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lde1
slide2
slide3
slide4

 

 

 

제32과 생명의 특징 : 사랑과 관용

(12:9-21)


 

성령 안에서의




3.생명의 법을 따라 행함 (12:9-21)

12:9부터 12:21까지의 말씀은 각양 은혜와 은사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같은 믿음의 형제들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 더 나아가서 모든 사람에 대해 생명의 여유를 가지고 어떻게 넉넉하게 대할 것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1.그리스도인은 그 형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12:9-13)


 

사랑에는 거짓이 없다고 할 때 이 사랑은 [사랑의 생명]을 말한다. 사랑 곧 하나님의 사랑의 생명은 틀림이 없다. 거기에는 진실치 못한 것이나 성실치 못한 것, 미움과 시기 질투 등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의 생명 곧 거듭난 생명 안에는 (그리스도의) 몸을 아는 지식과 몸의 각 지체를 섬겨 온 몸을 온전케 하고자 하는 본성이 들어 있다. 따라서 누구든지 (위로부터 받은) 생명대로 살면 반드시 형제를 사랑하게 된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이 생명 안에 거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안에는 이미 형제를 사랑하려는 마음이 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로 이 생명을 따라 살지 못하게 막으려고 한다. 그는 우리로 이런 저런 이유로 말미암아 이 생명의 지식을 거스려 여전히 형제를 미워하거나 이기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들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거짓된 마음이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작용하는 이 거짓된 마음을 처리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실력으로 형제를 사랑할 수 있다. 우리는 악 곧 사탄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형성된 악한 생명, 거짓된 생명, 왜곡된 생명을 미워해야 한다. 우리는 영으로 우리 육신의 생각과 본성을 무시하고 형제를 섬김으로써 몸을 주께 드려 헌신해야 한다.


 

2.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로(작용으로) 말미암는 사랑만이 참 사랑이 될 수 있다.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참 사랑의 특징 몇 가지를 말하고 그 의미를 설명해 보라.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2:9)


 

"사랑은....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고전13:5)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벧전1:22)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딤후3:1,2上,4下)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딤후4:3)


 

거짓된 사랑의 가장 큰 특징은 利己的이라는 것이다. 자기를 위해, 쾌락을 만족시켜줄 자를 골라 사랑하는 것이 타락한 사랑의 모습이다. 세상 사랑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랑이 아니기 때문에 다 이런 것이다. 이타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은 오직 하나님의 생명 안에만 있다.


 

12:9, 고전13:5下,6, 히12:6, 딤전1:5, 요일2:15, 살후2:9-12


 

참 사랑은 언제나 진리와 함께 한다.(요이1:3, 요삼1:3,4) 또 반드시 그래야 한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진리를 따르지 않으면 결국 멸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리 없는 사랑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은 사람을 궁극적으로(최종적으로) 위하는 것이지 일시적으로 위하다가 결국에는 망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모든 악과 거짓, 어두움은 사랑과 공존할 수 없다. 따라서 사람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그의 악을 용인하거나 진리와 생명에 대해 무지한 채로 거짓된 삶을 살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이는 마치 상대방을 지옥으로 가도록 내버려둔 채로 사랑한다고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12:10, 빌2:3, 고전12:14-25


 

참 사랑은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의 필요(가치)를 인정하는데서 시작된다. 긍휼과 사랑은 약간 다른 것이다. 우리는 형제를 다만 불쌍히 여겨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다만 그 필요가 육신적인 필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지닌 생명의 필요라는 점에서 세상 사람들의 이기적인 사랑과는 다른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 받은 은혜의 분량대로 각각 그리스도를 대표하고 있으며 이 은혜와 은사로 말미암아 서로에게 그리스도로 역사(役事)하는 그리스도의 사자(使者)들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니 몸을 이루고 있는 지체들은 당연히 그리스도의 지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명령으로 인해서나 선심을 쓰듯이 억지로 할 일이 아니라 생명 안에서의 절대적인 필요에 의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존중히 여기고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며, 형제와 함께 하고 교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3."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가?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1,2)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엡5:10)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골1:10)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살전4:1)


 

힘써 주님을 섬기라는 것은 성령을 힘써 좇으라는 것이며 이는 곧 주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써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고 성령께서(혹은 우리 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힘써 순종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첫째,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요구)을 알려면 하나님 자신을 깊이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주님을 잘 섬기려면 무엇보다 주님을 깊이 주목하며 그 생명으로 적셔져야 한다. 그렇게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정신으로 충만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겨서 기쁘시게 하려면 믿음으로 몸을 던져서 행하는 연습(시험,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 몸은 영의 인도에 기쁘게 순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편한 대로, 정욕대로 가려고 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육신의 본성대로,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대로 가면 영의 욕구를 따라 살 수 없다. 우리는 육신의 본성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받은 바 [진리를 아는 지식]으로, [이기는 생명]으로,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임으로써](롬8:13)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영으로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 바울이 우리에게 권하는 시험이란 육으로 사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을 시험하는 것이며 자기 옛 사람의 생명, 육신의 생명으로 사는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것을 시험하는 것이다. 이것은 믿음으로 사는 것을 연습하고 시험하는 것이다.


 

"많이 힘쓰라", "열심히 하라"는 말은 육신의 행위를 독려하는 말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삶,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삶을 독려한 것이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12:6-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갈6:7-10)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엡6:5-9)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히13:16)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어떤 의식과 예법을 따라 종교적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고 의롭고 사랑이 많고 진실하고 자비로운 생명대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삶은 첫째,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지체들 곧 형제들을 사랑하며 섬기는 것으로 나타나며 다음으로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섬기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4.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삶은 성령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 안에서 안식하는 삶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는 것이 육신의 생각과 능력대로 열심히 행동하라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을 열심히 의지하고 그 인도에 열심히 따르라는 말이므로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면 몸은 바쁘게 움직이겠지만 마음은 분주하지 않고 항상 평안하며 안식하게 된다.


 

5.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는 일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인가?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기 위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말해 보라.


 

6.평소에 손님을 잘 대접하다가 不知 중에 하나님을 영접한 사람은 누구인가?


 

히13:1,2 창18:1-8


 

7.손님 대접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성도들이 손님 대접하기를 힘써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古代에 있어서 손님 접대는 타지로 여행하는 나그네를 영접하여 묵게 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고대의 여행은 매우 위험하고 불편한 고생길이었으므로 나그네를 돕는 것은 매우 절실한 일이었다. 손님 접대는 오늘날에 있어서도 여전히 필요하다. 집회나 기타의 목적으로 어느 지역을 방문한 형제들을 그 지역의 형제들이 영접하는 일이나 자유로운 교제를 위해 교회 형제들에게 집을 제공하는 일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지금도 필요하다.


 

8.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저주하거나 대적하지 않고 도리어 축복하며 또 악을 악으로 갚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여호와께서 각 사람에게 그 의와 신실을 갚으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오늘날 왕을 내 손에 붙이셨으되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오늘날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삼상24:12,13, 26:23,24)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약2:13,14)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6:14,15)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마18:21-35)


 

9.어떻게 해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과 같이 다른 형제들과 마음을 같이 할 수 있는가?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 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6:1,2)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빌2:4)


 

남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돌아보아야 하며 다음으로 易地思之 즉 자신과 상대방의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12:16中,下, 빌2:3,5-8


 

높아진 생각을 함께 맞추기는 어렵지만 밑바닥까지 낮아진 생각은 맞추기가 쉽다. 사람이 구원 받은 것은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주님)이 사람의 자리로 자신을 낮추어 내려오심으로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 되는 자리는 낮은 자리이다.


 

10.왜 그리스도인은 손해를 보면서도 기어이 범사에 선을 도모해야 하며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하는가?


 

12:17-21 / 마6:10,33, 요12:27-31, 17:14-19, 18:36,37


 

그리스도인은 개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하나님의 아들로 사는 것이며 자기 이름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를 위해서 행동한다. 그리스도인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삶의 목표는 (육체의 안락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표현하는 것이며 (마귀에게 속아서 육체대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생명대로 사는 것이다. 따라서 이익과 손해의 기준 역시 육체의 안락과 영광이 아니라 아들의 생명이 드러나느냐 못 드러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범사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오직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을 따라 행해야 한다.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