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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과 - 이스라엘의 구원

2010.05.06 14:53

이상봉 조회 수:4210

 

 

 

제27과 이스라엘의 구원 (11:1-11:8)



인간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은혜



4.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 (11:1-29)



1.이스라엘의 거절(불신앙)은 전체적이거나 최종적인 것이 아님 : 남은 자들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임 (11:1-16)

1.바울은 이스라엘 사람을 가리켜 '자기(하나님의) 백성' 또는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아신다' 또는 '하나님에 의해 미리 아신 바 되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11:1,2)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8:2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갈4:9)


 

"이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행13:17上)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요4:22)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아신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을 섬길 백성 곧 하나님을 알며 하나님과 함께 살 백성으로 택하셨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들이 죄악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백성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죄와 불순종 등의) 문제로 또는 사탄의 방해로 인해 일시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 백성의 지위에서 떨어져 있지만 영구히 하나님과 무관한 백성으로 떨어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구원이 이스라엘 자신에 의해 시작되지 않은 것처럼 그들의 결말도 그들 자신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이 말을 한 것이다.


 

2.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이스라엘)을 전적으로 버리시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확실한 증거로서 일차적으로 무엇을 제시했는가?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11:1)


 

이스라엘인인 바울 자신이 바로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을 체험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사도로까지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제시했다.


 

3.이스라엘이 '하나님이 미리 아신 自己(하나님의) 백성'이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버림을 받지 않았으며 또 그럴 수도 없다면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복음(그리스도)을 거부하고 구원을 받지 못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11:2-5)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6-8)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고전10:18)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4:21-23)


 

하나님이 참 당신의 백성으로 보시는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육신적) 혈통을 이은 모든 사람들을 다 포함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만 포함한다. 이런 사람들은 과거(모세와 선지자들의 시대)에도 언제나 소수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긍휼을 입은 자들로서 전체 이스라엘과 별도로 {남은 자} 또는 {그루터기}로 불렸다.


 

4.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은 국가 전체적으로 하나님을 잘 경외하며 '하나님의 미리 아신 親백성'답게 즉 택함 받은 백성답게 항상 하나님을 잘 믿었는지 살펴보라.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11:2下,3) [열왕기상 16:29-19:18 참조]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마23:31-37)


 

역사적으로 볼 때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는 '개인'은 항상 존재해 왔지만 모두가 다 하나님을 참으로 섬기는 '물리적 집단'(국가, 백성, 단체)은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다. 오직 택하신 무리들의 무형적 집단이라 할 수 있는 [교회]만 있어왔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교회라고 불릴만한 집단이 아니었던가? 물론 표면적으로는 교회라고 할 수 있다.(행7:38) 그러나 그것은 단지 그들의 외형이 그랬을 뿐이었다. 그들은 분명히 외형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집단적인 부르심(택함)을 입었고 그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살았기 때문에 총체적으로 하나님의 백성 또는 교회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부분 참 교회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그들 대부분이 하나님을 거의 알지 못했고 따라서 하나님을 전혀 섬기지 않거나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는 거짓된 신앙 생활을 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스라엘 사람 대부분은 언제나 불신자들이었다. 오직 그들 가운데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만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섬겼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개인들이 있었을 뿐 나라 전체가 집단적 신앙체로 하나님을 섬긴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집단(나라)으로서 이스라엘은 교회가 아니었고 오직 소수의 남은 자들만이 시공간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몸(교회)에 속해 있었다.


 

현재에 있어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름을 걸고 있는 모든 조직(단체)이 다 당연히 교회인 것은 아니다. 유대교처럼 기독교도 조직을 만들어 집단적으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교회 역시 이스라엘 나라처럼 신자와 불신자가 섞여 있어서 전체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라고 부를 수는 없는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참된 의미에서의 교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나라(천국)로서의 교회는 어떤 국가나 민족, 종교 집단과 같은 조직체(단체)와 일치되지 않는다. 왜 그런가? 그것은 세상(땅)에 사탄이 있기 때문이다. 마귀가 하나님이 처음 시작하신 교회를 공격하고 미혹하여 타락시키기 때문이다. 이 땅의 지금 임금은 마귀이다. 그러므로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은 언제나 사탄의 극렬한 방해를 받아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것을 아신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것을 아시고 당신의 구원 역사를 펼쳐나가신다. 이스라엘을 세우실 때 하나님은 모든 아브라함의 자손이 단지 혈통상 그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하나님을 잘 섬길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으셨다. 그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탄의 공격으로 쓰러지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배신할 것인지 아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 중에서 얼마간의 사람들이 그 모든 시험과 역경을 이기고 끝까지 하나님을 믿으며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목적에 이르도록 택하시고 역사하셨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마13:24-50에서 주님은 '땅에서 이루어질 천국' 곧 '현실 교회'가 이러한 사탄의 방해를 심하게 받을 것임을 예견하셨다. 그러므로 지상의 교회는 언제나 '집단적으로는' 순수한 신앙체로 남기 어렵다. 주님께서 처음 교회를 세우실 때는 분명히 좋은 씨만 뿌렸지만 얼마 후 마귀가 와서 나쁜 씨를 섞어 놓음으로써 교회에 속한 것처럼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그를 의지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사탄은 마치 밀가루에 누룩을 넣어 부풀리는 것처럼 항상 그의 거짓말로써 교회를 하나님께 전혀 무용한 존재로 떨어뜨리려고 노력한다. 안타깝지만 조직화된 집단(단체)로서의 교회는 (그 안에 진실한 개개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타락하고 무력하게 될 수밖에 없는 성질을 처음부터 띠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날마다 성령의 일깨우시는 역사와 말씀으로 새롭게 되어야 하며 오직 주님의 생명만을 굳게 붙들고 땅에 속한 모든 것들을 떼어버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나온 것 외의 모든 것은 다 땅에 속한 것들이다. 여기에는 교회 생활을 하다보면 불가피하게 생겨나는 것들 곧 조직과 직분, 건물, 은사와 능력, 사업, 역사와 전통, 교리와 사상 등도 포함된다. 이런 것들은 그 자체로서 잘못된 것은 아니나 그리스도의 생명과 분리되는 순간 세상에 속한 것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만을 붙잡는 태도(오직 성령의 인도에 복종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순간 교회는 이 땅에 고착되고 만다.


 

교회는 강하게 조직화되는 것을 특히 경계해야 한다. 조직은 그 자체의 고유한 성질과 필요를 가지고 있고 그것은 언제나 성령의 인도를 우선한다. 강하게 조직화된 교회는 결코 무형식, 무조직의 집단처럼 성령의 인도를 자유롭게 받지 못한다. 교회 역사를 보면 교회가 단지 성령 안에서 하나된 유기적 단체의 상태를 넘어서 세상적으로 규모 있고 힘 있는 집단이 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사탄이 틈타 타락의 길로 가고 말았다. 이전의 실패한 기독교 곧 유대교와 천주교의 교훈을 따라 오늘의 교회는 반드시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의 흐름 곧 성령의 인도 또는 말씀의 빛만을 따라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가변적인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교회는 주님의 생명 외에는 아무 것도 자랑할 만한 것이 없어야 하며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 것도 붙잡고 있는 것이 없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과거의 교회 뿐 아니라 오늘날의 대부분의 교회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교회들이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집단적인 그리스도의 교회'로는 서 있지 못하고 있다. 또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를 따라 새롭게 등장하여 '집단적으로' 참 교회라고 불릴만한 개혁적 교회들이 있지만 이들 가운데도 많은 교회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방에서 공격해 오는 사탄의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좌우로 치우쳐 곁길로 감으로써 그 집단적 승리를 놓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많은 소위 '좋은 교회' '개혁적 교회'들이 단지 그들이 승리의 '역사'와 지금까지 남아있는 소수의 '이기는 자들'에 의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실상을 감안할 때 과거 바울 당시의 유대인들이 자기가 이스라엘 나라(민족)에 속해 있다고 해서 당연히 구원받은 자라고 말할 수 없듯이 오늘날 어떤 사람이 자기가 OO교회에 속해 있다고 해서 당연히 구원받은 자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처음부터 '조직체' 개념이 아니고 {영과 실제로(참으로, in spirit & truth)} 하나님을 섬기는 '개인들의 집합' 개념이다. 단체는 단체인데 물리적이고 조직체적 연합을 이루고 있는 단체가 아니라 생명이 같은 사람들, 곧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개인들의 단체인 것이다. 물론 성경은 우리가 오늘날 보통 'OO교회'라고 부르는 일반 교회들도 편의상 교회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주님께서 마태복음 13장에서 이런 교회들을 천국이라고 일컬으신 것과 같아서 그렇게 부른다고 해서 주님의 인정을 받는 참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참으로 선택하시고 구원하신 대상은 이스라엘 전체나 교회 전체가 아니라 오직 그들 중에 있는 '남은 자들'(롬9:27)이나 '이기는 자들'(계2:7,11,17,26, 3:5,12,21, 21:7)들이다. 이들만이 참으로 처음부터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며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에 반응하여 구원을 누리고 하나님의 긍휼과 의를 찬양함으로써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실체 곧 '청함(부르심)을 입은 자가 다 잔치에 참여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온 힘을 다하여 그리스도를 참으로 알고 그의 약속을 힘써 붙잡고 믿으며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22:14)


 

5.엘리야는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어떻게 송사했는가?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11:3)


 

6.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어떻게 답하셨는가?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11:4)


 

7.이런 하나님의 대답은 로마서 독자들과 엘리야에게 각각 어떤 사실을 확인시켜주는(알려주는) 것인가?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11:1,2)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나라를 유지하시며 자기 백성을 남겨두신다는 것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11:3)


 

우리가 오늘날 세상 상황과 교회 상황을 보면 너무도 답답하고 한심하여 하나님께서 도대체 그의 뜻을 성취해 나가시는지 그의 나라를 건설해 나가고 계시는지 아니면 마귀가 온통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며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움직여가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 그의 뜻을 어김없이 수행해 나가고 계신다. 다만 그것이 우리 눈에 금방 드러나게 안 보일 따름이다.


 

8.신약 시대에 구원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은혜로 택하시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심으로써 이루어진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말해 보라.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11:5,6)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4:4,16)


 

"거역하며 주께서 저희 가운데 행하신 기사를 생각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하며 패역하여 스스로 한 두목을 세우고 종 되었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사오나 오직 주는 사유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저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주께서는 연하여 긍휼을 베푸사 저희를 광야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시며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 행할 길을 비취사 떠나게 아니하셨사오며....그러므로 주께서 그 대적의 손에 붙이사 곤고를 당하게 하시매 저희가 환난을 당하여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크게 긍휼을 발하사 구원자들을 주어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거늘 저희가 평강을 얻은 후에 다시 주 앞에서 악을 행하므로 주께서 그 대적의 손에 버려 두사 대적에게 제어를 받게 하시다가 저희가 돌이켜서 주께 부르짖으매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여러 번 긍휼을 발하사 건져내시고....주의 긍휼이 크시므로 저희를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주는 은혜로우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느9:17,19,27,28,31)


 

하나님은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에 동일하신 분이시며, 인간도 구약 시대에나 신약 시대에나 꼭 같은 죄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구약 시대에나 신약 시대에나 똑 같이 이루어질 것이며 똑 같은 방법과 원리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은혜로 한다면 지금 사람들을 은혜로 구원하는 것처럼 그때도 은혜로 구원했어야 하며, 행위로 한다면 그때 행위로 구원한 것처럼 지금도 행위를 따라 구원해야 한다.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 사람을 은혜(그리스도)로 구원하시는 것처럼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은 사람을 그들의 인간 조건이나 율법적 행위와 공로를 보고 구원하신 것이 아니고 오직 은혜(택하심, 긍휼히 여기심)로 구원하셨으며 오직 [약속을 믿는 믿음]을 보고 구원하셨다고 해야 할 것이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2:8,9) 이 말씀은 신약 시대에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니라 구약 시대에도 적용되는 말씀이다. 아브라함이 갈대아우르에서 구원을 받은 것이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건짐을 받은 것은 다 은혜로 된 것이지 그들의 어떠함과 무관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모든 이들은 예외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지하였다.(합2:4) 이러한 믿음은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 속에 은혜를 베푸신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하나님은 그들의 이러한 태도(믿음)를 보고 그들을 구원하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도 구원은 신약 시대와 마찬가지로 은혜와 믿음이라는 두 원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9.본문 11:5에서 말하는 남은 자와 11:7에서 말하는 남은 자는 각각 어떤 사람들을 가리키는가? 그들은 같은 사람들인가? 다른 사람들인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가?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11:5의 남은 자는 외형상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심을 입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 하나님의 약속을 참으로 믿고 의지하는 소수의 참 신자들을 의미하며 11:7의 남은 자는 소위 그 '남은 자' 외의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


 

10."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라는 말에서 이스라엘이 구원 얻기를 원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원하는 구원은 얻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보다도 더 완악해지게 되었는가?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11:7)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10:2,3)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1:21)


 

"그러나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요12:42,43)


 

대다수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참으로 알지 못했으며 참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9:17,18)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 곧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구원)의 결과로 그 마음이 겸손케 되고 부드럽게 되어 하나님을 믿은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외형적 구원이 이미 이루어진) 이스라엘 중에서도 아무도 하나님의 참 구원(영원한 구원)을 누리지 못했다는 사실은 인간의 본래 악함과 불신앙이 얼마나 뿌리깊고 심각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약속된 구원을 누리지 못한 것은 사실상 (현재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이상한 일이 아니고 정상적이고 당연한 일이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11:8)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사6:9,10)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소경이 되고 소경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인함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인함이 아니라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 그러므로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그것을 유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 할 것이요 또 무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대답하기를 나는 무식하다 할 것이니라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의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리라"(사29:9-1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하여 진리(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셨다는 말은 단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풀지 않으셨다는 말일 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데도 하나님께서 억지로 못 듣게 하셨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은 단지 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완고하고 불순종적인 본성대로 행하도록 내버려두셨을 뿐 그들이 하나님과 그 진리의 말씀을 거절하도록 억지로 역사하시지는 않으셨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면서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어 하나님을 믿도록 종용하셨다.

 

다시 말하지만 인간의 본성을 생각컨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다수의 사람이 복음을 거절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며 오히려 이상한 일은 그런 죄인들 중에서 비록 소수이기는 하지만 어떤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중요한 사실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안 믿고 구원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가운데서 단 한 명이라도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본질적으로 말할 때 구원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과 관계 회복]이다. 물론 이스라엘도 표면적으로는 그것을 원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돌아보시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참으로 원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육신적 삶이 형통하고 잘되게 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이 고대했던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인간 자신의 영광을 얻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실제로는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그런) 구원을 원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런) 구원을 얻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그 예비하신 생명의 축복을 주신다. 그러므로 참으로 하나님을 만나기 원한 자는 아무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적이 없다.(시9:10, 14:2, 53:2, 잠8:17) 좋은 것(알맹이)를 구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마땅히 구해야 할 것을 구하지 않고 헛된 것(껍데기)을 구하는 자는 그 구하는 대로 껍데기밖에 얻지 못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참 생명을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빙자하여 인간의 헛된 영광이나 추구하는 모든 외식자(外飾者, 僞善者)들은 주님이 경고하신 바와 같이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律)"에 처해질 것(마24:51)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표면적으로나마 하나님을 알고 있었고 구원을 원했지만 참 구원을 얻지 못한 것은 자기(인간)의 죄와 절망을 깊이 깨닫지 못하고 교만하여 하나님을 이용하여 인간 자신의 헛된 영광을 추구하고자 한 어리석고 악한 마음 때문이었다.


 

11.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저주로 인해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가지게 된 결과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무엇인가?


 

"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마13:11-15)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10:24-27)


 

"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 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들은 바를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뉘게 나타났나이까 하였더라 저희가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까닭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요12:36-41)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행28:24-28)


 

그들의 귀가 막혀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를 알아듣지 못하며 그들의 눈이 막혀 하나님의 보내신 자(구원자)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받을 길이 없어지며 진리로 말미암아 죄로부터 해방되어 자유케 될 길이 없어지며 결과적으로 구원을 얻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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