하므로 무엇이 진짜 하나님의 뜻이냐 하는 것을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생각에 대해 바울은 논리적으로 분명하게 결론을 내려주지 않는다. 다만 그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며 그의 소망을 피력한다. 그는 다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셨으며 그들을 사랑하사 건지실 것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이 교회와 별도로 존재하는 별개의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교회와 이스라엘은 충돌하거나 양립하지 않는 것이다. 그가 분명하게 말하는 바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모든 것의 모든 것이며 전부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그 안에 포함되든지 안되든지 둘 중 하나일 뿐이다.


 

이스라엘의 미래는 교회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밖에서 영광을 받으시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나라 외의 다른 나라를 계획하고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바는 결국 이스라엘은 장차 어떤 식으로든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아 교회에 편입될 것이라는 것이다. 다만 바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어느 정도로 구원하시며 그 때와 방법은 어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두 번 실패했다. 구약 시대에 선지자들을 거부함으로써 실패했고 그리스도가 오셨을 때 그를 거부함으로써 두 번째 실패했다. 그러나 그들의 실패가 하나님의 영원한 뜻을 좌절시키지 못한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은 확실하며 반드시 성취된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며 뜻이 어떠한지 다 알 수는 없지만 바울의 계시에 의하면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에 대해 사랑과 애정을 가지고 계시며 그들을 건지기로 작정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반드시 건짐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확실하며 반드시 성취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은 다 측량할 수 없으며 다 이해할 수 없다. 오직 그가 드러내신 만큼만 알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일이 우리 생각이나 기대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일이 잘못되어간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우려하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은 무궁하며 그의 판단은 정확하고 그가 일을 추진하시는 것도 틀림이나 실패가 없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은 그가 모든 것을 쥐고 계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그 기뻐하는 뜻대로 가장 합당하게 처리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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