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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과 받은 은혜대로, 은사대로 섬김 (12:3-8)



 

성령 안에서의


2.은사를 사용하여 섬김으로써 그리스도의 몸을 세움 (12:3-8)

로마서 12장부터 16장까지의 말씀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바울이 이러한 말을 한 것은 [신자의 실체]를 일깨워 줌으로써 신자들이 (더 이상 마귀에게 속지 않고)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도록 돕기 위해서이다. 신자의 실제 삶은 그 지식(빛)과 믿음이 얼마나 확고한가에 좌우된다. 하나님께서 우리 옛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죽이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으로 지으셨음을 분명하게 알면 더 이상 옛 사람으로 살지 않는 것이고 모르면 여전히 정과 욕심을 따라 옛 사람으로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비록 신자 안에 거듭난 생명이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사실을 자주 일깨워줄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본문은 그리스도인 개개인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 내용은 그리스도인의 개인적 경건 생활에 대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 생활을 어떻게 온전하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그리스도인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각 사람이 따로 따로 경건하게 사는 데 있지 않고 그 받은 은혜와 은사를 따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합당하게 참여하여 서로 봉사하고 섬김으로써 몸을 세우고 온전케 하는데 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구원하신 것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에 기여하게 하려는 데 있다.(엡1:10) 이 목적을 위해 하나님은 그 부르신 각 사람들을 모아 교회로 조성하시고 이 교회가 그리스도께 신부로 드려질 수 있도록 진리의 말씀으로 깨끗케 하심으로써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단장하시는 것이다. 구원의 목적과 최종적 상태는 구원받은 각 사람들이 성령의 인도를 따라 영광스러운 교회를 이루고 그 안에서 몸의 생명 곧 하나님의 생명을 풍성히 누리게 되는 것이다.


 

현재 땅위에 드러난 교회들은 그 자체를 바로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할 만큼 분명하게 그리스도적인 성질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 교회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소수의 무리들을 통해 그러한 영광을 항상 나타내왔으며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교회들이 주님의 단련과 정화를 통해 점점 세상과 다른, 하늘에 속한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주님이 임하시게 되는 그 때에는 점도 티도 없는 완전히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드러나서 주님께 바쳐지게 될 것이다. 단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일컬어지던 교회는 그때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으로, '그리스도의 신부'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로 일컬어지게 될 것이다.


 

로마서 전반부에서 바울은 신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함으로써 하나님을 위한 새 사람으로 거듭나 하나님께 드려졌음을 말했다.(6장)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개인적, 육신적 생활을 위한 생명이 아니라 교회 생활을 위한 생명이며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한 생명이다. 성령님은 신자를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자리에서 끌어내어 온전하고 합당한 교회 생활을 하도록 인도하신다.


 

교회 생활은 가장 십자가를 필요로 하는 자리이다. 그러므로 온전한 교회 생활은 도저히 육신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구원이 힘쓰고 애씀으로 억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듯이 온전한 교회 생활 역시 사람이 억지로 애쓰고 노력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구원은 은혜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사람이 '믿음'(순종)으로 반응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마찬가지로 교회 생활 역시 믿음으로 하는 것이다. 형제들이 하나로 연합하여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것도 하나님(성령님)이 친히 하시는 것이다. 사람이 할 일은 단지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것뿐이다.(엡4:3) 교회 생활은 각 신자들이 서로 사랑하고 희생하여 섬김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것은 육신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역사를 믿고 범사에 철저히 성령 안에서 행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


 

로마서에서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서신서들에서 바울은 한 마디를 하더라도 다 교회의 온전한 건축을 염두에 두고 말을 하고 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건축되어져 가는 교회는 참으로 중요하다.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히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 생활이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필요하다. 영광스러운 교회는 참으로 하나님의 뜻의 중심이다. 교회가 교회답게 되는데 실패하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는 세워질 수 없다. 우리는 이 사실을 빛 가운데서 분명히 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령을 좇아 몸에 봉사하는 일에 전심전력해야 한다. 우리는 결코 개인적인 거룩함을 유지하는데 만족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온 교회의 거룩과 온전함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신자 각 개인의 거룩과 온전함도 얼마 안가 무너지게 되고 말 것이다. 그것은 사탄이 (하나의 몸으로 연합해 있지 못하고) 홀로 있는 신자들을 각개 격파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혼자서가 아니라 몸의 일부로서 몸 전체의 생명으로 사탄과 싸운다. 각 지체들은 머리를 붙잡고 서로 생명 안에서 교통함으로써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서 몸 전체의 충만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 이러한 누림은 각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힘을 지니게 만들며 이렇게 될 때 사탄은 이 땅에서 쫓겨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세워질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구원은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의 사역도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이나 무작정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일하심을 따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온전케 하는 일에 헌신해야 한다.

1.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드림의 방향은 무엇인가? 어디에다 드리는 것이 가장 확실하게 하나님께 드리는 삶이 되는가?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음으로 할 것이니라" (12:3-8)


 

2.교회 생활을 온전히 하기 위해 반드시 먼저 깨닫지 않으면 안될 사실은 무엇인가?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12:4,5)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전12:12-27)


 

가장 근본적인 것은 교회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교회가 무엇으로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교회의 성질이 무엇인지를 보아야 한다. 교회에는 나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형제들이 몸의 각 지체로서 함께 공존하고 있으며 이 모든 사람들 위에 그리스도가 머리로 계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분명히 볼 때 각 사람은 머리를 붙잡고 받은 은혜대로 다른 형제들과 교통하게 되며 그 결과 모두가 (자기 생명의 한계를 넘어서) 그리스도 몸의 생명을 풍성히 누릴 수 있고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밖으로 온전히 나타낼 수 있게 된다.


 

3.신자가 몸의 원리를 참으로 깨닫게 될 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무엇인가?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12:3)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고전7:7)


 

"그러나 우리는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량 밖의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더 할수록 우리의 한계를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위대하여지기를 바라노라" (고후10:13,15)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엡4:7,16)


 

첫째,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가 몸(의 다른 지체들)에 봉사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게 된다. 둘째, 봉사할 때 자기 분수 곧 자기에게 주어진 은혜와 은사의 분량을 깨닫고 그 범위를 넘지 않고 오직 받은 은혜대로, 은사대로 겸손히 행한다.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고전11:2-12)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빌2:1-4)


 

몸 안에 자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과 자기가 몸 안에서 제일 높은 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순종할 자에게 순종하며 사랑하며 섬길 자를 찾아서 섬기게 된다. 몸을 알 때 그리스도가 나의 궁극적인 머리이심을 알게 되며 따라서 범사에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그 생명을 좇아 살기를 힘쓰게 되고 또한 사람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내 머리 위에 권위자로 세우신 자가 누구인지를 항상 찾아서 순종하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생명을 실제적으로 누리고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게 된다.


 

4.각 사람이 마땅히 생각해야 할 생각이란 어떤 생각인가? 그 생각은 무엇에 근거한 생각이어야 하는가?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12:3,6)


 

교회에서 각 사람의 위치(직분)는 각자가 받은 은혜와 은사에 따라 정해진다. 받은 은혜와 은사의 종류와 정도가 각 사람의 봉사의 범위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보았으며 무엇을 체험했는지를 먼저 확증해야 한다. 몸 안에서의 섬김은 언제나 영적인 섬김이며 이것은 육신적인 재능이나 육신적인 소유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인격으로 봉사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섬기는 도구로서 생명과 인격이란 그리스도를 얼마나 알며 얼마나 체험했는가 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봉사의 도구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의 사랑과 그 생명의 풍성함을 체험한 영적 체험이 가장 귀한 은혜요 은사이다. 이것이 가장 우선이고 다음으로 이런 저런 영적 은사나 육신적 재능과 소유 등이 사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 사람의 몸 안에서의 위치 곧 봉사에 있어서 분수 및 마땅히 품어야 할 생각의 분량은 그의 생명의 분량과 일치하며 그가 하나님을 아는 정도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몸 안에서의 섬김이란 각 지체가 자기 소유한 영적 지식과 체험으로 다른 지체들을 섬기는 것이므로 언제든지 오직 자기 누리고 있는 생명대로 받은 은혜대로 모든 행동을 하면 된다. 분량대로 한다는 것은 생명대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르는 것을 말하거나 성령님이 말하게 하시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 또는 자기는 체험하지 않았으나 다른 형제들 안에서 나타나는 역사 곧 자기가 받지 않은 은혜를 부정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다 생명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분수를 넘어서서 행하는 것이요 육신대로 행하는 것이다.


 

5.은사란 무엇이며 어떤 종류가 있는가?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12:6-8)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고전12:4-11,27,28)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엡4:11)


 

은사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특별히 강하게 드러나도록 하신 그리스도의 어떤 부분(생명)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은 곧 그리스도이므로 은사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베푸신 특별한 은혜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몸의) 생명은 한 사람에게서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의도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약하고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의 생명을 온전히 받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자기 안에 하나님의 무궁한 생명을 완전히 받아들이셨고 완전히 드러내셨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생명을 땅에 온전히 나타내시기 위해서는 부득이 몸의 각 지체들에게 그리스도의 어떤 부분을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도록 허락하시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리고 이런 은사들-그리스도의 부분-을 소유한 사람들이 서로 교회로 모이게 하시고 서로 섬기도록 하신 것이다.


 

은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으로 하여금 특별히 교회에서 형제들과 교제하며 봉사하기 위해 주신 은사 곧 [영적 은사]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에게 일반적으로 주신 여러 가지의 재능 곧 일반 은사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흔히 은사라고 할 때는 특별 은사 곧 영적 은사를 가리킨다.


 

6.하나님께서 교회의 각 사람들에 은사를 주신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엡4:11,12)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12:7)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벧전4:10)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이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것은 그리스도(하나님)를 땅에서 나타내는 것을 말하며 그리스도의 생명과 인격을 세상에 나타내는(선포하는) 이것은 곧 마귀에게 여기가 하나님의 땅이며 하나님이 여기 임하셨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은사는 하나님의 나라로 부르심을 받은 각 사람들의 생명이 견고하게 되어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주님이 오실 때까지 영광스런 성전으로 건축되어 주님께 드려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7.성경에서 예로 제시된 다음 각 은사의 내용과 활용 방향에 대해 말해 보라.


 

예언하는 은사


 

예언은 미래에 대해 말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계시 즉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는 것을 전체적으로 의미한다. 그것은 주님(의 뜻)에 의해 말하는 것이며 주님을 위해 말하는 것이며 주님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구약의 예언서 즉 선지서들도 미래에 대해 말하는 부분은 적고 그 대부분이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 자녀들에게 책망과 경고, 권면 및 교훈의 말씀을 한 것이며 하나님의 마음 속에 있는 판단과 뜻(비밀)을 드러낸 것들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약의 예언도 미래에 대해 豫見하는 것보다는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뜻(비밀)을 밝히 드러내는 것을 주로 하는 은사이다.


 

섬기는 은사


 

이것은 집사의 봉사를 의미한다. 이 은사는 교회의 여러 사무적인 일들을 담당하는데 필요한 은사이므로 각각의 일을 담당하는데 필요한 일반적인 은사(재능)를 이미 받은 사람들에게 부여되든지 아니면 해당되는 지혜(재능)를 주셔서 감당케 하시든지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과 아울러 지혜(재능)가 있어야 되는 은사이다.(행6:3)


 

가르치는 은사


 

가르침과 예언은 비슷한 것이다. 그러나 예언은 주님의 직접적인 영감 아래서 주님을 위해, 주님의 뜻을 드러내는 사역인데 비해 가르침은 그러한 예언에 근거해서 다시 말하는 것이다. 예언은 하나님께서 감추셨던 비밀을 드러내신 것이므로 모든 사람이 그것을 단번에 밝히 알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예언의 말씀을 잘 가르쳐 모든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깨닫도록 돕는 은사가 필요한 것이다.


 

권위(勸慰)하는 은사


 

이것은 형제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권면하는 은사이다. 권면은 예언이나 가르침과는 다르다. 예언과 가르침은 다 말하는 은사이지만 권면은 예언과 가르침에 근거하여 사람들을 그러한 말씀에 따라 행하도록 권하는 은사이다. 이 세 종류의 은사는 다 몸을 온전케 하기 위해 주어진 은사들이며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온전히 자라도록 말씀으로 생명을 공급해 주는 은사들이다.


 

구제(救濟)하는 은사


 

구제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돈을 버는 재능과 자비의 마음, 그리고 분배하는 지혜 세 가지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구제의 은사는 손으로 수고하여 자기의 쓸 것 뿐 아니라 형제들의 쓸 것까지 감당할 수 있는 물질적 여유를 마련하는 은사와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는 사랑의 마음과 다툼이 생기지 않게끔 지혜롭게 물질을 분배할 수 있는 은사를 포함한다.


 

다스리는 은사


 

다스린다는 것은 교회의 형제들이 진리 안에서 바로 행하도록 돌보는 목자의 일을 하는 것이다. 약한 자들을 돌보고 인도하는 사람은 보통의 형제보다 몇 배로 부지런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기 일은 자기 일대로 돌보면서도 남의 일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 일에 매여 있거나 자기 일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스리는 사람이 될 수 없다. 다스리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남보다 큰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부지런함이다.


 

긍휼을 베푸는 은사


 

긍휼을 베푸는 은사는 남의 어려움을 잘 헤아리고 그것을 동정하여 힘껏 도움을 베푸는 은사이다. 여기에도 사랑의 마음과 지혜가 필요하다. 이 모든 은사는 타고난 자질과 성격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역사함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이다. 물론 타고난 자질이 채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성령 안에서 변화를 받고 통제를 받은 후에 사용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은사라고 하면 오직 방언하고 통역하거나 병 고치는 등의 표적을 행하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나 로마서 12장은 그런 은사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이 오직 예언과 섬김, 가르침, 권면, 구제, 다스림, 긍휼 베품 등과 같이 몸(교회)의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은사들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 이 은사들은 몸의 지체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기능)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세상을 위한 은사가 아니라 교회(몸) 자체를 위한 은사이다. 각 사람이 서로를 섬기는 가운데서 모두가 몸의 생명을 충만하게 누리며 교회가 교회답게 되도록 하는데 소용되는 것이 바로 이 은사들이다. 일반적으로 이 은사들은 갑자기 신비적으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은혜에 따라, 즉 각 사람이 누리는 생명의 분량에 따라 정해진다. 은혜를 많이 받아서 생명(믿음)의 분량이 충만한 사람은 여러 면에서 많이 그리고 깊이 섬길 수 있고, 그것이 적은 사람은 적게 섬기는 것이다.


 

방언이나 통역, 병 고치는 능력 등의 은사는 특별한 용도에 쓰이기 위해 주신 특별 은사이다. 이 은사들도 몸의 봉사를 위해서 쓰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주로 개인적인 필요나 혹은 세상을 위한 필요 즉 전도 등을 위해 주어지는 표적적 은사들이므로 본문에서는 취급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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