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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과 - 믿음의 말씀

2010.05.06 14:43

이상봉 조회 수:4111

 

 

 

제24과 믿음의 말씀 (10:4-8)


인간의 불신앙과 하나님의 은혜


3.인간의 믿을 책임 (9:30-10:21)


 

1.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의롭게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무엇을 했으며 그것은 무엇을 끝내는 결과를 가져왔는가?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롬10:4)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롬3: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4:25)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7,8)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롬7:4)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갈2:21)


 

2.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 모세를 통해 그 백성들에게 생명의 길(사는 길)로 제시하신 것은 무엇인가?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롬10:5)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레18:5)


 

"다시 주의 율법을 복종하게 하시려고 경계하셨으나 저희가 교만히 행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 가운데서 삶을 얻는 주의 계명을 듣지 아니하며 주의 규례를 범하여 고집하는 어깨를 내어밀며 목을 굳게 하여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느9:29)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의 삶을 위해 모세를 통해 주신 것은 '율법'과 '언약'의 형식을 지니고 있던 "말씀"이다. 이 '생명의 말씀'은 출20-23에 나오는 언약서를 그 기초로 하고 그 위에 레위기 등에 나오는 제사법을 포함하고 있다.


 

3.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율법의 말씀으로 생명(복되고 풍성한 삶)을 얻었는가?


 

(문제 2번의 느헤미야 9:29 말씀 참조)


 

"내가 광야에서 그들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 열조의 율례를 좇지 말며 그 규례를 지키지 말며 그 우상들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나의 율례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고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하였었노라 그러나 그 자손이 내게 패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좇지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는지라 이에 내가 이르기를 내가 광야에서 내 분을 그들의 위에 쏟으며 내 노를 그들에게 이루리라 하였으나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내 손을 금하고 달리 행하였었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목도한 열국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다 또 내가 광야에서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그들을 이방인 중에 흩으며 열방 중에 헤치리라 하였었나니 이는 그들이 나의 규례를 행치 아니하며 나의 율례를 멸시하며 내 안식일을 더럽히고 눈으로 그 열조의 우상들을 사모함이며 또 내가 그들에게 선치 못한 율례와 능히 살게 하지 못할 규례를 주었고 그들이 장자를 다 화제로 드리는 그 예물로 내가 그들을 더럽혔음은 그들로 멸망케 하여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겔20:18-26)


 

4.그 까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왜 생명의 길로 주신 말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명을 얻지 못하고 망했는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롬5:6)


 

"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롬7:12,1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롬8: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 (렘31:33.34)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겔36:26-28)


 

율법이 사람을 생명에 이르게 하지 못한 것은 율법 자체에 흠이 있기 때문도 아니었고 그것을 행하면 생명을 얻으리라(복이 있다)는 하나님의 말씀(약속)이 틀렸기 때문도 아니었다. 문제는 사람이 그 말씀을 받을 수 없는 연약한 존재였다는 데 있다. 즉 사람이 근본적으로(성질상)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까이 주어졌어도 그 말씀대로 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말씀을 가졌지만 실제로는 말씀을 가지지(듣지) 못한 이방인들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5.그렇다면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말이나 율법을 행함으로 삶(생명)을 얻는다는 말은 맞는 말인가? 틀린 말인가? 아니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는 말인가? 바울이 10:5에서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의로 살리라"는 말을 할 때 그는 이 말을 어느 쪽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가?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3:20)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갈2:16)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갈3:12)


 

율법으로 의를 얻는다는 말은 한편으로는 옳은 말이고 한편으로는 틀린 말이다. 사람이 어떤 형편에 있느냐 하는 것을 감안하지 않고 사실(진리)만으로 생각한다면 이 말은 절대적으로 옳은 말이다.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사람이 그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말씀)대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람이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이며 그 결과로 생명(복되고 풍성한 삶)을 누리는 것은 당연하다. 성경이 말하는 의로운 삶은 특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진실하고 당연한 삶을 가리킨다.


 

그러나 사람의 형편을 감안한다면 율법으로 의(생명)를 얻는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이 말은 맞기는 맞지만 사람 자신에게는 해당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자동차가 교통 신호를 지키며 제 길을 바로 간다면 안전하다는 당연한 말이 음주 운전자나 난폭 운전자에게는 해당되지 못하는 것과 같고, 열심히 공부하면 누구나 우등을 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진리가 천성적으로 게으르고 우둔한 사람에게는 해당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결국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는 말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는 주님의 말씀과 같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는 옳은 말이 되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에게는 있으나마나 한, 그래서 결국은 틀린 말이 된다.


 

6.율법을 행하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사람이) 무엇을 하라는 것인가? 모든 율법이 결국 요구하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신6:5)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신10:12)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그 직임과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 ....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모든 명령을 잘 지켜 행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도를 행하여 그에게 부종(附從)하면" (신11:1,22)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신30:16)


 

7.그렇다면 사람에게 안되고 있는 일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사람의 연약함은 궁극적으로 무엇에 대한 연약함인가?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딤후3:2上,4下)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롬6:10,1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12:21)


 

사람이 율법을 행할 수 없다는 말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말이다. 사람의 궁극적인 문제는 사람이 하나님과 한 생명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해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로마서에서 문제 삼고 있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사람 자신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율법은 진리이며 하나님 자신을 나타낸 것이므로 그것을 붙잡고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합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이 지적하는 이스라엘의 실패는 그들이 율법을 붙잡은 것이 아니라 자신(사람)을 붙잡은 것이다. 이스라엘이 줄곧 유지했던 태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율법을 사랑하고 준행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므로 율법을 변역(變易)시킨 것이다. 그들은 율법을 자기(인간) 義를 나타내는 도구로 삼음으로써 율법 안에 내포되어 있는 하나님의 義를 무시하고 거절했다.


 

8.바울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예증하기 위해 인용한 말씀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 말씀인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롬10:6-8)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신30:11-14)


 

이 말씀은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지막으로 말한 고별사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의 말의 요지는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심으로써) 누구든지 듣고 지키기만 하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귀한 생명의 말씀을 바로 그들 곁에 두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이 말씀을 받아들여 복된 삶을 누릴 수 있으니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9.바울이 위의 인용문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요구하고 있는 "말씀"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10:8-10)


 

10.바울이 그의 동족들에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믿음의 말씀'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면서 왜 '율법의 말씀'을 받아들이라고 한 모세의 고별사를 인용했을까? 그것은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닌가?


 

바울이 인용하고자 한 것은 말씀의 '내용'이 아니라 말씀이 이미 주어졌으니 '속히 받아들이라'는 모세의 '권면'이었다. 율법이든 믿음의 말씀이든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자기 백성들에게 주시는 은혜의 선물(언약)이 바로 곁에 있으니 속히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모세 때에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심으로써 백성들이 하나님을 알고 복된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율법이나 복음으로 표현된 생명의 길)은 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생명 얻음, 의롭다함)을 위해 이미 친히 이루신 일이므로 사람이 하늘로 올라가거나 땅으로 내려가서 애써 쟁취해야 할 일도 아니고 막연히 장차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다려야 하는 것도 아니다.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인간이 현재의 자기 삶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것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바울이 율법을 행함으로 의를 얻으려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릇된 태도를 비판하고 믿음의 말씀을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면서도 율법에 순종할 것을 요구한 모세의 말을 인용한 두 번째 이유는 율법(옛 언약의 말씀)의 본질이 복음(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언약의 말씀)의 본질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아담 언약부터 새 언약에 이르기까지 언약은 일관되게 사람이 은혜(그리스도)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게 될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구원은 하나님을 아는데서 시작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끝난다.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받아들이라고 요구한 율법은 사람이 연합해야 할 대상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말해 주는 것이었다. 율법의 내용은 하나님이 이런 분이므로 그 자녀들의 삶도 이래야 한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율법은 엄밀하게 말해서 사람 자신(사람의 행복, 사람의 구원)이나 삶에 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말하고 있는 말씀이다.


 

율법은 구원의 방법에 대해 말한 말씀이 아니다. 계시로서 율법은 사람의 구원에 대해서 별로 말하고 있지 않다. 구원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것이기 때문에 율법은 오직 그것의 그림자만 제사 제도를 통해 비추고 있을 따름이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이나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는 말씀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말씀은 하나님을 비추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이 말씀이 구약에서는 율법으로 나타났지만 지금은 육신을 입고 아들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모세 때는 율법을 청종해야 하며 지금은 그리스도를 청종해야 하는 것이다. 율법을 아는 것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은 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한 가지이며 그런 의미에서 율법과 그리스도는 다르지 않다. 이 둘 다 믿음(열린 마음, 순종)을 필요로 한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믿음의 말씀을 받아들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율법의 말씀을 받아들이라는 모세의 말을 얼마든지 인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신30:6) 이 말씀을 보면 율법 역시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사람의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새 언약에 따라 복음이 말하는 바와 별로 다르지 않다. 복음(믿음의 말씀)은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길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람 속으로 들어오셔서 친히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게 하신다고 말한다. 조건은 무엇인가? 사람이 이 복음을 믿는(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율법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을 택하면(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속에 역사해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생명을 얻도록 하신다는 것이다.(신30:1,2) 복음과 율법은 다 같이 하나님께서 사람 속에서 역사하심으로써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복음은 이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기 위해 '믿음'을 요구하고 있고, 율법은 이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기 위해 '하나님을 택할(사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차이라기보다는 형식적인 차이에 가깝다. 신약의 [믿음](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을 믿는 것)은 구약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언약을 붙잡는 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이것은 쉽다면 똑같이 쉽고 어렵다면 똑같이 어려운 일이다. 누가 하나님의 은혜(선택) 없이 하나님을 먼저 선택하고 사랑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누가 하나님의 은혜(선택) 없이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을 믿을 수 있겠는가?


 

이스라엘의 구원은 구약 율법 시대에도 일관되게 하나님의 은혜(긍휼로 일부를 선택하여 남겨두시는 역사)로 이루어졌다. (느헤미야 9장에서 느헤미야가 말하는 이스라엘 역사를 읽어 보라 ; 느9:17,19,27,28,31) 구원은 언제나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긍휼의 선택)를 따라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그 약속의 말씀(구원의 방법과 내용이신 그리스도)을 붙잡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율법과 복음의 차이는 율법이 이 형식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지 않음에 비해 복음은 이 형식을 확실하게 나타내고 있다는데 있다. 즉 율법이나 복음은 다 같이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으나, 율법이 단순히 하나님을 섬기며 순종하라고 말하고 있음에 비해, 복음은 그것(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하나님을 믿는(은혜를 붙잡는) 일에만 주력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율법도 사람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말하지 않고 있으며 구원이 인간의 노력으로 말미암는 것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다만 율법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죄가 분명하게 드러나기 전까지는 사람이 은혜와 믿음에 대한 분명한 계시를 가지기 어렵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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