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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은사 / 고전12:29-13:13

2010.05.01 11:56

이상봉 조회 수:8764

가장 큰 은사 / 고전12:29-13:13

 
48.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은사로 섬김

우리는 요즘 은사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은사란 교회 즉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다른 형제들이 그리스도의 몸의 생명을 풍성히 누릴 수 있도록 섬기는 도구이다. 우리는 지난번에 은사는 곧 그리스도의 표현(나타남) 또는 하나님의 생명의 표현이라고 했다. 은사란 그리스도의 한 부분이 드러나는 것이요 그 생명의 능력이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오직 이 아들의 무궁한 생명(의 능력)으로써만 형제들을 섬길 수 있다. 육신적 재능과 소유로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지 못한다.

은사는 직분(직임)과 연결된다.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교사 직분을 맡아 봉사하게 될 것이고, 다스리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장로 직분을 맡아서 봉사하게 될 것이다. 구제하는 은사, 긍휼히 여기는 은사, 권면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곤경에 빠진 형제들을 돌아보는 봉사의 직분을 맡아 섬기게 될 것이다.

이 은사 또는 봉사의 직분에 귀천은 없지만 크고 작음은 있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12:28) 교회 안에는 크게는 사도나 선지자의 은사(직분)로부터 작게는 방언의 은사(직분)에 이르기까지 뿐아니라 그런 드러나는 은사가 아닌 여러 은사들과 여러 직분들이 있다. 그러나 어느 은사 어느 직분이든 그리스도의 몸을 섬겨 온전케 하는데 기여하기는 마찬가지다. 앞에서 바울이 여러 번 강하게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는 그 모든 은사들이 다 귀하고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 자기가 큰 은사를 받고 큰 직분을 맡아서 봉사를 하게 되기를 원한다. 그것은 은사나 직분의 종류가 자기 영광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린도교회 신자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각각 그 기뻐하시는 뜻대로 은사를 주신 사실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사를 주신 목적을 망각하고 누구의 은사가 더 큰가를 가지고 서로 비교하고 자랑하며 다투었다. 그 결과 자기 은사와 직임이 너무 작고 보잘것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실망하고 자기 은사를 감추어 사용하지 않으려 하고 다른 한편으로 큰 은사를 받은 사람들을 헐뜯게 되었고, 자기 은사와 직임이 크고 중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다른 형제들을 무시하고 자기가 모든 지체들 위에 군림하여 모든 일을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설사 사도가 크고 선지자가 큰 직분이라 할지라도 다 사도나 선지자일 수는 없는 것이며 병 고치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능력 행하는 것이 폼나는 은사 빛나는 직분일지라도 다 그런 일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고전12:28-30)

어느 은사 어느 직분이 중하고 어느 은사 어느 직분이 큰 것인지를 따지는 것은 거의 불필요한 일이다. 더욱이 자기를 자랑하기 위해 은사의 대소 경중을 가리는 일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교회 신자들의 생각의 틀을 일단 그대로 받아들여서 어느 은사가 과연 큰 은사요 중한 은사인지 정말로 한 번 따져보자고 한다.

어느 은사가 과연 몸을 온전케 하는데 있어서 가장 귀하고 중요하게 쓰이는 은사인가? 가장 큰 은사, 가장 큰 직분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은사란 곧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 ‘그리스도의 가장 뚜렷한 표현’ 또는 ‘그리스도의 가장 큰 특징, 가장 큰 능력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무엇이 과연 그리스도를 가장 뚜렷하게 나타내는 것인가?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전12:28-31)

바울은 어떤 더 큰 은사, 어떤 더 좋은 길을 보였는가? 그가 말한 제일 큰 은사, 제일 좋은 길은 사도직이나 선지자직도 아니고 병 고침의 능력이나 예언이나 방언을 말하는 것도 아닌 사랑이었다.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 바로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가장 큰 은사였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그리고 12장 마지막 절에서 바울은 사랑과 함께 두 가지 은사를 더 말했다. 우리가 주님이 다시 오시기까지 세상에서 몸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 꼭 필요한 세 가지 요소가 있는데 바울은 그것이 바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라고 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모든 신자에게 항상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이것들을 북돋우는 은사와 직분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은 교회 안에 이런 요소들을 유지시키고 회복하며 온전케 하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을 주셨다.

믿음은 신앙의 근본이요 기초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교제를 유지하는데는 믿음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약속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며 육신의 생명(죽을 몸의 생명, 옛 사람의 생명)을 버리고 하나님의 아들의 거듭난 생명으로 사는 것은 다 성령의 역사와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성령을 좇는 것도 믿음이 없이는 안되는 것이므로 신자의 모든 생활은 다 믿음으로 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빛이 우리에게 비춰져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형성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참으로 보게 될 때 우리 안에는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사랑이 형성된다. 믿음이 얼마나 필요한지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도무지 경험할 수 없으며 전혀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으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11: 1-3, 12:1,2)

여기서 그리스도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분으로 표현되었다. 그를 바라보는 가운데서 우리에게는 믿음이 생기고 이 믿음으로써 세상의 유혹과 핍박, 죄를 이기고 끝까지 주님을 따라갈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여기에 보조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들은 믿음의 주 곧 믿음의 창조자는 아닐지라도 믿음의 보조자는 된다.

바울은 다음으로 소망을 말했다. 소망은 주님의 약속 곧 주님의 나라가 임할 것과 그 안에서 우리 삶이 완전하게 변화될 것을 믿고 거기에 온 마음을 두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망은 믿음의 다른 표현이며 주님을 향한 간절한 사랑의 다른 표현이다.

“나는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허무에 굴복하였지만, 그것은 자의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굴복하게 하신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곧 피조물도 사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해산의 고통을 함께 겪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뿐만 아리나, 첫 열매로서 성령을 받은 우리도 자녀로 삼아 주실 것을, 곧 우리 몸을 속량하여 주실 것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롬8:19-24)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후4:16-18)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이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리가 육신의 몸에 머물러 살고 있는 동안에는, 주님에게서 떠나 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바탕으로 삼아서 살아가는 것이지, 보는 것을 바탕으로 삼아서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마음이 든든합니다. 우리는 차라리 몸을 떠나서, 주님과 함께 살기를 바랍니다.) (고후5:6-8)

여기서 바울은 현재의 불완전한 삶 곧 죄와 죽음으로 시달리고 있는 현재 세상과 현재 몸, 현재 삶을 벗어버리고 주님과 함께 완전히 연합하여 사는 새 삶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셔서 마귀와 죄를 완전히 몰아내시고 죄에 물든 옛 하늘과 옛 땅, 옛 몸과 옛 삶을 완전히 제거하시고 하나님이 온전히 다스리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온전히 드러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펼치시기를 간절히 사모한다. 이것은 그 날이 오기까지 변함 없을 우리의 소망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 안에 항상 이 소망이 충만해야 한다.

주님의 나라가 임하는 그 날까지 마귀는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랬듯이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약속에서 떠나 낙심하고 좌절하도록 계속 시험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소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 안에 성령으로 말미암는 이 참 소망이 사라진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일로 실망하고 낙심하여 주님에게서 마음이 떠나고 하나님의 약속에서 마음이 떠나 세상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이 소망을 북돋우는 형제들의 봉사가 꼭 필요하다.

교회에는 여러 은사 여러 직분들이 다 필요하지만 믿음과 소망의 은사 그리고 다음에 말할 사랑의 은사가 그 가운데서도 가장 귀하다. 특별한 믿음으로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북돋우는 사람들 그리고 주님의 재림과 그리스도의 나라를 향한 특별한 소망을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을 이 영원한 소망에 두도록 격려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귀한가? 그 어떤 은사보다 이런 은사 이런 직분이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은사라 할 수 있다. 나는 여러분이 여러 다른 은사들도 소유하기를 원하지만 특히 주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견고케 하고 항상 주님만을 바라보도록 만드는 이런 믿음과 소망의 은사, 믿음과 소망을 격려하고 자극하는 직분을 가지기를 바란다. 이런 은사는 모든 교회에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항상 필요하다.

믿음과 소망이 없으면 백 가지 다른 은사가 다 무용하다. 마음이 주님에게서 돌아서 버리면 다른 무엇으로도 그 사람을 섬길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몸과 마음은 얼마나 약한가? 우리 마음은 조그마한 유혹에도 마음을 빼앗기기 쉬우며, 조금만 하나님이 안보이고 조금만 하나님의 손길이 멀어져도 두려움과 염려에 빠지며, 작은 고통과 핍박, 작은 시험과 환란이 와도 마음이 흔들리며 낙심하게 된다.

우리로 하나님과 그 약속을 믿는 믿음과 소망을 유지하지 못하도록 흔드는 시험의 도구들은 도처에 깔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믿음의 용사들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아브라함을 비롯한 구약의 믿음의 용사들, 죠지 뮬러나 허드슨 테일러를 비롯한 근대의 믿음의 용사들이 교회 안에서 불굴의 믿음으로 앞으로 달려나갈 때 교회는 그들의 도움으로 주님을 끝까지 붙들 수 있으며 성령께 자기들을 의탁함으로써 항상 믿음과 생명으로 충만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믿음과 소망 중에 사는 굳건한 삶으로 형제들을 격려하는 이들이 특히 필요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지금 세상이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점점 좋아지기 때문이다. 좋아진다는 것은 영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육신적인 삶을 사는 데 그렇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어려움들이 있지만 그래도 대체로 역사는 옛날보다는 잘 사는 쪽으로 발전해 왔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에는 도움이 안된다. 이것은 신자들이 믿음과 소망을 유지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어왔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지금 세상, 지금 교회, 지금 우리 자신의 형편과 사정에 상관하지 않고 요동치 않으며 오직 주님의 약속에만 마음을 두고 변함 없이 주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하다.

세상이 전쟁이나 범죄 각종 혼란으로 사회적 위기를 겪거나 경제적 어려움을 당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대한 소망을 버리고 주님을 바라본다. 그러나 살기가 나아지거나 세상이 평화로우면 주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은 약화되고 세상에다 마음을 둔다. 또 교회가 신자들의 뜻대로 잘 풀려나가지 않으면 사람으로 구성되고 사람의 일로 구성되어 있는 땅 위의 교회에 소망을 버리고 성령의 일에 대해 기대를 걸고 주님이 오셔서 모든 일을 친히 이루시는 것에 대해 소망을 가진다.

그러나 교회가 신자들이 원하는 대로 부흥하고 형통하고 모든 일들이 잘 이루어져나가면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당신의 나라를 그 뜻대로 조성해 나가시는 것에 대해 소망을 두지 않고 자기들이 꾸며나가는 하나의 조직으로서의 교회 자체에 소망을 두고 그것만 바라본다. 그리고 그것은 신자 개인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자기 삶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고 여러 어려움으로 인해 위축되고 쇠해 가면 사람들은 주님이 하늘에 예비하신 새 삶을 바라보며 영생에 소망을 두게 된다. 늘 아픈 사람들이나 하는 일마다 안 되는 사람들은 결국 소망을 주님께 둘 수밖에 없으므로 주님을 바라보며 하늘에 있는, 무너지지 않고 쇠하여지지 않는 새 몸과 새 장막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몸이 건강하고 일이 형통하면 사람들의 관심은 자기 썩어질 육신과 그 육신으로 이 땅에서 전개하고 있는 육신의 일에 집중된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 안에 ‘굳건한 소망’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바울처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롬8:24,25)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4:18) 라고 하는 마음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형제들 안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충만하여 이것으로 다른 형제들을 넉넉히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세계로 인도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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