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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과 - 자유와 여유

2010.05.06 15:25

이상봉 조회 수:4083

 

 

 

제35과 생명의 특징 : 자유와 여유

(14:1-12)



 

성령 안에서의


7.연약한 형제를 받음 (14:1-15:13)


 

- 그리스도인의 자유 -

로마서 14,15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세상을 벗어나 주님께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리스도인은 그동안 매여있던 모든 죄와 거짓과 허식, 기타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인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하나님과 그 진리에만 매인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란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삶의 길'을 말하는 것이므로 결국 그리스도인은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매이고 그 외 세상의 다른 아무 것에도 매이지 않는다. 바울은 이 자유를 깨달았고 최대한 누렸다. 그리고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 자유를 누리도록 권했다. 바울이 보기에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해방되어야 할 일차적 속박은 죄와 아울러 죽은 유대종교의 율법적, 형식적 전통과 관습이었다. 유대교의 많은 행위들은 그 근원을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오시고 성령님이 오신 후에도 거기서 선뜻 벗어나지 못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성취된 것을 말하면서 사람들이 그리스도 외의 모든 옛 것들은 다 버리고 오직 성령을 좇아 주님의 생명을 따라서만 살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자유를 일깨우고 권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형제들에게 억지로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아직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생명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형제들의 생명이 충만치 못하고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스스로 확증하지 못하는 일을 억지로 행하게 된다면 그 또한 율법적 외식과 다를 바 없이 될 것이고 그렇게 이루어지는 행동은 결코 견고하고 지속적이지 못할 것을 알았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형제들에게 진리 안에서의 삶을 급하고 강제적으로 강권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다른 형제들끼리도 서로를 향해 그렇게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는 성숙하고 믿음이 강한 형제들을 향하여 연약한 형제들을 업신여기거나 비판하지 말라고 경계했다. 이 일에 있어서 바울 자신이 가장 모범을 잘 보였다. 그는 약한 형제들을 인내와 사랑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배려했다. 그것을 위해 바울은 때로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유보하기도 했다.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의 방식과 모양으로 행했고 이방인들에게는 이방인의 방식과 모양으로 행했으며, 복음 증거에 조금이라도 지장이 될만한 일은 그것이 아무리 합당한 권리라 할지라도 기꺼이 포기했다. 그의 관심사는 자기 주장을 세우거나 자기를 현시(顯示)하여 자신의 명예와 권익을 옹호하는데 있지 않고 오직 주님과 주님의 나라에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그 부르신 자녀들을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마침내 기어이 진리에 이르게 하실 줄을 믿었기 때문에 형제들을 인내로 기다릴 수 있었다. 바울은 비록 진리를 증거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인간 자아의 능력과 조급함을 따라 일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때와 방법, 성령의 일하심을 따라 일을 처리했다. 그는 성령의 최우선적이고 가장 근본적인 사역이 사람 속에 바른 지식이나 바른 일을 가지게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알고 그 안에서 생명을 얻게 하는데 있음을 알고 그것을 따라 일했다.


 

바울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특징이 {자유}와 아울러 그 자유에 바탕을 둔 {여유와 건덕(健德;덕 세움)}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주님께서 각 사람에게 자유를 주신 것은 그 자유로 자신을 자랑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을 여유 있게 사랑하여 생명으로 이끌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의 이러한 정신은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5:13) 라는 말씀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연약한 형제가 진리를 잘 몰라서 불필요한 일을 하거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혹은 자유 안에서 행하는 다른 형제들의 어떤 일들로 부담을 느낄 때, 보다 진리 안에 서 있고 보다 믿음이 강한 형제들은 그들을 멸시하거나 비판하지 말고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서 그의 생명을 보존하고 키울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이 우리를 대하신 태도로 서로를 대해야 한다. 주님은 그에게 나아온 자들은 그가 아무리 약한 자라 할지라도 다 받으셨고 사랑의 생명으로 키워나가셨다.


 

분명히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앞서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현재 진리를 풍성하게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들 안에 주님의 생명의 씨가 있는 한 언젠가는 같은 진리의 자리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현재 어떤 신자가 얼마만큼의 진리를 알고 누리고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형제들 안에서 얼마만큼 사랑으로 받아들여져서 그 생명이 계속 보존되며 성숙하도록 자라게 되느냐' 하는 것이다. 만일 현재의 연약함 때문에 형제가 다른 형제들로부터 비난을 받아 그 자리에 주저앉거나 실족하게 된다면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주인이신 그리스도에게 그런 것이지 다른 형제들 앞에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잘하는 사람도 주님 앞에서 잘하는 것이고 못하는 사람도 주님 앞에서 못하는 것이다. 책망을 하고 버리는 일이 있더라도 주인이신 주님이 그렇게 하실 일이지 남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은 오직 주님 앞에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대로 하면 된다. 이것은 다른 형제들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하라는 말이 아니라 믿음대로 행하라는 것이다. 알면서도 그 믿는 바와 다른 엉뚱한 일을 한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것이다. 누구든지 오직 주님께만 책임 있는 태도로 그 받은 은혜와 아는 바와 확신하는 바를 따라서 행동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의 눈은 의식할 필요가 없으며 다른 사람들도 그러한 형제를 비판하거나 멸시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오직 자기 양심대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이것은 성령과 그 사람간의 고유하고 은밀한 관계에 의해 유지되는 것으로서 누구도 그것을 박탈하거나 간섭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 안에 굳게 서 있고 그로 인해 자유하는 형제들은 그렇지 못한 형제들을 불쌍히 여기고 생명의 말씀으로 그들을 일깨워 진보케 해야지 멸시하거나 비판하여 넘어지게 해서는 안된다. 앞에 있는 형제들이 해야 할 일은 뒤에 있는 형제들의 행위와 일을 간섭하고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진보된 행위와 일을 통해 진리의 빛을 비추는 것이며 그것을 통하여 뒤에 있는 형제들의 행위와 일이 근본적으로 진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1.믿음에 대한 다음 여러 가지 설명 중 로마서 14장에서 말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그의 자녀들을 돌보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 (히11:6, 마6:30-33)


 

⸂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시며 그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음을 믿는 믿음 (롬3:21-26, 5:1)


 

이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명을 충만하게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승리를 우리 것으로 자유로이 누릴 수 있을 때 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양심 즉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이 하나님 앞에서 옳은 일이며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믿는 믿음 (롬14:22,23, 고전8:10,12, 10:25-28)


 

우리가 범사에 성령의 인도를 철저히 받아서 진리에 대해 분명하고 그 진리 안에서 모든 일에 거리낌이 없이 자유로이 행할 수 있을 때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는 믿음 (창15:5,6, 히11:1-3, 벧전1:3-5)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란 구약 아브라함 때부터 하나님이 그 택하신 백성들에게 제시하신 약속, 곧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천국)}를 의미한다.


 

2.그렇다면 로마서 14장에서 말하는 의미에 따를 때 '믿음이 강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반대로 '믿음이 약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해 보라.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14:1,2)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고로 그들의 양심이 악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고전8:1-7)


 

여기서 믿음은 빛과 관련된 것이며 지식과 관련된 것이다. 곧 하나님을 얼마나 아느냐 하는 것을 가지고 믿음의 정도를 말한 것이다.


 

3.의심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리고 본문에서 믿음이 약한 자들이 의심하고 있는 바는 무엇인가? (두 가지) 롬14,15장 말씀과 함께 다음 말씀들을 읽고 말해 보라.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족함이 없으리라.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전8:1-13)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전9:19-23)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여치 못하리라.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니라.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다 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전10:19-33)


 

진리에 대한 지식과 확신이 부족하여 어떤 일을 행함에 있어서 불필요한 제한을 받고 있거나 진리로 인한 자유를 분명하게 누리지 못하는 것이 의심하는 상태이다. 꼭 진리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한 사람만 아니라 진리에 대해 어렴풋이 알기는 하나 확신이 없는 사람도 의심하는 상태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바울은 로마서 14장에서 언급한 바 연약한 형제들의 문제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음식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적 습관과 절차에 관한 문제이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처럼 모든 음식은 그것이 사람들에 의해 어떻게 이용되고 쓰여졌든지 간에 다 하나님이 내신 것이며 사람의 필요를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여겨 자유로이 먹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신앙적 이유로 인해 음식을 가려먹었다. 또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처럼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거룩의 원천이므로 그가 계신 곳은 다 거룩한 곳이며 그가 인도하시는 날이 곧 거룩한 날이라고 여겼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든 날들이 다 거룩한 날이요 안식의 날로 생각했으며 특별한 절기나 날은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어떤 그리스도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여 여전히 어떤 날이 다른 날보다 더 거룩하고 특별하다고 여겼다.


 

4.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음식에 대해 그리스도인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고전8:4-6)


 

5.진리에 대한 지식은 무엇과 조화를 이룰 때 완전한 지식이 되는가?


 

진리에 대한 지식은 주님을 위하는 마음 및 사랑과 건덕(健德)의 정신과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완전한 지식이 된다.

 

6.믿음으로 행치 않는 것 즉 양심대로 행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했는데(롬14:23) 그리스도인이 다른 약한 형제들을 배려하여 자기가 아는 진리의 지식대로 행하지 않고 그들이 그릇 아는 대로 같이 행동해 준다면 이는 잘못된 일이 아닌가?


 

진리 안에서 자유한다는 것은 어떤 행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알고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바울은 헬라인인 디모데를 유대인 전도를 위해 할례를 받게 했는데(행16:1-3) 다른 곳에서는 같은 헬라인인 디도를 억지로 할례 받게 하지 않았다고 했다.(갈2:3,4) 그것은 바울이 할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서 할례는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되는 것인데 디모데에게 할례 받게 한 것은 유대인들이 그를 친밀하게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한 것이고 디도에게 할례를 받지 않게 한 것은 그때 거짓 교사들이 그리스도들인에게 할례를 강요했기 때문에 그것을 대적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먹고 마시는 문제나 어떤 형식을 취하는 문제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 일시적으로 유보할 수 있다. 이것은 진리를 모르고 자유 없이 거기에 매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7.우리가 연약한 형제들을 판단하지 말아야 할 궁극적인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14:4,8)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약4:11,12)


 

8.어떤 사람이 진리에서는 벗어났으나 주님을 위하여 그리고 그 양심(지식)에 따라 어떤 날을 특히 중히 여기거나 어떤 음식을 먹지 않는다면 그러한 행동은 어떻게 여겨져야 하는가?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14:5,6)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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