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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과 - 생명의 특징 : 덕을 세움

2010.05.06 15:28

이상봉 조회 수:4315

 

 

 

제36과 생명의 특징 : 덕을 세움

(14:13-15:13)



 

성령 안에서의

7.연약한 형제를 받음 (14:1-15:13)


2.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사랑으로 행하고 덕을 세움 (14:13-15:13)


 

1.우리는 왜 형제를 판단하지 말아야 하며 형제들 앞에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을 두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는가?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14:13-16)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그 믿음의 정도가 어느 정도이든지 다 그리스도를 위해 부르심 받은 자이고 그는 그리스도에 의해 자라서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바쳐질 자이다. 부르신 분도 그리스도이고 키우고 거두는 분도 그리스도이므로 오직 그분만 판단하시며 세우거나 넘어뜨리실 뿐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와 그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하인에 불과할 뿐 주인이 아니다.


 

2.사람이나 물건은 본래 속된 것인가 거룩한 것인가? 만일 획일적으로 속되거나 거룩하지 않다면 어떤 것이 속된 것이며 어떤 것이 거룩한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만일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물건을 속되거나 거룩하다고 한다면 무엇을 근거로(기준으로) 그렇게 말하는가?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14:14,20)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행10:14,15,28)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火印)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딤전4:1-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딛1:15)


 

사람이나 사물의 거룩 유무를 판단하기 위해 살펴야 할 사실은 그것의 본질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쓰여지고 있느냐 하는 용도이다. 본질로 말하면 본래 세상 모든 것이 다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은 것이므로 당연히 거룩한 것이다. 그러나 타락 후에는 모든 것이 다 지음 받은 자리에서 벗어나 왜곡되었다. 그러므로 지금은 모든 것이 '당연히 거룩하지는' 않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 만물은 거룩하지도 속되지도 않은 것이 되어 있다. 그것은 사람의 타락과 실패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당연히 쓰이지는 않으므로) 공중에 떠 있으며 가치중립적인 것이 되어 있다. 그러므로 지금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존재 자체의 본질]이 아니라 어떻게 쓰이느냐 하는 [용도]이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떤 위치에 있느냐 어떻게 쓰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 존재 자체는 당연히 거룩한 것도 아니고 당연히 속된 것도 아니다. 무엇이든지 사탄의 손에 잡혀 헛된 일에 쓰여지면 헛되고 속된 것이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손에 잡혀서 거룩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쓰여지면 거룩한 것이 되는 것이다.


 

특히 물건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것이 본래 죄의 목적으로 잘못 만들어진 물건들을 제외하고는 그 성질이 100%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거룩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거룩하고 부정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거룩한 사람은 모든 것을 거룩한 목적에 쓰고 부정한 사람은 모든 것을 그 부정한 마음을 따라 부정하게 쓰기 때문에 악의 도구가 될 뿐이다. 그러므로 사실상 세상에는 속된 사람이 있을 뿐 속된 물건은 없는 것이다.


 

3.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들은 무엇을 가장 중시하는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4:17)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고 그를 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궁극적인 삶의 목적은 없다. 만일 무엇을 하든지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세계에 속한 의와 사랑과 평안과 기쁨이 손상을 입고 방해를 받는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며 사탄에게 속아 그릇 행한 것이다. 진리도 義도 善도 반드시 성령 안에서의 평안과 기쁨과 확신 가운데서 추구되어야 한다.


 

4.세상도 의(정의)와 평강(평화)과 희락(기쁨)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추구하며 누리고 있는 의와 평화와 기쁨과 세상이 추구하고 있는 의와 평화와 기쁨의 차이는 무엇인가?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8:1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8:4)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갈5:25)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6:8)


 

차이는 그것들이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냐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냐 하는 것이다. 자신에게서 나온 것은 다 육체의 일이고 육체의 산물이다. 육체는 악만 행하는 것이 아니라 선도 행하며 의도 행하며 그것을 추구한다. 또 육체도 당연히 안식과 평화와 기쁨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사탄의 사주를 받은 왜곡되고 모순된 육체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온전하게 성취되어지지 않는다. 의를 추구하지만 의는 없으며 평화와 기쁨을 추구하지만 진정한 평화와 기쁨이 없다는 말이다. 한쪽에서는 평화를 외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며 한쪽에서는 기쁨이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슬픔과 고통이 이어진다. 왜 그런가? 그것은 사람들이 다 각자 자기 입장과 자기 위치에서 의와 평화와 기쁨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세상에는 나의 의가 남의 불의가 되며, 나의 기쁨과 평화가 남의 불행과 슬픔과 고통이 되는 일이 허다하다. 히틀러가 유태인과 집시와 슬라브인들을 죽이는 것이 독일인에게는 의와 기쁨과 평강이 되었겠지만 (그들이 萬惡의 근원이라고 생각했으므로) 그 당사자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불의와 죄악과 슬픔이 된 것이나 나중에 그 유태인들이 (마치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했듯이)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가면서 그 원주민들을 죽이고 쫓아낸 것이 그들에게는 신의 뜻을 이루는 의가 되고 평강과 기쁨이 되었겠지만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에게는 불의와 슬픔이 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세상의 평안과 의와 기쁨도 일시적으로는 제법 그럴듯한 모양을 나타내므로 그것이 있으면 무언가 되겠다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들지만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은 그런 의와 평강과 기쁨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지는 못한다.


 

5.성령 안에서 의와 평화와 기쁨을 추구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 세상이 사람의 필요와 능력으로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내용과 결과 면에서 어떻게 다른지 좀 더 자세히 말해 보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나타나는 의와 평화와 기쁨, 즉 성령님이 만들어 내시는 의와 평화와 기쁨은 하나님께 속한 의와 평화와 기쁨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조건이나 목적이나 이유가 없는 진정한 의와 평화와 기쁨이다. 그러나 사람이 추구하는 것은 조건과 목적이 있는 것이며 불완전한 것이다. 사람이 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행복과 이익 때문이다. 사람들이 의롭고 공정하게 행동하지 않거나 서로 싸우기를 좋아한다면 모두가 다 피해를 입고 망할 수 있기 때문에 의와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이 추구하는 의와 평화가 자신의 행복과 이익을 도모하려는 이기적인 동기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자기 희생]과 [섬김]을 바탕으로 하는 의와 평화가 아니다. 때로 사람들은 공익을 위해 마지못해 희생하고 손해를 보기도 한다. 그러나 할 수만 있으면 자신은 의를 행하지 않으며 남을 공격하려고 한다. 힘이 없을 때는 모두 정의와 평화를 적극적으로 외치지만 힘이 있을 때는 그것을 주저 없이 버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의롭고 평화롭게 대해줄 것을 바라면서도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에 의와 평화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가 없는 것이다. 어느 시대나 정의를 부르짖으며 평화를 사모하지만 실제로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 것이다.


 

또 사람들이 추구하는 기쁨도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리는 기쁨과 다른 것이다. 세상이 누리는 기쁨은 진리 안에서의 기쁨이 아니라 육적 기쁨, 이기적 기쁨이다. 그러므로 내가 기쁘면 남도 기뻐지는 그런 기쁨이 아니라 내가 기쁘면 상대방은 괴롭게 되고 상대방이 기쁘면 내가 괴로워지는 잘못된 기쁨이다. 이런 기쁨은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상대방이 잘못되어 괴롭게 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기도 한다. 많은 경우에 사람의 기쁨은 참으로 기뻐해야 할 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할 것도 아니고 기뻐할 수도 없는 일에서 기뻐하는 왜곡된 기쁨이다. 그러므로 이런 기쁨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는 데서 오는 기쁨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6.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과 사람에게 다 같이 칭찬을 받아야 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이 말씀은 갈1:10 말씀이나 눅6:26 말씀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또 만일 그렇지 않다면 14:18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14:18)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15:2)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1:10)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눅6:26)


 

반드시 하나님과 사람에게 다 같이 칭찬을 받을 수는 없다. 하나님(그리스도)과 사람(세상)의 길이 충돌하는 부분에서는 하나님의 칭찬을 받으면 사람(세상)의 비난과 배척을 받을 것이며 반대로 사람(세상)의 칭찬을 받으면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람의 평가가 같이 나올 수 있는 부분에서는 사람의 칭찬을 받도록 행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선과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가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세상은 그를 그 이유로 비난하거나 대적하지 않는다. 세상도 일반적으로는 권선징악의 원리에 따라 행하기 때문에 만일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의롭고 사람 사랑하는 생명으로 행한다면 세상은 그 측면에서는 적어도 그리스도인을 칭찬하고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의와 건전한 상식에는 한계가 있다. 자기와 관계없이 그저 선을 행할 때 사람들은 그 선행자를 칭찬하지만 그 선행이 자기를 부끄럽게 하고 자기를 죄와 악행의 자리에서 나오도록 강제함으로써 자기 삶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것으로 느낄 때 세상은 그 선행과 선행자를 경계하며 배척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삶으로써 선과 의를 행하는 사람이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것이 아니라 배척과 핍박을 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주 예수님의 삶이 바로 그 대표적 예다. 그는 유대종교 지도자들에게 그의 선한 삶과 가르침으로 강한 자극을 주었고 그로 인해 배척과 핍박을 받으셨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선과 의가 아니라 악과 불의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책망과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다. 이것은 그들에게 그럴듯한 종교적인 모양은 있으나 생명과 능력이 없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그 생명력을 인정을 받지 못하는데서 오는 현상이다.


 

7.하나님의 사업이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가장 애써 시행하시는 일의 내용은 무엇인가?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14:19,20)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고전 9:1下)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2:18-22)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4:13-16)


 

하나님의 사업은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교회, 그리스도 안에서 지으심을 입은 새 사람, 아버지께 완전히 순종함으로써 이 땅에서 마귀를 내쫓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몰고 오는 하나님의 아들, 이런 사람을 만들고 세우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모든 일의 내용이요 목표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성전', '새예루살렘', '영광스러운 교회'는 모두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되는 이러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8.바울은 사람이 자신이 믿는 바를 주저 없이 시행하다가는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왜 자신의 믿음(의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거나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그대로 시행할 수 없는가?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4:22)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4:1-3, 13)


 

우리가 우리 마음대로 무엇을 할 수 없는 까닭은 우리가 교회 안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몸 안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모두가 다 그리스도를 깊이 알고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게 되기까지 독주(獨走)하지 말고 다른 지체들을 돌보며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서 행해야 마땅하다.


 

9.바울은 믿음을 좇아 하지 않는 모든 일은 다 죄라고 했다. 믿음을 좇아 행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기 양심 안에서 말씀하시며 진리를 확증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좇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믿음대로 행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성령 안에서 배우고 확신한 것(딤후3:14)이 없다면 믿을 것도 좇을 것도 없지만 배우고 확신한 것이 있다면 그대로 행해야 한다. 기름부음이 인도하는 대로 가지 않는 것이 바로 성령을 거스리는 것이며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지 않는 것이며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다.(요일2:27,28)


 

10.형제의 약한 부분에 대해, 혹은 형제의 약점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15: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6:1,2)


 

11.하나님께서 그 말씀과 성도들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서 우리에게 성경으로 주신 까닭은 무엇인가?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15:4)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후대 곧 후생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 자손에게 일러서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 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로다" (시78:5-8)


 

12.우리가 형제들의 이질성(異質性)과 허물에도 불구하고 형제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 사랑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15:7)


 

마6:14,15, 18:21-35, 엡4:1-6,32, 5:1,2上


 

13.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을 살리거나 자기보다 약한 형제를 섬겨서 온전케 하기 위해 때로 자신의 자유를 유보하기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결정적으로 중요한 본보기 하나를 들고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무엇을 참았는가?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케 하시고 이방인으로 그 긍휼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또 가로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저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또 이사야가 가로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5:8-12)


 

바울이 형제를 위한 자기 희생의 본으로 제시한 것은 주 예수님의 삶이다. 하늘의 영광 가운데 계시던 하나님의 독생자가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피조물의 세계, 죄인의 세계로 들어오셔서 고난을 받으신 이 사실이야말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이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가장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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