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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과 - 이스라엘의 실패

2010.05.06 14:39

이상봉 조회 수:4106

 

 

 

제23과 이스라엘의 실패 (9:30-10:3)


인간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은혜


3.인간의 믿을 책임 (9:30-10:21)


 

1.본래 義(義의 법)를 좇지 아니하던 이방인들은 義(의롭다 함)를 얻었음에 비해 본래 義의 법(義)을 좇아가던 이스라엘은 법(義)에 이르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9:30-33)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은 사람에게 '은혜'(그리스도)를 베푸시고 그것을 '믿음'(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에게든지 차별 없이 적용되는 유일한 구원의 방법이다. 유대인도 이방인도 오직 은혜로만,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엡2:8) 그러나 더 많이 구원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던 선민(選民) 이스라엘은 이방인보다 훨씬 적게 구원을 얻는데 그쳤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자신의 선민 됨을 너무 크게 생각한 나머지 긍휼을 의지하고 은혜를 붙잡음 없이도 당연히 구원을 받을 수 있을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방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 義(자랑)를 내놓을 수 없는 것처럼 자신들도 그렇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2.본문 9:30에서 바울은 이방인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의'를 좇지 아니하였지만 '의'를 얻었다고 표현하고 있는데 비해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32절에서 그들이 '의의 법'을 좇았지만 '법'에 이르지 못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던 문제(태도)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의를 얻기 위해 하나님께 나타내었던 태도는 무엇인가?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 (갈5:4)


 

여기서 법은 율법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의의 법을 좇았다는 것은 그들이 율법을 붙잡고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한 것을 의미한다. 단지 의를 추구한 것이 아니라 '법(행위)을 통한' 의를 추구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은혜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추구하지 않고 '의의 법을 좇았다'는 말에서 나타난 것처럼 법을 지켜서(선한 행위를 함으로써) 얻는 율법적 의를 추구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인간 자신의 의에 관심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사람이 은혜로 말미암는 의가 아니라 의의 법(율법)을 좇는 것은 자신의 죄인 된 본성을 모르기 때문이다. 육신을 가진 인간이 법(율법)을 좋아하며 법의 심판을 거쳐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은혜를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사탄에게 깊이 속아서 망상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법을 좇아 의에 이르려고 한 것은 교만한 태도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 이중적으로 반역하는 태도이다. 연약하여 범죄하는 것이 첫 번째 반역이라면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무시하는 것은 두 번째 반역이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율법을 붙잡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면 율법을 붙잡는 것은 무조건 잘못된 일인가? 구약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율법을 잘 붙잡고 잘 지키려고 한 것을 책망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율법을 그 정신에 따라 충실하게 지키지 않은 것을 책망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이스라엘이 의의 법을 좇은 것을 문제삼고 있는가?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율법이 무엇이며 율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일차적 목적은 그것을 통해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소중히 여겨야 했다. 누구든지 당시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길은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고 범사에 율법의 가르침과 정신을 따라 사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율법을 충실히 좇는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태도를 유지하게 될 것인가?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분명한 사실은 누구든지 진정으로 율법에 충실한 사람은 결코 하나님 앞에서 교만해질 수 없으며 또한 현재 자신(인간)의 상태로 결코 만족할 수 없고 반드시 하나님께서 장차 약속을 따라 크신 은혜를 베푸실 것을 소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율법의 내용은 크게 교훈적인 내용과 신학적인 내용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교훈적인 내용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요약될 수 있는 바 율법에 나오는 여러 윤리적인 가르침들을 말한다. 이것은 사랑의 하나님의 마음을 반영한 계명들이다. 죄인인 인생은 이것을 완벽하게 시행할 능력이 없다. 그러므로 윤리적인 계명들을 완벽하게 지킴으로써 마음에 만족이 있게 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둘째, 신학적인 내용이란 성전과 제사 제도로 요약될 수 있는 바 율법에 포함된 여러 儀式들을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좇아 '오실 메시야로 말미암게 될 구원'을 미리 누리게 하신 장치들이다. 제사 제도는 하나님의 긍휼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며 그리스도(은혜)의 복음을 구약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율법에 충실하다는 것은 사람이 열심히 노력하여 자기 의를 나타내는 일에 충실한 것이 아니라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붙잡는 일에 충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참으로 율법에 충실하다면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힘써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거룩한 삶을 살려고 노력할 것이며, 또한 그런 일을 하는 동안에 자신의 할 수 없음(연약함)과 근본적인 한계(죄인 됨)를 깨닫고 어린 양(메시아)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될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을 사모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능력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능력)으로 온전히 이룰 수 있게 되기를 (약속을 따라) 사모하게 될 것이다.(렘31:33, 겔36:26-28) 그러므로 그런 사람은 율법을 따라 선을 행하든지 제사를 드리든지 간에 결코 그것으로 만족하게 되거나 교만해 질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능력과 대속물이 되는 어린 양(메시아)을 붙잡고 상한 심령으로 겸손히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3.이스라엘이 부딪힐 돌에 부딪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롬9:32,33에서 말하는 바 '부딪힐 돌'은 무엇을 의미하며 거기에 부딪혔다는 것은 어떤 사실을 말하는 것인가?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벧전2:6-8)


 

부딪힐 돌은 '시험하는 돌' 곧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린 자들(이스라엘)의 믿음을 시험하여 옥석(玉石)을 가리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요3:19-21)는 말씀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진리에 속한 자 곧 참 믿음을 가지고 주의 약속을 끝까지 기다리던 주님 당시의 소수의 경건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자신들이 빛과 진리에 속한 사람들임을 드러냄과 동시에 하나님의 약속을 실제로 누리게 되었고, 반대로 어둠에 속한 자 곧 불신앙적이고 외식적인 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 - 특히 유대교 지도자들 - 은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배척함으로써 자기들이 참 하나님의 자녀가 아님을 드러냄과 동시에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4.하나님께서 종종 시온(이스라엘, 교회 )에 부딪힐 돌을 두시는 까닭은 무엇일까?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을 영존케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든 것들의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히12:25-29)


 

하나님께서 시온에 부딪힐 돌을 허락하시는 까닭은 하나님의 집에서 진짜(참 신자)와 가짜를 가려내어 당신의 집(교회, 하나님의 나라)을 오직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한 참 아들들의 나라로 유지 보존하기 위함이다. 세상의 모든 진동(시험과 환난)은 '진동치 아니하는 것들'(참 그리스도인들, 위로부터 난 자들,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빚어진 참 아들들....)을 흔들어서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동하는 것들' 곧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빚어지지 않은 가짜 신자들, 성령으로 말미암은 교회, 사람의 지혜와 수고와 열심으로 만들어진 종교 세계....)은 다 제거되고 오직 진동치 아니하는 것들만 남기기 위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5."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롬10:2,3)는 말씀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문제는 열심은 있었지만 그 열심이 '지식 없는 잘못된 열심'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지식이란 어떤 지식인가? 그리고 성경 안에서 또는 일상 생활에서 지식 없는 열심의 예를 몇 가지 들어 보라.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롬4:13)


 

하나님의 언약(약속)에 근거하지 않은 소망(지식)은 헛된 소망(지식)이고 참 소망(지식)에 근거하지 않은 열심은 헛된 열심이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7:2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1,32)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17:3)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벧후3:18)


 

"무리가 거기 예수도 없으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어느 때에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요6:24-27)


 

생명 안에서 실제적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누리는 것 없이 하나님을 아는 것(믿는)이나 하나님과 관계를 가지는 것은 다 헛된 일이다. 참된 영적(생명의) 지식이 없는 가운데서 나오는 열심은 성령의 감동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인간의 종교성에서 나온 것이거나 육신의 필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나온 것이다. 이런 종교적, 육신적 열심은 사람을 헛되이 분주하게 만들고 헛되이 분노하고 조급하고 다투게 만들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깨고 훼방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例)라 하리라 저희가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요16:1-3)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빌3:6)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행23:12)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23:15)


 

이 말씀들은 하나님을 아는 참 지식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얼마나 위험하고 해로운가를 잘 보여준다. 그리스도(생명)는 없고 종교적 열심만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많은 경우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는 사탄의 도구로 이용당한다.


 

6."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는 말씀에서 자기 의(自己 義)는 무엇이며 하나님의 의는 무엇인가?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빌3:9)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1:17)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롬3:21,22)


 

여기서 자기 의는 사람 자신의 선한 행위를 말하고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로서의 의(의롭다하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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